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Done Being a Hero, Unless It’s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198)
영웅은 됐어요, 은퇴라면 몰라도-198화(198/204)
특별 외전 2화
아델리아는 오랜만에 신전을 찾았다. 신전의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마치 고향을 찾아온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졌다.
‘내가 확실히 성검의 주인이 맞긴 하나 봐. 마음이 안정되는 걸 보면.’
[딱히 성검의 주인이라서 그렇다기보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은 신전에서 안정감을 느끼—.]‘조용. 내 평온이 깨지잖아.’
[…….]아델리아는 신관의 안내를 받아 곧장 대신관과 만날 수 있었다.
“잘 지내셨어요, 대신관님.”
“그럼요. 어서 오십시오, 황태자비 전하.”
대신관이 어서 앉으라며 자리를 내어 주었다.
아델리아가 자연스레 테이블 위로 성검을 올렸다.
그러자 대신관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대신관은 상체를 숙여 가며 성검을 자세히도 들여다보았다.
“그때도 어렴풋이 느꼈었지만, 지금은 더욱 강해졌군요.”
그러자 리그하르트가 들썩거렸다.
[불순한 눈빛이로구나, 대신관이여!]리그하르트의 호통에도 대신관은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호오……. 성검의 목소리라니.”
[다른 신관 나부랭이들보다 신력이 강하다 하여 내가 그대의 무례를 눈감아 줄 것 같으냐! 내 당장 나를 오랫동안 가두었던 이 하얀 감옥을 부수고 싶으나! 누님 때문에 참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그러자 대신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얀, ……감옥?”
그러면서 아델리아를 쳐다보았다.
“설마, 이 신전을 감옥이라 칭한 것입니까?”
“아, 아하하…….”
아델리아가 곤란하다는 듯이 웃었다.
리그하르트가 다시 호통을 쳤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가두었으니 감옥이지!]“이런. ……그것은 보호였습니다, 성검이시여.”
[흥! 그거야 너희들 입장이고. 내 입장은 감금이었다고!]둘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아델리아는 난처해졌다.
‘불경스러운 성검에 깍듯이 말대꾸하는 대신관이라.’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제법 재밌는 장면이긴 한데…….
아델리아는 둘의 대화를 말리지도 못하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매년 성검께 신석을 바치면 화를 풀어 주시겠습니까?”
[신석?]“예. 신석을 흡수하시면 지금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 말에 아델리아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런 게 있었어?’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마 전생의 악시덤은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
알면서도 아델리아에게 비밀로 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는 아델리아의 명성이 더 높아지는 것을 경계했으니까.
‘잠깐.’
릭이 더 강해지면 정화 작업을 더 많이, 자주 나가도 되겠네?
그 생각을 머릿속으로 떠올리자마자 리그하르트가 버럭했다.
[누님! 벌써 굴릴 생각만 하시는 거예요?!]“아……. 아니, 그냥 그렇다는 거지. 진짜로 그럴 생각은 없었어.”
[거짓말! 거짓말!]리그하르트는 대신관에게 말했다.
[신석 필요 없다! 더 강해지면 뭐 해! 땅속 구경이나 더 하겠지!]그러자 대신관이 놀란 얼굴을 했다.
“예? 그게 무슨…….”
아하하하. 아델리아는 애써 웃었다.
“아닙니다, 대신관님. 얘가 요즘 많이 피곤해서 헛소리하는 거예요.”
“헛소리요?”
[누님!]“릭, 쉿. 나, 이제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 알잖아. 잠시만 조용히 하고 있어.”
리그하르트가 단번에 조용해지자 대신관이 신기하다는 듯 성검과 아델리아를 번갈아보았다.
‘주인이 맞긴 하구나.’
저 말 많고 고집스러운 성검을 단박에 조용히 시키다니.
대신관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이내, 아델리아의 말이 이어졌다.
“대신관님.”
“예, 말씀하십시오.”
아델리아는 숨을 한 번 고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릭의 말로는, 아니. 성검의 말로는 제가 성검의 신력을 쓰면서 제 몸에도 신력이 흐르는 길이 열렸다고 했어요.”
그러자 대신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런데 제 몸은 어린 시절부터 오러를 담고 있었거든요.”
“예, 그 또한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한 몸에 오러와 신력. 두 가지의 힘을 담는다는 게……. 혹시 그것 때문에 임신이 힘들까 봐 그게 걱정이 되어서 왔어요. 대신관님께서는 혹시 아는 게 있으실까 해서요.”
“…….”
아델리아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하던 대신관이 정중하게 물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비 전하를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아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요.”
아델리아가 테이블 위로 손을 올렸다. 대신관이 아델리아의 손등 위로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공간을 띄운 뒤 자신의 손을 올렸다.
그러자 대신관의 손에서 금빛의 신력이 흘러나와 아델리아의 손등 위로 내려앉았다.
포근한 신력이 손등을 타고 들어와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그것은 의원의 진맥과도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아델리아는 초조했던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괜찮다고, 아무 일 없을 거라고. 누군가에게 위로받는 기분도 들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대신관이 손을 거둬들였다. 대신관은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채 아델리아를 바라보았다.
“휴식이 필요하신 겁니다. 그리고 임신은-”
대신관의 말에 아델리아가 성급하게 되물었다.
“그럼, 휴식을 취하다 보면 임신이 가능하다는 그런 말씀이신가요?”
오러와 신력 때문에 임신이 힘들어지는 게 아니라?
아델리아의 질문에 대신관이 말했다.
“황태자비 전하.”
“예, 대신관님.”
“오러를 과도하게 사용하면 신체는 무너집니다. 그것은 오러뿐만이 아니지요. 신력도, 마력도 그러합니다.”
아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 알고 있다.
과거의 아델리아가 가이아 대전쟁에서 무리하게 오러를 끌어 쓰다 결국 죽음에 이르렀으니까.
“하물며 오러와 신력을 함께 사용하셨으니 신체가 여태껏 버텨 온 게 신기한 일이지요. 그러나 임신은-”
아델리아가 초조하게 되물었다.
“그럼……. 지금부터라도 휴식하면 임신이 가능한 거지요?”
그러나 대신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그럼, 휴식만으로 회복되지 못하는 단계라는 건가요?!”
다급했던 아델리아가 대신관의 말허리를 끊었다.
‘설마, 이미 손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인가?’
덜컹,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불안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전생에서는 가이아 대전쟁에서 몸이 무너지는 것도 모른 채, 오러와 신력을 사용했다.
증상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늦어도 너무 늦게 발견한 것이다.
‘결국, 이번에도 전생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는 걸까…….’
억울했다.
가이아 대전쟁이 터진 것도 아니고, 그저 정화 작업만 하고 다녔는데…….
대신관의 말이 이어졌다.
“비 전하, 분명히 아무것도 모른 채 계속 힘을 사용하셨다면―.”
“죽어 버렸을 거라는, 그런 말이군요.”
“아니,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씀드린 게…….”
아델리아의 손끝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임신 계획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땅을 정화하러 다녔겠지.’
그러다 몸에 증상이 나타난 뒤에야 의원이나 신전을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또 죽을 뻔했다는 거잖아.’
[누님…….]가이아 대전쟁만 조심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나요?”
아델리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비 전하……. 일단 제 말을 좀 끝까지, 그게 실은—.”
대신관이 입을 열어 무어라 말을 하려던 찰나, 대강당의 그 무거운 문이 거칠게 열렸다.
콰앙—!
카르세스였다.
“아델!”
“……카르세스.”
카르세스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델…….”
대신관과 함께 있는 아델리아를 확인하고서야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이마는 땀으로 젖어 있었다. 혼자 신전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랴부랴 달려온 모양이었다.
“전하…….”
아델리아가 곧장 울음이라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으로 카르세스를 불렀다.
그 모습을 보고 카르세스가 빠르게 달려왔다.
“아델! 왜 그래!”
카르세스는 아델리아를 끌어안으며 대신관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왜 이러는 겁니까?!”
대답은 아델리아에게서 흘러나왔다.
“제가, ……힘을 너무 막 써서, 흐읍.”
아델리아가 결국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래서, 우리에게 아이가, 흐윽. 아이가 안 생길 거라고…….”
흐으윽. 아델리아가 카르세스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삼켰다.
그러자 대신관이 체념한 체 이마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비 전하…. 아기님이 생기지 않을 거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자 카르세스와 아델리아가 대신관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제가 죽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살벌한 말에 놀란 카르세스가 아델리아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이게 무슨 소립니까?”
카르세스가 서늘히 묻자 대신관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계속 힘을 쓰고 다니셨다면 손쓸 도리 없이 신체가 무너졌을 거라고는 했었습니다.”
“흐어엉! 거봐요!”
아델리아가 다시 눈물을 터트렸다. 대신관이 억울하다는 듯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지금은 배 속에 계시는 아기님들 덕분에 오히려 회복하게 될 테니 문제없을 거라는 말씀도 드리려고 했단 말입니다!”
그러자 아델리아와 카르세스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예?”
대신관이 황태자 부부를 한 번씩 바라보다 못 말리겠다는 듯 작게 웃었다.
“축하드립니다, 황태자 전하, 그리고 비 전하. 임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