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04
103화. 월말 평가 (2)
유리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의 시선은 좀처럼 요한의 점수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하여간 이 미친 영감탱이…….’
요한의 괴팍함은 나이가 들어서 생긴 게 아니란 게 이걸로 확실해졌다.
‘그 늙은이는 그냥 어릴 때부터 그랬던 거야.’
요한의 업적을 보며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1위/ 2기/ 요한 레드너/ 누적 1위 60회/ 999,999,999
10억에서 딱 1포인트 모자란 금액.
그걸 본 유리는 확신했다.
‘이 변태 늙은이… 무조건 포인트 더 있었다.’
하지만 ‘숫자 9’를 9개로 맞추느라 일부러 저렇게 만들었을 거다.
그 사실에 유리는 자신의 전 재산을 걸 수도 있었다.
‘그나저나 9억… 아니, 10억이라.’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숫자였다.
요한 바로 다음인 2위의 포인트가 3억 정도.
물론 3억도 많은 거지만, 요한과는 차이가 너무 났다.
‘이건 뭐, 압도적이네.’
유리는 10억 포인트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저 정도 포인트를 모을 수 있을지 쉬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물론, 이번 동물의 숲처럼 모든 것을 독식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10억을 모을 수는 있겠지만…….
‘저건 소비하고 남은 포인트로 올린 게 10억이란 거잖아?’
특별 판매점 같은 곳에서 포인트를 소비하면서도 10억을 모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10억은 까마득한 점수였다.
‘아마 영감이 다니던 요람과 지금의 요람은 여러모로 다를 거다.’
무려 48년이다.
그사이 요한 시대에는 있었던 게 지금은 없는 것도 있을 것이고.
그때에는 없던 게 지금은 새로 생겼을 수도 있다.
그로 인해 포인트를 모으는 난이도가 48년 전에 비해 다소 변했을 거란 거는 분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요한이 수료한 이래, 수십 년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저 기록이 결코 예사로운 기록이 아니란 방증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유리는 묘한 짜증이 일어났다.
‘이거… 뭔가 오기 생기네.’
저 영감탱이가 당당하게 명예의 전당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게 이상할 정도로 못마땅했다.
‘만약 내가 이대로 요람을 수료하면…….’
그때는 그 늙은이의 후배가 되는 거다.
그런데 만약 자신이 1위가 아니라면?
나중에 밖에서 만났을 때 요한이 어찌 나올지, 그 모습이 선명히 머릿속에 그려졌다.
[풉? 몇 등이라고? 쯧, 이 1위님과 말을 섞고 싶거든 거기서부터 무릎 꿇고 기어 와 보거라, 이 천하디천한 밑에 것아.]분명하다.
그 영감탱이라면 늙어 죽을 때까지 그리 놀릴 거다.
참사 중에 대참사가 벌어지는 거다.
이에 유리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절대… 내가 입에 칼을 물고 죽지, 절대 그 꼴은 못 본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저 영감탱이를 끌어내려야겠어.’
영감탱이를 끌어내리고 자신이 1위를 차지하겠다.
그리고 나중에 수료하고 영감탱이를 놀려 줄 거다.
‘반드시!’
그렇게 유리에게 작지만 반드시 이뤄야 하는 중대 목표 하나가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명예의 전당, 1위 자리를 노려 보는 유리가 주먹을 울끈 말아 쥐었다.
‘우선은 누적 1위 횟수를 60번 채워야 한다.’
명예의 전당 10위권 안쪽으로는 누적 1위 횟수가 60회가 아닌 사람이 없었다.
그 말은 다시 말해 요람에 들어와 나갈 때까지 단 한 번도 1위를 놓친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유리가 요한을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우선 이번 월말 평가에서부터 1위를 찍고 들어가야만 했다.
하여 유리의 고민이 다시 시작됐다.
‘흠… 그럼 몇 포인트를 걸어야 하나.’
아린과 뽀삐가 과연 얼마의 포인트를 등록할까?
난 얼마의 포인트를 등록해야 최소한으로 반드시 1위를 찍을 수 있을까?
그렇게 가만히 서서 무려 1시간을 고민한 유리.
“좋아.”
마침내 결정을 내린 그가 포인트를 등록하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 유리의 두 눈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 * *
그날 밤.
월말 평가 포인트를 등록을 끝내고 온 유리.
그는 수련도 하고 밥도 먹고, 평소처럼 지내다 휴식을 취할 겸 거처로 들어왔다.
그리고 우연히 떠 놓은 물그릇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단발이라 생각될 정도로 자라난 머리카락.
눈을 거의 가리고 있는 치렁치렁한 앞머리까지.
덕분에 보이는 거라고는 코끝과 턱선뿐이었다.
평소였다면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을 모습.
하지만 문뜩 유리는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나, 이 꼴로 잘도 싸돌아다녔구나.’
그간 너무 바쁘게 살아왔기에 머리 손질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지금까지는 딱히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거다.
그런데 오늘은 무언가 달랐다.
‘내일이면 50기에도 내 이름이 알려지게 되겠지.’
유리는 자신이 1위를 차지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되면 내일 50기 모두가 자신을 알게 될 거다.
‘물론, 그들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겠지.’
유리가 신경 쓰는 건 그들이 기억할 ‘첫 순간’이었다.
앞으로 시간이 흘러.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된 이들이 세상 각지로 퍼져 나갈 거다.
그들로 인해 ‘유리 홀랜드’란 이름 역시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될 거고.
따라서 어쩌면 내일이 ‘유리 홀랜드’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는 첫 순간일지도 몰랐다.
‘그런 자리에 이런 몰골로 등장할 수는 없지.’
하여 결심을 굳힌 유리는 검을 집어 들었다.
서서히 얼굴로 다가오는 칼날.
서걱서걱-.
새하얀 검이 움직일 때마다, 검은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 * *
1월 31일 아침.
월말 평가는 50기뿐만 아니라 요람에 몸담은 기수라면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월례 행사였다.
특히 몇몇 이들에게는 사형 선고가 떨어지는 날.
물론 그건 하위권에 머무는 사람들에나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테레시아같이 상위권 사람에게는 해당이 없었다.
‘오늘이 월말 평가구나.’
그리 생각하며 일어난 테레시아의 얼굴은 너무도 평온해 보였다.
어떤 이는 그게 49기 수석의 여유라고 생각할지 몰랐다.
그러나 사실 테레시아는 딱히 자신이 수석이란 사실에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관심 있는 것은 오로지 본인의 역량 증진뿐.
그것을 위해 열심히 하다 보니 운 좋게 수석의 자리에 오른 거였다.
그런 테레시아에게는 몇 시간 뒤에 있을 월말 평가보다는 오늘 아침의 수련이 더 중요했다.
때문에 그녀는 일어나자마자 창을 들고 곧장 수련장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빈 수련장에서 창을 휘두르는 여유를 누리기 위해.
그런데…….
훙- 훙-.
오늘은 그녀보다 먼저 온 선객이 있었다.
입구를 등지고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검은 머리 소년.
‘오늘은 일찍 나왔구나.’
이 균열에서 자신보다 먼저 수련장을 쓸 이는 한 명뿐이었다.
이에 테레시아 가볍게 알은척을 했다.
“일찍 나왔…….”
아니, 알은척을 하려 했다.
자신에게 몸을 돌린 상대방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면 말이다.
“……?!”
놀란 테레시아는 단번에 창을 들며 상대에게 겨눴다.
“누구야!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냐!”
테레시아의 위협에 소년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뭘 잘못 먹었어? 아침 댓바람부터 뭔 헛짓거리십니까, 텟샤 선배님아?”
매우 매섭고 불량스러운 말투.
그건 테레시아의 귀에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이에 테레시아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너……?”
“잠 덜 깼어? 가서 세수라도 하고 와. 아니면 정신도 차릴 겸 가볍게 대련 한판?”
“아……?”
“아, 좋아! 내가 오늘은 인심 썼다! 특별 할인으로 반값에 모시겠습니다!”
누구냐는 자신의 물음에 소년이 답을 한 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내뱉는 말들은 테레시아로 하여금 그 정체를 깨닫게 하기에 충분했다.
멍하니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녀의 입에서 작은 울림이 흘러나왔으니.
“유리… 홀랜드?”
도무지 믿기 힘들다는 듯.
완전히 넋 나간 목소리와 함께.
털그렁-.
테레시아의 손에서 떨어져 나온 창이 힘없이 바닥을 뒹굴었다.
* * *
오전 11시 50분.
웅성웅성-.
월말 평가를 앞두고 50기 기수들이 북문 중앙 게시판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자리를 잡고 이번 월말 평가에 관해 떠들어 댔다.
“너, 포인트 얼마나 등록했냐.”
“그거 말하면 안 된다며?”
“그건 어제까지 말하면 안 되는 거였고, 오늘은 말해도 돼. 그리고 어차피 조금 있으면 발표할 거 아냐?”
“그렇긴 하지. 그러는 넌 얼마나 등록했는데?”
“나 얼마 못 했지. 당장 식량 구할 포인트도 빠듯해서…….”
“사실 나도 그렇긴 해.”
“그래서 얼마?”
“그게…….”
자신이 얼마의 포인트를 등록했다느니, 너는 얼마나 등록했다느니.
이리저리 떠들어 대는 이들.
그리고.
“하위권이면 대충 몇 등까지일까?”
“글쎄, 대충 하위 10% 정도이지 않을까? 그것보다 불이익이 뭔지 들은 사람은 없어?”
“벌금 내는 거 아닐까?”
“아니면, 징벌방? 우리 가문에선 사고 치면 아버지가 징벌방에 넣고는 했는데.”
“너도? 혹시 너희 부모님도 막 징벌방에서 벽 보고 서 있는 거 시켰어?”
“너희 부모님도? 부모님은 다 비슷비슷하구나.”
“그나저나 1등은 누구이려나.”
“당연히 그 보비… 어쩌구 하던 애겠지.”
“하긴, 그 포인트로 1등을 못 할 리가 없겠다.”
1위가 누구일지, 불이익이 뭐일지 속 편하게 떠들어 대는 이들까지.
50기 기수 대다수는 처음 맞이하는 월말 평가임에도 딱히 긴장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이게 바로 기존 기수들과 새로 들어온 이들의 차이였다.
신입 기수들은 월말 평가를 그저 시험 성적을 발표하는 것쯤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건 그들의 오랜 습관이었다.
그들의 가문에서는 그랬으니까.
성적이 떨어지면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다가올 폭풍은 짐작조차 못 한 채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전 11시 55분.
성적 발표가 얼마 안 남은 시각.
아린은 뽀삐의 어깨에 올라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린을 목마 태운 뽀삐가 물었다.
“배고프다?”
“보이냐고? 아니, 안 보여. 혹시 도망간 거 아니야?”
그들은 조금 전부터 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찾는 사람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성적이 게시되기까지 채 5분도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하여 자연스럽게 그들이 떠올린 건 ‘유리 녀석, 도망간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누구 찾냐?”
지척에서 들려온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슬쩍 고개를 내린 뽀삐.
그는 제 옆에 나타난 이의 얼굴을 슥- 한 번 보고 다시 고개를 위로 돌려 버렸다.
그건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었을 때의 반응이었다.
한편, 2m 30㎝ 높이로 올라간 아린은 유리를 찾는 데 집중한 나머지 건성으로 대답했다.
“있어, 사기 치고 도망갔을지도 모를 나쁜 녀석.”
“배고프다.”
여전히 주변을 살피는 아린과 고개를 끄덕이는 뽀삐.
그때 다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혹시 그 사기꾼이 날 말하는 거는 아니겠지?”
그제야 지척에 들린 목소리가 매우 익숙한 목소리라는 걸 깨달은 아린.
“응?”
그녀의 시선이 밑으로 향했고.
“어어?!”
동시에 아린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