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Done Being a Hero, Unless It’s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165)
영웅은 됐어요, 은퇴라면 몰라도-165화(165/204)
덜컹덜컹, 마차는 다듬어지지 않은 숲길을 달렸다.
아델리아는 여전히 카르세스의 품이었다.
데릭은 굉장히 못마땅한 듯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고, 항상 변함없이 단단하던 테오스의 표정도 얼핏 구겨져 있었다.
그들은 황태자의 품에서 잠든 아델리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당장은 아델리아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그런 에스테르 사내들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보다 한결 차분한 표정의 카르세스가 아델리아를 내려다보았다.
대충 닦아 내긴 했지만, 피를 토해 낸 자국이 눈에 띄자 턱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에스테르 영애가 갑자기 피를 토했습니다.”
그러자 데릭의 상체가 크게 들썩였다. 그에 비해 테오스는 크게 놀란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테오스가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물었다.
“혹시, 오러가 폭주했습니까?”
카르세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일시적으로 잠재우긴 했습니다.”
그의 대답에 테오스가 눈매를 가늘게 떴다.
‘잠재웠다고?’
기본적으로 타인의 오러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그보다 강한 오러를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혹은 완벽하게 상성이 들어맞았다거나.
마법에도 속성이 나뉘고 속성 간의 상성이 존재하듯, 오러에도 비슷한 맥락의 관계성이 존재한다.
마법처럼 물과 불, 바람과 땅, 흑과 백 같은 뚜렷한 경계는 없지만.
서로의 오러가 완벽하게 들어맞는 경우는 테오스 역시 고서로만 읽었지, 직접 목격한 적이 없다.
‘확률이 지극히 낮다고 들었다.’
오러의 상성이 들어맞는다는 것은 서로의 오러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결국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완벽한 운명이라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아니.’
테오스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럴 리가 없어. 그래서는 안 된다.’
테오스가 주먹을 움켜쥐며 잠시 머릿속을 갈무리했다.
두 사람의 상성이 맞아 오러를 잠재웠다는 가정보다, 차라리 황태자의 오러가 아델리아보다 월등히 강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는 편이 어쩐지 마음이 더 편하기도 했고 머리도 덜 아팠다.
테오스가 카르세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전하, 오러를 잠재우는 방법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테오스 역시 대신관의 조언을 들은 뒤에야 아델리아의 오러를 제대로 가라앉힐 수 있었다.
“대신관께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테오스의 눈썹이 꿈틀댔다.
카르세스는 아델리아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에스테르 영애가 오러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궁금해졌습니다.”
성년이 되어야만 발현된다는 오러가 왜 어린아이에게 발현되었는지, 그것이 무엇을 뜻하며 혹시라도 생길지 모르는 돌발 상황은 없는지.
“그때 들었습니다. 성년이 되기 전 오러가 발현된 경우는 오러가 폭주를 일으킬 수 있다고.”
그래서 카르세스는 그 폭주를 안전하게 가라앉힐 방법에 관해 물었다고 했다.
그제야 테오스의 눈빛에서 경계의 기색이 다소 수그러들었다.
아델리아가 먼저 자신의 오러에 대해 밝혔다고 했을 때, 의심 많은 황태자 성격상 조사가 들어가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다.
더욱이 덕분에 아델리아의 폭주가 멈추었으니, 어찌 보면 은인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테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전하. 전하 덕분에 아델리아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카르세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공작. 먼저 나를 구한 것은 에스테르 영애였습니다.”
그러면서 카르세스는 방금까지 숲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그의 말에 테오스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흑마법사들이 움직였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카르세스의 대답에 테오스의 시선이 마차 창문 밖으로 향했다.
“아마 이번 축제는, 조용히 끝나지 않을 것 같군요.”
***
공작저에 도착한 아델리아는 곧장 침대에 눕혀졌다.
“레널드를 불러라! 어서!”
데릭은 공작가의 주치의 레널드를 데려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아델리아의 하녀들이 아델리아에게로 달라붙어 간단히 상처를 살폈다.
카르세스는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 서서 아델리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전하, 황궁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사냥제에 흑마법이 개입한 일은 목격자가 없으니 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진 뒤에야 나타난 황태자, 그리고 그의 품에서 잠이 든 것처럼 늘어져 있는 에스테르 공녀에 관한 이야기는 날이 밝는 대로 퍼져 나가게 될 터.
자신이야 크게 상관없다지만, 미혼에다 갓 데뷔탕트를 치른 귀족 영애에게는 썩 달갑지 않은 소문이 될 게 분명했다.
카르세스는 아델리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우선 목격자의 입을 막아라. 황궁은 깨어나는 것을 본 뒤 들어갈 것이다.”
카르세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루드가 뜻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예, 전하.”
루드가 공작저를 빠르게 벗어났다.
공작가의 주치의가 방으로 들어가고 아델리아의 방은 조용해졌다.
진료를 마친 레널드가 방을 빠져나오자, 테오스와 데릭도 함께 나왔다.
“어떤가.”
테오스가 묻자, 레널드가 대답했다.
“크게 상한 곳은 없으십니다. 외상이 심하신 것도 아니고, 장기가 다치신 것도 아닙니다. 단지…….”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던 레널드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오러와 관련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의학적인 병명이나 치료법을 찾긴 힘들 것 같으니 펠슨을 부르는 게 나을 듯싶습니다, 각하.”
“역시 오러 때문이었나…….”
중얼거리던 테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네, 레널드.”
그리고 테오스는 곧장 펠슨을 불렀다.
조제실에서 연구 중이던 펠슨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끌려왔다. 그리고 침대에서 죽은 듯 잠든 아델리아를 보며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아가씨께서 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던 펠슨은 레널드에게서 아델리아의 상태에 대해 들은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피를, 토하셨다고요?”
펠슨이 턱 끝을 붙잡은 채 침음하다 테오스에게 물었다.
“각하. 혹시, 아가씨께서 이전에도 피를 토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러자 테오스가 아델리아를 내려다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런 일은 없었네. 하지만…….”
테오스의 말이 이어졌다.
“알 수 없는 일이지. 항상 아이의 곁에 있어 주지 못했으니…….”
아델리아라면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사실을 숨겼을 테니까.
테오스 자신이 그러했듯이…….
데릭 역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펠슨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단순히 오러로 인한 폭주 때문이라면 저 역시 손을 쓸 수는 없습니다. 이미 황태자 전하께서 폭주를 막으셨으니 지켜보는 수밖에요…….”
하아……. 아델리아의 방은 시커먼 사내들의 자조 섞인 한숨으로 침울해졌다.
그때.
[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아니라고! ……라고! 라고!
리그하르트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아델리아를 바라보던 사내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침대 옆에 세워져 있던 성검으로 향했다.
‘방금 그거, 성검 목소리 맞지?’
놀란 펠슨이 아래턱을 떨고 있자, 데릭이 입을 열었다.
“설마……. 성검?”
그러자 리그하르트가 당당히 소리쳤다.
[그렇다! ……요.]“…….”
“…….”
하이씨. 모양 빠지게…….
리그하르트가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분명 자신은 한낱 인간들보다 더 고귀한 존재이고, 인간 나이로 따져도 훨씬 윗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델리아를 누님으로 부르고 있는 이상, 아델리아의 윗사람인 테오스와 데릭에게만큼은 함부로 대하기가 껄끄러웠다.
저 황태자도 마찬가지고…….
리그하르트는 말발굽이 되긴 싫었다.
[펠슨 선생!]리그하르트가 펠슨을 불렀다.
나름, 이 방 안에서 가장 만만한 상대를 고른 셈이다.
“아, 예? 예! 예!”
멍하니 서 있던 펠슨이 리그하르트를 향해 다가왔다.
크흠, 목을 가다듬던 리그하르트가 다 들리는 목소리로 펠슨에게 말했다.
[선생만 남고 다른 놈, ……다른 분들은 모두 나가 달라 전하시게!]“……예?”
펠슨이 슬그머니 황태자와 테오스, 데릭을 돌아보았다.
튼튼한 가슴팍 앞으로 팔짱을 끼고 선 황태자와 허리춤에 삐죽 솟은 검 손잡이를 거머쥔 테오스, 그리고 있는 힘껏 미간을 구긴 채 사나운 기운을 뿜어내는 데릭까지.
그 누구 하나 제 말 한마디에 움직여 줄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서!]리그하르트가 재촉하자 어쩔 수 없이 펠슨이 입을 열었다.
“드, 들으셨지요? 모두, 나가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불가하다.”
카르세스가 먼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리그하르트가 부우웅— 짧게 진동했다.
[그럼 누님께서 계속 저대로 잠들어 계시는 수밖에.]카르세스의 선득한 시선이 리그하르트에 닿았다.
크, 큼, 크흠, 큼큼. 리그하르트가 카르세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헛기침했다.
지, 지가 어쩔 거야. 날 녹일 수 있는 건 누님밖에 없다고! 겁먹을 거 없어!
잠깐의 적막이 흐르고, 카르세스가 먼저 방을 빠져나갔다.
황태자가 먼저 움직이자, 테오스와 데릭 역시 별수 없이 방을 나갔다.
그제야 리그하르트가 다시 말을 이어 갔다.
[펠슨 선생.]“예, 성검님.”
성검님? 깍듯한 펠슨의 모습에 리그하르트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에헴. 리그하르트가 기침 소리를 한 번 내고서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러 큐브!]“……예?”
[오러 큐브에 문제가 생겼어!]성검의 말에 펠슨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