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83
나는 재빠르게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는 추기경이라고 했다. 즉 신전 측과 연관된 사람이라는 거다.
신전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루실리온.’
크루노 에탐, 그는 신전에 귀의해 모든 것을 신에게 바친 신실한 신도였다.
신의 계시가 내려와 스스로 목에 칼을 꽂으라고 한다면 그는 순순히 그렇게 할 사람이었다.
그러나, 빛 뒤엔 언제나 그림자가 있듯 신전이라고 깨끗하고 깔끔한 것만은 아니었다.
내에서 신전이 추구하는 것은 ‘인간 우월주의’다.
인간만이 우월하고 위대하며 신의 소리를 듣는 한 차원 위의 고등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신전은 인간 외의 모든 것을 경멸하고 혐오하며 열등하게 여긴다.
크루노 에탐은 바로 그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
자신에게 섞인 드래곤의 피조차 끔찍하게 여기며, 그 본성을 아득히 한계까지 억누르고 제 탄생조차 죄악으로 여겨 참회하는 사람.
그는 대신관 후보생들의 교육관이기도 했다.
즉….
‘저 미친놈이 루실리온 학대한다고오…!’
그리고 루실리온이 대신관을 이어받았을 때 죽기도 했다. 어떤 대신관보다 뛰어난 힘으로 각성한 루실리온을 보며…
“드디어 신께서 나를 부르셨군….”
…이라는 말과 함께 만족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다만, 루실리온은 신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뇌물을 받아먹거나 그 지위를 이용해 약자를 유린하는 등의 더러운 짓거리를 일삼은 이들만을 골라 숙청했다.
크루노 에탐은 체벌에 있어 손속이 과하고 신앙심이 지나치긴 해서 신관 후보생이나 대신관 후보생을 거의 세뇌하듯 굴기는 했지만, 그런 유의 더러운 짓을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조금 의아하긴 했다.
왜 루실리온이 그를 죽였는지.
왜냐하면 루실리온은 그 외의 다른 교육관 중에 손속이 과하긴 했으나 신실한 사람들은 죽이지 않았거든.
‘어휴, 지금 그게 알 게 뭐야.’
지금은 루실리온이 무사한지를 물어볼 때였다.
나는 복도를 도도도 뛰었다. 다행히 크루노 에탐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세, 세째 삼초오온!”
헉, 헉, 헉.
내 저질스러운 체력 누가 어떻게 해 줬으면.
내 부름에 크루노 에탐의 걸음이 뚝 멈췄다. 그는 아주 절제된 동작으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한쪽 팔에는 성서가 끼워져 있었다. 시선은 여전히 차갑고 건조했다.
그는 뭔가 못 들을 것을 들은 사람처럼 한쪽 눈썹을 찡그리고 있었다.
“날 부른 건가?”
“네.”
“용건은?”
“그, 신전에 루실리온…이라고 있지요?”
크루노 에탐은 그 이름을 들었음에도 한층 무표정한 낯으로 나를 보았다.
“모른다.”
“신관 후보생 중에 있는데요.”
무신경한 시선이 관심 없다는 듯 나를 내려다만 보았다.
“그, 무사한지 알고 싶어서.”
“신관 후보생은 어엿한 신관이 되기 전까진 신전에서 나갈 수 없는 게 규범이며 규칙이다.”
“아….”
“몸과 마음을 신께 바치는 청렴한 상태가 되기 전에 바깥의 삿된 것들을 접하지 않기 위함이지.”
루실리온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주어도 없고 뜬금이 없기도 해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바깥에 나갔다 온 것은 후보생이라고 할 수 없다. 다시 정결한 상태가 될 때까지 폐관 수련에 들어가지.”
지금 루실리온이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는 말이지? 내가 당황해서 막 입을 열려는 때였다.
“다 너를 만났기 때문이다. 삿된 것에 물들어 감히 성물까지 가져다 쓴 죄는 가볍지 않다.”
“루실리온은 그냥…!”
“분명히 열 살이나 됐다고 들었는데 성물을 그렇게 먹고도 몸은 제대로 크지도 않았군. 괴물이 다름없다.”
“…….”
“성서에 따르면, 창세에 신께선 짐승을 만들고 벌레를 만들고 최후에 그것들을 지배할 인간들을 만드셨지.”
크루노 에탐의 말에 입술을 뻐끔거리던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새까만 뱀 한 마리가 사특하게도 신을 속였지. 그것은 때로는 친구인 척, 때로는 가족인 척 굴다가 신이 그를 완전히 믿게 되었을 때 그분의 신체 일부를 집어삼켰다.”
“…….”
“그렇게 그 사특한 뱀은 신과 비슷한 존재가 되려고 했지. 그러나 그것은 결국 세상을 파괴하고 인간을 죽이고 자연을 망치며 애정을 갈구하다 인간에게 이용당해 결국 멸족했다.”
성서에 그런 식으로 적혀 있을 줄은 몰랐는데. 크루노 에탐만의 생각이라기엔 너무 상상력이 풍부했다.
“세상 모두가 속는다고 한들 나는 속지 않는다.”
“전 아무것도 속이지 않았어요.”
“네가 악룡이 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어딨지? 네가 술수를 부리고 있지 않다는 보장은? 네가 괴물이 아니라고 보장할 수 있나?”
크루노 에탐의 말에 말문이 절로 막혔다.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딱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적의가 가득한 시선을 마주 보고 있으니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을 뿐이다.
그는 신실한 자다.
스스로의 탄생조차 죄로 여겨 지금껏 자신을 체벌하며 상처를 새기며 참회하고 있는 사람.
“못해요.”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크루노 에탐은 내가 순순히 인정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듯 움직임을 뚝 멈췄다.
“역시 너는….”
“하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할 거예요. 삼촌이 지금까지 ‘그 일’을 후회하며 참회하며 노력하는 것처럼요.”
크루노 에탐의 얼굴이 굳었다.
“삼촌이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어쩔 수 없는 작은 불행이었어요.”
내가 그랬듯, 그에게도 작은 불행이 있었을 뿐이다.
가만히 내 눈을 들여다보던 크루노 에탐은 치부를 들킨 사람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고개를 돌렸다.
“누가 사특한 뱀의 화신 아니랄까 봐. 남의 마음을 읽다니. 나는 네 간사한 술수에 속지 않는다.”
사납게 일갈하며 몸을 돌린 크루노 에탐은 날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처럼 성큼성큼 걸었다.
“크! 루! 노! 세엣째 삼초오오온!”
내가 배에 힘을 확 주며 목소리를 높였다.
복도에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그의 발이 살짝 삐끗했다.
그도 내 목소리엔 못 배겼는지 무표정한 낯이 깨어진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조만간 찾아뵐 테니까 루시 보여 주세요!”
“헛소리.”
그가 작게 일갈하곤 몸을 돌려 성큼성큼 사라졌다.
‘오랜만이네.’
이런 적나라한 거절.
하하, 이 세계에 온 뒤로는 거의 느끼지 못했던 느낌이라 생경하기까지 했다.
루실리온이 나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부닥친 건 알겠다.
[다 너를 만났기 때문이다. 삿된 것에 물들어 감히 성물까지 가져다 쓴 죄는 가볍지 않다.] [루실리온은 그냥…!] [분명히 열 살이나 됐다고 들었는데 성물을 그렇게 먹고도 몸은 제대로 크지도 않았군. 괴물이 다름없다.]왜 귓가에 맴도는 그 목소리가 그렇게 아픈지 모르겠다.
‘못됐다니까.’
상대가 가장 상처받을 말만을 골라서 하고 말이다.
‘난 이런 말에 상처받을 정도로 무르지 않다고.’
익숙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러는 크루노 에탐이라고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다. 그도 결국은 신전의 피해자였다.
‘인간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신전은 인간 이외의 모든 것을 경멸하고 혐오한다.
거기엔 수인과 엘프, 마물은 물론 인간이 아닌 모든 것들이 속했다.
개중에 가장 싫어하는 것은 수인이었다. 짐승인 주제에 인간처럼 걷고 말한다고 끔찍하게 여겼다.
신전은 수인을 데려가 회개하게 하고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데려가 잡일꾼으로 쓰고 있다.
말이 잡일꾼이지 사실 노예였다. 신전의 수인들은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면서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루실리온이 대신관이 되면서부턴 그런 일이 없어지지만….
그러려면 루실리온이 성년이 되어야 했다. 지금 루실리온이 열네 살쯤 됐을 테니, 최소 2년은 더 있어야 할 거다.
사실 성년 이후의 일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수년이 더 걸릴지도 몰랐다.
어쩌면 나 때문에 더 늦춰질 수도 있다.
“에이린.”
“아빠?”
“그래, 네 목소리가 저택을 쩌렁쩌렁 울리더구나.”
내가 배에 힘을 주고 소리친 걸 말하는 게 분명했다. 내가 난감함에 웃자 그가 나를 품에 안아 들었다.
“건강해서 보기 좋단다.”
그가 내 등을 토닥거렸다.
“그래, 그 음침남이랑은 무슨 얘기를 했느냐.”
“음침남…….”
틀린 말은 아닌데, 그래도 자기 형 아니던가.
에르노 에탐이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왜 다들 진저리를 치는지 알 것만 같다.
‘내 아빠지만 거침이 없어.’
나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냥, 루실리온을 보게 해 달라고 했어요. 삼촌은 신전의 높은 사람이죠?”
“그렇지. 그러고 보니 네 애완동물이 보이지 않은 지 좀 된 것 같구나.”
그걸 이제야 깨달았냐고.
대체 얼마나 관심이 없었던 거야.
그는 뻔뻔하게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표정으로 해사하게 웃었다.
“그래서 사지 중 어디를 잘라 줄까, 따님?”
“네?”
“그 새끼가 네게 막말을 퍼부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의 웃음이 한층 더 화사해졌다.
아빠가 왜 웃고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내게 올 때부터 기분이 무척 저조했던 것이다.
“걱정 말거라, 형제를 죽이진 않을 테니.”
죽이는 것 외엔 뭐라도 할 것 같다는 건 내 착각인가요?
내가 대답이 없자 아빠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진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