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99
난입한 손님은 다름 아닌 콜린 공작이었다.
무척 오랜만에 보아 반갑기는 했으나 반가움을 표하기에 상황이 영 반갑지 못했다.
아빠는 검을 뽑고 으르렁대고 있었고 거꾸로 매달려 고꾸라진 리하르트는 콜린 공작의 품에 안겨 있었다.
“다친 곳은 없느냐, 리하르트.”
“없어요.”
멋쩍은 듯 다소 퉁명스럽게 대답한 리하르트가 발갛게 붉어진 얼굴로 나를 힐끔 보더니 냉큼 콜린 공작의 품에서 벗어났다.
씩씩하게 손등으로 제 뺨을 비빈 리하르트가 내 아빠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공작 각하, 결계가 쳐져 있었을 텐데 여긴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마법으로.”
아빠가 코웃음을 치며 당당하게 말했다. 콜린 공작이 헛웃음을 흘리며 리하르트의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 내 아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그쪽 아들이 내 딸을 납치하고 죽이려고 했으니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려고 한 것뿐입니다만.”
“죽이다니……, 우리 착하고 순진한 아들이 그럴 리가 없습니다.”
리하르트를 건드렸기 때문인지 대답하는 콜린 공작의 목소리에 불쾌감이 묻어났다.
‘리하르트가, 순진한가…?’
나쁜 것 같진 않은데 순진한지는 잘 모르겠다.
‘리하르트는 예쁘게 돌아버린 것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내가 생각에 빠져 있는데 콜린 공작이 고개를 살짝 틀어 아빠의 품에 안겨 있는 나를 보았다.
굳었던 표정이 살짝 풀리는 것을 보며 나는 엉거주춤 고개를 숙이자, 콜린 공작도 퍽 떨떠름한 낯으로 고개를 끄덕여 내 인사를 받아 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에게 검을 뽑다니요! 연약한 내 아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 뻔했습니까!”
콜린 공작이 분노했다.
‘……연약?’
살짝 당황해서 고개를 돌리자 리하르트는 뺨을 발갛게 붉히고 있었다.
제 아버지가 앞을 막아 주는 것이 썩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자식 앞에서 함부로 검을 뽑는 부모라니……. 역시 에탐 공작께선 부모가 될 준비가 덜 된 모양이군요.”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게 부모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남의 가문까지 들어와 입양 서류를 훔쳐 갔습니까? 거기에 폐하까지 협박하고?”
아빠, 입양 서류까지 훔쳤어?
내가 경악하고 바라보자 아빠는 억울한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훔치다니……. 누가 훔쳤다는 건지 모르겠군요?”
누구보다 제일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본인을 탓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만.”
해사해진 아빠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니 콜린 공작의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아빠는 거짓말을 할 때도, 기분이 나쁠 때도 표정이 한층 화사해진다.
“그때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이 그 아이를 입양하는 것을 막았어야 했는데.”
“그 수준으로 말입니까?”
아빠가 피식 웃었다.
‘내 아빠지만 정말 얄밉다.’
너무 얄미워서 딱 한 대만 때려 주고 싶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지금 그 얘기를 왜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살인범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는데.”
언제 또 살인범이 된 거야.
“허참, 살인 미수라니……. 내 아들이 그랬을 리가 없습니다! 대체 어떻게 했다는 겁니까?”
“울렸습니다.”
“지금 뭐라고…….”
“그쪽 아들이, 내 딸을 울렸다고.”
콜린 공작은 그야말로 목구멍이 콱 막힌 사람처럼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게 어떻게 살인 미수가 됩니까?”
“아무래도 내 따님은 작고 연약하고 귀여워서, 눈물 한 방울이라도 몸에서 사라지면 생명이 위험하니까 말입니다.”
아니, 아빠 그건 아니라고.
“내 아들이 더 귀엽고 사랑스럽고 연약합니다만.”
콜린 공작의 말에 검을 쥔 손을 가볍게 늘어뜨리고 있던 아빠가 빙긋 웃으며 나를 한쪽에 내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아빠의 신형이 사라졌다.
콰앙-!
쾅-!
쿠구구구-!
몇 차례 굉음과 함께 먼지가 휘날리며 방 안에 바람이 세게 불었다.
잘 정돈되어 있던 귀여운 인형들이 날아다니고 벽이 부서지면서 책과 음식들이 쏟아졌다.
보호막을 쓰고 있는 내게는 이렇다 할 피해가 전혀 없었지만, 순식간에 벽이 뚫리자 아기자기했던 방의 광경이 처참해졌다.
“내 뱀뱀이 인형!”
리하르트가 경악하며 소리 질렀다.
‘내 인형?’
고개를 돌리자 바깥으로 우르르 쏟아지고 있는 인형들이 보였다.
‘저거… 정말 나였구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뚫린 벽 사이로 먼지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시야가 트였다.
물의 장막이 리하르트와 콜린 공작을 단단하게 막고 있었다. 제대로 막힌 공격에 아빠가 고개를 툭 옆으로 떨구며 웃었다.
“아쉽네.”
낮게 읊조린 그가 냉큼 신형을 물려 내 옆으로 돌아왔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에탐 공작!”
“살인 미수 죄 처벌?”
“울린 게 살인 미수라는 말입니까?”
“그렇지.”
“그게 살인 미수면 내 아들은 이미 수십 번은 더 죽었겠군요!”
콜린 공작이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요?”
“내 연약하고 귀여운 아들이 그쪽 딸 때문에 얼마나 울었는지 알기나 합니까!”
“저런, 그러게 강하게 키우셨어야지.”
콜린 공작은 아빠의 이기적이며 논리 없는 말에 그저 말문이 막힌 듯 조용해졌다.
“……이렇게 따지면 나 역시 에이린을 살인 미수 죄로 처벌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그러니까 살인 미수라는 전제가 잘못됐다고오!
“물론….”
콜린 공작의 말에 아빠의 입꼬리가 둥글게 말려 올라갔다.
“안 되지.”
그리고 아빠는 언제나처럼 지독히도 이기적인 논리를 내세웠다.
콜린 공작의 미간에 골이 깊게 팼다.
“아, 아빠!”
나는 급히 아빠의 다리에 매달렸다.
반파된 방을 보고 있노라니 어떻게든 싸움을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왜 그러니, 따님.”
“여,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요?”
“제보자가 있어서.”
“제보자?”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아빠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 따님은 꽤 유능한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더구나. 누가 선물해 줬는지.”
아빠가 뿌듯하게 말했다.
‘누가 선물해 주긴…….’
아빠가 선물해 줬지.
어색하게 웃고 있는데 아빠는 뭔가를 기대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 설마…….
“아빠가…… 선물해 주셨죠…….”
“그렇지.”
아빠는 무척 흡족해 보였다.
“근데 아빠, 이제 그만 싸우면 안 돼요?”
“왜지?”
“싸우는 게 싫어서요….”
나는 두 사람을 말릴 심산으로 시무룩하게 말해 보았다.
‘보통 소설에선 이렇게 말리던데…….’
내 말을 들은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러면 따님께선 이만 연회장으로 돌아가 있으렴. 네 오라비들에게 한 번 더 너한테서 떨어지면 바깥으로 임무 보낸다고 전해 주고.”
아빠가 산뜻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튕기자 바닥에 마법진이 아주 천천히 그려지기 시작했다.
“나도 금방 가마.”
아니, 싸우지 말라고.
날 내보내라는 게 아니었는데.
콜린 공작은 이런 미친놈은 살면서 처음 본다는 눈으로 아빠를 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잠에서 깨어나 오랜만에 마주했던 황제 폐하의 눈과 몹시 흡사했다.
그나저나… 제보를 한 게 루실리온이구나!
루실리온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신력을 이런 쓸데없는 곳에 써도 되는 거냐고.
‘그나저나 루실리온도 연회에 참석했을 줄은 몰랐는데.’
보통 신관들이 황실 연회에 참석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아, 루시랑 에노쉬랑 친구라서 초대받았을 수도 있겠구나.’
내가 긴 잠을 자는 동안, 루실리온은 에노쉬와 내 곁을 계속 지켰으니까 말이다.
‘다 좋은데…….’
콰앙-!
쿵-!
콰드드득-!
나는 먼지가 휘날리는 방을 멀거니 보았다. 아빠와 콜린 공작은 이제 눈으로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싸우고 있었다.
물기둥이 치솟고 굉음이 나며, 이윽고 건물이 반파되기 시작했다.
공작 둘이서 연회에 빠지고 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건데. 아빠는 보통의 육아물 아빠와는 달랐다.
내가 본 소설에선 딸이 하지 말라고 하면 보통 미친 듯이 싸우다가도 하지 않던데…….
여기 이 미친 사이코패스 아빠는 내가 하지 말라고 해도 멈추지 않는다.
화아악-!
마법진이 다 그려졌는지 이내 빛을 뿜기 시작했다.
“왼팔이 어딨지? 왼팔…….”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구석에 주저앉아 팔다리가 떨어진 인형의 잔해를 줍고 있는 리하르트와 이제 휑하게만 보이는 반쯤 부서진 저택, 그리고…
“감히 열 살밖에 안 된 내 딸한테 청혼을 해?”
그냥 난장판이었다.
* * *
“황제 폐하, 황후 마마, 2황자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왁자지껄하던 연회장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모두가 잔을 내려놓고 허리를 숙였다.
안으로 들어선 후 상석에 앉은 황제가 좌중을 훑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모두 고개를 들게.”
황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귀족들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오랜만에 열린 연회인데 이렇게 많은 인원이 참석해 주어 고맙소.”
천천히 말하던 황제가 고개를 돌려 에탐 가문의 일원이 모여 있는 곳에 시선을 두었다.
“오늘은 에탐에서 전해 줄 기쁜 소식이 있다고 들었는데……, 주인공을 비롯해서 중요 인물들이 빠져 있군.”
황제의 말에 연신 에이린을 찾으러 다녔던 귀족들의 귀가 쫑긋했다.
“두 공작은 아직도 참석하지 않은 건가?”
“그게…….”
차르니엘 에탐이 입술을 달싹이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도 막내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던 탓이다.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악-!
연회장 한가운데가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시야를 앗아가는 듯한 불빛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 순간, 차르니엘 에탐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설마, 아니길…….’
부디 그들의 막냇동생이 또 사고를 친 게 아니길 바랐다.
찰나의 환한 빛이 꺼지고 나타난 것은…….
“아……, 제, 제국의 광영이신 태양을 뵙습니다…….”
옷자락이 이리저리 구겨져 처음보다 아주 조금 꼬질꼬질하게 보이는…….
“에이린 에탐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듯, 새하얗게 질린 낯의 어린 가주님이었다.
‘이 막냉이 또 사고 쳤구나!’
직계·방계 할 것 없이 모든 에탐들의 머릿속에는 동시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