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Done Being a Hero, Unless It’s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197)
영웅은 됐어요, 은퇴라면 몰라도-197화(197/204)
특별 외전 1화
[저는 아들이면 좋겠어요.]“…….”
[이왕이면 입도 무겁고 점잖은.]아아, 누님 아이면 불가능할지도.
“…….”
정찬을 먹고 티타임을 가지던 중이었다.
난데없는 리그하르트의 말에 아델리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생기지도 않은 내 아이를 모욕하려 하지 마.”
버르장머리 없는 쇳덩이 같으니.
[곧 생길 것 같아요.]“네가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긴요. 밤낮없이 형님과 누님이 침실에서—, 으읍! 으븝!]“입 다물어.”
[제가 입이 어딨—! 으으읍!]아델리아는 급히 성검을 천에다 둘둘 감싸고서 봉인 주문이 걸린 나무 상자에다 집어넣었다.
“널 위한 선물이야, 릭.”
[누님! 이걸 관짝처럼 쓰지 마시라고요!]“조용히 있어.”
탁. 나무 상자의 뚜껑을 닫자 덜컹, 덜컹. 반항하듯 나무 상자가 흔들리다 이내 조용해졌다.
아델리아는 휴, 짧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여유로운 티타임을 즐겼다.
방금 리그하르트를 가둔 상자는 세상과 단절되는 나무 상자였다.
그곳에 리그하르트를 넣으면 바깥세상의 모든 소리가 차단된다고 했다.
그것을 먼저 원한 것은 리그하르트였다.
-[저도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듣지 않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누님.]
-“…….”
허구한 날 사랑을 나누는 황태자 부부 때문에 하루도 조용할 틈이 없으니 세상과 단절된 공간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었다.
‘뭐, 나로서도 나쁘지 않지.’
눈치가 보였던 것은 사실이니까.
매번 루드나 고용인들에게 맡길 수도 없고.
한 가지 부작용이 있다면, 어느 순간부터 성검을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것이 사랑을 나누러 간다는 의미가 돼 버렸다는 거였다.
‘여러모로 민망해.’
그러나 별수 없다.
아이를 가지기로 했으니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수밖에.
그나저나.
‘여유롭고 좋네.’
아델리아는 차를 마시며 유리 정원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투명한 유리 덕분에 파란 하늘의 청량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평화로워.’
지금도 어디엔가 숨죽이고 있을 흑마법사들이 남몰래 저주를 뿌리고 있을 것이다.
아델리아가 정화하는 저주보다 그렇게 저주에 오염되는 땅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다.
‘성검 하나로는 힘든 건가.’
게다가 이제 아이가 생기게 되면 정화 작업을 하러 나가지도 못하게 될 테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정말 이러다가 귀족들의 재촉에 떠밀려 카르세스가 정부를 들이기라도 한다면…….
“악! 싫어!”
“뭐가?”
정부라는 단어에 진저리치며 소리치던 그때, 뒤에서 카르세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전하?”
아델리아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카르세스가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눌러 앉혔다.
그런 다음 아델리아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델리아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차를 따라 주었다.
카르세스는 찻잔을 들어 올리며 입가로 가져갔다.
“뭐가 그렇게 싫어서 소리까지 지르는 거야?”
“아.”
턱 끝을 살살 긁으며 잠깐 고민하던 아델리아가 담담하게 말했다.
“전하께서 정부를 들이는 거요.”
쿨럭.
차 한 모금을 삼키던 카르세스가 놀라 기침했다.
“뭐, 뭔 부?”
“정부.”
“…….”
“정부.”
“아델, 그 이야기는 이미 끝난 게 아니었나?”
“제가 뒤끝이 좀 있어서요.”
“응징은 나 말고, 직접 정부 이야기를 꺼낸 귀족들에게 하면 안 될까?”
“어떻게 그래요. 전부 황실을 위해 충언을 올렸을 뿐인데.”
아델리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비록 황태자비가 다른 이유도 아닌, 제국의 땅을 정화하느라 식사도 거르고 잠도 제대로 자지도 못하면서 황궁 밖에서 떠돌이 생활을 했지만.”
“…….”
아델리아가 싱긋 웃었다.
“그렇게 충언을 올린 귀족 중에 제가 도와준 영지의 영주들도 제법 끼어 있더군요.”
“아아, 그렇더군.”
카르세스가 찻잔을 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델리아가 서늘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그 영지에서 가져온 장부들이 제 손에 있죠.”
후후후, 웃음소리가 음산했다. 당장이라도 일을 칠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풋. 그 모습에 카르세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미안, 아델. 내 아내는 화내는 표정도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
칫, 아델리아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정말 화낼 거예요! 한 번만 더 정부 이야기를 꺼내면 성검이 마검이 되게 할 거라고요.”
그러자 카르세스가 응원하겠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카르세스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델, 그대가 제국을 돌며 어렵게 구해 온 장부들은 내가 귀히 쓰고 있어.”
“쓸모가 있긴 했어요?”
아델리아가 궁금한 듯이 묻자 카르세스가 대답했다.
“당연하지. 덕분에 일 처리가 쉬워졌어. 조만간 귀족파에서 상당한 가문들이 찍혀 내려올 테니까.”
흐응, 아델리아가 흥미롭다는 듯 콧소리를 냈다.
아델리아는 지난 몇 년간 제국의 영지를 돌며 정화 작업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저주의 정화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들른 영지에서 영지민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영주의 비리를 캐내며 그 비리를 증명할 수 있는 장부를 찾기 위해서였다.
반황제파 세력인 귀족파들의 영지를 우선으로 돌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덕분에 반란의 씨앗도 포착했고.’
세기의 영웅이자 성검의 주인이 나타난 세상. 모두가 평화를 꿈꾸는 세상.
그럼에도 제 욕심을 채우고 반란을 꿈꾸는 종자들은 늘 존재했으니까.
아델리아가 카르세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전하. 전하와 이 제국은 내가 꼭 지킬 거니까.”
그러자 카르세스의 눈이 조금 커지더니 이내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내 아내가 얼마나 대단한 분이신지 잠시 잊고 있었네.”
카르세스가 의자에서 일어나 아델리아에게로 성큼 다가왔다.
그러고는 앉아 있던 아델리아를 양팔로 번쩍 들어 올리며 그녀의 귓가게 작게 속삭였다.
“침대 위에서도 대단한 분이라는 걸, 확인시켜 주시죠.”
그러자 아델리아가 배시시 웃으며 카르세스의 목을 끌어안았다.
“몇 번이고 확인시켜 드릴게요.”
두 사람은 침실로 가는 내내 내기라도 한 사람처럼 서로의 입술에 입을 맞춰 댔다.
지나가는 시녀들과 시종들이 화들짝 놀라 자리를 피하고 카르세스를 찾던 보좌관 루드 역시 인상을 찌푸리며 반대 방향으로 달아났다.
또다시 그들의 2세 계획이 시작되었다.
***
“이상해.”
아델리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랜만의 상자에서 탈출한 리그하르트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뭐가요?]“이만큼 해 댔으면 생겨야 하잖아.”
[…….]“아이 말이야.”
실상, 태몽 같은 것도 꾼 적이 있다.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두 마리의 새끼 드래곤. 앙증맞은 날갯짓과 드래곤 특유의 신비로운 눈동자가 한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껏 기대를 했던 적이 있었지.
‘그게 태몽이 아니었다고? 그렇게 선명했는데……?’
아델리아가 한숨을 내쉬자, 하아……. 리그하르트도 한숨을 따라 내쉬었다.
[……그런 고민을 들어 드리고 싶진 않은데요.]“응? 왜?”
조금은 억울하다는 듯 리그하르트가 대답했다.
[누님, 저 쇳덩이에요.]“알아.”
누가 그걸 몰라? 딱 봐도 쇳덩인데.
[아니, 제가 그런 오묘한 남녀 간의 그, 엄……, 그러니까. 뭐, 인체의 신비? 탄생의 신비? 이런 것에 대해 누님과 대화를 나눈다는 게…….]“그럼, 황태자비가 아무나 붙들고 이런 소리를 하란 말이야?”
[에이, 그런 게 아니라…….]요즘 따라 왜 이리 예민하신 거람. 리그하르트가 중얼거리며 말했다.
[그냥 의원을 찾아가 보시죠?]“진작 찾아가 봤지. 몸에는 이상 없대. 우리 둘 다.”
관계를 가지고 일정 기간이 지나야 진맥했을 때 맥이 잡힌다고 했다.
그래서 꾸준히 진맥을 받았다. 매일 했으니까.
그럼에도 임신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리그하르트가 물었다.
[그럼, 신전은요?]아델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신전? 여기서 갑자기 신전이 왜 나와?”
[그냥 불현듯 든 생각인데요.]“응.”
[누님은 오러가 주력이잖아요?]“그렇지.”
[그런데 근래 몇 년간 정화 작업을 하느라 신력도 꽤 많이 소비하셨죠.]“맞아. 그런데 그게 내 임신과 무슨 연관이 있다고?”
음, 잠깐 고민하던 리그하르트가 말을 이었다.
[누님께서는 저를 통해 신력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로 인해 신력이 흐르는 통로가 되신 것은 분명하거든요.]“응.”
아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신체가 오러와 신력을 한 번에 사용한다는 게 혹시라도 몸에 이상을 불러일으킨 거라면…….]“…….”
리그하르트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아델리아는 벌떡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럴듯했어, 릭. 웬일로 똑똑한 소리를 했네.”
[…….]아델리아는 급히 시녀들을 불러들였다.
정말 몸에 이상이 생겼다면 이대로 있어서는 안 돼.
‘신전을 찾아가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