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9
에탐 가문에는 일주일에 두 번 주기적으로 정기회의가 열렸다.
에탐 가문은 제국에서 가장 큰 군수 사업을 필두로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거래처가 있었으니 매주 두 번씩 회의하더라도 매 회의마다 논의할 거리가 산더미였다.
다양한 안건과 사업에 대해 논하기 위한 자리로, 당연하지만 에탐 가문의 직계 존속은 물론 중요 보직을 맡은 방계를 비롯하여 가신들도 참석해야 하는 중요한 회의였다.
회의 시간은 미르엘 공작의 예민함이 하늘을 찌르는 터라 괜히 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감히 숨소리도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그런 자리 말이다.
그리고 최근 그 회의에서 기행 아닌 기행이 벌어지고 있었다.
“따님, 아 해 보렴.”
“아-, 하읍!”
에르노 에탐의 말에 차마 거역하지 못하고 입을 벌린 나는 사르르 녹아내리는 푸딩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맛은 있는데…….’
시선이 따갑다.
나는 사방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우물우물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포기할 순 없었다.
내가 에르노 에탐의 딸로 취업한 이유가 바로 그들의 속을 썩이기 위함이 아니던가.
“에르노 에탐, 대체 며칠째 뭘 하는 짓거리냐!”
에르노 에탐의 기행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래서 미르엘 공작은 그것에 웬만해선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특히 작년에 제대로 당하고 난 뒤에는 더욱더 그러려고 하는 것 같았다.
며칠 전에도 에르노 에탐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려 온 날 보고 눈을 홉떴으면서 못 본 척 입을 다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세 번은 참지 못한 모양이다.
“내 따님의 간식을 챙겨 주고 있습니다만.”
“굳이 회의 시간에 말이냐?”
“말은 바로 하셔야지요, 가주님. 내가 회의 시간에 따님의 간식을 챙기는 게 아니라 내 따님의 간식 시간에 회의가 잡힌 겁니다.”
헛소리!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것이 훤히 보였다.
움찔거리는 손끝과 벌어졌으나 소리가 나오지 않는 입술을 보며 나도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야말로 세상을 제 기준으로 보는 에르노 에탐다운 발언이었다.
‘다 좋은데 왜 내가 그 폭풍의 눈이어야 하는데……?’
앞으로 5개월하고도 2주가 더 남았는데, 이러다가 에르노 에탐의 변덕에 목숨줄이 위험한 것보단 공작한테 밉보여서 어느 날 갑자기 죽는 거 아닐까?
‘절대 안 돼.’
내 목숨 절대 사수해.
“하라부지, 아바지, 나 푸링 안 머그께여.”
“뭐라?”
“따님, 왜?”
미르엘 공작과 에르노 에탐이 동시에 물었다.
“아바지가… 나 때무네 하라부지한테 혼나니까여……. 아바지 혼내지 마세여……. 혼나는 거 시러여…….”
나는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에이린, 나뿐 아이 안 하께여……. 차칸 아이 하께…….”
나는 일부러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그러다 어느 한쪽의 심기가 불편해져서 나한테 불똥 튀면 어떡해?
“솜털 같은 것이 말은 잘하는구나. 내가 언제 네게 푸딩을 먹지 말라던? 이놈한테 회의 시간에 먹이지 말라고 한 것뿐이다. 솜털이, 네가 푸딩을 열 개를 먹든 스무 개를 먹든 상관없다.”
미르엘 공작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소, 솜털이……?
이제 진짜 아예 대놓고 솜털이라고 부르는 거야……?
대체 이렇게 예쁜 분홍색 머리를 가진 솜털이 세상에 어디 있어!
근데, 솜털이면 뭐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하, 하디만…….”
“또 뭐냐.”
“마이라가 간식이는 간식 시간에만 머그래써여…….”
나는 애써 의연하게 말했다.
물론! 에탐 공작가의 푸딩은 태어나 먹어 봤던 푸딩 중에 가장 맛있는 터라 포기하긴 쉽지 않았다.
‘예전에 가끔 학교 급식으로 나왔던 푸딩도 너무 맛있었었는데…….’
반쯤 남은 푸딩을 보며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계속 보고 있으면 먹고 싶어질 것 같아서.
“갠차나여……!”
나는 애써 푸딩에서 시선을 떼고 주먹을 꼭 쥔 채 말했다.
미르엘 공작은 어딘가 퍽 마뜩잖은 사람처럼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팔짱을 끼며 고개를 홱 돌렸다.
“……됐다, 네 마음대로 하거라.”
“그렇다는데 따님, 마저 먹어야지.”
미르엘 공작의 허락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수저는 코앞에 있었다.
탱글탱글한 푸딩이 수저 위에서 흔들렸다.
나는 움직이는 수저를 따라 열심히 눈을 움직이다가 작은 입을 새처럼 한껏 벌렸다.
에라 모르겠다, 허락은 받았으니까.
“아아-, 하압.”
입으로 들어온 푸딩은 그야말로 살살 녹아내렸다. 대체 뭐로 만들면 이렇게 맛있는 거야.
주변이 조용했다.
아기 새처럼 푸딩을 받아먹던 나도 이상함을 느끼고 슬쩍 시선을 돌릴 정도였다.
내가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 나와 눈이 마주친 회의실의 사람들이 갑자기 바쁘게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훑기 시작했다.
‘뭐지…? 착각인가?’
나는 슬금슬금 손을 올려 작은 손바닥으로 뺨을 이리저리 만졌다.
‘뭔가 묻은 것 같진 않은데.’
갑작스럽게 집중된 이목이 썩 익숙지 않다. 서류철을 훑는 사람 중에는 뺨이 붉어진 사람도 있었다.
“하…….”
내가 눈치를 보며 제대로 먹지 못하자, 에르노 에탐의 짧은 한숨이 들렸다.
‘헉.’
그의 한숨 소리에 내가 반사적으로 넙죽 푸딩을 받아먹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그들은 초조한 사람처럼 파드득 몸을 떨더니 급히 회의를 재개했다.
“따님?”
“네에.”
내가 의아하게 회의를 바라보고 있자, 그가 나를 다시 불렀다.
그제야 나는 그의 가슴팍에 등을 기댄 채 편안하게 푸딩을 싹싹 비울 수 있었다.
“이번에 카르토프에 수출할 무기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그게 오더는 물밀듯 들어오고 있는데 재료가 부족합니다.”
“또.”
“네?”
“문제가 그거뿐만은 아닐 텐데. 일 키우지 말고 지금 말해라.”
“네, 네! 지금 소유하고 있는 광산의 부유석은 캘수록 품질이 낮아지고 있고 양도 그다지 많지 않아서……, 지금 제작되는 것이 처음 만들었던 것에 비해서는 확실히 성능은…….”
“골치가 아프군, 새 광산 수색은 아직도 진전이 없나?”
부유석?
나는 부른 배를 팡팡 두드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하늘에 뜨는 돌을 말하는 건가?
나는 작년에 이곳에 빙의했음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부유석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돌이 날아다니네……. 와, 역시 판타지 세계인가…….’ 하는 가벼운 생각만 했는데 생각해 보면 그게 부유석이 아닌가 싶었다.
‘나중에 누가 또 부유석 광산도 발견하지 않던가……?’
아, 생각났다.
여주인공이다. 여주인공이 부유석 광산으로 통하는 입구를 발견한다.
어디서?
공작령 부지의 뒷산에서.
그럼 누군가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
왜 공작령 부지에 하필 부유석이 있느냐고?
왜 공작은 코앞에 그 좋은 걸 두고 몇 년 동안 찾지 못 했냐고?
그야 당연했다.
이 소설은 여주인공에게 모든 행운이 몰빵되는 구조로 이야기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나중에 에탐 가문의 점수를 딸 여주인공한텐 미안하지만……, 하나만 가로채도 되겠지……?’
최대 반년 동안은 혹시나 에르노 에탐의 변덕이 일찍 시작된다면 내 편을 들어 줄 사람도 있어야 하니까.
“아바지, 저가 질무니 이써여.”
그런고로 나는 치사하지만, 미래의 여주인공이 가져갈 공적을 하나 가로채기로 했다.
“질문? 말해 보렴.”
“네! 부유석이가 모에여?”
내 질문을 들은 그는 설핏 웃으면서 순순히 입을 열었다.
“하늘을 나는 쓸모없는 돌멩이란다. 철에 조금 섞으면 무기의 무게를 한없이 가볍게 해 주지.”
“오와아…….”
설명이 참으로 간결하기도 하다.
쓸모없는 돌멩이라니, 기억하기론 머지않아 전쟁의 판도를 바꾸고 혁명을 불러올 물건이 아니던가.
나는 부러 과장되게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도 하늘이 나는 돌멩이 봐써여.”
“뭐라?!”
콰앙-!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탁자가 굉음을 내며 크게 흔들리더니 쩌적 금이 갔다.
무려 미르엘 공작이 힘줄이 돋은 주먹으로 원탁을 거세게 내리친 탓이었다.
“하늘을 나는 돌을 봤다는 것이냐?”
“쯧.”
반으로 갈라져 무너지는 원탁을 보던 에르노 에탐이 나를 품에 추슬러 안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 경이로운 광경에 말을 잃었다.
‘드래곤의 핏줄이라더니…….’
주먹질 한 번에 이 커다랗고 두꺼운 원탁이 반으로 쪼개질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
“가주님께선 그 나이에도 꽤 혈기 왕성하십니다. 그대로 뒤로 가다 보면 곧 흙으로 돌아가시겠군요.”
“난 지금 농담할 기분이 아니다.”
“제 말이 농담으로 들리셨다니 슬슬 은퇴하시는 건 어떠실지.”
미르엘 공작은 에르노 에탐을 상대하는 걸 포기했는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아가씨, 부유석이 어딨는지 아신다고요?”
“하늘을 나는 돌을 어디서 보셨습니까? 혹시 장난감이었나요?”
“아니었다면 혹시 어느 산맥에 있었는지 기억하십니까?”
갑작스럽게 코앞까지 다가온 사람들의 모습에 나는 목을 움츠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열 발자국.”
가만히 지켜보던 에르노 에탐이 빙긋 웃으며 단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 순간이었다.
미르엘 공작과 그 곁에 있는 가신을 제외하고 내 코앞에 있던 사람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쏜살같이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정확히 열 발자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