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91
‘부부는 닮는다더니….’
나는 고막이 터질 것 같은 목소리를 들으며 귀를 틀어막았다.
에르노 에탐이나 미르엘 에탐의 말투가 어디에서 왔나 했더니, 모두 할머니의 입담에서 온 모양이었다.
“아동학대라니….”
“아이가 아이답지 않은 것을 가장 싫어하신다.”
“아….”
“그래서 예전부터 우리들의 교육 같은 걸로 많이 부딪히셨지.”
크루노 에탐의 표정에 드물게 감정이 떠올랐다. 그는 나를 데리고 겁에 질린 사용인들 사이로 저택에 들어갔다.
그는 내게 고개를 까딱였다.
“가서 말려라.”
“네?”
“여기서 저걸 말릴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저 난장판 사이로 대체 어떻게 들어가라는 건데.
내가 난감한 낯을 하고 있으니 크루노 에탐이 다시 말을 얹었다.
“아이에게 해를 끼치시진 않는다.”
“……으음.”
일부러 나를 엿 먹이려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
나는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거의 전쟁을 방불케하는 난장판으로 걸어갔다.
‘저 사람이 할머니라고…?’
할머니라고 하기엔 너무도 정정하게만 보였다.
그녀는 외양만 보자면 30대 중반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자식들의 나이를 생각하면 최소한 반백 살은 되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세월에 의해 색이 조금은 빠졌으나 아름다운 금발에 빠져들 것만 같은 물빛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뿐이랴, 한 손에는 쇠로 된 기다란 지팡이를 쥔 채였다. 스태프에 부서진 집기가 상당해 보였다.
난장판이 난 집무실 한쪽에는 카일로가 자포자기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
난장판이 난 미르엘 에탐의 집무실에 발을 들인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노성에 묻힌 내 목소리를 가장 먼저 들은 아빠가 내게 대번에 시선을 던졌다.
아빠의 뺨에는 작은 선혈이 있었다. 아마 난리 통에 다친 것이 분명했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할머니……?”
내 자그마한 부름이 그녀의 귀에 닿은 듯 사나운 낯을 하고 있던 선대 공작 부인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더니 나를 보곤 냉큼 지팡이를 숨겼다.
“지금 날 부른 게냐?”
“……네.”
날카로운 눈매가 꽤 무서웠다. 찔릴 것만 같은 기분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곤 나를 보았다.
“다시 한번 불러 보거라.”
“할머니…?”
“다시.”
“하, 할머니…….”
그녀가 다시금 고개를 까딱였다. 그 모습에서 어쩐지 옛날의 에르노 에탐이 떠올랐다.
“할머니…….”
“그래, 왜 불렀느냐?”
할머니가 불러 보라면서요!
에르노 에탐의 사이코패스적인 기질이 어디에서 왔나 했는데 어쩌면 할머니에게서 온 것일지도 몰랐다.
내가 불만스럽게 바라보자 그녀가 껄껄 웃었다.
“요망한 것. 집안을 어떻게 다 홀려서 홀라당 가주직까지 가져갔나 했더니, 확실히 그럴 만도 하구나.”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턱을 문질렀다.
“그래, 뭘 바라느냐?”
“아빠, 다치게 하면 안 돼요.”
내가 다치게 했으면 했지 남에게 다치는 꼴은 도저히 못 보겠다.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게 잘만 피하더니 대체 왜 뺨에 피가 흐르는지 모를 일이다.
“잘못한 일에 대해서 혼을 내고 있었을 뿐이다.”
“…아빠 피나잖아요.”
“훈육이 거칠어지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아빠는 저 그렇게 혼내지 않는걸요.”
내가 불만스럽게 웅얼거리자 그녀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무너진 책더미 사이에서 미르엘 에탐이 끙끙거리며 일어났다.
마치 무덤에서 좀비가 살아나는 것만 같은 조금 호러틱한 모습이었다.
“그래? 저 녀석이 말이냐? 네게 관심이 없는 게 아니고?”
“…맨날 아침에 데리러 와 줘요.”
“부모라면 할 수도 있는 일이지.”
코웃음을 치며 말하는 것이 어쩐지 무척 불쾌했다.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성장기 때도 5년이나 옆에 있어 줬어요.”
“드래곤과 각인하면 인생이 달라진다는데 네가 아니라 누구라도 10년이든 20년이든 기다렸겠지.”
“나한테 가주직도 줬어요.”
“그거야말로 우스운 일이지. 본인들 일을 다 떠넘기는 게 아니라면 상식적으로 어느 열 살짜리에게 가주직을 넘기겠느냐?”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울컥하는 마음에 고개를 들자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요.”
“그래, 그 말은 너는 그냥 허수아비렷다?”
끼워서 맞춰 보면 또 그럴싸한 말을 해대니까 불쾌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에이린.”
숨이 벅찼다. 내가 씩씩거리고 있자 아빠가 다가와 나를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아빠가 나보고 자기가 떠나라고 할 때까진 떠나지 말랬어요! 내 아빠가 하고 싶다고 했어!”
내가 비명처럼 소리를 내질렀다.
그나마 내게 있는 가족을 건드리는 것이 억울해서 눈물이 퐁퐁 솟았다.
후두둑 떨어지는 내 눈물을 보던 전 공작 부인이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래, 알았다. 조금 짓궂은 짓을 했다, 내가 미안하…….”
“아빠, 나 할머니 싫어.”
“그래, 방으로 데려다주마.”
“할머니도 아니야, 나쁜 사람이야. 나 저 사람 싫어.”
그 순간이었다.
눈앞에 금빛 물결이 번지기 시작했다.
* * *
“응, 이건 할머니도 아니야, 가족은 이런 말 안 하잖아. 그치, 아빠?”
“……그렇지.”
“응응, 맞아, 나쁜 사람이야. 아빠, 나 저 사람 싫어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에이린의 동공이 세로로 쭉 가늘어졌다.
“아빠 다치게 한 것도 싫어. 나쁜 말 하는 것도 싫어. 응, 저 사람 싫어.”
무언가 작게 중얼거리는 아이의 눈동자가 평소와는 다르게 채도가 확 올라갔다.
스스로에게 세뇌하듯 읊조리는 목소리가 사뭇 섬뜩하기까지 했다.
에이린의 홍채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반짝였다. 금빛의 마력이 에이린에게서 새어 나왔다.
“저 사람이 없어지면 되겠다.”
에이린이 해사하게 웃었다.
그러나 순수한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잔인했다.
“그렇지?”
귀엽게 눈을 접은 에이린이 고개를 돌려 선대 공작 부인을 보았다.
그 순간, 그녀가 금빛의 마력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그러자 곧 그녀의 손끝이 점점 투명해졌다. 세상에서 그녀의 존재를 지워 버리겠다는 것처럼, 그녀는 점점 흐릿해졌다.
모두가 반사적으로 에이린을 보았다. 아이는 여전히 에르노 에탐의 목에 안긴 채 웃고 있었다.
순수한 얼굴을 바라보던 에르노 에탐은 문득 신어(神語)로 되어 있던 문헌의 번역본을 떠올렸다.
유독 눈에 들어와서 몇 번이나 읽었던 구문이었다.
에르노 에탐은 에이린이 폭주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는 대단히 상식적인 면이 있었으니까.
‘이런 거였군.’
상식 이전에 그저 욕망에 지배되는 것이다. 아이는 가족을 부정하는 제 어머니의 말에 화가 났고 분노했다.
“에르노, 어떻게 좀 해 보거라!”
그렇게 얻어터지면서도 그래도 아내라고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내지르지 않던 미르엘 공작이 반투명해진 제 아내에게 달려가 소리쳤다.
에르노 에탐이 제 목을 꼭 끌어안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
눈이 마주치면 헤실헤실 웃는 것이 그토록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아이를 집무실 책상에 걸터앉게 했다.
“에이린.”
“네, 아빠.”
“왜 화를 내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
그는 썩 익숙하지 않은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을 낮추고 아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응, 나랑 아빠가 가족이 아닌 것처럼 말하니까 싫었어요.”
“그랬구나. 하지만, 나는 네가 범죄자가 되는 게 더 싫단다.”
“왜요?”
“범죄자가 되면 따님은 감옥에 갈 테니 함께 있을 수가 없잖니.”
제 어머니가 죽어서 문제가 아니라 제 딸이 감옥에 갈까 봐 문제라는 막내아들의 말에 사위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