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26
125화. 벌레잡이 (2)
고오오오오오-.
치솟는 살기를 보며 안경남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가 요람의 관리자가 된 이래 시작부터 저따위 도발을 날리는 놈은 유리 홀랜드가 처음이었다.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었군.’
어쩌면 말 몇 마디로 저러한 살기를 유발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이면 재능이리라.
‘그럼 어디, 그렇게 주둥이를 놀릴 자격이 있는지 볼까?’
유리 홀랜드의 실력이 뛰어난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거기에 그의 동료인 아린 헬가와 보비크르탄카푸르타비 역시 근래에 백보 의식에서 6보를 걸을 정도의 실력자들.
하지만 개개인의 실력을 겨루는 싸움과 집단 대 집단의 싸움은 그 결이 달랐다.
심지어 저 3명은 167명을 전부 적으로 돌려세운 상황.
저들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는 해도 유리가 압도적인 절대 강자가 아닌 이상 수적인 열세를 뒤집기는 어려울지도 몰랐다.
다만…….
‘저 셋은 그레타를 잡아 낸 전적이 있지.’
그렇기에 안경남은 광역 도발을 시전한 유리 홀랜드가, 그리고 그가 이끌 스쿼드가 과연 어떻게 상황을 풀어 나갈지가 궁금해졌다.
옅은 미소를 머금은 안경남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러자 그를 주시하고 있던 흑검병 몇몇이 기계 장치를 조작했고.
끼이이익-.
(구)동물의 숲, (현)삼림전투장의 문이 개방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167명의 살기는 더욱 그 농도가 짙어졌다.
그들의 살기가 조금 전까지는 ‘널 기필코 죽이겠다!’라는 필살의 의지였다면, 지금은 ‘이제 널 죽일 수 있다!’라는 기대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유리를 노려보는 50기 기수들의 손이 검 자루에 올라가 달싹였다.
그리고 그런 50기를 마주한 유리.
서서히 열리는 문을 등지고 덤덤히 서 있던 그가 뽀삐와 아린을 향해 손을 까닥였다.
그들에게만 보이게끔 말이다.
‘배고프다?’
‘우리? 오라고?’
누가 봐도 자신들을 부르는 손짓.
너무도 가기 싫었지만, 안 갈 수도 없기에 뽀삐와 아린은 유리의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가 그 옆에 섰다.
그와 함께 유리에게 쏟아지는 살기를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둘의 얼굴이 더욱 핼쑥해졌다.
‘아, 이래서 오기 싫었는데!’
한편으로는 이런 살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는 유리가 대단해 보일 지경.
끼익- 그그그그긍-.
그렇게 퀘스트장의 입구가 거의 다 열렸을 때쯤.
아린이 시선을 정면으로 두고 복화술처럼 입술을 움직이지 않으며 물었다.
“…어쩔 셈이야? 뭔가 생각이 있는 거지?”
거기에는 약간의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그래도 유리라면 이 상황을 타파할 어떠한 대책이 있을 거라는 희망.
이에 유리도 복화술로 답했다.
“당연하지.”
그 말에 아린과 뽀삐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이대로 그냥 죽지는 않겠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쿵-.
마침내 문이 활짝 개방되고.
“현 시각 3월 10일 09시 12분. 완장 빼앗기 퀘스트를 시작한다.”
고오오!
안경남의 선언과 함께 사방의 살기가 정점에 달했다.
동시에 그 살기를 꿰뚫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야 이 새끼들아, 얼마든지 덤벼라! 단……!”
유리의 우렁찬 외침에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싶던 사람들은 잠시 멈칫거렸다.
그들의 머리로 작은 물음표가 떠오른 순간.
“한 스쿼드씩만 와라!”
“…….”
“…한꺼번에 다 같이 오라고는 안 했다?”
뒤에 이어진 궁색한 변명 같은 말에 치솟던 살기가 순간 흐려졌다.
이를 본 유리가 자신의 주변에만 들리게 작게 말했다.
“얘들아.”
“……?”
“튀어.”
“……?”
분명 너무도 간단하고 쉬운 말이었지만, 아린과 뽀삐는 잠시 멍하니 서서 그 의미를 해석해야만 했다.
그 정도로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약 1초 뒤 ‘튀어’의 뜻을 깨달은 두 사람이 뒤돌아봤을 땐, 이미 유리는 입구를 지나쳐 저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저?!’
‘배, 배고프다?!’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친 유리의 뒤통수를 보며 놀라 입을 떡 벌린 아린과 뽀삐.
하지만 언제까지 놀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가, 같이 가!”
“배고프다!”
두 사람은 부리나케 유리의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1번 스쿼드가 눈앞에서 어이없이 사라지고.
“…….”
장내에 다시금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지금 일어난 상황을 겨우 인지해 낸 나머지 50기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거렸다.
그들은 어느새 3개의 점이 되어버린 유리와 아이들을 보며 소리쳤다.
“저 새끼들 잡아!”
“놓치지 마!”
“쫓아!”
“무조건 잡아!”
한껏 열을 받은 이들을 선두로 수십 명의 인원이 우르르 삼림전투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들보다는 조금 느긋하게 입구를 통과하는 이들까지.
한순간에 비어 버린 공터를 보고 안경남은 한마디를 던졌다.
“…개판 났군.”
아무래도 유리 홀랜드라는 놈은 자신의 생각보다 더 미친 종자였던 모양이다.
* * *
한편, 빠르게 유리의 뒤를 쫓아온 아린과 뽀삐.
단지 쫓아오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하는 뽀삐를 대신해 아린이 버럭 소리쳤다.
“벌레 167마리가 뭉쳐 봤자 벌레라며! 벌레 167마리가 한 번에 덤벼 봤자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는 뜻 아니었냐고! 갑자기 왜 도망가는 건데!”
이에 유리가 뒤를 바라보았다.
그는 뒷걸음질로 달리는 묘기를 선보이며 답했다.
“아닌데?”
“그럼?”
“벌레가 뭉쳐 봤자 벌레라는 근본은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었는데?”
“…….”
“벌레가 뭉친다고 사람이 되는 건 아니잖아?”
“…줏대 없어.”
…이 새끼, 딱 봐도 일단 질러 놓고 쫄려서 말 바꾼 게 확실해 보였다.
아린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그러게, 감당도 못 할 도발은 하길 왜 하냐고!”
“어허, 그게 다 이유가 있는 도발이었느니라!”
“이유는 무슨 이유!”
“적들에게 분노를 일으켜 그들의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만들기 위한, 나의 전략적 도발이었다고나 할까?”
“…양심도 없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핑계를 척척 만들어 내는 것도 분명 재능의 영역일 거다.
그런 의미에서 얘는 분명 천재였다.
아린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하아, 이제 어쩔 거야? 뭔가 대비라도 해야 할 거 아냐?”
“그래서 이렇게 뭐 빠지게 달리고 있잖아?”
“…무슨 소리야?”
“에휴, 이렇게 아무것도 몰라서야. 역시 내가 분대장을 맡길 잘했네.”
“너……!”
한심하다는 듯 혀를 내두른 유리는 아린이 발끈해 소리치기 전에 말을 끊어 냈다.
“우리는 3명이고 저쪽은 167명이야. 하지만 저들이 절대다수라는 이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해.”
“그게 뭔데?”
“우두머리와 시간.”
“통일화된 명령 체계와 그게 적용될 수 있는 시간을 말하는 거야?”
“바로 그거지!”
단번에 자기 말을 알아듣는 아린을 보며 유리는 엄지를 치켜올렸다.
그러고는 음흉하게 웃어 보였다.
“그런데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우리를 쫓는 저 자식들에게 그런 게 있으려나 모르겠네.”
“아아, 하긴, 저 녀석들이 전열을 가다듬어 유기적으로 움직인다면 모를까…….”
백 명이 넘는 인원이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으면 뭐 하겠는가.
단일화된 명령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저들은 그저 따로따로 움직이는 24개의 스쿼드일 뿐이었다.
그리고 고작 10명 남짓의 일개 스쿼드 따위는 별로 두렵지 않은 상대였다.
그리 확신한 순간 유리를 바라보는 아린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설마, 유리 얘…….’
지금까지 모든 게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그저 즉흥적인 행동이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마치 벽을 친 듯 자신들을 배척하는 동기들의 분위기를 자신도 눈치챘는데 유리가 몰랐을 리 없다.
‘그래서 그랬던 거야?’
곧장 동기들을 도발하고, 저들이 자신들을 쫓게 만드는 상황이 전부 의도된 행동이었다?
정말 조금 전 말 그대로 전략적 도발이었다?
‘이런… 상황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만약 그 모든 게 전부 연출이고 유리의 연기였다면.
그 상황 판단 속도와 계획을 만들어 내는 임기응변은 실로 소름이 돋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아린이 유리를 지그시 바라볼 때, 유리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숲에서 우리가 유리한 점이 두 가지 있어.”
“두 가지나?”
아린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유리가 손가락을 하나 폈다.
“첫째, 이 숲의 지리를 우리만큼 잘 아는 놈들이 없다는 거지.”
“그게 무슨…….”
유리의 말을 부정하려던 아린은 자신들이 달려가는 방향을 보고 탄성을 내뱉었다.
“아, 그래서! 그래서 저 안쪽으로 가고 있는 거였구나!’
과거 동물의 숲이라 불리던 이 삼림전투장은 짐승별로 여러 구역이 나뉘어 있었고.
그중 곰 영역과 호랑이의 영역까지 들어가서 헤집고 다닌 이는 자신들이 유일했다.
따라서 그 영역의 지리를 자신들만큼 꿰뚫고 있는 스쿼드는 없으리라.
이에 아린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한데 뭉치지 못한 채 스쿼드 단위로 움직이는 적들을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로 끌어들인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각개격파 하기 참 좋겠네?”
“그런 거지.”
이번에도 역시 별다른 설명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단번에 이해한 아린을 보고 유리는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확실히 편하다니까.’
여러 번 설명하지 않아도 단번에 자신의 의향을 파악하는 동료.
이는 확실히 여러모로 힘이 되는 존재였다.
“그럼 두 번째는?”
“두 번째는… 나중에 이야기하자.”
그리 말한 유리가 자신의 앞을 손가락질했다.
이에 아린의 시선이 뒤로 돌아가니 그곳에는 ‘배고프다’도 외치지 못하고 헐레벌떡 뛰어오는 뽀삐가 있었다.
유리가 그를 보고 안타깝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쟤 저러다가 숨넘어가겠다.”
“아!”
유리의 말처럼 뽀삐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할딱거렸다.
뒤로 달리며 대화까지 하는 유리.
그 속도에 여유 있게 보조를 맞추는 아린.
속도와 민첩성에 특화된 둘과 달리 힘과 체력에 특화된 뽀삐에게 지금의 속도도 버거웠으리라.
이에 유리는 빠르게 다음 말을 이었다.
“호랑이 사냥 실패 시 행동 강령 기억나?”
“당연하지.”
아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리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럼 넌 뽀삐 데리고 그리로 가서 준비하고 있어.”
“너는?”
“난 시간 좀 끌 겸 머릿수 좀 줄여 보고 올게.”
“혼자서 괜찮겠어?”
“은밀하게 움직일 거라 혼자인 게 딱 좋아. 눈 돌아가서 쫓아 오는 놈들 따윈 크게 문제 될 것도 없고. 그러니 알려 주고 올게.”
“뭘?”
“지금 자기들이 쫓는 존재가 어떤 놈인지 말야.”
“…….”
“이따 보자고.”
그 말을 남긴 유리는 그대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원래 뒤돌아 달리고 있던 유리.
그가 앞으로 달려 나가니 이는 아린과 뽀삐가 달려가는 방향과 정반대였다.
바로 뒤쫓아 오고 있을 다른 50기가 있는 방향으로 말이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진 유리의 잔상을 떠올리며 아린은 작게 중얼거렸다.
“쟤, 굉장히 기분 좋게 웃었던 거 같은데?”
“배, 배, 배…….”
“…그러다 혀 깨물겠다. 그냥 대답하지 마.”
끄덕끄덕-.
그렇게 유리가 떠난 뒤, 뽀삐와 아린은 유유히 숲을 달려 사라졌다.
* * *
타닥- 타닥-.
13-1이라는 완장을 찬 소년을 중심으로 13-8까지.
총 8명의 소녀·소년이 함께 뛰고 있었다.
“이쪽이야!”
“좀 더 속도 높여!”
잔뜩 화가 난 인상의 그들의 눈에 옅은 살기가 감돌았다.
‘벌레? 벌레라고?’
‘감히 우리를 벌레 따위에 비유해?’
그들이 비록 요람에 와서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다고는 하나, 어린 시절부터 귀한 대접을 받으며 자라난 이들이었다.
그랬기에 유리가 그들을 낮잡아 부른 ‘벌레’라는 비유와.
거기에 더해진 깔보는 듯한 그 서늘한 눈빛에 진한 불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이 유독 유리의 도발에 잔뜩 불쾌해하고 쉽게 화를 내는 이유가 있었으니.
‘요람이 아니었다면 우리와 말도 섞지 못했을… 저급한 놈이!’
‘고작 월말 평가에서 두 번 1위를 해 봤다고 우리를 그따위로 평가해?’
사회에서는 높디높은 신분이었으나 요람에서는 바닥에 처박힌 존재가 바로 그들이었다.
때문에 자존심을 꾹꾹 눌러 가며 살아가고 있던 와중.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녀석이 1위를 좀 했다고 도발해 대니 쌓여 있던 열등감이 폭발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만약 도발을 한 게 유리가 아니었다면.
도발을 한 게 상위권 성적에 있는 다른 명가의 자손들이었다면.
그들이 이토록 분노하고 불쾌해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분노는 실상 기저 심리에 자리한 신분적 우월감이 ‘저 별 볼 일 없는 1위인 유리 홀랜드’를 제물 삼아 잃어버린 자신감을 회복하라고 보내는 신호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제물이 될 유리를 쫓았고.
쾅-.
검은 재앙과 마주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