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14
113화. 일반 퀘스트 (3)
운이 안 좋으면 크게 다칠 수 있는 녹색 동굴.
운이 좋아야 살아 나올 수 있는 적색 동굴.
그 둘 사이에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이는 누군가 알려 주지 않는다면 쉬이 알기 어려운 정보이기도 했다.
“찰리?!”
절벽 밑에 대기하고 있던 이들 중 몇몇이 다급히 계단을 올랐다.
“찰리!”
쿵쿵쿵-.
그들은 철문을 두들겨 봤으나 굳게 닫힌 문은 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 멀리서 벌어진 일에 유리가 눈을 끔뻑였다.
“저거 정말로 죽은 거야?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잖아?”
“죽었을 거야.”
그리 확신하는 테레시아의 얼굴은 무감정했다.
그녀는 적색 동굴을 바라보며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너무 섣불렀어. 그리고 멍청했고.”
테레시아가 그리 말할 수 있는 건, 조금 전의 50기처럼 죽어 간 자들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었다.
49기 때도 그랬다.
많은 이들이 녹색 동굴에 도전했고, 점차 적응해 갈수록 자신감을 얻었다.
결국 그러다 그들이 도달하는 생각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이 정도면… 적색도 도전해 볼 만하겠는걸?]하지만 그것만큼 어리석고 멍청한 착각은 없었다.
‘멍청해, 퀘스트 난이도가 별 2개에서 7개까지 차이가 난다면 당연히 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야지.’
하지만 과하게 붙은 자신감과 우월감은 판단력을 흐트러뜨리고, 자신의 실력을 평소보다 높게 평가하게 했다.
그렇게 적색 동굴에 도전했던 이들 중 살아서 돌아온 이는 없었다.
오늘 죽어간 저 50기처럼 말이다.
테레시아가 굳게 닫힌 적색 동굴을 바라볼 때, 유리의 냉소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쯧, 그렇네. 저 새낀 무슨 자신감으로 저길 들어간 걸까? 멍청하긴.”
이에 테레시아가 살짝 의외라는 눈빛으로 유리를 돌아보았다.
“…괜찮아?”
“뭐가?”
“사람이 죽었는데?”
“그런데?”
“안 놀랐어?”
“놀랐는데?”
“…….”
테레시아가 유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분명 유리도 처음에는 놀라는 반응을 보이기는 했다.
한데 이상할 정도로 적응이 빨랐다.
그리고 그가 놀란 반응도 ‘맙소사 사람이 죽었어!’ 이런 반응이 아니라, ‘정말로 죽었네?’라는 반응이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테레시아의 시선에 유리는 피식거렸다.
“그럼 내가 ‘세상에, 사람이 죽었어, 어떡해!’라고 호들갑이라도 떨며 슬퍼해야 하나?”
“그건 아니지만…….”
“애초에 정식 기수가 되는 조건 중 하나가 유서 작성이었어. 그건 누가 봐도 요람에서 주는 걸 받아먹고 싶거든 뒈질 각오를 하라는 뜻 아닌가?”
유리도 그랬다.
그 역시 철저하게 준비하고, 거기에다 목숨까지 걸었기에 호랑이인 그레타를 꺾고 호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만약 유리의 준비가 조금만 부족했어도.
그리고 그의 능력이 조금만 떨어졌어도 지금 그는 이렇게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지는 못했을 거다.
‘그랬는데…….’
유리의 시선이 적색 동굴 앞을 서성이는 이들에게 닿았다.
“별 대책도 없이, 생각도 없이 무턱대고 별 일곱 개짜리에 도전한 놈이나. 그런 놈을 응원한 새끼들이나. 저것들이 병신이지.”
“…….”
“한 생명이 바스러진 건 분명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저런 경솔한 죽음까지 슬퍼하기에는…….”
…자신은 이미 너무 많은 죽음을 보았다.
불타 버린 마을에서 죽어 간 수많은 이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빼앗은 누군가의 목숨까지.
유리는 대륙을 떠돌 당시에도 살아남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타인의 죽음에 관여했었다.
그렇기에 유리는 죽음에 쉬이 슬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속내를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
흐려진 끝말에 테레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유리가 대충 얼버무렸다.
“별거 아니야.”
“……?”
“뭐, 그래도 텟샤 선배가 죽으면 조금은 슬퍼해 줄게.”
“…그것참 고맙네.”
“그럼 저런 건 신경 끄고, 이제 어디로 가?”
그 물음에 텟샤가 한쪽을 손가락질했다.
“저기.”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간이 건물이 있었다.
“가자고.”
이에 유리가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살짝 물끄러미 바라보던 테레시아도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먼저 도착한 유리는 간이 건물이 무얼 하는 곳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까 테레시아가 순위권이라고 한 말이 이거 때문이었군.’
간이 건물에는 한 사내가 팔짱을 낀 채 의자에 기대어 졸고 있었고.
그런 사내의 뒤, 건물의 벽면에 작은 나무 조각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유리는 손가락 크기의 나무 조각과 거기에 적힌 글자들을 유심히 살폈다.
‘순위, 기수, 이름, 그리고 점수인가?’
순위는 모두 100위까지.
그리고 퀘스트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재 기록되어 있는 순위권은 전부 35기보다 아래 기수였다.
유리는 순위권의 이름을 스윽 훑었다.
그러다 그의 입에서 옅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오? 텟샤 선배, 좀 했네?”
테레시아의 이름은 총 100개의 이름표 중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었다.
【2위 / 49기/ 테레시아 윈체스터/ 198점】
그렇게 감탄하던 유리의 시선이 곧장 위로 올라갔다.
【1위 / 48기/ 권터…….】
그쯤에서 유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권터?”
순간 비슷한 이름을 가진 어느 정직한 소년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름 뒤에 붙은 성(成)을 보고 그런 생각은 멀찌감치 사라졌다.
【1위 / 48기/ 권터 라이더/ 199점】
“…라이더? 설마 그 라이더?!”
익숙한, 그러나 흔치 않은 성에 유리가 눈을 끔뻑였다.
이에 유리의 뒤로 다가온 테레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아.”
“…맞다는 건?”
“네가 생각하는 그 라이더가 맞다고.”
세상 어딘가에 라이더라는 성을 쓰는 사람이나, 가문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 그 누구도 라이더라는 성을 보면 가장 먼저 한 사람을 떠올릴 거다.
‘검주, 루크 라이더.’
이에 유리가 테레시아를 돌아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그 라이더야? 검주의? 그럼 저 1위가 검주의 손자인 거야?”
그 말에 테레시아는 작게 실소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그게 무슨 소리야?”
“저 라이더가 검주의 라이더인 건 맞지만, 손자인 건 아냐.”
“엉?”
“아들이지.”
“……?!”
자신이 잘 못 들었나 싶은 유리가 눈을 끔벅였다.
“아들… 이라고? 몇 살인데?”
“나보다 두 살 많아서, 올해 열여덟로 알고 있어.”
“열여덟 살인데 아들이라고?”
유리는 검주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 잠깐… 올해 검주가 몇 살이더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제 아흔을 넘어 100살을 바라보는 나이라고 들었던 거 같다.
그런데도 손자도 아니고, 무려 18살짜리 아들이 있단다.
‘아니, 할배… 서요?’
역시 검주는 괜히 검주가 아니었다.
한편 유리가 검주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고 있을 때.
테레시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권터 라이더, 그는 검주의 피를 가장 진하게 물려받았다고 평가받는 막내아들이자… 흑룡패주야.”
흑룡패주라는 소리에 유리의 시선이 권터의 이름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유리는 자신을 제외한 흑룡패주를 처음 보기에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권터 라이더가 흑룡패주라는 게 충분히 이해가 갔다.
‘검주의 피를 가장 진하게 물려받았다라…….’
그건 다시 말해 검주의 그 괴물 같은 재능 역시 물려받았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런 이가 흑룡패를 받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이가 흑룡패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유리가 테레시아를 향해 물었다.
“저 점수… 혹시 200점이 만점인 거야?”
“맞아.”
“흠.”
200점 만점에 199점이란다.
그리고 당장 눈앞에 있는 테레시아만 해도 198점.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유리의 눈에 강한 호승심이 깃들었다.
“혹시 따로 여기서 퀘스트 등록 같은 걸 해야 하는 절차가 있어?”
“아니, 그런 건 없어.”
“도전 횟수는?”
“녹색 동굴의 경우는 무제한.”
“그럼, 바로 도전해 봐도 되는 거지?”
“마음대로.”
테레시아는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아직 알려 줄 정보가 더 있기는 했지만, 유리의 눈을 보니 지금은 딱히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아니, 설명을 해 준다고 해도 현재 유리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듯싶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유리는 성큼성큼 절벽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저벅저벅-.
그렇게 녹색의 동굴 앞에 선 유리.
그가 그 주변을 살폈다.
‘저게 기록을 측정하는 시계.’
동굴의 입구, 그 위편에 120개의 눈금을 가진 괴상한 시계가 걸려 있었다.
‘바늘이 하나에 눈금은 120개라… 초당 1칸, 총 120초를 나타내는 건가?’
시계의 눈금은 그렇게 간단히 추측할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인 건…….
‘저건 뭐지?’
동굴의 왼편, 기록 측정용 시계를 작동시키는 버튼 옆에 있는 기괴한 홈이 유리의 시선을 강탈했다.
손가락 두 마디 길이의 얇은 직사각형 모양 구멍과 그 밑에 설치된 너른 받침대.
도무지 그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뭐, 겪어 보면 알겠지.’
그리 여긴 유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시계를 작동시키는 버튼을 눌렀다.
찰칵-.
작은 기계음이 들린 순간, 유리는 바로 동굴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입구로 들어서기 무섭게 유리를 반겨 준 건 두 개의 갈림길이었다.
다만 왼쪽은 철문으로 막혀 있는 상태.
‘이건 누가 봐도 오른쪽으로 가라고 일부러 막아 둔 거군.’
그리 판단한 유리는 곧장 오른쪽 통로로 들어섰다.
그렇게 두어 발자국을 내디딘 순간.
스컹-.
유리가 디디고 지나친 바닥이 움푹 꺼졌다.
그리고.
쿠그그긍- 쿵-!
갑자기 내려온 철문으로 유리가 들어선 통로의 입구가 완전히 막혀 버렸다.
그와 동시에 통로의 천장이 좌우로 살짝 갈라지며 그 속에서 작은 발광석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마치 이 빛을 따라가라는 듯 말이다.
원래라면 이런 곳에도 저 비싼 발광석을 박았다고 감탄하고 있었을 유리.
하지만 그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을 테니 말이다.
유리는 발광석이 알려 주는 길을 따라 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와 함께 유리의 달리기를 방해하는 것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훙-.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줄 달린 쇠공.
드르륵-.
발목을 향해 빠르게 굴러오는 나무통.
퓨숙-.
등 뒤에서 날아드는 십여 발의 화살.
스컹-!
통로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뾰족한 창날.
순간순간, 통로 곳곳에서 유리를 노리고 온갖 함정들이 발동됐다.
그럴 때마다 함정을 쳐 내고 말끔하게 피해 내는 유리.
그 속도는 마치 함정이 어디서 나올 것이란 걸 미리 알고 있다 생각될 정도로 빨랐다.
피릭-!
머리 위에서 떨어진 쇠공을 피해 낸 유리는 의아한 눈빛을 지었다.
‘이거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은데? 별 2개짜리 일반 퀘스트는 보통 이 정도 수준인가?’
그렇게 여겨도 될 정도로 순간순간 발동되는 함정은 상당히 정교하고 난해했다.
비록 살상력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방심했다가는 큰 부상은 물론이고, 정말로 재수가 없다면 죽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
물론 그 모든 건 유리에게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훙-.
캉-!
명치를 노리고 날아든 추를 가볍게 쳐 낸 유리는 어느새 ∩자 형태의 반환점에 도착해 있었다.
‘여기까지가 25m.’
그대로 빠르게 반환점을 돈 유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달려 나갔다.
되돌아가는 길에도 함정이 발동되었지만, 유리는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렇게 통로의 끝.
‘열려 있다.’
들어올 때는 닫혀 있던 왼쪽 통로의 출입구가 지금은 훤히 개방되어 있었다.
유리는 거침없이 입구를 통과했고 곧장 동굴을 빠져나왔다.
즈그극-.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미끄러져 밖으로 튀어나온 유리가 팔을 뻗어 시계 정지 버튼을 눌렀다.
탁!
‘몇 초냐!’
유리가 고개를 들어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의 하나뿐인 바늘이 19번째 칸에 걸쳐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본 건 유리뿐만이 아니었다.
“…19초?”
살짝 얼이 빠진 듯한 목소리.
유리가 소리 난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그곳에는 테레시아가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녀의 옆으로 유리가 쪼르르 다가가 물었다.
“그런데 텟샤 선배, 이거까지 했으면 점수는 어떻게 매겨지는 거야?”
그 질문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테레시아.
“아, 점수는, 조금 있다가 여기서…….”
그녀가 받침대가 설치된 직사각형의 작은 구멍을 가리켰다.
그건 유리가 궁금해했던 바로 그 구멍이었다.
그리고 테레시아가 그 구멍을 가리킨 순간.
스륵- 달그락-.
갑자기 구멍에서 접힌 종이 쪼가리 하나가 튀어나와 받침대에 떨어졌다.
이를 집어 든 테레시아가 마저 답했다.
“…이렇게 집계되어서 나와.”
그렇게 종이를 펼친 테레시아.
거기에 적힌 숫자를 본 그녀의 몸이 한순간 움찔하고 굳어 버렸다.
한편, 궁금해하던 구멍의 정체를 알게 된 유리.
“오호라? 이게 그런 용도였군. 그래서 나 몇 점임?”
그가 테레시아 쪽으로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종이에 적힌 점수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