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16
115화. 고인물 (2)
유리의 탐욕스러운 눈깔이 페터에게로 향했다.
“아, 질문 하나만 더요.”
“뭐냐.”
“만약 동점자라면 순위는 어떻게 처리됩니까?”
“내부 규정대로 처리한다.”
“…내부 규정이라.”
자신이 했던 말을 작게 되뇌는 유리를 보고 페터가 하품하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흐아암, 더 물어볼 거 없지? 그럼 볼일 끝났으면 가 봐라. 난 나만의 시간을 보낼 거니까.”
조금 전보다 더 멍한 얼굴이 되어 버린 페터.
그는 주섬주섬 자신의 의자로 걸어가 궁둥이를 붙였다.
그러고는 곧장 고롱고롱 잠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에 유리와 테레시아는 별말 없이 간이 건물을 벗어났다.
그렇게 간이 건물, 일명 순위 집계소에서 멀찍이 떨어진 두 사람.
유리가 간이 건물 쪽을 턱짓하며 물었다.
“저 사람 뭐야?”
“페터 레만이라고, 이곳 기관 돌파 퀘스트장을 관리하는 사람.”
“흑검병인가?”
“아마도? 그런데 내가 왔을 때부터, 그리고 그 이전부터 계속 여기 관리인으로 있었어.”
“설마… 아무 때나 너무 자서 흑검병에서 잘린 거 아냐?”
“그럴 거라는 구설수가 있기는 했지.”
“역시…….”
지금까지 유리가 본 흑검병은 하나같이 흑검(黑劍)이란 이름에 걸맞게 강렬한 인상이었다.
그에 반해 페터는 너무도 맹했다.
다만…….
‘전투 준비라는 한마디에 반응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흑검병이었어.’
유리는 막 잠에서 깨어나 강렬한 기세를 흘리던 페터의 모습을 떠올렸다.
대체 얼마나 훈련과 실전을 반복했길래 잠결에도 그 한마디에 그리 반응한단 말인가.
그걸 생각하면 저 맹해 보이는 페터도 흑검병이라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유리가 페터에 대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이제 내가 도와줄 건 없는 거 같네.”
그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유리가 테레시아를 바라보자 그녀가 살짝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설마 나한테 7성 동굴에 관해 물어보지는 않겠지?”
“그럴 리가.”
“관련된 정보를 알려 줄 수도 있는데?”
“솔직히 조금 당기기는 하는데… 됐어.”
유리가 피식거리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무리 1위가 하고 싶더라도 테레시아에게 7성 동굴에 관한 정보를 물어보기는 싫었다.
물론 정보를 들으면 한결 수월해지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그건 조금 자존심이 상하지.’
아무리 유리가 줏대가 없다고 해도 그건 아니었다.
권터 라이더가 한 일을.
그리고 테레시아가 한 일을 자신이 못 할 거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훗날 누릴 성취감과 자신의 자존감을 위해서라도 유리는 이번만큼은 정보 듣기를 거부했다.
그러다가 테레시아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살짝 갸름하게 변했다.
“그런데 말야.”
“……?”
“왜 이렇게 잘해 줘?”
“…뭐가?”
“보니까 텟샤 선배는 딱히 이 퀘스트장으로 올 이유도 없어 보이던데?”
이미 2성은 물론 7성까지 2위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테레시아.
비록 1위를 차지하지는 못하였지만, 그 정도만 하여도 이 퀘스트장에 다시 올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런데 굳이 날 여기로 데려와서 친절하게 설명도 해 주고.’
그것도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친절하게 대해 주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지금도 봐라.
처음에는 자기도 이 퀘스트장에 볼일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해 놓고는, 이젠 되돌아가려고 자세를 잡지 않았는가.
“오늘따라 왜 이리 친절하실까?”
유리가 의심의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니 테레시아는 짤막하게 답했다.
“그냥.”
그러고는 바로 몸을 뒤로 물리는 테레시아.
그녀가 막 떠나려는 찰나.
“아, 맞다. 텟샤 선배.”
유리가 또다시 테레시아를 붙잡았다.
“아까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었는데.”
“이번에는 또 뭔데?”
짜증이 난 듯 살짝 미간이 일그러진 테레시아.
하지만 그 미간은 곧이어 들려온 유리의 이야기에 곧바로 펴졌다.
“분명 권터 라이더가 18살인데 텟샤 선배가 그보다 두 살 어리다고 했지?”
“…….”
“그럼 열여섯이란 거네?”
“…….”
“이야, 텟샤 선배… 요람에 빨리 들어왔구나? 나도 열여섯인데.”
그러면서 히죽 웃는 유리를 보고 테레시아는 휙,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게 아닌가.
멀어지는 테레시아의 뒷모습을 보고 낄낄거리던 유리.
그랬던 그의 얼굴이 금세 무표정으로 변했다.
‘좋아, 기록 경신할 때까지… 무한 도전이다!’
유리가 날듯이 절벽이 있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 * *
탁-!
동굴 밖으로 뛰쳐나온 유리의 손이 시계의 정지 버튼을 눌렀다.
즈그극-.
바닥에 미끄러진 유리가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18초.”
이번이 벌써 세 번째 도전.
그로 인해 처음 19초였던 기록이 18초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스륵- 탁!
점수가 적힌 종이가 나오고.
이를 확인한 유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188점?”
이상했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첫 도전 때와 점수가 같다고?’
2회차 도전에서는 189점을 받았던 유리.
그때의 시간 기록도 18초였다.
그런데 그때랑 시간은 같은데 어째서 점수가 더 안 나온단 말인가.
유리가 진중한 얼굴로 턱을 쓸었다.
‘역시 점수 책정 방식을 알아내야 해.’
그래야지만 자신의 최종 목표로 가는 길을 열 수 있을 터.
유리는 페터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동점자는 내부 규정에 따라 처리한다고 했지.’
공동 순위로 둔다는 게 아니라 분명 내부 규정대로 처리한다 했다.
실제로 순위판을 봤을 때 같은 점수임에도 공동 순위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우열이 갈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페터가 언급한 내부 규정에 우열을 가르는 기준이 명확하게 있다는 뜻.
유리는 그 기준이 어쩌면 ‘시간’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최종 목표, 그건 그냥저냥 한 1위가 아니었다.
일단은 200점 만점을 기본을 깔고 가되.
자신 이후로 또 다른 만점자가 나온다고 하여도, 결코 그 누구도 자신의 기록을 넘어서지 못할.
압도적인 시간의 대기록을 달성하는 게 바로 현시점에서 유리가 세운 궁극의 목표였다.
‘뭐, 그 전에 만점부터 받아야겠지만.’
우득우득-.
유리는 가볍게 어깨를 돌렸다.
‘어차피 시간은 충분해. 기준을 알아낼 때까지 간다.’
그러면서 유리는 시계의 동작 버튼을 눌렀다.
스칵-.
무언가 걸리는 게 없이 버튼이 쑤욱- 들어갔다.
그리고 시계도 작동하지 않았다.
이에 유리가 살짝 인상을 썼다.
“이거 또 이러네? 아까도 그러더니?”
흐름이 끊기지 않게 곧바로 도전하려 했지만, 시계가 작동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뭐, 빈 동굴은 많으니까.’
그리 속으로 되뇐 유리는 다른 동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유리의 무한 도전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 * *
기관 돌파 퀘스트 도전 2일 차.
적색의 7성 동굴을 제외한 20개의 2성 동굴을 모조리 돌아 본 유리.
대략 어디서, 어떻게 함정이 발동하는지 감을 잡은 그의 기록은 평균 17초대에 접어들었다.
또한, 2일 만에 유리는 점수 책정 방식을 어느 정도 알아냈다.
‘200점 만점 중 100점은 시간, 나머지 100점은 함정과 관련이 있다.’
걸린 시간이 짧을수록.
파괴한 함정이 적을수록.
점수가 더 높게 나온 것이다.
‘몇 번 더 돌면 확실하게 알 수 있겠어.’
탁-.
유리가 다시 시계를 눌렀다.
* * *
기관 돌파 퀘스트 도전 3일 차.
유리는 함정 관련 점수에 관해 조사하던 중, 한번 사용된 기관이 일정 시간 정비를 거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시계가 작동하지 않은 거였어.’
시계가 작동하지 않는 틈을 타 슬쩍 동굴로 들어가 보니 돼지 코 형태의 두 동굴 입구가 모두 닫혀 있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시계가 작동해서 들어가 보니 자신이 부쉈던 함정이 멀쩡하게 고쳐져 있었다.
거기다 함정이 심하게 파손될수록 정비 시간은 더 길어졌다.
‘이건 누군가 기관을 수리하고 있다는 건데?’
이에 관해 페터에게 물어보니 그는 ‘나는 모른다’로 일관했다.
‘뭐, 계속 돌다 보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유리는 다시 동굴로 뛰어들었고.
그 횟수가 거듭될수록 그는 점차 점수 책정 방식에 관해 확실하게 감을 잡아 가고 있었다.
* * *
기관 돌파 퀘스트 도전 4일 차.
유리의 시간대가 16초에 접어들었다.
이때 그가 받은 점수는 194점이었다.
‘테레시아가 5개월 만에 198점을 받았다고 했었나?’
일전에 페터에게 들은 테레시아의 정보를 생각하면 유리의 기록 증진 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빠른 거였다.
그럼에도 만족하지 못한 유리의 도전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 * *
기관 돌파 퀘스트 도전 5일 차.
이제 유리는 어디서, 어떤 함정이, 어떻게 발동하는지 달달 외우고 있었다.
그는 이제는 함정을 하나도 안 건드리는 것은 물론이요, 시간대까지 원하는 대로 조절하는 경지에 다다른 상태.
거기에 점수 책정 방식 분석까지 완전히 끝냈다.
‘110초 이상은 0점, 109초부터 11초까지 초당 1초씩, 총 99점으로 구분.’
그리고 함정의 개수는 총 100개.
‘함정을 하나 부술 때마다 1점씩 감점.’
그렇게 분석이 끝난 순간 유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적응만 한다면 함정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통과할 수 있기에 함정 점수는 변별력이 떨어져. 그렇다면 역시 동점자의 순위를 가르는 기준은… 시간이다!’
같은 점수일 경우 시간이 더 빠른 자를 우위에 둔다.
어렴풋이 예상하던 그 생각에 강한 확신이 든 것이다.
그리고 그날 유리는 함정을 하나도 안 부수고 15초로 통과함으로써 195점이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점차 점수가 늘고 있음에도 그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200점을 만들려면 마의 10초대를 뚫어야 하는 건가?”
유리는 직감했다.
이 10초의 벽을 뚫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권터 또한 어쩌면 마의 10초를 뚫지 못해 199점에 머문 것이리라.
하지만.
‘될 거 같아.’
유리는 충분히 10초대에 진입할 거란 자신감이 들었다.
그렇게 유리의 도전은 여전히 계속되었으며.
처음 기관 돌파 퀘스트장에 유입되었던 맑은 물은 어느새 진득한 고인물로 변해 가고 있었다.
* * *
기관 돌파 퀘스트 도전 10일 차.
녹색의 동굴 입구에서 유리가 튀어나왔다.
스르륵- 탁!
시계를 정지시킨 그는 습관적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또 11초.”
유리가 인상을 와락 구긴 순간, 때마침 점수지가 튀어나왔다.
스륵- 탁!
유리는 무덤덤한 얼굴로 이를 확인했다.
【199.】
무려 199점.
일단은 권터 라이더와 동점이었다.
이거라면 1위를 차지할 수도 있겠지만, 유리의 얼굴은 그다지 기뻐 보이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공동 1위 따위가 아니니까.’
그가 원하는 건 압도적인 1등이었다.
하여 199점을 달성한 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유리는 여태껏 점수를 등록하지 않고 있었다.
즈극-.
점수지를 꾸긴 유리는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마의 10초라.”
애초에 예상했던 대로 10초대 진입은 어려웠다.
그냥 50m를 달리는 거라면 10초가 아닌 3초도 안 걸릴 거다.
하지만 함정을 피해 내는 동작 하나하나에서 자꾸 시간이 지연되고 있었고.
그런 함정이 무려 100개였다.
아무리 위치를 알고 대처를 한다고 해도 많은 시간을 잡아먹힐 수밖에 없었다.
‘뭐, 그 함정들 덕분에 운보 숙련도는 쭉쭉 잘 오르고 있지만.’
지금까지 위기 상황에 뇌익과 마류만 주로 사용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운보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함정 회피에 운보를 계속 사용하다 보니 운용법이 늘고 있었다.
이는 유리에게 너무도 큰 희소식이었다.
‘이 상태로 쭉 운보 숙련도가 늘어난다면 분명 10초의 벽… 넘을 수 있다.’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마의 10초를 넘지 못하고 자꾸 고꾸라지는 상황임에도 유리가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다.
오히려 현재 유리를 괴롭히는 건 좌절감이 아닌, 심심함이었다.
그리고 유리가 느끼는 심심함은 일반적인 심심함, 지루함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혹시 그런 느낌을 아는가?
늘 반복적으로 해 오던 일이라 몸은 알아서 습관적으로 움직이고.
딱히 지루하다는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일거리를 잃은 뇌가 계속해서 심심하다고 눈치를 주는 느낌을?
유리의 상태가 딱 그러했다.
오늘도 결국 뇌가 주는 눈치에 유리의 입이 절로 반응했다.
“아… 심심하다.”
유리는 차라리 대화할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조차 없네.’
첫날 왔을 때만 해도 꽤 많은 사람이 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상황.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게 그날에만 일어난 아주아주 특수한, 이례적인 상황이란 것을.
지난 열흘간 이곳에 있으면서 지켜본 결과, 이 퀘스트장은 사람이 그리 많이 찾아오는 곳이 아니었다.
49기는 거의 보질 못했고.
50기들은 종종 찾아오긴 했지만, 그마저도 몇 번 도전해 보고 발길을 돌리기 일쑤였다.
‘길게 있어 봤자 이틀 정도?’
그나마 가장 길게 머문 사람은 나흘 동안 있었던 50기 소녀였지만…….
스윽-.
유리의 시선이 절벽의 꼭대기 7성 동굴을 향했다.
‘아아, 그녀는 가 버렸습니다…….’
소녀는 나흘 만에 92위에 이름을 한번 올리더니, 그대로 7성 동굴에 도전.
이후 순위판에 이름만 남기고 그대로 영영…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 버렸다.
그렇게 소녀를 떠나보낸 뒤로 지금까지, 무려 3일간 유리가 만난 사람은 페터가 전부였다.
물론 그마저도 맨날 잠만 자느라 유리를 잘 상대해 주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유리는 페터가 어째서 이곳을 ‘할 일도 없는 곳’이라고 하였는지, 왜 늘 잠만 자고 있는지.
이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심심해애애애애애!”
심심함에 몸부림치는 유리.
“에효, 얼른 200점 만들고 떠야지.”
크게 한숨을 내쉰 그가 습관적으로 다시 시계 작동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어?”
저 멀리서 걸어오는 세 사람의 모습이 유리의 시야에 잡혀 들었다.
그의 눈이 단번에 좁혀지며 확인에 들어갔다.
‘보자… 일단 견장은 빨강, 50기네?’
그리고.
‘에메랄드 머리, 파란 머리, 빡빡머리도 아니고.’
테레시아, 아린, 뽀삐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소린?’
모든 것을 파악한 유리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신입이다!”
뉴비의 등장에 신난 고인물의 두 눈이 매우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