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79
그는 제 안경을 느리게 매만지며 금세 표정을 지웠다.
“저는 아가씨께서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저, 저는 드래곤이어서 남들이 소망하는 게 보여요!”
싸늘해진 분위기를 어떻게든 무마하고자 급히 입을 열었으나 한층 더 싸늘해졌다.
“그래서요?”
툭, 그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입가에 은은하게 맺혀 있던 미소는 사라졌고 표정은 서늘해져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그래서 절 버리지 않는 제 친구가 되어 주시겠다고요? 그게 제 소망이라고?”
“네, 선생님도 제 진짜 친구가 되어 준다고 한다면 저는 어떤 거짓말도 하지 않을게요.”
그는 제법 우스운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입꼬리를 비죽 올리고 있었다.
“…어쩌죠, 저는 아가씨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는데요.”
“많아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솔직히 모르는 게 더 많을 거다.
내가 숨기는 게 한둘이어야지.
“그래서 날 친구로 얻게 된 아가씨께선 뭘 하고 싶은데요?”
그가 상체를 굽혀 내게 속삭이듯 은밀하게 물어왔다.
“단순히 소꿉놀이를 하자는 건가요?”
“하타르….”
그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가 도는 게 싫어요.”
그게 돌면 여주인공도 고생하고 할아버지도 고생하고 칼란과 실리안도 고생하지만, 뭣보다 아빠도 고생한다.
‘아빠가 다치는 건 더 싫어.’
아빠를 지켜 주고 싶었다.
“하하, 드래곤으로서 각성하면 원래 이렇게 모든 걸 다 알게 되나요?”
힐 로즈먼트가 유쾌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다만, 나는 대답 대신 침묵을 택했다.
그는 내 제안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 듯 단번에 답을 내놓지 않았다.
나는 안달 난 티를 내지 않고 그의 답을 기다렸다.
뒷세계의 왕이자 흑막 중의 흑막인 힐 로즈먼트만이 조용히 유통되는 이 약을 아예 틀어막을 수 있었다.
‘이 ‘하타르’ 사건은 사실 타국에서 벌인 일이란 말이야.’
제국을 호시탐탐 노리는 나라는 아주 많았다.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뜨려 전쟁을 하고 금전적 이익을 취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있어 왔지만, 이번 ‘하타르’ 사건은 특히나 치밀했다.
음료수로 제국 전역에 유통된 이 액체가 중독성이 아주 강해서 사람을 망가뜨리는 것이라는 것을 밝혀내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내의 일이지만 말이다.
‘나는 이미 소설을 다 봤으니까.’
처음에는 값이 저렴해서 누구나 사 먹을 수 있었고 달콤한 걸 먹으면 살짝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였다.
먹지 않아도 단순히 기갈이나 그 음료수가 생각나는 정도였기 때문에 누구도 이 액체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래 먹을수록 점점 사고도 할 수 없게 되고 일주일 이상 마시지 않으면 그제부터 금단 증상이 생기는 거다.
‘그래도 지금은 아직 완전히 초창기니까.’
이제 밑 작업을 막 진행하는 중일 것이다. 그리고 반응을 보아하니 힐 로즈먼트는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거고.
“호기심이 동하긴 하는데, 솔직히 이번 일은 별로 끼어들고 싶지가 않아서요.”
힐 로즈먼트가 말했다. 그 말은 부드러운 거절에 가까웠다.
유순한 낯으로 내뱉는 말은 놀라울 정도로 차분해서 어리숙한 척하던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아니면….”
그가 불쑥 내게 고개를 내밀었다.
“나한테 각인하는 건 어때요? 각인한 부모가 죽으면 다시 각인할 수 있게 된다던데.”
힐 로즈먼트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가 왜 ‘각인’에 목을 매다는지 모르지 않았던 탓이다.
‘하는 수 없나.’
친구가 되어 준다는 호소는 역시 먹히지 않았다. 힐 로즈먼트가 어렸다면 효과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너무 컸잖아.’
그래서 나는 기왕이면 마지막까지 묵혀 두고 싶었던 먹잇감을 그에게 내밀기로 했다.
“붉은색… 날개 달린 도마뱀.”
힐 로즈먼트의 눈이 느리게 나에게 닿았다.
진심으로 파충류 애호가인 그는 내 짧은 말에 무언가 떠올린 듯 손가락 끝을 움찔거렸다.
“세로 동공을 가진 샛노란 눈동자에….”
힐 로즈먼트가 오만한 자세를 바꾸며 이내 상체를 앞으로 쭉 뺐다.
“어떤 불꽃도 견딜 수 있는 비늘….”
“그건…….”
그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나는 짧은 팔로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려다 말았다. 오만하게 소파에 기대어 앉은 난 마저 말을 이었다.
“와이번,”
그러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힐 로즈먼트가 조금 더 빨랐다.
그의 안경알 너머로 흥분한 눈동자가 비쳤다.
“…의 알이 있는 곳을 알아요. 제가 선생님께 알을 줄게요. 와이번도 각인이 있는 건 알죠?”
본래라면 여주인공이 우연히 주워왔다가 멋도 모르고 부화한 와이번과 각인해서 펫처럼 데리고 다니는 설정이었다.
그리고 속 힐 로즈먼트는 그것을 엄청나게 부러워했다.
오죽하면 여주인공이 알을 주웠다는 곳을 비롯해서 각종 뒷세계 시장까지 엄청나게 찾아 헤맸지만, 결국 찾지는 못했다.
사실 와이번도 ‘검은 마물 숲’의 가장 안쪽에 산다는 소문만 무성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검은 마물 숲은 독기가 가득해서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니 그 알이 폐가의 창고에 있었던 것은 아주 엄청난 여주인공 버프였다.
‘그렇다고 한들, 이 사람에게 주는 게 맞나 싶긴 한데….’
사람은 애완동물을 키우면 유순해진다고들 하니까….
어쩌면 힐 로즈먼트도 조금은 바뀔 확률이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지만, 확신은 없다.
‘미안해, 샤르네…….’
내가 네가 미래에 유용하게 쓸 것들 하나둘 다 가져다 쓰는 것 같아…….
흑흑, 속으로는 입을 주먹으로 막은 채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을 때였다.
“와이번의 알이 있는 곳을 안다고? 그것도 아직 부화하지 않은?”
“네.”
오래된 창고에 보관된 알인데, 나중에 여주인공이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와이번의 알은 뜨겁고 따뜻한 곳에서만 부화할 수 있다.
만약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긴 잠을 자며 부화의 때를 기다린다. 달걀처럼 오래 부화하지 않는다고 죽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실물을 봐야겠는데요.”
“응, 다음 수업 시간까지 가져올게요. 그럼 선생님은 나한테 ‘하타르’에 대한 정보를 주세요.”
힐 로즈먼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픽 웃었다.
“내가 누군지 아세요, 아가씨?”
“네.”
“누군지 말씀해 보시겠어요?”
그가 아주 느릿느릿 제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느리게 앞머리를 쓸어올리는 그를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명월의 길드장이요.”
겨우 앞머리를 뒤로 넘기고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겼을 뿐인데,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안경을 빼니 둥글둥글했던 눈매가 사납게 보였다.
“그 대신관 후보가 말해 줬나요?”
대신관 후보?
루실리온을 말하는 건가? 걔가 여기서 또 왜 나와?
“아뇨.”
“…그러면 이것도 드래곤의 혜안 중의 하나인가.”
그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거래를 확실히 하죠, 하타르에 대한 정보만 있으면 되는 건가요?”
힐 로즈먼트는 양 손가락을 얽어 깍지를 끼고 그 위에 제 턱을 얹으며 느긋하게 물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타르의 유통을 막고 싶어.”
내가 활짝 웃으며 말하자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닌데요. 시장이 돌아가는 상황까지 내가 어떻게 하겠어요.”
힐 로즈먼트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겨우 알 하나에 수지가 안 맞아요.”
“와이번이잖아.”
세상을 아무리 뒤져도 두 번째 알은 없을 것이 분명한 와이번이다.
그것도 부화하지 않은 와이번의 알은 평생 태어나 죽을 때까지 보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선생님은 할 수 있잖아.”
내 말에 힐 로즈먼트가 눈동자만 도르륵 굴려 나를 보았다.
“선생님은 할 수 있어. 난 믿어.”
내 단호한 말에 그는 입을 다물었다.
힐 로즈먼트의 정보망은 한낱 거지들 사이에도 있다고 일컬어질 정도로 유명했다.
그가 성년이 될 때까지 꾸려 온 거미줄은 귀족의 엉덩이에 난 털이 몇 개인지까지 알 수 있을 정도라고, 에선 묘사했었다.
미친 사이코패스, 악마의 재림 등의 기이한 명칭도 많긴 했지만….
‘그 황제조차 힐 로즈먼트의 정보량을 따라갈 수 없다고 표현했었지.’
그만큼 정보에 관해서는 힐 로즈먼트가 모르는 것이 없었다.
“역시, 납치하는 걸 포기하지 말 걸 그랬어요. 내가 아가씨와 각인했으면 좋았을 텐데.”
힐 로즈먼트는 긴 침묵 끝에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납치?”
“아가씨가 드래곤이라는 게 밝혀지고 납치와 암살 시도가 얼마나 많았는지.”
힐 로즈먼트는 그렇게 말하며 앞머리를 툭툭 털어 내리곤 다시 안경을 썼다.
“그랬어요…?”
“네. 그중에 80%가 나였지만.”
그가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