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Done Being a Hero, Unless It’s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189)
영웅은 됐어요, 은퇴라면 몰라도-189화(189/204)
에필로그 8화
“예……?”
황망한 얼굴이 된 기사들이 멍하니 되물었다.
“죽어요? ……그 에스테르 경이요? 성검의 주인이자, 선택받은 영웅이요? 이렇게, ……허무하게요?”
“말도 안 됩니다…….
끔찍한 비보였다. 수백 년 만에 나타난 제국의 영웅이 죽어 버렸다.
몇 달 전만 해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서로의 등을 지켜 주던 전우이기도 했다.
넋이 나간 얼굴의 기사들을 바라보며 아델리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아델리아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내가 죽었다니.’
황궁을 떠난 지 수개월이 지났다더니, 내가 죽은 뒤로 온 거야?
‘기가 막히네, 정말.’
앞선 기사들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황태자의 곁을 떠난 상황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거기까지는 별 감흥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타인의 입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전해 듣는 것은 굉장히 묘한 기분을 들게 했다. 그것이 오래전의 일이라고 해도 그랬다.
‘펠슨 선생이려나.’
아델리아가 그 오두막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펠슨만이 알고 있었다.
‘또 약을 만들어서 가지고 왔다가 날 발견했나 본데.’
숨이 멎어 버린 나를.
‘하아.’
아델리아는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문질렀다.
그런데 대체 이 환영은 언제 끝나는 거야?
어쩐지 조금 지친 기분이 들었다. 이제 그만 봤으면 좋겠다. 내가 죽고 남은 사람들에 대한 환영 같은 건.
한때는 궁금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어느 순간부터 숨 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가슴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가이아 대전투가 벌어진 이유를 알려 주기 위한 환영이라면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대체 더 보여 줄 게 뭐가 있다고 이래.
게다가 오두막을 함께 찾았던 카르세스와 리그하르트도 걱정되었다.
‘전하께서 걱정하실 텐데…….’
자신만 정신을 잃은 것인지. 아니면 그들도 다른 환영을 보고 있는 건 아닐지.
그러나 그런 아델리아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이 생생한 환영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환영에서 깨어날 방법을 모르겠어. 내가 알아야 할 이야기가 더 있다는 건가……?’
그러다 불현듯, 아델리아의 시선이 두 기사가 지키고 서 있던 문으로 향했다.
황태자의 침실이었다.
‘설마…….’
아델리아는 황궁에서 카르세스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시간을 되돌리는 힘을 가진 신의 나무, 그리고 희생.
-황족의 피.
-……네?
-황족의 피를 바치면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심장을 얻는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 환영의 목적은 가이아 대전투가 벌어진 이유 따위가 아니라…….
그때, 루드가 기사들을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나중에 이야기하지. ……우선 전하를 뵈어야겠다.”
황태자의 방문 앞으로 걸어간 루드는 곧장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잠시 숨을 골랐다.
“전하, 루드입니다.”
“……들어와라.”
대답을 들은 루드가 문을 열어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델리아 역시 루드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카르세스의 방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방 안 모든 것이 어둠에 파묻힌 것만 같은 짙은 암흑이었다.
아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그저 과거의 환영일 뿐인데, 저 어두운 공간 속 카르세스가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분명 다른 사람이나 물건에 닿을 수도 없었는데, 피부에 닿는 서늘한 공기와 코끝을 파고드는 그의 향기는 실제처럼 생생했다.
‘전하…….’
방 안으로 들어온 루드는 곧바로 움직이지 못했다. 잠시 멈춰 서서 소파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할 말을 고르는 듯했다.
“전하, 에스테르 경을 찾으러 나갔던 조셉 경이 돌아왔습니다.”
“…….”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카르세스가 대답이 없자, 루드가 그에게로 한 걸음 다가섰다.
그때, 카르세스가 입을 열었다.
“루드.”
“……예, 전하.”
“떠났나.”
짧은 질문이었지만, 루드는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루드가 침묵하자, 카르세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기어이, 돌아오지 못했나…….”
어둠 속에서 흘러나온 카르세스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러나 그 담담한 목소리에는 숨기지 못한 침통함이 스며 있었다.
아델리아는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차마 볼 수 없었다.
‘내가 죽었다는 소식에 힘들어하는 그를, 볼 수가 없어…….’
말없이 사라진 게 잘못이었던 걸까. 마지막까지 그의 곁을 지켰어야 했나.
그러한 자책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황태자는 아델리아의 가문이 무너진 이후로, 항상 제 곁을 지켜 주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아델리아에게는 모든 것을 끝내고 돌아갈 집이자, 종착지였다.
‘아.’
불현듯, 아델리아가 자신이 카르세스에게 얼마나 잔인한 짓을 했었는지를 깨달았다.
‘돌아가겠다고 말이나 하지 말 것을.’
분명 이유가 있었지만, 아델리아 자신도 그렇게 죽어 버릴 줄 몰랐지만.
그것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 변명이 될 수는 없었다.
아델리아가 용기를 내어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소파에 널브러진 카르세스에게 다가가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새카만 눈 그늘이 드리워진 낯을 보니 가슴이 저며지는 것처럼 아팠다.
‘왜 이러고 계세요, 전하.’
아델리아는 한쪽 무릎을 꿇어앉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들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일어나셔야죠. 이러고 있으실 때가 아니라고요. 그동안 악시덤을 끌어내리기 위해 준비하셨던 모든 것들을 이용해서 그를 끌어내셔야 합니다! 그리고 오르셔야죠! 당연히 가지셨어야 할 그 자리, 전하의 자리를 되찾으셔야 한다고요!’
악시덤이 가이아 대전투와 연관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카르세스라면 이미 그 소문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니 더더욱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요…….’
그러나 전해지지 않을 그 외침은 아델리아의 가슴에서만 맴돌았다.
‘대체, 내가 뭐라고…….’
그저 수하 하나가 목숨을 잃었을 뿐인데.
‘황제가 되실 분께서 고작 그런 일 하나로 이토록 흔들리시면 어떡합니까…….’
단순한 환영일 뿐인데도 아델리아는 쉽사리 카르세스의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아델리아는 여전히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과거의 카르세스 곁에서 마치 망령처럼 머물고 있었다.
그나마 좋았던 게 있다면 카르세스를 원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이랄까.
카르세스는 아델리아의 죽음을 전달받은 다음 날, 업무에 복귀했다.
아델리아는 창틀에 앉아 업무를 처리하는 카르세스를 지켜보았다.
아침이고 밤이고. 카르세스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업무에만 몰두했다.
‘식사라도 좀 하시지…….’
사람이 중간이 없어요, 중간이.
아델리아가 고개를 내저었다.
어느덧 또다시 새벽이 왔다.
책상 앞에만 앉아 있던 카르세스가 오랜만에 몸을 일으켜 창가로 향했다. 집무실의 공기가 조금 더웠던 모양인지, 그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새벽 공기에 눈이 시렸다. 꿈뻑꿈뻑. 아델리아는 반사적으로 눈을 깜빡이며 창가에 선 카르세스를 바라보았다.
“루드.”
카르세스가 루드를 부르자, 문 앞에서 대기 중이던 루드가 들어왔다.
카르세스는 창밖을 응시한 채, 루드에게 미리 작성해 둔 서신을 건넸다.
“치트레오 영지의 테르하 후작을 찾아라. 서신을 전달하면 답을 내어 줄 것이다.”
“결국 방계 황족을 찾아내신 겁니까…….”
“……서둘러라.”
아델리아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계 황족? 왜 갑자기 방계 황족을 찾으시는 거지?
루드가 방을 빠져나가고 얼마 있지 않아, 카르세스는 홀로 외출할 채비를 했다.
‘어?’
며칠간 황궁을 돌아본 바로는 아델리아는 카르세스와 일정 거리 이상 멀어질 수 없었다.
‘황궁을 나가시려는 것 같은데.’
전하께서 황궁을 나가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저절로 따라가게 되나? 잠시 그러한 고민을 하는 사이.
갑자기 주위 풍경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더운 여름날 땅에서 일렁대는 아지랑이처럼.
그리고 순식간에 주위의 풍경이 바뀌었다. 아델리아가 서 있는 장소가 달라진 것이다.
‘이게 뭐…….’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며 주위를 둘러보자, 익숙한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카르세스와 아델리아가 도착한 곳은 오두막이었다.
외출 준비를 하던 카르세스는 어느새 오두막 안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의자를 끌어당겨 좁고 허름한 침대 옆에 앉았다.
‘내가 죽고 태워 버렸을 줄 알았는데, 그대로 뒀네.’
아델리아는 오두막 안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침묵하던 카르세스가 입을 열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내 불찰이었다.”
아델리아가 고개를 돌려 카르세스의 등을 바라보았다.
저 너른 등이 오늘따라 지쳐 보였다.
무엇에 대한 속죄인가. 카르세스의 뒷모습이 안쓰러웠던 아델리아가 그의 등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에게 닿을 수는 없었다.
카르세스의 커다란 손이 주인 잃은 낡은 침대 위를 천천히 쓸었다.
“황제에게 간다는 그대를 보내지 말았어야 했고.”
그는 침대 시트 하나 남지 않은 메마르고 거친 나무 침대 위를 애처롭게 더듬으며 말을 이어 갔다.
“황궁을 떠나겠다던 그대를 보내지 말았어야 했어.”
전하……. 아델리아는 욱신거리는 가슴 위로 말아 쥔 주먹을 올렸다.
“그대가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나일 거라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뒤늦게 알게 되었다.”
죽음이 그대를 먼저 데려갈 줄도 모르고.
카르세스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곧 부서져도 이상할 게 없는 의자가 삐걱대는 잡음을 냈다.
카르세스는 침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한참을 그리 서 있었다. 볼품없는 낡은 침대를 보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기를 잠시, 카르세스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것을 알아본 아델리아가 놀라 그를 향해 소리쳤다.
‘전하!’
물론, 그 목소리는 전해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