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73
무슨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면 이런 이상한 결말에 이르는 걸까?
‘이 용두사망이라고 해서 가문의 운명까지 용두사망일 필요는 없잖아?’
내가 입을 벌리자 에르노 에탐이 내 상자를 자연스럽게 열어 주었다. 안에는 황금색의 열쇠가 들어 있었다.
“가문 창고 열쇠란다. 가주만이 가질 수 있지.”
“왜….”
그러니까 내가 왜 가주인데?!
“저 아직 다섯 살… 아니 열 살인데여…?”
“내 귀한 따님은 역대 최연소 가주가 되겠구나.”
지금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내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미르엘 공작을 바라보자 공작은 팔짱을 끼고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딱히 이 사태를 말릴 마음은 없어 보인다.
“고얀 놈.”
“할아버지…?”
내가 그를 부르자 미르엘 공작은 기다렸다는 듯 발을 구르며 사납게 입을 열었다.
“네 아비가 자기가 공작위를 받겠다고 그렇게 성실한 척 연기에 생 연기를 하더니! 내가 공작가를 넘겨주자마자 네게 곧장 이양하는 서류를 작성하더구나!”
무슨 그런 사기꾼 같은 행동을…….
내가 입을 떡하니 벌리자 에르노 에탐은 자연스럽게 내 뺨을 쓰다듬었다.
“반년 정도는 가주를 했단다.”
그가 산뜻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내 재산의 반을 네게 주었고. 물론 가주의 재산도 네게 넘어왔지. 휴양지가 부족할 것 같아서 네가 쉬는 동안 섬 몇 개도 사 두었고 멀리 가긴 귀찮을 것 같아서 남쪽 땅 하나도 점령했단다.”
“…….”
나는 에르노 에탐의 말을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여러 차례 곱씹었다.
아, 물론 여러 차례 곱씹었다고 해서 이해가 됐다는 말은 아니고.
“아, 가주가 됐다곤 하지만 실무는 나와 전 가주님이 할 거란다. 필요한 허락은 네게 받겠지.”
그렇게 다정한 얼굴로 줄줄이 말해도 하나도 이해 안 되거든요.
“나 아빠 호적에도 없었잖아요….”
콜린 공작으로 인해 가문에 입적도 못 한 데다가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타인일 것이 분명한 도마뱀 수인인 내가 대체 어떻게 이 가문의 가주가 되는 거냔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에르노 에탐은 내 말을 가만히 듣더니 해사하게 웃었다.
“다 알아서 해결했단다.”
“…….”
콜린 공작님, 살아계시는 거 맞겠지? 표정이 너무 산뜻해서 도리어 무서울 지경이다.
“할아버지… 괜찮아요?”
“떼잉, 괜찮겠느냐! 눈뜨고 코가 베였는데! 네게 넘겨주려거든 최소한 네가 성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아니, 지금 그게 문제야?
에탐 가문이 도마뱀한테 넘어가게 생겼는데?!
미르엘 공작은 에탐 가문에 엄청난 자부심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나?
“아니, 저는… 하찮은 잡종 도마뱀인데…… 대체 왜….”
단체로 약을 한 걸까?
아니면 사실 병에 걸려서 아프기라도 한 것일까? 당황한 내가 눈동자를 굴리며 작은 목소리로 항의했다.
“…누가.”
미르엘 공작의 얼굴이 대번에 사나워졌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어떤 놈이 감히 네게 하찮은 도마뱀이라고 말했느냐!”
“누, 누가 말한 건 아닌데요…!”
나는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곁에 있던 실리안도 빙긋 웃고 있었다.
“말한다고 해서 벌하지 않을 테니 말해 볼래? 그냥 조금 혼만 낼게.”
방금 일어났는데 누가 그런 말을 했겠냐고.
단지,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 것뿐이다.
‘근데 날개 달린 도마뱀….’
갑자기 떠오른 파닥파닥 날개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외면하고 있었던 현실이 살짝 돌아왔다.
“애초에 네가 왜 도마뱀이야?”
칼란 에탐이 헛웃음을 삼키며 반문했다. 팔짱을 낀 그는 뭔가 답답하다는 듯 나를 보고 있었다.
“너 일어나서 네 모습 안 봤어?”
두어 번 눈을 깜빡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말 안 해 줬어요?”
“그래, 천천히 말해도 좋을 것 같아서.”
“아, 그래요?”
칼란 에탐이 식탁에 턱을 괸 채 픽 웃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까딱이며 입을 열었다.
“너 도마뱀 아니야.”
“으응, 도마뱀이 아니구나….”
“드래곤이지.”
“아하, 난 드래고…… 응?”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에 나는 입을 벌리곤 고개를 돌렸다.
“너, 드래곤이야.”
“왜…?”
내가 왜 드래곤인데?
분명히 손바닥만 한 하찮은 도마뱀이었잖은가. 돌연변이 도마뱀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도마뱀에 날개는 없지.’
아니, 근데 내가 드래곤일 확률보다 도마뱀에 날개가 있을 확률이 더 높은 게 아닐까?
“거짓말.”
난 도마뱀인데?
내가 그런 대단하고 무서운 생명체일 리가 없잖아.
내 동공이 잘게 떨리는 걸 봤는지 칼란 에탐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는 내 겨드랑이를 붙잡고 나를 가볍게 안아 들었다.
“세상에 남은 드래곤의 핏줄은 오로지 에탐 가문밖에 없어. 그리고 드래곤이 남긴 고대 문헌에 따르면 에탐 가문의 핏줄에선 드래곤이 태어날 확률도 극히 낮게 있대.”
어느새 훌쩍 큰 소년이 나를 하늘 높이 안아 들며 웃었다.
“네가 우리 복덩이라는 얘기야, 에이린.”
눈이 잘게 떨렸다.
“내가…?”
“응, 네가.”
칼란이 나를 힘껏 품에 끌어안았다.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늘 애물단지의 역할만 했던 나였는데.
“칼란.”
“네에….”
에르노 에탐의 부름에 방해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칼란 에탐이 뚱하게 대답했다.
“에이린이 놀랐을 테니 내려놓거라.”
“…진짜 욕심도 많으셔선.”
칼란이 작게 중얼거리면서도 나를 상석에 놓아 주었다.
“따님.”
“네.”
“일단 디저트나 먹자꾸나.”
그가 내 입가에 타르트를 내밀며 말했다. 청포도가 가득 들어간 타르트는 싱그럽게까지 보였다.
먹을 걸 앞에 두니 별로 다른 생각을 하고 싶진 않아졌다.
내가 입을 벌리자 에르노 에탐이 타르트를 입에 넣어 주었다.
양껏 베어 물어 우물우물 씹자 달콤하고 상큼한 향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우음…….”
얼마나 맛있는지 절로 몸이 떨렸다.
“마시써여!”
우물거리며 신나서 대답하자 그가 타르트를 내 접시에 쌓아 주었다.
디저트와 음료까지 가득 먹고 나서야 배가 빵빵해졌다. 포만감에 숨을 훅 뱉었다.
“잘 먹었습니다!”
“잘 먹으니 보기는 좋구나.”
미르엘 공작이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나는 처리할 일이 있어서 이만 가 보마.”
“안뇽히 가세여!”
“오냐.”
“그럼 우리도 이만 가자꾸나.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많을 테니까.”
“네.”
에르노 에탐이 자연스레 나를 품에 안았다.
“내일 같이 식사하자, 에이린.”
“응, 좋아.”
“나도!”
“좋아!”
실리안과 칼란을 마지막으로 상대하곤 우리는 식당을 빠져나갔다.
방으로 돌아가는 내내 에르노 에탐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드래곤이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탓이다.
[그리고 저런 도마뱀 생태는 필요 없을 겁니다.] […….] [필요 없다니?] [주인님께선 평범한 도마뱀이 아니시니 말이에요.] […도마뱀이 아니라고?] [네.]문득, 예전에 루실리온이 했던 말이 머리 한편을 스쳤다.
‘설마 루실리온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내가 도마뱀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왜 내게 말해 주지 않았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가 드래곤이라고?’
다시 생각해도 도저히 믿기질 않았다.
확실히 도마뱀엔 이런 이상한 색이 없기는 한데. 그래도 갑자기 드래곤이라니….
‘발바닥도 뭔가 비슷하긴 했지.’
둥글고 납작하고.
그래, 마치 왕도마뱀처럼….
“아빠, 내가 사실 왕도마뱀일 수도 있잖아요.”
“네가 잠들어 있는 동안 남쪽 대륙의 코모도 가문을 납치… 아니, 데려와서 확인한 적이 있지만, 아니라더구나.”
“……음.”
“왜, 네가 드래곤인 게 싫니?”
에르노 에탐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종족이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만약에 아니면 어떡해요…?”
이렇게 주변 사람들이 기대를 하고 있는데 그 기대에 미치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다.
“아니면….”
에르노 에탐이 피식 웃었다.
“아닌 거지.”
그는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그럼 그냥 넌 내 딸인 거야. 물론 가주직은 애초부터 줄 생각이었단다.”
“네?”
“본래라면 5년 전, 네 생일에 줬을 거야. 딱히 네가 드래곤이라서 주는 게 아니다.”
어찌나 단호하게 말하는지 불안한 의심마저도 전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뭐든지 좋다,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