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70
어쩐지 내가 거기에 계속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화분을 들고 슬쩍 자리를 벗어났다. 루실리온은 나를 보며 설핏 미소를 지었지만 따라 나오진 않았다.
‘기분이 이상하네.’
누군가가 죽을 예정이라고 해서 펑펑 울어 주는 것은 소설이나 드라마 속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내가 죽어도 울지 않았겠지.’
아마 드디어 죽었다며 통쾌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으음.”
생각하니 우울하군.
아냐, 뭐 기껏 새 가족이 생겼는데 우울해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 꽃이나 열심히 키워서 에노쉬에게 가져다줘야지.
‘아, 머리 아프다.’
이상하게 머리가 뜨끈뜨끈했다.
‘조금 쉬어야겠다.’
몸이 이리저리 비척거리는 것에 이상함을 느끼며 나는 대충 눈에 보이는 방으로 흐느적거리며 들어갔다.
‘여긴 응접실인가…?’
천천히 눈을 감은 나는 밭은 숨을 몰아쉬었다. 푹신하고 널찍한 소파가 보였다.
소파 테이블에 화분을 올려 둔 나는 소파에 기어 올라갔다.
‘조금만 자자.’
평소라면 어떻게든 집에 갔겠으나, 지금은 눈꺼풀이 무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온몸이 축축 늘어지는 느낌이다. 꼬리가 힘없이 툭 늘어졌다.
‘화분, 누가 가져가진 않겠…….’
생각을 채 마치지도 못하고 정신이 순식간에 암전되었다.
* * *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고요하고 평화로운 응접실 안을 울렸다.
투둑.
마치 균열이 일어나듯 작은 소리와 함께 화분에 있던 새싹이 조금씩 크기를 키우며 자라나기 시작했다.
에이린의 몸에서 새어 나오는 은빛의 마력을 화분이 게걸스럽게 삼켰다.
훌륭한 양분을 찾았다는 듯 강제로 에이린의 마력을 끌어오는 것처럼도 보였다.
새싹은 순식간에 줄기를 키우며 자라나더니 이내 단단히 줄기를 세우며 봉오리를 맺었다.
방금까지 새끼손톱만 한 새싹이었다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성장 속도였다.
다만, 그럴수록 에이린의 몸은 점점 작게 줄어들었다.
인간화가 점점 풀리는가 싶더니 이내 완전히 도마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처음보다 훨씬 커진 에이린의 등에는 둥근 혹 두 개가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이윽고 화분에 맺혀 있던 봉오리는 꽃을 활짝 피우며 마력을 흡수하던 것을 완전히 멈췄다.
힘없이 색색 숨을 내쉬고 있는 작은 도마뱀은 입고 있던 옷에 거의 파묻혔다.
드레스 위로 아주 조금 볼록 튀어나온 것을 제외하면 꼬리가 조금 튀어나온 것이 전부였다.
도마뱀이 되어 사지를 축 벌리고 늘어진 에이린이 불편한 잠을 청하고 있을 때, 응접실 문이 빼꼼히 열렸다.
“…주인님.”
루실리온이었다.
마치 에이린이 어디에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들어온 소년이 어느새 꽃을 피운 낯익은 화분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널브러진 옷가지를 보곤 옷 사이에서 에이린을 찾았다.
“…보세요, 역시 주인님은 평범한 도마뱀이 아니라니까요.”
역시 그가 예상한 대로 에이린은 이미 사라졌어야 할 고대의 잔재였다.
그는 옷을 잘 접어 어디선가 가져온 가방에 챙겨 넣곤 품에 도마뱀을 곱게 안았다.
‘드래곤에 대해선 아는 게 별로 없으니.’
난감할 따름이다.
그 존재도 정보도 아득히 옛날에 소실됐다.
수없이 이용당한 드래곤이 더는 자신들의 정보가 세상에 남지 않도록 소멸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는 한 손에 든 화분을 에노쉬의 방 안에 놓아두었다. 두 사람은 아직 서로를 끌어안은 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릴리안이 본다면 이 화분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볼 테니 구태여 설명은 남기지 않았다.
일련의 일을 마친 루실리온은 곧장 황성을 빠져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점점 열이 오르는 에이린의 몸이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어쩐지 불안한 느낌을 숨길 수가 없었다.
* * *
“야, 누나야. 진짜 일어날 생각을 안 하네,”
“넌 또 여기에 있냐?”
“그러는 형은?”
귓가로 파고드는 목소리가 무척 낯익었다. 쏟아지는 햇빛이 눈이 부셨다.
낯이 익으면서도 그다지 그립지 않았던 목소리.
‘왜 내가 여기에 있더라?’
처음으로 사고를 할 수 있게 됐다. 부유하던 정신이 조금이나마 돌아온 기분이었다.
‘뭐더라?’
떠오르는 것은 단지 한순간의 기억이었다.
‘아….’
그냥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사고가 났었나? 커다란 덤프트럭에 치인 것도 같고.
생각하려고 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냥, 버릇이지.”
또렷한 목소리가 유난히 귓가를 거슬리게 스며든다.
분명히 아까까지만 해도 뭔가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뭘 하고 있었더라?
심해 속에 잠긴 듯 온몸의 기력은 없고 축축했다.
늘 추를 매단 것처럼 무겁던 눈꺼풀이 처음으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짜 언제 깨어난다냐.”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을 부러 힘주어 열자 쏟아지는 햇살에 조금 고통스러워져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어?”
“또 왜? 너 저번에도 그렇게 말하고….”
“야, 누나 방금 눈 뜬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저번에도 결국…….”
시끄러운 소리가 귀를 두드렸다. 조금 짜증 나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햇살 아래에서 기분 좋게 잠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이 햇빛이 너무 강하게 느껴졌다.
“누나, 일어났으면 눈 떠 봐.”
어깨를 붙잡은 거친 손길에 몸을 파드득 떨면서 나는 다시 한번 눈을 떴다.
때맞춰 누군가가 커튼을 쳤다. 사위가 조금 어두워지자 천천히 눈을 떴다.
“…….”
“누나?”
눈앞에 불쑥 들어온 청년의 얼굴에 나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불쾌한 감각이 온몸을 지배했다.
“야, 누나 놀라잖아.”
뒤에서 잡아당긴 손길에 얼굴을 불쑥 내밀었던 그가 물러났다.
“…….”
왜, 나 여기에 있지?
툭툭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링거에 속이 울렁거렸다. 눈앞에 있는 저주스러운 얼굴에 토가 나올 것 같았다.
“아냐….”
숨이 절로 멎는 기분이었다.
나는 여기에 있으면 안 되잖아.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다.
“누나, 의사 부를 테니까 잠시만….”
“꺼져, 꺼져! 꺼져!!”
나는 다급히 링거 주삿바늘을 강제로 빼냈다. 바늘 자국에서 피가 솟아나며 뚝뚝 떨어졌다.
“이게 아냐.”
살고 싶은 게 아니야, 이런 곳에서 살고 싶은 게 아니라고.
“야, 너 미쳤어?! 이걸 왜 뽑아!”
“이 미친, 누나!”
피가 철철 나는 내 손을 붙잡고 이름조차 기억하고 싶지 않은 둘째가 윽박을 질렀다.
“내 몸에 손대지 말고 꺼져, 꺼져! 꺼져 달라고……. 제발……. 날 돌려보내 줘.”
나는 머리채를 붙잡으며 중얼거렸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지독한 알코올 냄새도, 병원의 특유의 그 냄새도 끔찍했다.
“돌려보내 달라니 어딜!”
“집…….”
“병원은 금방 퇴원할 수 있어. 돌아갈 수 있으니까 좀 진정해 봐, 누나.”
나를 왜 다시 여기로 데리고 온 거야. 차라리 그곳에 있게 두면 좋았을 텐데.
“집, 으로 갈래.”
눈시울이 뜨거워지나 싶더니 이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누나, 울어?”
그들은 무척 놀란 듯 나를 보고 있었으나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우는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두 사람이 누그러진 목소리로 나를 달래려 들었다.
“아, 우리 집은 금방 갈 수 있으니까…, 잠시만 금방 의사가 올 거야.”
“아냐, 그건 너희 집이지. 내 집이 아니잖아.”
나는 머리를 움켜쥐며 말했다.
그곳은 단 한 번도 내 집이었던 적이 없는 공간이었다.
톱니바퀴의 어딘가가 어긋난 것 같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뭐…?”
“난, 내 가족들이 있는 내 집으로 돌아갈 거야.”
고개를 숙인 채 나는 멍하니 읊조렸다.
자르지 못한 머리가 산발로 늘어지고 손등에는 피가 몽글몽글 배어 나오는 구멍이 크게 뚫려 있었다.
“무슨 소리야? 누나 가족은 우리잖아? 어딜 돌아가겠다는 거야?”
“그 자취방이라면 곧 돌아갈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두 소년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난 너희랑 가족 아니야. 가족이었던 적이 없잖아. 나는 불청객이었어.”
인생에 제목을 붙일 수 있다면 아마 딱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불청객’ 그 단어 하나로 내 삶은 정의할 수 있었으니까.
“아빠…….”
정신이 한 꺼풀 밖에 있는 듯 이상했다. 마치 타인의 몸에 들어온 기분에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빠…, 어딨어….”
“아빠는 지금 회사에….”
나는 나를 달래듯이 구는 그의 멱살을 붙잡았다.
“제발 내 눈앞에서 사라져, 나는… 너도 너희 아빠도 너희 엄마도 전부 끔찍…….”
‘에이린….’
멀리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에 나는 대번에 눈을 크게 떴다.
“…아빠.”
나는 급히 이불을 끌어 덮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지금 잠들지 않으면, 어쩐지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나!”
“환자가 깨어났다고 들었는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잠들게 해 줘,
제발 부탁이니까.
다시, 잠들게 해 줘.
“야, 누나! 차미소!”
그 소원을 이뤄 주듯 정신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꺼졌다.
끼익, 철컹-
마치 꿈과 현실이 다시 뒤바뀌듯, 기이한 소리가 났다. 톱니바퀴의 흐름이 뒤바뀌는 것처럼.
그러나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유예를 남겨 둔 것만 같은 불안한 소리였다.
잘못 끼워져 고장 난 무언가를 다시 고치려는 듯 나는 꽤 긴 시간 어둠 속을 부유했다.
허공을 편안하게 유영하고 또 유영하다가 보니 어느 순간 갑자기 눈을 떠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레몬이라도 한껏 깨문 듯 정신이 퍼뜩 들었다. 화들짝 놀라 눈을 번쩍 뜨자 보이는 것은 에르노 에탐이었다.
시야 가득 들어오는 에르노 에탐의 잘생긴 얼굴에 나는 눈을 끔뻑였다.
그는 놀란 듯 살짝 동공이 커져 있었다.
“꾸웅….”
눈을 끔뻑이는 사이 예상하지 못한 기이한 소리가 흘러나갔다.
나는 푹신푹신한 방석에 누워 잠을 잔 모양이었다. 둥글게 말고 자던 몸을 살짝 펴자 찌뿌둥한 몸이 한층 개운해졌다.
‘긴 꿈을 꾼 것 같은데….’
무슨 꿈을 꿨더라?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나는 하품을 길게 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잘 잤니, 에이린.”
“뀨꾸!”
미묘하게 목소리가 살짝 굵다. 인사를 하려고 앞발을 툭 들어 올리는데 앞발도 어쩐지 컸다.
‘크네?’
도마뱀이라기보단 왕도마뱀이라고 해야 할까? 무슨 손바닥이 나무토막 같은 느낌이었다.
비늘은 웬일인지 평소보다 더 반짝거렸고 크기도 좀 커진 기분이었다.
나는 네발로 툭 일어났다.
시야가 기억하던 것보단 훨씬 높다. 폴짝 뛰어 앉았는데 심지어 앉은 자세도 가능했다.
‘…도마뱀이 앉은 자세를?’
이 세계에 ‘세상에 요렇고 저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분명히 나는 거기에 나갈 수 있었을 거다.
내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자 그가 낮게 웃었다.
“아이는 성장기에 많이 잔다더니 꽤 오래 기다렸단다.”
“뀨?”
“돌아온 걸 환영한다, 따님.”
나는 활짝 웃으며 그가 벌린 품으로 폴짝 날아올라 안겼다.
파닥파닥.
‘…날아?’
내가 어떻게 나는데?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