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Done Being a Hero, Unless It’s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202)
영웅은 됐어요, 은퇴라면 몰라도-202화(202/204)
특별 외전 6화
결국 가이아 대전투는 일어났다.
아델리아가 기억하는 전생보다 더 이른 시기였다.
그러나 아델리아와 카르세스는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걸 이미 예상했고 그에 맞춰 대비책을 세워 놓았다.
로시안트 제국의 기사들은 에스테c르 공작가가 제공한 아타뮴 광석과 플라니트 광석으로 만든 장비로 무장했다.
그리고 오로지 가이아 대전투를 위해 준비해 왔던 비뮈에르 영지의 기사들도 출정하여 전력을 보태었다.
전세는 시작하자마자 이미 기울어졌다.
카르세스가 이끄는 황실 기사단과 에스테르 공작가의 기사단은 이 전쟁을 주도하며 수시로 승전 소식을 전해 왔다.
그렇게 반년이 훌쩍 넘어 아델리아의 출산이 코앞까지 다가온 어느 날.
“비 전하! 비 전하! 가이아에서 또 승전 소식을 보내왔어요!”
창가에 서 있던 아델리아가 몸을 돌렸다.
“그래?”
세라가 전달한 서신을 읽으며 아델리아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초반에 했던 걱정과는 달리, 카르세스는 차근차근 연합군들을 몰아내고 있었다.
압도적인 병력을 가지게 되면 자칫 거만해지고 경솔해질 수도 있지만, 카르세스는 그러지 않았다.
서두르지도 않고 위험한 요소들을 하나씩 제거해 가며,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그 모든 과정은 다시는 로시안트 제국을 향해 사특한 마음을 가질 수 없도록, 주위 다른 나라들을 향한 엄중한 경고이기도 했다.
그 방법이 실로 카르세스다웠다.
그 와중에도 사상자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아델리아는 곧장 보좌관 루드와 데프를 불러들였다.
“신전에 요청을 넣어 성기사단과 신관들을 보내 달라고 하세요. 성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빌려주겠다는 말도 함께 전하시고요.”
엑? 하고 놀라는 리그하르트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아델리아는 가볍게 무시했다.
루드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물었다.
“예, 비 전하. 신전에 그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항복 의사를 밝혀 온 몇몇 부족들은 어찌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아델리아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지금 가이아 대전투를 일으킨 연합군은 빌리텀 제국을 주축으로 주변 여러 나라들이 모여 형성된 군대였다.
그중에는 기근이나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로시안트 제국의 도움을 받은 나라도 상당수 있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아델리아는 턱 밑까지 치솟은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카르세스가 로시안트 제국의 땅을 넘보는 자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듯이, 아델리아 역시 자비를 보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델리아가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그들이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우리 로시안트 제국은 그들에게 식량과 보급품을 보내어 그 시기를 잘 넘길 수 있도록 도왔었죠. 그랬던 나라들이 살 만해지니 이제 우리의 턱 아래 검을 겨누고 있어요. ……가서 그들에게 전하세요. 그들의 행태가 괘씸하기 짝이 없어 당장 목숨을 거두고는 싶으나 선택권을 주겠노라고.”
“선택권이라 하심은……?”
“전장 위에서 명예롭게 죽거나, 아니면 평생 로시안트 제국의 노예 신분으로 살거나.”
나 같으면 명예롭게 죽는 것을 선택하겠지만. 하며 아델리아가 서늘하게 웃었다.
이것은 성검의 주인이 아니라, 한 제국의 황태자비로서의 결단이었다.
그녀의 단단한 결의에 루드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저희 모두는 비 전하의 뜻을 받들 것입니다.”
그리고 아델리아는 곧장 보급로를 재정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물자가 부족할 일 없도록 특별히 신경을 쓰도록 하고. 그리고—, 아……!”
그때, 갑작스러운 통증을 느낀 아델리아가 배를 움켜쥐고 비틀거렸다.
“비 전하!”
“전하!”
그러자 데프와 세라가 달려와 아델리아를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비 전하?!”
세라가 걱정하며 물었다. 아델리아가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뜨며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근래 한 번씩 이랬어.”
“가진통이 아닐까요?”
세라의 말에 아델리아가 루드에게 말했다.
“루드. 의원을 불러 줘요.”
“예, 알겠습니다!”
루드가 서둘러 방을 빠져나가고 아델리아 역시 자신의 침실로 돌아갔다.
잠시 후, 부랴부랴 달려온 의원이 아델리아를 진맥하더니 말했다.
“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비 전하.”
그러자 세라가 손끝을 떨며 물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요?”
“원래 아기님들은 예고 없이 오는 법이지요.”
“…….”
황궁의가 아델리아를 보며 말했다.
“37주가 넘어갔으니 지금 출산하셔도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무엇인가. 무슨, ……후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인가?”
아델리아가 잦아진 진통을 느끼며 물었다.
의원이 대답했다.
“의원 대부분이 전장에 가 있는지라 조산사 몇을 제외하면 위급한 상황에 대처할 인원이 부족합니다. 하여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견습 의원들을 불러와도 되겠는지요.”
그러자 세라가 버럭했다.
“견습이라니요! 비 전하께서 황손을 출산하는 곳에 감히!”
“하오나, 수료식을 앞둔 견습 의원이기 때문에 정식 의원과 실력으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
“허락하네.”
아델리아가 담담하게 승낙했다.
“비 전하!”
“세라. 그들은 곧 황궁의 의원이 되어 우리를 보살펴 줄 귀한 인재들이야. 황궁의가 말하지 않았니. 막 들어와 아무것도 모르는 견습 의원이 아니라, 수료식만을 앞둔 의원이라고.”
“비 전하…….”
황궁의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비 전하. 그럼, 출산 준비를 하겠습니다.”
“부탁하네.”
황궁의가 나가고 아델리아는 참았던 신음을 토해 냈다.
“아으으…….”
“비, 비 전하!”
후욱, 후욱.
배 속을 헤집는 듯한 통증이 더욱 강해지고 주기도 점점 짧아졌다.
“아가씨! 저 보세요! 정신을 잃으시면 안 돼요!”
세라가 공작저에서 부르던 습관처럼 ‘아가씨’라고 칭하자, 아델리아는 아픈 와중에 웃음이 터졌다.
“세라. 너, 당황했, ……구나?”
“제 손 잡으세요, 아가씨!”
세라는 이미 아델리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세라가 아델리아의 이마와 뺨을 타고 흐르는 땀을 수시로 닦아 냈다.
아델리아는 세라를 내보내어 진정시키고 싶었지만, 아델리아 스스로도 여유가 없었다.
세라의 말대로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았다.
이게 뭐라고. 배를 찢는 듯한 고통과 별개로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다.
“아……!”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게 뭐야.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는데……!’
전장에서 숱하게 다쳐 보았던 아델리아도 진통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했다.
[누, 누니임…….]구석에 두었던 리그하르트도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아델리아를 부를 뿐이었다.
아델리아가 다칠 때마다 곧장 치료해 주던 리그하르트의 신력도 지금은 그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다.
[신력이 통하지 않아요…….]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출산의 고통은 싸워서 다치는 상처의 고통과는 결이 아예 다르니까.
리그하르트는 아델리아의 통증만이라도 줄여 보려고 신력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어림없었다.
허엉……. 리그하르트가 흐느꼈다.
세라는 아델리아의 땀을 계속 닦아 내며 말을 걸었다.
“아가씨! 곧 사람들이 도착할 거예요. 조금만, 조금만 참으세요. 정신 놓으시면 안 돼요!”
“응. ……나 멀쩡해.”
“아니……. 그건 아니에요, 아가씨……. 눈이 반쯤은.”
말을 하던 세라가 고개를 좌우로 탈탈 털더니 다시 말했다. 세라의 두 눈에 떨어지지 못한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괜찮으실 거예요. 우리 아가씨가 어떤 분이신데. 최연소로 아카데미 입학하셨죠! 그것도 수석으로! 성검의 선택까지 받으셨고요! 유일한 성검의 주인이시라고요! 그뿐인가요?! 그 무뚝뚝한 황태자 전하의 얼음 같은 심장을 녹이고 당당히 황태자비가 되신 분이죠!”
푸흐흐흐, 아델리아가 힘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만해, 세라. 힘 빠져.”
그래도 덕분에 긴장이 한결 누그러들었다.
아델리아가 세라의 손등을 토닥거렸다.
“우리 세라가 날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할 줄 몰랐네?”
“전 처음부터 그랬어요, 비 전하…….”
제게 비 전하만큼 대단하신 분은 없으셔요, 하며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 냈다.
세라도 이제야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호칭이 돌아온 것을 보면.
아델리아가 세라의 손을 힘주어 잡으며 말했다.
“힘낼게. 곁에 있어 줘.”
“네! 물론이에요!”
때마침 준비를 마친 의원들이 다급히 들어왔다.
문밖에서는 신전의 대신관과 신관들도 대기하며 기도를 올렸다.
모두의 걱정과 염려, 그리고 축복 속에서 아델리아의 출산이 진행되었다.
초산이라는 것을 감안해서라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안팎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꼬박 하루가 더 흘렀다.
“황자께서 태어나셨습니다!”
곧이어 황녀의 탄생 소식까지 황궁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아델리아는 일주일이 지나서도 깨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