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22
121화. 파랑새 (2)
점수지를 받아 든 유리의 얼굴이 굳어졌다.
종이에 적힌 글귀는 분명 자신이 원했던 것처럼 대화 의사를 내비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예상하지 못한 건, 문장에 포함된 한 부분이었다.
‘레드너의 망종?’
이게 무슨 의미지?
자신이 요한 레드너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
대체 어떻게?
이런저런 생각을 빠르게 떠올리는 유리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그때였다.
스륵- 탁!
한 장의 점수지가 한 번 더 튀어나오고.
【7성급으로 올라와라.】
‘7성급?’
살짝 의문을 표한 유리는 일단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그렇게 도착한 7성급 기관은 평소와 달리 철문이 활짝 개방되어 있었다.
그 안으로 거리낌 없이 들어선 유리.
그런 그를 반겨 준 것은 갈라진 천장과 그 속에서 내려온 계단이었다.
“…여기에 계단이 있었다고?”
7성급도 몇 번이고 들어가 보았지만, 천장이 개방되는 구조이며 숨은 공간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기관의 만듦새와 마감 처리가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에 유리는 살짝 기대를 품고 계단을 올랐다.
텅- 텅- 텅-.
유리가 금속 계단을 타고 오르는 소리가 좁은 통로에 꽤 큼직하게 울려 퍼졌다.
계단의 경사는 생각보다 가팔랐고, 길이도 꽤 되었다.
무려 몇 분을 올라가니 마침내 통로 끝에 맞닿아 있는 철문이 보였다.
유리는 망설임 없이 철문을 잡아당겼고.
끼익-.
그런 유리를 반겨 준 것은 마치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였다.
콰릉- 탕!
곧바로 위협을 감지한 유리.
굉음이 들렸을 때 살짝 열리던 철문은 귀신같이 다시 닫혀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리.
콰릉- 탕- 탕- 탕!
문을 붙잡고 있는 유리는 손을 타고 전해지는 찌르르한 진동에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화, 화가 많이 났나?”
이 철문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지금은 문을 열면 안 된다는 건 충분히 깨달았다.
‘와, 그렇다고 다짜고짜 공격하네?’
대충 좋은 말로 웃으면서 대화를 나눌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자신이 한 짓이 있으니까.
그래도 설마설마 얼굴을 보자마자 칼질부터 하겠냐 싶었는데.
‘칼이 아니라 이상한 게 날아왔네.’
혹여나 싶어 약간의 대비를 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타앙- 탕탕-!
그 뒤로도 한참이나 이어지던 굉음과 진동이 사그라들자 유리가 빼꼼히 문을 열었다.
“다 하셨습니까?”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돌아왔다.
탕!
…아직 끝난 게 아니었나 보다.
순간적으로 눈앞에서 튀어 오른 불똥에 유리는 자라목이 되어 황급히 철문을 닫았다.
그 뒤로도 탕탕- 거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오고.
한참 뒤 찾아온 적막에 유리가 다시 문을 빼꼼히 열고 소리쳤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아아아?”
이번에는 불똥이 튀어 오르지 않았기에 유리는 조심히 문을 더 열어 보았다.
그러자 가장 먼저 매캐한 내음이 유리의 후각을 자극했고.
곧이어 시야에 들어온 문 너머의 풍경에 유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문 너머는 꽤 너른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공간이 좁게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기계 장치들로 가득했다.
수백 개의 동관.
수천 개의 금속 장치와 수천 가닥의 금속 줄.
도무지 그 용도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 장치들로 공간이 가득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서 있는 50대의 사내.
회색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괴상한 쇠뭉치를 손에 쥔 그가 짜증스러운 눈빛으로 유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를 보고 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유리가 놀란 건 사내의 외형 때문이었다.
굵은 팔다리에 굵은 목.
넙데데한 얼굴과 갈색의 지저분해 보이는 수염.
하지만 무엇보다 유리의 이목을 끈 건 아무리 높게 쳐 줘도 130㎝가 될 듯 말 듯 한 신장이었다.
유리가 알기로 저런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종족은 하나뿐이었다.
고대 드워프의 피를 이어받은 종족.
바로…….
“골족?”
물론 신체적 특징이 조금 특이한 일반인일 수도 있었지만, 유리는 눈앞의 저 존재가 골족이라고 확신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이 정도 기술력이라면 당연히 골족을 떠올렸어야 하는 건데?’
골족을 유명하게 만든 재주 중 야금술과 연금술.
그게 아니라면 이토록 정교한 기관을 만들고 운영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다.
그리고 그런 유리의 생각을 증명해 주기라도 하듯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왜, 골족 처음 보냐?”
잔뜩 짜증을 부리는 목소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살기가 없다는 게 느껴졌기에 유리는 슬쩍 문을 열고 들어섰다.
“처음 봅니다만?”
그리 말하며 발을 들이민 순간.
유리는 벌집처럼 송송 구멍이 뚫린 철문을 보고 흠칫거렸다.
‘이거… 생각보다 더 위험한 거였네?’
10㎝ 굵기의 철문을 이 꼴로 만든 정체 모를 암기.
그 속도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파괴력만큼은 충분히 살상용이었다.
유리는 눈앞의 골족이 양손에 쥐고 있는, 회색 연기를 뿜어내는 거무튀튀한 금속 덩어리를 흘끗거렸다.
‘저게 이 암기를 발사하는 장치인가 보네.’
그리고 그런 유리의 시선을 알아차린 건지 골족 사내가 암기 발사 장치를 휘릭- 옆으로 던졌다.
“대충 만들어서 그런지 위력이 쓰레기군. 쯧.”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찬 그는 다시금 유리를 노려보았다.
“네놈이냐? 퇴근도 못 하게 날 괴롭힌 그 빌어먹을 새끼가?”
“그쪽입니까? 나한테 대뜸 욕 날린, 퇴근하고 싶은 사람이?”
한마디도 지지 않고 되받아치는 유리를 향해 사내가 눈을 부라렸다.
“허, 누가 그 지랄 맞은 레드너 가문의 애새끼 아니랄까 봐, 말하는 본새도 지랄 맞구나.”
또였다.
자신을 보고 레드너를 언급한 게.
이에 유리가 넌지시 말했다.
“뭔가 오해를 하신 모양인데, 전 그 지랄 맞은 레드너 가문의 애새끼가 아닙니다만?”
그 말에 사내는 코웃음을 쳤다.
“낯짝 뻔뻔하게 사기 치는 걸 보니 딱 레드너 가문의 애새끼가 맞구만.”
“…진짜 아닌데?”
“내 눈이 썩은 옹이 눈깔로 보이느냐! 네놈이 때려 부순 기관 곳곳에 뇌익의 흔적이 버젓이 남아 있건만, 어디서 시뻘건 개구라를!”
골족 사내의 외침에 유리는 살짝 놀란 눈을 해 보였다.
‘뇌익을 알아보았다고?’
심지어 뇌익을 직접 본 것도 아니고 단지 그 흔적만으로?
요람에 들어와 지금까지 운보를 비롯해 뇌익까지, 꽤 많이 사용해 왔지만, 요한의 명성치고는 이를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그건 가장 자주 뇌익을 접한 테레시아조차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아직 경험이 짧은 기수들이기에 몰라보는가 싶었지만, 이제는 단순히 그게 아니란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유리는 자신의 짐작이 맞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뇌익의 흔적? 그게 뭡니까?”
“이놈이 그래도 끝까지 발뺌을! 뇌전을 다루는 수많은 마체술이 있지만, 그만치 독특한 흔적을 남기는 마체술이 또 있을까! 다른 이라면 몰라도 우리 일족이 그걸 몰라보겠느냐!”
“역시 그랬나.”
유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자신의 짐작대로였다.
사람들이 뇌익을 못 알아본 이유.
그건 그냥 ‘흔해서’였다.
‘확실히 운보와 뇌익의 특징이… 흔하기는 하지.’
운보와 뇌익의 특징은 빠르다는 것.
거기에 뇌익이 뇌전을 발생시킨다는 것 정도?
그것 말고는 눈에 띄는 큰 특징은 없었다.
그리고 골족 사내의 이야기를 미루어 보아 그러한 특징을 가진 마체술이 생각보다 많은 모양이었다.
물론 레드너 가문의 마체술만큼 큰 위력의 마체술은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유리가 고개를 끄덕일 때, 골족 사내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역시 그랬… 뭐?”
“아, 별거 아니에요. 그냥 그쪽 말대로 뇌익이 맞다고요.”
유리가 얼렁뚱땅 둘러댄 소리에 사내가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콧방귀를 꼈다.
“흥, 거봐라.”
유리는 그런 골족 사내의 반응을 조금 더 자세히 살폈다.
‘뇌익의 흔적을 알아볼 정도면 그만큼 레드너 가문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건데…….’
일단 그게 적대적인 관계는 아닌 거 같았다.
툴툴거리고 욕을 하기는 했지만, 레드너 가문을 언급하는 그의 말투 속에는 약간이지만 반가움이 묻어났으니까.
마치 정말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이에 유리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데 전 레드너 가문의 애새끼가 아니라 유리 홀랜드라는 애새끼입니다만?”
“또 어디서 개구라를…….”
“못 믿겠으면 나중에 확인을 해보시든가.”
그 당당함에 골족 사내가 유리를 게슴츠레 바라보았다.
“유리 홀랜드? 정말… 레드너가 아니라고?”
“홀랜드라니까요?”
“네놈 인성이면 분명 레드너 혈통이 틀림없을 텐데?”
“…….”
“혹시 어머니가 레드너냐? 아니면 혹 먼 선조 중에 레드너 가문의 사람이 있다거나?”
…기분 탓인가? 나 이거 어디서 들어 본 거 같은데?
유리가 살짝 짜증을 담아 단호하게 말했다.
“전혀.”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럼 저놈의 자식이 뇌익은 어찌 익히고 있는 거지?”
마치 자신이 알고 있던 상식을 부정당한 듯 혼란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리는 사내.
그러다 그가 마침내 답을 찾아냈는지 눈을 반짝였다가, 이내 안타깝다는 듯 탄식했다.
“이런, 내 레드너 가문의 가세가 기울었다는 소식은 익히 들었다만…….”
“…….”
“가문의 절기마저 내다 팔 정도로 가세가 기울었던 게야? 쯧쯧.”
혀를 차는 골족 사내를 보고 유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건 마음대로 생각하시고요. 대화하자고 불러 놓고 대뜸 공격하는 건 골족의 인사법입니까?”
“네놈이 한 짓을 생각해 봐라! 적당히 하고 떠날 것이지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다고 그걸 전부 때려 부수길, 부숴!”
“그치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한테 관심조차 없었을 거잖아요?”
“…미친 게냐?”
“좋습니다! 빙빙 돌리지 않고 바로 말하겠습니다. 여기 이 기관, 아저씨가 만든 거죠?”
“그렇다면?”
“저한테 기술 좀 알려 주십쇼!”
“…무슨 기술?”
“이런 기관을 만드는 제작 방법?”
“미친놈이군.”
이건 뭐, 인성만 문제 있는 게 아니라 정신머리에도 문제가 있는 놈이었다니.
골족 사내는 그리 단언했다.
그가 싸늘한 어투로 말했다.
“내가 왜?”
“제가 어떻게 하면 알려 주실 건데요?”
“네놈이 뭘 하든 알려 줄 생각 없다.”
“에이, 그러지 말고요.”
“네놈이야말로 그러지 말지? 너 같으면 너희 가문의 마체술을 내가 알려 달란다고 알려 줄 거냐?”
“저 고아입니다만?”
“…그럼 네가 익힌 마체술을 내가 알려 달란다고 알려 줄 거냐!”
“일단 영감한테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면 알려 드릴게요.”
“영감?”
“저한테 마체술 알려 준 영감탱이가 있거든요.”
“…환장하겠군.”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유리를 보고 골족 사내가 짜증스럽다는 얼굴로 손을 휘휘 내저었다.
“됐다, 더는 말 섞기 싫으니 썩 꺼져라.”
“아아, 그러지 말고 좀 알려 줘요! 안 그러면 저 계속 때려 부수고 다닐 겁니다?”
이제는 아예 협박하는 유리.
이에 골족 사내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시든가.”
“…정말?”
“내가 널 왜 이리로 불러들인 거 같으냐?”
“글쎄요?”
“임무 교대를 하기 전에 네놈에게 특제 화약의 맛을 보여 주고 싶어서였다!”
그 말은 다시 말해 이제 저 미친놈으로부터 해방이란 뜻이었다.
거기에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어도 시원하게 총알을 쏟아붓고 나니 속은 시원한 사내.
그가 유리를 향해 씨익 미소 지었다.
“전혀 반갑지 않은 만남이었으니, 다시는 보지 말자.”
그러고는 골족의 사내가 한쪽의 붉은 버튼을 주먹으로 쾅 내려쳤다.
“……?!”
순간, 또다시 공격이 날아드나 싶었던 유리는 움찔하며 방어 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예상했던 공격은 없었다.
다만…….
스텅-!
발밑이 휑해졌을 뿐.
‘…어?!’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
서서히 밑으로 가라앉는 유리의 시야 속에 자신을 내려다보는 골족 사내의 조롱 섞인 눈빛이 한가득 담겼다.
이에 유리가 무어라 소리쳤지만.
“쌰……!”
그는 채 말을 다 잇지도 못하고 그대로 추락해 버렸다.
텅-.
그렇게 좌우로 벌어지며 사라졌던 바닥이 원상태로 돌아오고.
유리가 사라진 자리를 보며 골족 사내가 작게 중얼거렸다.
“쌰……?”
* * *
수 미터 높이의 절벽 위.
암석인 줄 알았던 한쪽 벽면이 열리며 꽤 큼지막한 구멍이 생겨났다.
드륵-.
그리고 그 속에서 비명인지 무엇인지 모를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으니.
“…아아아아아아아앙!”
곧 괴성을 내지르는 사람을 토해 낸 구멍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훙-!
장장 몇 분여 동안 경사진 면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와 다시 허공으로 내동댕이쳐진 유리.
그는 곧바로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아 깔끔하게 지면에 안착했다.
탁-.
두 발이 땅에 닿기 무섭게 그는 주변을 돌아 보았다.
‘여긴?’
자신이 있는 곳이 절벽 인근이라는 것을 확인한 유리가 시선을 뒤쪽으로 돌렸다.
자신이 빠진 함정을 찾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가 빠져나온 구멍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절벽뿐.
실로 완벽하기 짝이 없는 위장에 유리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절벽 하나를 통째로 관통하는 함정이라고?’
사실 함정이라기보다는 비상 탈출 통로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절벽 하나를 통째로 이용한 그 기술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에 유리의 두 눈에 탐욕이 깃들었으니.
‘이거…….’
원래도 유리에게는 기관 지식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달라졌다.
‘꼭 배우고 싶다!’
배우고 싶다는 열망 앞에 ‘꼭’이란 단어가 추가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