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85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가주님. 에탐 가문의 그림자 ‘테렘’의 수장, 칸이라고 합니다.”
“에탐 직속 기사단, ‘누아르’의 부기사단장 애쉬먼드입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물난리 이후 아침 식사를 마치자 아빠가 어딘가를 가자고 해서 따라왔더니 연무장이었다.
널따란 연무장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나뉘어 서 있었다.
한쪽은 새까맣고 움직이기 편한 옷을 입은 암살자처럼 보이는 집단이었고 또 반대쪽은 검은색의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었다.
두 집단 모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열을 맞춰 나란히 서 있었는데, 그 수가 상당했다.
“에탐 가문의 사병으로 오로지 가주의 명령을 따른단다. 안면을 익혀 두면 좋을 거다.”
“아….”
열 살짜리한테 군권까지 준다는 건 아니겠지….
‘그냥 눈만 맞춰 두라는 거겠지?’
나를 보는 시선들에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게다가 테렘에, 누아르라니.
둘 다 정예 중의 정예만 들어갈 수 있다는 집단이었다. 에탐 가문의 사병 중에서도 상위 1%의 엑기스만 모아 둔 곳들 말이다.
“참고로 누아르의 단장은 그때 봤던 첫째 형님, 차르니엘이란다.”
“아….”
그래서 그렇게 커다란 대검을 들고 다녔구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테렘은 가주의 것이다. 언제나 네 곁에 있을 테니 원한다면 언제든 아무 때나 부르면 된다.”
“아무 때나요?”
“그래, 길 가다가든 어디에서든.”
그 말은 24시간 365일 감시당하는 뜻인 건가?
“네.”
위험에 처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며 나는 순순히 수긍했다.
‘다만 저쪽은 내가 무척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인데.’
눈빛에서 억울함이 느껴졌다.
혹시 저 사람도 아빠한테 낚여서 강제로 날 모시게 된 걸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앞으로 네 옆은 항상 시녀와 호위가 따라다닐 거란다.”
“네에….”
“네 안전을 위해서란다.”
그가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곤 나긋하게 말했다.
“너는 이 에탐의 가주이며, 내 딸이고, 또한 살아 있는 고대의 증명이다.”
“알고 있어요. 그럴게요.”
“그래, 착하구나.”
에르노 에탐이 내 머리를 가볍게 문질렀다.
“누아르 중에 원하는 이가 있다면 골라 보거라.”
음, 딱히 없는데.
‘에서 눈에 띄는 인재가 있던가?’
사실 용두사망을 찍어 가는 시점에는 글을 대충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아빠가 골라 주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가 깨끗한 백지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에르노 에탐이 누아르의 기사를 느리게 눈으로 훑었다.
“세 번째, 열두 번째.”
에르노 에탐이 말하자 누아르에서 세 번째에 서 있던 사람과 열두 번째에 서 있던 사람이 나와 내 앞에 부복했다.
‘…에르노 에탐은 기사단을 번호로 부른다더니 정말이었네.’
정말로 사사로운 정이라곤 없는 사람이다. 거기서 나만이 예외라는 게, 썩 싫지만은 않았지만.
“처음 뵙겠습니다, 가주님. 이오나라고 합니다.”
“아담입니다.”
갈색 머리카락을 한데로 질끈 묶은 여기사와 남색 머리카락의 무뚝뚝하게 보이는 남기사였다.
“이 둘이 좋겠구나. 실력도 좋은 편이고 둘 다 결혼을 했으니.”
“…네?”
결혼을 한 것과 내 호위기사가 되는 것 사이에 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데?
“결혼했으니 네게 추파를 던지지 않을 거다.”
“…….”
“…….”
이오나와 아담이 동시에 몸을 움찔 떨었다.
주먹을 쥐고 바닥에 댄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보아 뭐라고 반박하고 싶은 게 분명했다.
“아무도 안 할걸요…? 나 열 살인걸요. 아빠.”
억울했던 누아르 기사단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귀엽잖아. 예쁘고. 이상한 취향을 가진 놈들은 열 살짜리에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혼담을 보낸다.”
“그게 여기 기사님들은 아닐 거예요….”
억울했던 누아르 기사단이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러나 아빠를 안심시키기엔 녹록지 않았다. 도리어 코웃음을 치는 것이다.
“따님, 그런 믿음은 순식간에 깨진단다. 나를 제외한 남자 새끼들은 아무도 믿지 말거라.”
에르노 에탐의 진지한 말에 나도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나는 누아르 기사단을 한 번 보곤 어색하게 웃어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수긍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대화가 영 끝날 것 같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 일단 네가 할 건 이것뿐이구나. 오늘은 수업이 없었나?”
“네. 쉬는 날이에요. 그래서 잠깐 나갔다가 오려고요.”
“어디를?”
“신전이요!”
루실리온을 만나러 가야지.
아무리 생각해도 크루노 에탐을 떠올리면 영 뒤가 꺼림칙했다.
게다가 그 꼴을 당한 게 또 나 때문이라고 하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따님.”
가만히 나를 보던 아빠가 입을 열었다. 내가 고개를 들자 그가 말을 덧붙였다.
“신관이라고 해서 모두가 깨끗하고 청렴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단다.”
아, 신전 가서 함부로 사람을 믿지 말라고 하려는 모양이었다.
내가 걱정하지 말라고 고개를 끄덕이려는 때였다.
“그놈들 머릿속이 더 더럽단다.”
“네, 조심할게요.”
“너희는 누군가 에이린에게 추파라도 던지거나 치근덕거리면 그대로 목을 베어 버리도록.”
“예, 알겠습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연신 저어 대자 에르노 에탐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내 따님이 너무 훌륭하게 커 버려서 걱정이구나.”
난 아직 다 자라지도 않았다고!
대체 정말 성년이 되면 어떡하려나 모르겠다. 결혼은 절대로 아빠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사람이랑 해야지.
‘……할 수 있겠지?’
어쩐지 불안한 느낌이 등줄기를 쫙 훑었다.
“내가 같이 갈까, 에이린?”
“혼자 갈 수 있어요.”
같이 갔다간 절대로 루실리온을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일단, 크루노 에탐을 찾아가야지.’
대충 크루노 에탐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힐 것이다.
차라리 지금 만났던 사람들보단 훨씬 상대하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든 아빠를 달래 허락을 받아냈다. 곧이어 마차가 도착했지만, 아빠는 내가 신전에 가는 것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빠, 다녀오겠습니다.”
“정말 내가 안 가도 되겠니?”
“네, 이오나랑 아담이 있으니까요.”
내가 마차에 올라타자 두 기사도 함께 올랐다.
에르노 에탐이 불만스러운 낯으로 마차를 노려보았지만, 다행히 마차가 부서지는 일은 없었다.
“다녀올게요.”
“…조심해서 다녀오렴.”
내가 강경한 태도로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네자 그는 결국 하는 수 없이 내 뺨에 입을 맞추곤 인사를 건넸다.
마차가 출발했다.
이곳, 오리에드 제국에는 제국민 모두가 믿는 신이 있었다.
아르마(ARMA).
제국의 번영을 가져다주며, 제국민의 영혼을 구원으로 이끄는 제국의 유일신이었다.
그리고 제국의 수도에 크게 있는 신전이 아르마 제1신전이었다. 이곳이야말로 제국 전역에 흩어진 모든 신전의 모체이자 가장 큰 신전이다.
“사람이 많군요.”
“응.”
“곁에서 떨어지지 말아 주십시오, 가주님.”
이오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무슨 축일이라도 되는 것인지 신전은 인산인해였다. 신도들도 바빠 보였다.
나는 느긋하게 기도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신전의 안쪽으로 향했다.
신전은 특성상 대부분의 공간을 신도에게 개방하고 있었고 덕분에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넓었다.
“가주님, 찾으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응.”
“어느 분을 찾으십니까?”
“셋째 삼촌!”
크루노 에탐은 루실리온이 있는 곳을 알 것이다.
루실리온이 어디에 있든 일단 외부인인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닐 테니 크루노 에탐을 회유하는 것이 제일 빨랐다.
“어딨으려나….”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인적이 드문 곳까지 들어왔다.
“이런 멍청한 짐승 같은 것이! 이 성수가 대체 얼마나 귀한 것인 줄 아느냐! 네놈의 하찮은 몸뚱어리로는 갚을 수도 없는 것이다!”
짜악-!
거친 타격음에 나도 모르게 걸음이 멈췄다.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우물 옆에서 비쩍 마른 남자 하나가 몸을 웅크린 채 발발 떨고 있었다.
그 옆에는 채찍을 든 신관이 있었고 바닥에는 은제 대야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는 피죽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남자의 위로 연신 채찍질을 해댔다.
피가 터져 나오고 공포에 질린 남자의 머리에 귀와 꼬리가 튀어나왔다.
‘귀와 꼬리…?’
나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수인이잖아?’
본래 자신을 잘 제어할 수 있게 된 수인의 성체는 거의 인간과 구별할 수 없다고 한다.
웬만해선 수인화가 풀리지도 않고 수인 특유의 마력도 갈무리할 줄 알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가주님, 저런 건 보시면 안 됩니다.”
이오나가 난감한 듯 발을 동동 구르다가 실례하겠다고 하며 내 눈을 조심스럽게 가렸다.
“네가! 감히!”
짜악, 짜악!
연신 들리는 소리가 불쾌했다. 내가 손을 들어 가볍게 이오나의 손을 밀어내자 그녀가 난감해하면서도 손을 물렸다.
‘화풀이잖아.’
저건 잘못에 대해 혼을 내는 게 아니다. 그냥 분풀이를 하는 거지.
나는 옛날부터 정말로 이유 없이 혼나는 게 싫었다. 끔찍하게도 싫어서 남이 당하는 걸 보는 것도 싫다.
속이 뒤집혀서 토가 나올 것 같다고.
“야.”
나는 신관인지 괴물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채찍질을 하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야는 감히 누가…….”
분을 못 이긴 듯 씩씩거리며 고개를 돌린 신관이 나를 보고 내 뒤에 선 호위기사를 보더니 팔에서 힘을 풀었다.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수인이 발발 떨며 조심스럽게 올려다보았다가 눈을 크게 떴다.
“귀한 아가씨께선 여기 어쩐 일이십니까?”
“너무 심하잖아.”
“이것은 혼날 일을 해서 혼이 난 것뿐입니다. 보십시오, 더러운 수인입니다.”
그는 채찍의 끝으로 눈물범벅이 된 남자의 턱을 성의 없이 들어 보였다.
“예배당은 저쪽인데, 길을 잘못 드셨다면 이만 돌아가 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싫은데.”
“예?”
“싫다고, 나 여기 볼일 있어서 왔어.”
“무슨 볼일을….”
“일단…, 너 조지는 거.”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