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1
10화. 수련의 시작 (2)
경사가 워낙 가팔라 성인 남성도 한 번쯤 쉬어 가기로 소문이 자자한 어느 언덕.
그 정상에 중년 사내 둘이 짐을 풀어놓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었다.
“어흐흐… 이 짓도 더는 못 해 먹겠구먼. 이번 상행만 갔다가 손 털든가 해야지, 원.”
“은퇴는 무슨! 얼마 전에 얻은 늦둥이 키우려면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그 나이에 애 생긴 거 보면 아직 팔팔하구만!”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고된 상행으로 지친 몸을 잠시 쉬이고 있던 봇짐 상인들.
그 뒤로도 잡스러운 이야기를 몇 마디 주고받던 중, 한 사내가 대화를 멈추고 고개를 틀었다.
“…이봐, 어디서 이상한 소리 들리지 않아?”
“소리? 뭔 소리?”
난데없는 이야기에 동료 상인의 고개도 자연스레 돌아갔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던 그도 곧이어 동료의 말처럼 ‘이상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즈끼익- 즈끼익-.
묘하게 신경을 건드리는 기분 나쁜 소리.
상인들의 눈썹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게 뭔 소리래?”
“그러게?”
소리의 정체를 추측하던 그들은 곧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즈끼익- 즈끼익-.
괴음이 서서히 커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이리로 오고 있는 건가?”
“지, 짐부터 챙깁세!”
소리가 선명하게 커진다는 것은 정체 모를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
오랫동안 대륙을 떠돌며 많은 경험을 한 그들은 반사적으로 짐부터 챙겨 일어났다.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게 말이다.
그렇게 후다닥 짐을 등에 짊어진 찰나.
지금까지 규칙적으로 울리던 소리에 한 가지 소리가 더 섞여들었다.
즈끼익- 끄응!
즈끼익- 흐응!
기괴한 소음의 끝자락에 따라붙은 요상한 신음.
그것이 막 짐을 챙겨 떠나려던 이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그리고 곧이어 기이한 소리의 정체가 언덕 너머로 빼꼼히 모습을 드러냈다.
즈끼익- 흐헹!
언덕의 정상.
그곳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동글동글한 머리통이었다.
즈끼익-.
다시 한번 기분 나쁜 소리가 울리고.
“흐억!”
고통 가득한 추임새와 함께 수평선에 태양이 떠오르듯 언덕 위로 떠오른 한 소년의 고통 가득한 얼굴.
어찌나 힘들어 보이던지 그 얼굴을 보고 있는 봇짐 상인들도 덩달아 괴로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곧이어 소년을 힘들게 하는 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이를 본 상인들이 눈을 끔뻑였다.
‘저건… 수레?’
물론 그냥 수레가 아니었다.
웬…….
“어허! 거, 싹퉁머리 없는 애새끼. 네놈의 없어진 싸가지가 근력과 체력으로 갔으면 이깟 언덕쯤은 물구나무서서 기어올랐다!”
…말 많고 괴팍한 노인네를 태운 수레였다.
즈끼익-.
“끄응.”
“고작 수레 하나 끌면서 똥 싸는 소리는 오지게도 내는구나!”
“끅.”
“그러다 아주 지리겠다, 지리겠어!”
“비, 빌어먹을… 영감탱이.”
“클클, 이미 지린 거 아니야?”
“저, 저주받을… 노친네에에에!”
바락바락 악을 쓰며 고함을 내지르는 흑발 금안의 소년, 유리.
그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수레를 끌었고 마침내 언덕의 정상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즈끼익-.
수레는 얼이 빠져 있는 두 봇짐 상인의 바로 앞에 도달하여 멈췄다.
그리고,
털썩-.
유리가 시체처럼 쓰러졌다.
“크억, 흐엑…….”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퍼질러진 그가 애처롭게 상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무… 무… 무우우울…….”
초면이라고는 하나 파들파들 떨리는 유리의 손을 외면할 수 없었던 상인들.
그들은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다급히 유리에게 다가가 가죽 물통을 입에 물려 주었다.
쭈우우욱-.
유리가 어찌나 물을 다급히 들이켜던지 가죽 물통이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꺼어억!”
물통의 물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트림을 토해 낸 유리.
그가 촉촉한 눈망울로 상인의 손을 꼬옥 잡았다.
“추… 축복받으실 거예요.”
“자, 자네 괜찮은가?”
“괘, 괜찮아요. 그것보다… 여기서 크롬항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크롬? 크롬이면… 걸어서 대충 나흘 정도 걸릴 걸세.”
“나흘이라…….”
목적지까지 4일이란 소리에 유리의 얼굴이 살짝 경직됐다.
이를 본 요한이 낄낄거렸다.
“왜? 못 갈 거 같으냐? 여기서 포기하게? 그것도 나쁘지 않지.”
“…….”
“쯧쯧,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나. 이깟 것도 이겨 내지 못하는 놈이 살아서 뭐 하겠다고.”
“…….”
“아이고오, 이런 반푼이를 언제 사람 구실 하게 키울꼬.”
“큭!”
“그냥 포기하고 뒈져 버리면 너도 나도 서로서로 편할 거다. 포기할 거면 후딱 포기해 버려. 나도 시간 낭비 하고 싶지는 않으니.”
수레에 쪼그려 앉아 킬킬거리는 요한을 보며 유리의 이마에 핏대가 불룩하게 치솟았다.
“염병할…….”
이를 악문 유리가 부들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물… 잘 마셨습니다.”
상인들에게 짧게 인사를 건넨 유리는 수레의 손잡이를 잡아끌었다.
즈끼익-.
멈췄던 수레가 다시금 비명을 내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비틀비틀, 느릿느릿.
유리가 끄는 수레는 조심조심 가파른 언덕을 내려갔다.
한바탕 소란이 있고 난 후.
“…뭐가 어찌 된 건지.”
“그, 그러게나 말일세.”
두 봇짐 상인들은 멀어져 가는 유리의 뒷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한편.
후욱- 후욱-.
언덕을 내려가며 더운 콧김을 뿜어내는 유리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젠장…….’
이건 아닌 거 같다.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닌 거 같다는 느낌이 팍팍 왔다.
하지만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이건 전부 자신이 자초한 일이었으니까.
“썩을……!”
거칠게 욕설을 내뱉은 순간.
유리의 뇌리로 지난 3주간의 지옥이 촤르륵- 흘렀다.
수레를 끌며 달리고 걷고, 쉬는 것도 수레에 매달려 쉬었다.
심지어 먹고 마시는 것도 수레를 끌며 했다.
잠?
기절을 해야지만 겨우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누군가가 봤다면 이건 체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몸을 망치는 미친 짓이라고 했을 정도.
실제로 그게 옳은 말이었다.
심지어 유리는 비대한 영혼으로 인해 육신이 붕괴하고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과한 육체 단련은 오히려 독이 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웬걸.
‘스벌… 이게… 되네?’
분명 당장 피를 토하고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신기할 정도로 유리의 체력은 나날이 늘어 가고 있었다.
첫날은 고작 두 시간도 못 되어 구토하며 기절했고, 이후 다시 일어나 웩웩- 거리며 수레를 끌었다.
처음 며칠은 그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기절하는 횟수는 줄어들고 수레를 끄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언덕을 오르는 것도 할 만하다 싶을 정도가 되었다.
‘젠장… 효과만 없었어도…….’
분명 하루하루 뒈질 것같이 힘든데 나날이 체력은 물론 건강까지 되찾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기이한 현상이었다.
‘영감이 뭔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 같지도 않은 수레 끌기가 나한테 도움이 되는 거는 확실해.’
상황이 그러하니 별수 있나.
시키는 대로 수레를 끌 수밖에.
물론 유리가 수레를 끄는 건 훈련의 효과를 떠나서 ‘고작 이 정도 고난에 포기할쏘냐!’라는 자존심의 영향도 다분했다.
그러한 이유로 뒤에서 쫑알쫑알 날아오는 잔소리에도 유리는 묵묵히 수레를 끌었다.
“어허! 다리가 보인다, 이놈아! 더 빨리 움직이지 못할까! 그래서 어느 세월에 크롬에 도착하려고 그러냐!”
“…….”
“자고로 인체의 균형은 튼튼한 하체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나아가 사내에게 하체만큼 중요한 곳도 없느니라! 헛흠!”
“힘들어 뒈지겠는데… 자꾸 쓸데없는 소리로 내 귀를 더럽히시겠다?”
“어허! 쓸데없는 소리라니! 나중에 가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귀중한 조언이니 새겨들어라!”
…사실 묵묵히 수레를 끌기만 했던 거는 아니었다.
유리는 몇 번이고 수레를 부숴 보려 했었다.
‘육체적 고통 따윈… 내가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어! 그건 내 선택이니까.’
하지만!
‘저 빌어 처먹을 노친네가 편히 주둥이만 놀려 대는 건 두고 볼 수 없다! 내가 차라리 바위를 짊어지고 가면 갔지, 저 노인네가 편히 쉬는 꼴은 못 봐!’
그래서 결심했었다.
수레를 부수겠노라고.
그러면 최소 다시 수레를 구하기 전까지 영감도 걸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심보로 수레를 부숴 보려 여러 번 시도했었다.
일부러 험한 길로도 가 보고.
티 나지 않게 이리저리 수레도 내동댕이쳐 보고.
심지어 영감 몰래 큼지막한 돌덩이도 던져 봤다.
그런데 웬걸…….
‘시발! 이놈의 수레는 통짜 강철로 만들었나?! 뭐 이리 튼튼해?!’
아니, 통짜 강철로 만든 수레도 이 정도로 험하게 다뤘으면 고장이 났어도 진즉에 났어야 했다.
그런데 이 썩어 빠진 낡은 수레는 고장은커녕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이게 말이 되는가?
‘분명… 저 노인네가 농간을 부린 거다. 그런 거야!’
그렇지 않다면 고작 나무로 만든 낡은 수레가 이리 오래 버틸 리 없었다.
으드득-.
이를 아득바득 간 유리.
“뭐 하냐? 수레 끄는 놈 뒈져 버렸어? 굼벵이가 굴러도 이것보다는 빠르겠다!”
그는 어김없이 뒤에서 날아오는 잔소리에 울분을 토해 냈다.
“으아아아아!”
내지르는 괴성만큼 빨라지는 다리.
이에 요한이 신나 소리쳤다.
“오오! 드디어 굼벵이 굴러가는 속도는 따라잡았구나! 더더! 더 빨리!”
“저어어주우우우받으으으을 노오오치이인네에에에!”
“반사다, 이 새끼야! 그딴 건 너나 받아라!”
“으아아악!”
그렇게 고통 가득한 괴성과 함께 낡은 수레가 언덕은 질주해 내려갔다.
요람이 자리한 남쪽을 향하여.
* * *
눈을 뜬 유리.
청명한 하늘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또 기절했구나.’
3주간 매일 이러니 이제는 기절했다 깨어나는 것도 익숙해졌다.
‘아직 날이 밝은 걸 보니… 오래 누워 있던 건 아닌가 보네.’
요즘 들어 점점 기절하고 깨어나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었다.
최근에 기절하고 나서 깨어날 때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한 시간.
지독하게 혹사당한 일반인의 몸이 달랑 그 정도 휴식으로 회복이 될 리 없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기절하고 깨어나는 순간 유리의 몸은 새것으로 탈바꿈했다.
지금도 봐라.
기절하기 전에는 팔다리에 쇳덩이가 달린 듯 무거웠는데 지금은 깃털이라도 된 듯 너무도 가볍지 않은가.
“으그극!”
크게 기지개를 켠 유리는 수레에 누워 발을 깔짝거리는 요한을 바라보았다.
‘기절한 사이에 저 영감탱이가 내 몸에 뭔 짓거리를 하는 걸 테지.’
그렇지 않다면 이 비상식적인 회복력은 말이 안 됐다.
요한을 바라보는 유리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변한 순간.
“깼으면 움직여야지 뭐 하고 있냐? 거기서 계속 그러고 있게?”
어김없이 날아드는 잔소리에 유리가 재빨리 움직여 수레를 끌기 시작했다.
그 조건반사적인 움직임에 유리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아… 세뇌당했다.’
지난 3주간 해 온 일이다 보니 이제는 무의식적으로 몸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와 같은 현실에 유리는 울컥 서글픔이 치솟았다.
물론 그건 그거고.
서글픈 감정과 달리 유리의 몸은 묵묵히 수레를 끌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마체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냐?”
그간 수레에 누워 매일 쓸데없는 잔소리만 해 대던 요한이 처음으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것도 너무도 건설적인 이야기를 말이다.
이에 살짝 당황한 유리가 떠듬거리며 답했다.
“어… 그, 글쎄? 그냥 남들만큼 아는 거 같은데?”
“그래서 네놈이 알고 있는 게 뭔데?”
“그 뭐냐, 마체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게 고대 동방인들이 이 땅에 뿌리내리면서부터라는 거랑… 고대 동방인들이 전한 지식이 고대의 마체술에 섞여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마체술의 근간이 되었다는 거?”
“어디서 주워듣긴 들은 모양이다?”
“응, 어쩌다 알게 된 퇴역 용병한테 들었지. 그때는 마체술에 살짝 흥미가 있었거든.”
“호오, 그래? 또, 뭘 배웠더냐?”
“그게 끝인데?”
“…….”
“더 듣고 싶으면 돈 내라기에 바로 때려치웠지.”
“쯧.”
“아! 마나를 사용하는 체술이라서 익히기는 어렵지만, 제대로 익힐 수만 있다면 칼밥 먹고 사는 건 어렵지 않으니… 얼른 가서 돈 가져오라고 했었다. 그 용병 아저씨가.”
“…남들만큼 알긴 개뿔.”
“아냐?”
“뭐, 잘못 배운 건 아니다. 하지만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니지.”
“그럼?”
“마체술이란 올바른 무론에 뿌리를 둔 채, 마나를 쌓아 가며 신체를 단련하는 과정, 또한 육체를 통해 마력을 발산하는 모든 행위를 뜻하는 명칭이다.”
“…마력?”
“마력이란 1의 마나로 낼 수 있는 힘의 측량치다. 보통 1마력이라 함은 1의 마나로 1의 힘을 내는 것을 말하지.”
“100마력은 1의 마나로 100의 힘을 내는 거고?”
“오, 제법이구나?”
“…누굴 멍청이로 아는 건지. 아무튼, 마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강하다는 거네?”
“강함의 척도가 꼭 마력뿐인 것은 아니나 마력이 보편적인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맞다. 네놈이 가야 할 요람은 물론, 공인 시험에서까지 두루두루 쓰이고 있지.”
그 뒤로도 요한의 설명은 계속됐다.
아무것도 익히지 않은 일반인도 선천적으로 품은 마나를 이용해 때때로 1마력 이상의 힘을 낼 수 있으며.
마력이 1,000은 넘어야 공인 1단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
거기에 마력 측정은 한 번 하는 데 큰 비용이 들지만, 요람 출신은 얼마든지 공짜로 측정할 수 있단 것까지.
난생처음 듣는 마나와 마력의 기초 이론에 유리는 깊게 집중했다.
그러다 불쑥 치솟은 강렬한 호기심.
“그럼…….”
누구나 한 번쯤 가져 볼 법한 궁금증이 유리 입에서 직설적으로 내뱉어졌다.
“영감의 마력은 몇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