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20
119화. 신기록 (3)
“발상의 전환? 그게 무슨 소리야?”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테레시아의 표정에 유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중천을 살짝 넘어간 태양을 보며 유리는 시간을 가늠해 보았다.
‘대충 10시간 정도 남은 건가?’
이제 설렁설렁 준비해서 해가 떨어지기 전에 포인트를 등록하러 가야 할 터.
하지만…….
‘일단 그 전에 내 얼굴에 구멍이라도 낼 것처럼 쳐다보는 이 사람 좀 어떻게 해야겠네.’
두 번만 더 궁금해했다간 정말로 자신의 얼굴에 구멍을 낼 듯, 강렬한 시선이었다.
유리는 테레시아의 진홍색 눈동자를 보고 피식거렸다.
“따라와.”
그 말을 남긴 유리가 걸어갔다.
“……?”
잠시 서로를 응시한 일행이 곧 유리를 따라잡았다.
자신을 뒤쫓는 이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유리가 입을 열었다.
“갑자기 그런 영감을 받았지. 지금까지는 함정이 발동되면 그걸 피하기 급급했지만…….”
“…….”
“만약 미리 피한 상태에서 함정을 발동시키면 어떻게 될까, 라고.”
그런 유리의 말에 아린과 뽀삐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라는 얼굴이었다.
반면 기관 돌파 퀘스트가 어떤 유형인지 잘 알고 있는 테레시아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건… 불가능해.”
테레시아가 알고 있기로 이곳의 함정들은 기본적으로 땅울림을 감지하여 발동된다.
기관에 진입하는 시점부터, 앞으로 나아가는 내내.
발을 내디디는 매 순간, 그 진동을 감지해 일정 구역에 설치된 함정이 발동하는 원리였다.
따라서 발동될 함정보다 미리 앞섰다고 해도 결국은 발을 내디딜 때마다 그 부근의 함정이 발동될 거다.
거기다 모든 함정을 일단 발동시켜야지만 점수가 채점되기에 유리가 말한 방식으로 만점을 받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불가능하긴.”
유리는 그렇게 말하며 한 동굴 앞에 섰다.
붉은색의 입구.
바로 7성 동굴이었다.
“이것 좀 가지고 있어 봐.”
“배고프다?”
뽀삐는 유리가 건네주는 애검 흰둥이를 얼떨결에 받아 들었다.
검을 맡긴 유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고는 한쪽으로 쪼르르 가서 큼지막한 돌멩이를 집어 드는 게 아닌가.
그렇게 한 손에 3개씩, 양손 가득 돌멩이를 쥔 유리.
7성 동굴의 굳게 닫힌 철문을 다시 마주하니 얼마 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 * *
7성급 기관 동굴 앞에 선 유리.
그의 손은 시계를 작동시키는 버튼 위의 1㎝ 지점에서 멈춰 있었다.
만약 이대로 힘을 준다면 곧바로 도전이 시작되리라.
하지만 유리는 쉽사리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마치 석상이라도 된 듯 굳어 있었다.
그가 그러는 이유는 가슴속에 생겨난 찝찝함 때문이었다.
‘왜 이러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찝찝함을 지워 내고자 유리는 차분하게 머릿속을 정리해 보았다.
‘7성급과 2성급은 모두 기본 골자가 같을 거다.’
진동을 감지해 함정이 발동되는 방식.
다만 함정이 살상인지 비살상용인지로 난이도가 차이 날 것이다.
‘만약 내 예상이 정확하다면 1위를 차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거다.’
유리는 얼마든지 1위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현 1위인 권터 라이더가 세운 188점.
그것을 완벽하게 넘어선 대기록을 세우는 것도 100% 확률로 가능할 것이다.
‘최소 190점 이상.’
그런 유리의 확신은 지금껏 7성급에 도전해 죽어 나간 어리석은 이들의 막연한 확신과는 달랐다.
밤낮으로 2성급 기관을 돌며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쳐 얻어 낸 정보를 바탕으로.
현재 자신의 실력을 명백하게 인지하고 7성급의 난이도와 저울질하여 얻은, 계산된 확신이었다.
그런 확신이 분명 자신은 190점 이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유리는 탐탁지 않았다.
‘고작? …아!’
그때 유리는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찝찝함이 바로 그 ‘고작’이란 단어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고작 190점대라고?”
불만족에서 시작된 한 줄기의 찝찝함이 유리가 시계의 동작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다행스럽게도 유리는 영감을 얻을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유리의 본능이 그것을 알아차렸기에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만든 걸지도 몰랐다.
톡-.
유리는 자신의 뇌 속에서 작은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환청을 들었다.
그건 유리가 이 퀘스트에 관해 고민하고 궁리하며 만들어 낸 정보의 웅덩이로 마지막 한 방울의 궁리가 떨어지는 소리였다.
그리고.
쪼르륵-.
이미 고일 대로 고여 넘치기 직전이었던 정보의 웅덩이는 그 마지막 한 방울로 인해 기어코 넘쳐흘렀고.
솨아아-.
한 줄기의 새로운 물길을 만들어 냈다.
그 순간 유리는 강한 희열을 느꼈으며, 막혀 있던 답답한 속이 훤히 뚫리는 상쾌함이 들었다.
“아아아…….”
영감(靈感).
그건 불현듯 떠오르는 느낌이나 자극, 혹은 생각을 칭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유리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생각하는 영감이란 꾸준히 한 가지에 몰두하여 궁리하고 또 궁리한 끝에.
그 하나를 다양한 각도로 분석하였을 때, 뒤늦게 볼 수 있게 되는 색다른 길.
그게 바로 유리가 생각하는 영감이었다.
그리고 지금 바로 그 영감이란 새로운 길이 유리 앞에 나타났다.
‘그렇군.’
자신은 지금까지 생각을 잘못하고 있었다.
유리는 옅게 미소 지었다.
“…이거야말로 진짜 함정이었네.”
너무 반복적으로 기관 돌파 퀘스트에 전념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생각의 함정에 빠져 버린 것이었다.
“난 왜 꼭 발동된 함정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미친 소리 같아 보였지만, 그게 유리가 받은 영감의 전부였다.
그는 뒤돌아 서서 절벽 아래로 넓게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요한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예전에 자신이 살았던 절벽의 은신처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이 이러했다.
옛 기억을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그날, 요한이 허공을 걸어가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때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마체술을 익힌 지금에 와서는 그게 얼마나 놀라운 경지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현재의 자신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경지.
하지만 요한이 보여 준 경지를 100% 따라 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몰라도…….
‘지금의 내 운보라면 대충… 5%는 따라 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 5%라면 충분했다.
단, 5%만이라도 따라 할 수 있다면, 7성급에 존재하는 모든 함정이 무용지물이 될 터.
“연습이 필요해.”
그리 중얼거린 유리는 절벽을 내려갔고.
탁-.
다시금 2성급 기관의 시계를 작동시켰다.
* * *
그렇게 뒤늦게 터진 영감에서 발안한 계획은 보란 듯이 대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지금.
너무도 궁금해하는 한 소녀를 위해 유리는 그 대성공의 순간을 재현해 줄 생각이었다.
“잘 봐.”
그 말과 함께 유리는 시계를 작동시켰다.
드르르르릉-!
그러자 굳게 닫혀 있던 7성 동굴의 철문이 빠르게 열리고.
훙-!
유리가 바람을 일으키며 그 속으로 사라졌다.
테레시아는 기겁했다.
“위험해?!”
놀라 그리 소리쳤지만, 그건 한발 늦은 외마디 비명일 뿐.
조금 전 유리가 서 있던 곳을 바라보는 테레시아의 동공이 흔들렸다.
‘무기조차 없이 들어가다니!’
유리의 검은 지금 멀뚱멀뚱 서 있는 뽀삐의 손에 덩그러니 들려 있었다.
저 안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알고 있는 테레시아가 보기에 유리가 벌인 일은 완전히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일이 벌어진 것을.
지금은 그저 그가 무사히 나오길 기도할 뿐이었다.
한편, 동굴로 들어선 유리.
그의 눈은 침착했다.
곧 그의 앞에 돼지코 형태의 갈림길이 나타났다.
왼쪽은 닫혀 있고, 오른쪽만 열린.
2성급 기관과 똑같은 형태.
유리는 망설임 없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동시에 그의 몸에서 뇌전이 치솟았다.
레드너가(家) 비전 마체술.
뇌익(雷翼).
파츠츠즉-!
뇌익을 발동시킨 유리가 허공을 도약해 오른쪽 통로를 통과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빨랐던지, 그건 마치 한 줄기 번개가 길게 뻗어 나가는 듯 보였다.
그렇게 순식간에 입구를 통과한 유리가 이번에는 마류의 거미줄을 자신이 지나온 뒤쪽을 향해 넓게 방사했다.
푸슉-.
동굴의 바닥, 벽, 천장.
모든 곳에 닿은 마류의 거미줄.
동시에 유리는 빠르게 주변 상황을 인지했다.
‘저기가 활성화 지점이었지.’
그리 생각함과 동시에 마류의 거미줄을 타고 강한 진동이 발생했다.
거미줄이 닿은 모든 곳에 말이다.
그건 마류가 공기의 흐름을 뒤섞으며 만들어 낸 진동이었고, 그로 인해…….
드르르릉-.
유리가 지나온 입구가 닫히고, 그가 통과한 공간에서 온갖 함정이 발동했다.
철컹!
쿵!
그 모습을 본 유리의 두 눈이 빛났다.
‘다시 봐도 지랄 맞은 수준이네.’
유리의 예상대로 7성급도 2성급처럼 진동을 감지해 함정이 발동되는 방식이었다.
다만 그 난이도가 끔찍한 수준일 뿐.
하나하나가 침입자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발동되는 함정들.
이는 유리가 보기에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러니 사람이 죽어 나가지.’
기관의 초입에서 보이는 검붉은 자국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제 이 초입을 지나면 저 앞으로 위험천만한 함정들이 또 얼마나 준비되어 있겠는가.
하지만 그 모든 건 유리와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훙-.
공중을 날아온 유리의 신형이 막 땅에 떨어지려는 찰나.
유리가 챙겨 온 돌멩이를 던졌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그의 발바닥이 이를 박찼다.
레드너가(家) 비전 마체술.
운보(雲步).
극에 도달한다면 구름과 하늘조차 밟을 수 있다는 레드너가의 첫 번째 절기.
그리고 이번 기관 돌파 퀘스트 덕분에 오른 유리의 운보 숙련도.
그 덕분에 유리는 과거 요한이 보여 주었던 그 기적 같은 장면의 5% 정도는 흉내 낼 수 있게 되었다.
훙-.
파츳!
작은 돌멩이를 박찬 유리의 신형이 다시금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그가 뇌전에 휩싸여 빠르게 나아갔다.
동시에.
촤자자장!
쾅!
쿵!
유리가 뒤로 방사한 마류의 거미줄이 또다시 진동을 일으켜 온갖 함정들을 발동시켰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 간 끔찍한 함정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함정들이 허무하게 허공을 때렸다.
그렇게.
탓!
훙-.
파츳!
돌멩이 하나가 추가로 내던져지며 유리는 반환점에 도착했고.
탓-!
세 번째 돌멩이가 던져졌을 때 그는 출구 쪽 통로의 절반쯤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4번째 돌멩이가 던져지고.
지지직-.
유리의 몸이 미끄러지며 이제 절반쯤 열린 출구를 매끄럽게 통과했다.
그런 그의 뒤로 막 발동되고 있는 무수한 함정들이 보였지만, 이미 유리는 철문을 통과한 후였다.
탕!
철문을 빠져나온 유리가 곧바로 시계의 정지 버튼을 눌렀다.
“……?!”
조금 전에 들어갔던 유리가 벌써 나오자 테레시아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런 그녀를 보며 유리는 양손에 하나씩 남은 돌멩이를 뒤로 휘릭 던지며 말했다.
“얼마든지 가능해. 한 번도 바닥을 디디지 않는다면.”
그건 운보를 익힌 유리이기에.
그리고 그 운보가 지금의 경지에 이른 상태였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탁탁-.
손에 묻은 돌가루를 가볍게 털어 내는 유리의 머리 위.
7성급 기관의 입구에 걸린 기록 측정용 시계의 하나뿐인 바늘이… 4번째 칸에 멈춰 있었다.
이를 본 테레시아가 홀린 듯 중얼거렸다.
“…4초.”
순위판에 적힌 유리의 기록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7성급 기관 동굴마저 4초라는 시간에 돌파한 것이다.
이에 멍하니 있던 그녀가 뒤늦게 무언가를 깨닫고 화들짝 놀라 물었다.
“잠깐?! 너 지금 또 7성급에 들어간 거야? 7성급은 도전 기회가 한 번뿐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유리는 방금 아무렇지도 않게 7성급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던가?
그런 테레시아의 질문에 유리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기록 측정을 위한 도전은 처음 한 번뿐이지만, 성공하고 나서 또 들어가는 건 괜찮더라고.”
말하는 투로 보니 7성급 기관에 다시 들어갔던 게 이번뿐이 아닌 듯싶었다.
테레시아가 어이없다는 듯 유리를 바라보았다.
‘저길… 또 들어간다고?’
애초에 저길 다시 들어갈 생각을 누가 하겠냔 말이다.
남들은 한 번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살아 돌아오느니 마느니 야단법석을 떠는데.
한데, 유리는 저 안에 무슨 놀러 갔다 오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테레시아가 멍하니 유리를 바라보는 사이.
스륵- 탁!
7성급 기관의 점수지가 튀어나왔다.
이는 다른 2성급과는 달리 검은색이었으며 종이의 질도 상당히 좋아 보였다.
유리가 그 종이를 집어 드는 것을 보고 아린과 뽀삐가 쪼르르 그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게 그 점수가 적혀 나오는 종이야?”
“어.”
“몇 점이야?”
“당연히 만…….”
…만점이지라고 답하려던 유리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대신 그의 입에서 작은 웅얼거림이 흘러나왔으니.
“…엣?”
“응? 뭐라고?”
“배고프다?”
잘 듣지 못한 뽀삐와 아린이 유리의 어깨 너머로 점수지를 흘끗 보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유리의 손.
그가 쥔 검은 종이에는 황금색의 선이 고풍스럽게 이어져 단 하나의 글자를 형성하였으니.
【퉷.】
대단한 필력이 느껴지는 필체에는 누군가의 분노가 극도로 함축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