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12
111화. 일반 퀘스트 (1)
뿅-.
상급 마나 증강 비약의 뚜껑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열리고.
꿀꺽-.
진득한 액체가 단숨에 유리의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위장에 도달한 차가운 비약은 이내 뜨거운 열기가 되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뜨끈뜨끈하네.’
하급 비약과 흑검병단 조장급의 비약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배 속에 생겨나는 이질감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감상도 잠시.
유리는 눈을 감고 관조하여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마나에 집중했다.
스스스-.
배 속에서 시작된 열기는 이내 청량감으로 변했고, 곧 유리의 전신에서 옅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유리가 자신이 익힌 마나 로드에 따라 마나를 인도하니 흩어지던 마나가 곧장 핵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서서히 커져 가는 마나 핵.
그렇게 두어 시간이 흐르고.
후우-.
유리의 입과 코에서 옅은 황금색의 숨결이 토해졌다.
눈을 뜬 그는 하복부 부근을 살며시 문지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 약빨이 여엉……?”
조금 전 자신이 먹은 건 상급 비약이었다.
따라서 일전에 먹은 하급 비약보다 훨씬 많은 양의 마나를 늘려 주기는 했다.
그런데 그레타 덕분에 얻어먹은 흑검병단의 비약보다는 못했다.
마나 양이 크게 못 미치는 것은 물론이요, 순도 자체도 너무 떨어지지 않는가.
‘말은 상급인데 그냥 순도는 하급과 비슷하고 마나 양만 많은 수준이잖아?’
내가 잘못 먹었나?
그리 의아해한 유리는 중급 비약을 집어 들고는 곧장 삼켰다.
다시 한두 시간이 흐르고.
“흠?”
이번에도 깨어나자마자 고개를 갸웃거린 그는 하급 비약을 집어 들고 삼켰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흘러.
후우-.
“아아.”
황금빛 숨결을 토해 낸 유리는 그제야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 먹은 게 아니었네.”
자신이 먹은 상, 중, 하급 비약은 문제가 없었다.
세 비약은 등급에 맞게 정확히 성능을 보였다.
그저 일전에 먹은 흑검병단의 비약이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대단한 약이었을 뿐.
지금까지 자신이 먹은 다른 비약들을 전부 합쳐도 흑검병단의 비약 하나만 못하리라.
‘어쩌면 최상급 비약도 마나 양만 많지 순도는 흑검병단 비약보다 떨어질지도.’
그 정도로 흑검병단이 비약은 엄청난 순도를 자랑했다.
또 한 번, 역시 흑검병단 비약이라고 혀를 내두른 유리는 남은 하급 비약 하나도 마저 복용했다.
그렇게 무려 4개의 비약을 하루 만에 때려 붓는 호사를 누린 유리.
“꺼억-.”
그는 나지도 않는 트림을 억지로 토해 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든든하네.”
유리는 배를 두드렸다.
몇 시간 동안이나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고.
심지어 약빨을 잘 받기 위해 공복 상태였다.
그럼에도 유리는 지금 너무나 배가 든든했다.
‘이제 주먹 크기인가?’
비록 몇 시간 전보다 순도가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 크기만큼은 계란 두어 개만 할 때와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특히 요람에 처음 들어왔을 당시.
그때 그 호두 알만 하던 마나 핵에 비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성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더 고무적인 사실은 그게 불과 두 달 전이란 것이다.
‘요람에 들어온 지 이제 두 달이 조금 넘었는데 이렇게나 커졌단 말이지?’
왜 요한이 자신을 요람에 들여보내려고 했는지.
왜 그가 요람만큼 재능 있는 이가 역량을 쌓기 좋은 곳은 없다고 했는지.
이제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 어디에도 이렇게나 비약을 구하기 쉬운 곳은 없으리라.
과연 이 요람의 생활이 끝나면 자신의 마나 핵이 얼마나 자라나 있을지… 유리 자신도 궁금해질 따름이었다.
살짝 입가에 미소를 띤 그가 자리에서 이번에는 일어나 검을 집어 들었다.
유리는 검을 정면으로 겨누며 무표정하게 검 끝을 응시했다.
그리고 즉각 그의 검에 변화가 생겨났다.
우웅-.
옅은 진동음을 토해 낸 검신에 맑은 광택과 함께 뇌전이 피어올랐고.
파츠츠즉- 치직-.
검을 휘감은 뇌전이 점차 굵어지더니, 순간 갑자기 방전이라도 된 것처럼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는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차치치치치-.
갑자기 사라지기 전보다 훨씬 많은 뇌전이 치솟으며 검이 붉게 변해 갔다.
마침내 검이 완전히 붉게 물들고.
유리는 마치 불에 달군 듯 변한 검을 휘둘렀다.
사각-.
날카로운 칼날에 공기가 갈리는 소리.
어찌나 예리하던지 가볍게 휘둘렀음에도 공기의 결이 베였다.
이에 유리에게서 작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됐다.”
자신이 완성한 연검을 보며 유리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렇게 테레시아에게 강·연·화·마·성의 단계를 들은 지 채 한 달이 지나기도 전.
유리는 공인 2단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연검을 펼치는 데 성공했다.
‘이게 생각보다 마나를 많이 잡아먹네? 그리 오래 유지할 수는 없을 거 같지만…….’
길어야 몇 분 정도 유지할 수 있을 거 같지만, 그래도 성공한 게 어딘가.
‘그다음은 화검인가?’
유리는 내친김에 화검까지 도전해 보았다.
하지만.
츠츠츠츠-.
꺼질 듯 말 듯 위태롭게 일렁이는 뇌전.
결국 화검의 뜨거운 불길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뒤로도 몇 번을 더 시도해 보고 포기한 유리는 볼을 긁적였다.
“이건 안 되네.”
진즉에 파장 일치율은 90%에 달했지만, 그동안은 마나가 부족하여 펼치지 못했던 연검.
연검까지는 어찌어찌 쉽게 되었다지만, 화검부터는 만만치 않았다.
‘마나 양도 마나 양이지만, 파장의 일치율도 문제야.’
연검에서 화검으로 넘어가는 5퍼센트의 차이는 단순히 숫자로 표현될 그런 게 아니었다.
일치율을 맞춰 보려고 해도 계속해서 무언가 어긋나고, 미끄러지는 듯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쉽지 않겠네.’
아무래도 화검을 펼치는 것은 조금 더 연습해야 할 듯싶었다.
‘아니, 그 전에 연검부터 좀 더 숙달하는 게 좋겠지만.’
화검에 실패하였음에도 유리의 얼굴은 밝았다.
‘앞으로 10개월…….’
오늘 연검을 완성함으로써 요한이 내준 숙제 중 남은 건 화검과 마검, 그리고 마류-잡기의 완성이었다.
거기다 개인적인 목표인 성검까지.
아직 이뤄야 할 게 많았지만, 유리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시간은 충분해.’
유리는 차근차근… 그러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으니까.
누구보다 그걸 가장 잘 아는 게 바로 유리 본인이었다.
* * *
유리가 연검을 완성한 날로부터 사흘이 흘렀다.
그리고 유리와 테레시아의 거처가 있는 숲 인근.
팍- 팍-.
나무를 깎아 만든 곡괭이가 땅을 매섭게 찍어 댔다.
팍- 팍-.
그렇게 수십 번의 곡괭이질이 끝나고 커다란 구덩이 하나가 생겨났다.
자신이 만들어 낸 작업 결과를 멍하니 바라보던 아린은 들고 있던 곡괭이를 신경질적으로 내던졌다.
팟!
“에이 씨! 이게 뭐냐고!”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던 유리가 쪼르르 달려와 곡괭이를 냉큼 집어 들었다.
“어허, 소중한 연장을 그리 함부로 내던지면 쓰나!”
유리는 곡괭이를 다시금 아린의 손에 쥐여 줬다.
그러면 뭐 하겠는가.
팟!
아린이 다시 집어 던졌는데.
“이거 싫어!”
“어허, 그럼 못 써. 우리 아린이 착하지?”
마치 떼쓰는 아이를 달래듯, 유리는 다시 곡괭이를 아린의 손에 쥐여 주고 손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게 먹혔는지 이번에는 곡괭이를 집어 던지지 않은 아린.
대신 그녀는 씩씩거리며 유리를 쏘아보았다.
“대체 왜 내가 이런 걸 하고 있어야 하냐고!”
이에 유리는 뚱하게 답했다.
“집 구해 달라며?”
“내가 집을 구해 달라고 했지, 언제… 언제…….”
부들부들 떠는 아린의 입에서 튀어나온 쩌렁쩌렁한 외침.
“집을 만든다고 했냐고!”
이에 유리는 검지를 좌우로 까닥였다.
“쯧쯧, 네가 뭘 모르는구나?”
“……?”
“집이란 무릇,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든 게 최고인 법이지.”
그 뻔뻔한 말에 곡괭이를 쥔 아린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녀가 갸르릉-거렸다.
“좋아, 백번 양보해서, 내 손으로 만든 집이 최고라고 치자. 그런데…….”
아린이 자신이 판 구덩이를 가리켰다.
“내가 왜 땅을 파고 있어야 하는 건데? 내가 원한 건 높은 곳에 있는 집인데!”
“저건 네가 살 집이 올라갈 기초. 그러니 더 깊게 파. 나중에 자다가 집이랑 같이 수직 낙하해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으면.”
“우우…….”
“그리고 애초에 너도 네 손으로 집을 짓는 거 동의했잖아.”
“…그래, 동의했지. 그렇지, 난 분명 집 짓는 거에 동의했지. 그런데… 그런데 말야.”
거기서 아린이 재차 폭발하고 말았다.
그녀의 주변을 삿대질하며 빼액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집이야? 성… 아니, 마을이지!”
아린이 손가락질로 가리킨 곳.
그곳에는 균열을 중심에 두고, 너른 공터 곳곳에 세워진 나무 기둥들이 시야에 잡혀 들었다.
마치 경계를 나타내듯 나무 기둥이 듬성듬성 박혀 있는 거였다.
다만 문제는 그 경계로 그어진 공간이 사람이 살 집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실로 어마어마한 넓이라는 거다.
그런 아린의 지적에 유리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에이 뭘, 별로 크지도 않네. 살다가 좁아서 나중에 확장 공사하는 것보다는 처음에 크게 짓는 게 좋다고. 일 두 번 할 거 아니잖아?”
“이걸 좁다고 느끼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닐까?”
“글쎄? 나중에 가 보면 알걸?”
“후우…….”
아린은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자신이 짜증을 내면 뭐 하나.
씨알도 먹히지를 않는데.
‘내가 멍청했지. 이 녀석을 믿는 게 아니었어!’
며칠 전.
유리는 약속한 대로 2일에 나타났다.
그러고는 자신들보고 따라오라고 할 때까지만 해도 그가 약속을 지키려나 보다 하고 너무도 좋아했었다.
그런데 웬걸?
자신들을 아무것도 없는 공터로 데려와서 고작 한다는 말이…….
[내가 도와줄 테니 같이 집을 만들어 보자!]…였다.
처음에는 집을 만든다고 해 봤자 그까짓 게 얼마나 걸릴까 싶어 그냥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을 내뱉고 나서 정확히 30분 뒤에 아린은 후회하고 말았다.
유리가 곡괭이를 쥐여 주며 땅을 파라고 했을 때.
‘그때… 도망쳤어야 했어.’
이건 말로만 도와준다고 했던 거지.
사실상 유리가 자신들을 부려 먹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아린이 부들부들 어깨를 떨고 있을 때.
유리의 뚱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너무 그렇게 삐딱하게 굴지 말고, 저어어기 다른 사람들을 본받아 봐. 이걸 노동이 아니라 수련이라고 생각하라고.”
유리는 그러면서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 열심히 나무를 향해 창을 휘두르는 테레시아가 있었으니.
쉭쉭쉭-.
그녀의 창이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어 냈다.
하지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살짝 인상을 쓰고 고개를 갸우뚱거린 그녀는 다시 자리를 옮겨 다른 나무 앞에 섰다.
그러고는 마치 생사 대적을 만난 눈빛으로 자세를 잡았고.
쉭쉭쉭-.
다시금 그녀의 창이 빠르게 나무를 꿰뚫었다.
그런 테레시아의 옆.
쿵-.
웃통을 깐 뽀삐가 나무를 어깨에 걸치고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살짝 인상을 썼다가, 옆에 굴러다니는 나무를 하나 더 어깨에 걸쳤다.
그제야 무게가 마음에 드는 듯 만족스러운 얼굴의 뽀삐.
그는 앉았다 일어났다를 몇 번 반복하고선 이내 지정된 곳으로 나무를 옮기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뽀삐의 커다랗고 성난 근육이 꿈틀거렸다.
그들의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아린이 혀를 내둘렀다.
‘어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거지?!’
특히 테레시아를 보는 아린의 눈에 어이없음이 깃들었다.
‘뽀삐야 그렇다 쳐도, 저 선배는 어째서 불만이 없는 거야?’
유리가 데려온 곳에 49기 선배가 있는 것도 놀라울 따름인데.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 유리가 하는 일에 협조적이었다.
무언가 약점이 잡힌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린이 뾰로통한 표정을 짓자 유리가 웃으며 말했다.
“자자, 할 일 얼른 끝내고 점심 먹자, 점심!”
점심이란 소리에 아린의 귀가 쫑긋거렸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짜증이 눈에 띄게 누그러졌다.
“…오늘 점심은 뭐야?”
유리는 이번에 뽀삐와 아린을 데려오면서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그런 후 균열에 들어가기엔 몸집이 너무 큰 뽀삐와 지하에서는 죽어도 지내기 싫다는 아린에게 움막 같은 것을 지어 줬다.
물론 그게 아린의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약속과 달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화를 참는 이유.
나아가 진즉 도망갈 수 있음에도 적당히 짜증이나 부리면서 유리가 시키는 일을 하는 이유.
그건 바로 유리가 제공하는 숙식 중 식(食) 때문이었다.
꼴깍-.
점심이 뭐냐고 물으면서 침을 삼키는 아린을 보고 유리는 웃으며 답했다.
“기대해도 좋아. 이번 점심은 내가 좀 솜씨 좀 발휘했으니까.”
“저, 정말? 어제보다 맛있어?”
“당연.”
“와아!”
“그러니까 얼른 그거 마저 끝내. 후딱 끝내고 점심 먹자.”
“알았어!”
아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열심히 곡괭이를 놀렸다.
언제 짜증을 부렸냐는 듯 그녀의 얼굴은 너무도 해맑았다.
그 모습을 본 유리는 흐뭇하게 웃었다.
‘얘도 귀한 집 자식이 확실하네.’
테레시아도 그랬다.
길바닥에서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놈들이라면 모를까.
애초에 있는 집 자식들은 요람에 들어오기 전 화려한 맛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런데 요람에 들어와 오랜 시간 퍽퍽하고 무(無)맛에 가까운 건량만을 먹으니 욕구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적당히 맛이 깃든 요리를 먹게 되면 어찌 되겠는가.
‘바로 눈깔이 뒤집히는 거지.’
그 덕분에 유리가 테레시아와 아린이라는 고급 인력을 이런 잡스러운 일에 손쉽게 부려 먹을 수 있는 거였지만.
“후후후.”
흐뭇했던 미소는 어느새 음흉하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아린이 이를 볼세라 유리는 신속하게 미소를 지우고 속속들이 세워지고 있는 기둥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유리의 맑은 두 눈에 은은한 광기가 깃들었다.
‘이걸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