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68
그러나 성과가 대단하냐면 그건 아니었다. 조촐하기 짝이 없었다.
100개의 꽃으로 도전했지만, 얻은 씨앗은 겨우 8개뿐이었다.
나와 릴리안은 그것을 4개씩 가지기로 했다. 각자 여러 가지 방법으로 키우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본격적인 겨울이 찾아왔다.
“그래서 그 드라고니아 약초가 자라지 않는다고?”
“네, 다른 약초 사전에도 드라고니아는 없구……, 키우는 방법도 찢겨서…….”
나는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황성에서 받아 온 사전 이외엔 드라고니아에 대해 적힌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혼자서 끙끙대 봐야 더는 답이 나오지 않아서 결국 에르노 에탐에게까지 온 것이다.
미르엘 공작에게도 살짝 떠봤지만, 그는 말을 얼버무릴 뿐 내게 제대로 된 답을 주지 않았다.
“이제 한 개밖에 남지 않아써여……. 아빠는 혹시 아라여?”
이런저런 방법을 써 봤지만, 씨앗은 모두 발아하지 못하고 썩어 가기만 했다.
남은 것은 손에 쥔 것 하나뿐이었다.
릴리안이 이미 자신이 키우던 것은 다 망가졌다며 크게 울음을 터뜨리고 돌아간 후였다.
“…….”
내 물음에도 에르노 에탐은 그저 한참이나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는 어떻게 해야만 내게 이 일을 잘 설명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씨앗을 얻어 낸 것은 정말 놀랍지만…….”
에르노 에탐은 가만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한참이나 말을 고르는 듯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약초는 더 이상 이 땅에선 자라지 않는단다.”
“……왜여?”
“그걸 키우는 데 가장 중요한 재료가 더는 세상에 없으니까.”
에르노 에탐이 한참 만에 선고하듯 말했다.
* * *
드라고니아.
통칭 드래곤의 풀이라고 불리는 그 ‘전설의 식물’은 이미 오래전에 그 자취를 감췄다.
그 드라고니아의 싹을 틔우는 데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드래곤이다.
오로지 드래곤만이 키울 수 있는 꽃이 바로 드라고니아였다.
평범한 인간이 아무리 매달리고 노력해 봐야 결코 얻을 수 없다.
씨앗을 얻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예민하기 짝이 없는 생명체들을 낮이고 밤이고 돌봐야 했고 까다롭게 키워야만 했으니까.
하지만 그 전부를 해내고 여기까지 왔을 줄은, 에르노 에탐조차 짐작하지 못했다.
“아빠도, 안, 돼요……?”
“……그래, 미안하구나.”
에르노 에탐은 두 손으로 화분을 품고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절망한 시선을 보며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드래곤의 흔적이라곤 전혀 없었으니…….’
매장된 뼈라도 있으면 그 뼈를 갈아다 비료로 써 보라고 했을 것이고 오래된 썩은 피라도 있다면 그것이라도 뿌려 보라고 했을 것이다.
에이린이 하필이면 ‘드라고니아’를 구한다는 걸 알게 된 미르엘 공작도, 에르노 에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법 발품을 팔았으나 결국 성과는 없었다.
희석된 드래곤의 피를 가진 그들조차 꽃을 키워 낼 순 없었다.
에르노 에탐은 손바닥에 난 상처를 능숙하게 감추며 아이의 뒤통수를 보았다.
‘황제는 이런 서적을 뭐 하러 안겨 줘서는…….’
에르노 에탐은 아이를 달래면서도 속으로 혀를 찼다.
황실이 아니면 ‘드라고니아’에 대한 정보는 남아 있지도 않았다.
그것을 생각 없이 내어 준 황제에게 헛웃음마저 흘러나왔다.
“…….”
에이린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밤이고 낮이고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화단을 드나들었다는 것을 안다.
매일같이 릴리안 데이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흙을 뒤집어쓴 것도 알고 있다.
“네…….”
에이린이 그의 무릎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품에는 여전히 싹이 트지 않은 화분이 안겨져 있었다.
“알고 이썼어여…….”
에이린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으며 그를 보았다.
능숙하게 표정을 숨긴 아이가 해맑은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쪼르르 문으로 갔다.
“피고내서 일찍 가 보께여, 아빠.”
에이린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방을 빠져나갔다.
에르노 에탐은 물끄러미 아이가 나간 자취를 눈에 담았다.
축 늘어진 꼬리가 바닥에 질질 끌린 자국이 보였다. 에르노 에탐이 얼굴을 한 차례 쓸었다.
그는 딱히 타인의 아픔에 대단히 공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니 효율적으로 아이를 달래는 법 또한 알지 못했다. 그저 말을 조금 더 고르고 단어를 신중히 선택하는 것 정도다.
그러나 제 아이가 풀이 죽어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테렘.”
“네.”
“2황자의 상태는 어떻다지?”
“썩 좋지 않은 듯합니다. 아마 길어야 내년 봄을 넘기면 다행인 거라고…….”
제 앞에 부복한 사내의 대답에 에르노 에탐이 조용해졌다.
“의원이나 병에 대해 수소문해 봤나?”
“네, 선천적으로 약한 몸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한 병명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도움을 주고 싶어도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그래, 에이린의 친부는?”
“그게, 아예 외국으로 뜬 모양이라서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습니다.”
“한 달이다. 이미 시간을 많이 준 것 같은데.”
“…네, 죄송합니다.”
테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에르노 에탐이 고개를 까딱였다. 테렘이 모습을 감췄다.
“…따님이 우는 건 보고 싶지 않은데.”
그는 짧은 한숨을 뱉었다.
평생 쉴 일이 없었던 한숨이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난 느낌이었다.
‘생소하군.’
칼란이나 실리안을 키울 땐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었다.
“딸이라 그런가…….”
뭘 해도 불안하기만 했다.
아이의 꼬리가 축 처지기만 해도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어디 살아 있는 드래곤이라도 있었으면 좋겠군.”
드래곤 한 마리를 잡아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는 것이 차라리 딸아이의 침울한 모습을 보는 것보단 훨씬 마음이 편할 테니 말이다.
* * *
‘……역시 안 되는구나.’
마음 어딘가에선 너무 허울 좋은 꿈만 같은 이야기 같다곤 생각했다.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운 좋게 나타난 만병통치약에 대한 정보라니.
너무나도 타이밍이 딱딱 맞지 않던가. 무서울 정도의 우연이었다.
‘그렇지, 될 리가 없지.’
이미 정해진 운명을 내가 바꿀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멍하니 화분을 내려다보았다. 마음 한편에서는 분명히 안 될 확률도 생각을 해 뒀을 텐데.
‘결국 죽는구나.’
어떻게 해도 달라지진 않았다.
판타지 소설 속이라고 해서 만병통치약 따위가 존재하면 애초에 여주인공이 이미 해결했었겠지.
그런 허울 좋은 만병통치약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에노쉬는 죽은 것이다.
후두둑.
적당량의 습도를 맞춰 놓은 화분 위로 눈물이 흠뻑 떨어졌다.
“미아내…….”
릴리안에게도 에노쉬에게도 미안했다.
릴리안에겐 헛된 희망을 줘서 더 큰 절망으로 빠뜨렸고 에노쉬는 나로 인해 릴리안을 미련으로 두었을 것이다.
어떻게 할 수 없었다면 그냥 모른 척하는 편이 좋았을 텐데. 도와줄 수 없다면 만나지 않았어야 했다.
오만이었다.
‘다 같이, 다과회를 한 번 더 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저 그런 소망이 있었을 뿐이었다.
처음 사귄 친구들이었다.
내겐 늘 친구가 없었는데 친구다운 친구가 생겼으니까. 그거에 들떠서 상대를 생각지 못했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억울함과 미안함과 고통이 뒤섞인, 그저 무력함에 대한 눈물이었다.
* * *
“어머, 세상에. 아가씨!”
“웅…….”
나를 깨우러 온 로랑이 아연실색하여 입을 떡하니 벌렸다.
“세상에, 밤새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이 고운 얼굴이…….”
그녀는 정말 사색이 되어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자신이 더 울상이 되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니 이게 무슨 몬스터 한 마린가 싶기는 했다.
눈이고 입이고 뺨이고 퉁퉁 불어서는 무슨 심해어 한 마리를 보는 기분이다.
눈도 제대로 떠지질 않았다. 내가 봐도 내 꼴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오늘은…….’
루실리온이 황성에 가는 날이니까 반드시 찾아가야지.
그래서…….
‘뭘 해야 하지?’
그냥 언제나처럼 대화를 나누면 좋겠다. 에노쉬가 나으면 좋겠다.
“아이구, 얼른 얼음 가지고 올게요. 대체 밤새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무서운 꿈이라도 꾸셨어요?”
로랑이 다른 시녀를 시켜 급히 얼음과 주머니를 가지고 오게 했다.
“웅.”
꿈이라면 무서운 꿈이었지.
내 꿈이 깨어지는 꿈이었으니까.
‘오늘따라 몸이 뜨겁네…….’
열도 조금 나는 것 같다.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로랑이 얼음팩을 가져다 대니 조금 기분이 괜찮아졌지만.
‘루실리온에게 가 보자.’
아마 슬슬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로랑에게 빨리 옷을 입혀 달라고 채근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내 얼굴을 다 식히지 못한 로랑이 결국 내 채근을 이기지 못하고 옷을 입혀 주었다.
‘화분 들고 가야지.’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두었던 화분을 품에 안은 나는 굳을 수밖에 없었다.
에르노 에탐이 키울 수 없다고 단언했던 씨앗에서 아주 작은 싹이 움터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