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28
127화. 벌레잡이 (4)
13분대장이 남기고 간 괴물 새끼라는 말.
그게 누구를 뜻하는지 어렴풋이 눈치챈 이는 군터만이 아니었다.
“…괴물?”
“설마 그 녀석을 말하는 건가?”
넬리, 이반, 파나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그때 군터가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지금부터 경계를 유지하면서 전진한다. 선두는 내가 맡는다. 그리고 내 뒤로는…….”
능숙하게 다른 이들의 자리를 지정해 주며 대형(隊形)을 만들어 내는 군터.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함을 알아차린 이들은 군소리 없이 그의 지시에 따랐다.
곧 마름모 형태의 대형이 만들어지고.
“이동.”
분대장인 군터를 선두로 7스쿼드가 빠르게 숲길을 주파해 달려 나갔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즈즉-.
군터의 수신호에 맞춰 스쿼드의 이동이 멈췄다.
그런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앞서 만났던 13스쿼드와 비슷한 몰골의 또 다른 스쿼드였다.
21이란 숫자가 새겨진 완장을 찬 이들.
‘21스쿼드.’
군터가 유심히 그들을 살펴보니 행색만 13스쿼드와 비슷한 게 아니었다.
앞선 이들과 마찬가지로 21스쿼드 역시 분대장 완장을 잃어버리고 전멸한 상태.
21스쿼드의 분대원들은 자신들을 막아 선 군터의 스쿼드를 흘끗 보고는 아무런 말 없이 그 옆을 스쳐 지나쳤다.
필립이 붙잡아 보려 했지만, 그들이 내뿜는 침울한 분위기에 내밀었던 손을 도로 거둬들여야 했다.
말없이 21스쿼드를 떠나보낸 군터의 스쿼드.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기에 그들의 움직임은 더욱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렇게 숲 안쪽으로 향하면서 7스쿼드는 또 다른 스쿼드를 몇몇 더 마주쳤다.
그들은 하나같이 부상당한 패잔병 같은 몰골이었으며.
큰 충격을 받은 듯 멍한 얼굴이었기에 쉽사리 말을 붙이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어렵사리 말을 걸어 보아도 그들은 그저 앞서 13분대장이 했던 것처럼 ‘괴물을 조심하라’라는 말을 할 뿐이었다.
이에 필립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그가 긴장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군터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지금까지 다섯.”
그리고 군터가 말한 다섯이 자신들이 마주친 전멸한 스쿼드의 숫자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25개 스쿼드 중 벌써 20%가 탈락한 셈.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건 시간이었다.
‘고작 40분 남짓 동안 우리가 만난 스쿼드만 다섯. 게다가 전멸한 스쿼드가 실제로 더 있을 수도 있다.’
만약 전멸한 스쿼드들이 나타난 시간적 간격.
그리고 그들이 나타난 방향으로 대충 위치를 역산해 본다면?
빠르게 두뇌를 회전시킨 군터가 답을 내렸다.
“…1개 스쿼드가 전멸하기까지 채 5분이 안 걸렸다는 소리군.”
그걸 들은 필립이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그 혼잣말에 답을 준 건 파나였다.
“딱 보면 몰라? 괴물이 날뛰고 있는 거지.”
“아까부터 괴물, 괴물! 대체 그놈의 괴물이 뭔데!”
“뭐긴 뭐야, 유리 홀랜드지.”
“하? 유리 홀랜드?”
콧방귀를 끼는 필립을 보고 파나가 히죽거렸다.
“아까 걔들 표정 봤지? 잔뜩 충격받은 얼굴.”
“…봤다.”
“내가 볼 땐 너도 조만간 그 꼴 나겠다.”
“뭐?”
“내심 무시하고 있던 놈한테 영혼까지 탈탈 털려 봐. 싫어도 그런 얼굴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너……!”
필립이 발끈한 찰나, 군터가 손을 들어 신호를 줬다.
전방에서 접근하는 무리가 있으니 긴장하라는 수신호.
이에 파나와 필립도 투덕거림을 그치고 정면을 응시했다.
‘설마 또, 전멸한 스쿼드인가?’
하지만 이번에 나타난 무리는 이전에 만난 이들과 분위기가 달랐다.
다친 기색도 없고, 침울한 얼굴도 아니었다.
거기다 분대장 완장까지 차고 있었다.
전멸한 스쿼드가 아니란 소리.
그들을 이끄는 건 9-1의 완장을 차고 있는 클라리스 반이었다.
접근해 온 그가 군터 일행을 훑으며 말을 걸었다.
“너희가 마지막인가?”
이에 앞으로 나선 군터.
“가장 마지막에 삼림전투장으로 들어온 스쿼드를 말하는 거라면, 우리가 마지막이다.”
“그럼 따라와라.”
“따라오라고? 어디로?”
“우리는 지금 세력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세력?”
그 말에 7분대원들이 서로를 멀뚱멀뚱 응시했고, 군터는 클라리스를 고요한 눈으로 응시했다.
“상황을 듣고 싶은데.”
“오면서 보지 못했나? 전멸한 스쿼드들을?”
“봤다. 그래서 묻는 거고.”
“본 그대로다. 다들 각개격파 당하고 있지. 그래서 우리가 세력을 만드는 중인 거고.”
“역시…….”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군터.
그는 이미 예상했다는 얼굴이었다.
반면 필립이 놀라 소리쳤다.
“지금 그 많은 스쿼드가 고작 한 스쿼드한테 당했다는 거야?”
그 물음에 클라리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한 스쿼드가 아니다.”
“뭐?! 그럼 그 1스쿼드 쪽에 붙은 다른 스쿼드가 있다는 소리야?”
“그것도 아니다.”
“무슨 소리야, 그러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뭐가 맞다는 거야?”
필립의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에 클라리스는 차분한 얼굴로 군터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필립의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닌 엉뚱한 질문이었다.
“군터 아이언스, 백보 의식에서 너는 몇 번째였지? 몇 번째로 많은 걸음을 내디딘 거냐.”
“두 번째다.”
“가장 많은 걸음을 내디딘 건… 유리 홀랜드였나?”
“…….”
“역시 그렇군.”
군터가 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침묵이 긍정을 나타내고 있음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또다시 이어진 클라리스의 질문.
“군터, 네가 기억하는 순간까지 유리 홀랜드는 몇 걸음을 내디뎠었지?”
“…….”
마치 추궁하는 듯한 그의 눈빛에 군터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어지는 침묵 속, 장내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군터를 향했다.
답을 듣고 싶다는 듯한 십여 쌍의 강한 시선에 군터는 살짝 한숨 섞인 말을 토해 냈다.
“후우, 내가 기억하는 유리 홀랜드는… 8걸음을 걸었었다.”
이에 모두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군터의 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1월 월말 평가 이후, 유리와 재회를 한 군터.
유리의 비약적인 실력 향상에 놀란 군터는 곧장 선배들을 찾아 움직였고.
이후 약간의 포인트를 대가로 백보 의식의 정보를 얻어 낼 수 있었다.
다소 충격적인 정보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군터의 입을 통해 동기들에게 전달되었다.
“…유리 홀랜드는 그날 열다섯 걸음을 걸었다고 한다.”
군터는 포기하지 않고 아득바득 일어서던 유리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분명 유리가 아홉 번째 걸음을 걸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런 군터도 유리가 내디딘 열다섯 걸음이란 기록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다른 이들의 충격은 어떻겠는가.
군터의 이야기에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누군가 홀린 듯 중얼거렸다.
“그, 백보 의식에서… 열다섯 걸음이라고?”
백보 의식.
월말 평가의 성적이 실력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라는 데 동의하던 이들도.
백보 의식에서 내디딘 걸음 수가 실력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군터의 이야기에 클라리스는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한 명이었다.”
난데없는 이야기에 군터를 향했던 시선이 이번에는 클라리스에게 돌아갔다.
“지금까지 전멸한 스쿼드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그들 모두 유리 홀랜드 단 한 명에게 당했다고 한다.”
“……?!”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소리에 필립의 얼굴이 충격으로 멍해졌고.
이를 본 파나가 이죽거렸다.
“내가 그랬지? 너도 곧 그 꼴 날 거라고.”
그녀가 피식 웃는 사이 클라리스가 몸을 돌렸다.
“대화는 이쯤 하고, 움직이자.”
그 말을 남긴 클라리스의 스쿼드가 먼저 앞장섰다.
군터의 스쿼드는 조용히 그 뒤를 쫓았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수십 명의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못해도 십여 개의 스쿼드가 모인 듯한 장소.
그리고 그 중심에는 2-1의 완장을 찬 이가 있었으니.
“슐레만 한스?”
“어째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저 녀석이 여기 대장인 듯싶네?”
그런 넬리의 말에 다른 이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슐레만 한스.
그는 2월 월말 평가에서도 10위권에 든 상위 성적자이자, 이번 퀘스트의 시작에 앞서 가장 먼저 동맹을 제안한 인물이었다.
군터와 넬리 일행의 등장에 슐레만이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와우, 쓸 만한 사람은 다 여기 있었네. 어서 와라.”
슐레만이 웃으며 군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고 가볍게 악수를 나눈 군터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여기 이 사람들은 전부 네가 모은 건가?”
“뭐, 그런 셈이지.”
대수롭지 않게 답하는 슐레만.
하지만 유리를 쫓아 성난 황소처럼 돌진하던 스쿼드를 이렇게나 모았다는 건 절대 대수롭지 않은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이 군터로서는 의문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슐레만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상하군.”
“뭐가 말이지?”
“여기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후발 주자군. 1스쿼드를 쫓아간 선발 주자들은 별로 없어 보이는데?”
“…….”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상황 대처가 빨라. 마치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것을 알고 있던 것처럼. 아니, 애초에 여기에 모이기로 한 것처럼 말이지.”
“그래?”
슐레만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 반응에 군터는 확신했다.
“너, 애초부터 이럴 생각으로 동맹을 제안한 거였군.”
확신을 품은 시선이 슐레만에게 닿았다.
이에 슐레만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좋아. 유리 홀랜드가 흑룡패주란 걸 알려 준 게 그쪽이니까, 나도 이번만큼은 솔직하게 답해 주지.”
“…….”
“그래 맞아, 애초부터 이럴 생각으로 동맹을 제안한 거다. 여기 모인 이들은 내가 따로 언질을 줘서 뒤쪽으로 빠진 스쿼드들이지. 아! 전부는 아냐, 그 괴물한테 생존한 스쿼드도 섞여 있으니까.”
“괴물이라… 그리 표현하는 걸 보면 유리 홀랜드에 관해 알아본 건가?”
“당연한 거 아냐?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녀석이 월말 평가에서 1위를 했고, 거기다 흑룡패주라는데? 그걸 알고도 그냥 넘어가는 게 더 이상한 거지. 아마 나 말고도 알아본 사람 꽤 있을걸?”
그 말에 ‘알고도 그냥 넘어간 다수’가 내심 찔려 어깨를 움찔 떨었다.
“알아보니 유리 홀랜드라는 녀석… 진짜 괴물이더군. 백보 의식에서 열다섯 걸음? 그게 가능한 거냐? 하긴, 그 정도는 되어야 이 동맹을 만든 의미가 있긴 하지.”
너스레를 떠는 슐레만을 보고 넬리가 물었다.
“언질을 주지 않은 스쿼드는… 제물이었던 거야?”
“제물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고, 그냥 1스쿼드의 전력을 확인해 볼 겸 던진 거지.”
“그런 걸 보통 제물이라고 하지 않나?”
“뭐, 그렇다고 하자. 네 말대로 그 전력 확인용 제물들이 1스쿼드를 처리해도 좋고, 부상만이라도 입힐 수 있다면 더 좋은 거잖아? 겸사겸사인 거지.”
그리고 그리 말한 순간.
슐레만이 입가에 머금고 있던 미소가 씁쓸하게 변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유리 홀랜드가 더 괴물이더라고, 설마 그 짧은 순간에 앞서간 스쿼드를 전부 잘라 낼 줄이야. 솔직히 이번 동맹을 제안하면서도 고작 3명을 상대로 너무 과한 게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오히려 모자랐어.”
연신 웃던 슐레만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
하지만 그는 이내 미소를 되찾고 군터의 스쿼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무튼 잘 왔다. 자세한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마저 하자고. 곧 나머지 스쿼드들도 전부 모일 거 같으니까.”
그 말을 남긴 슐레만이 웃으며 떠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파나가 중얼거렸다.
“저 자식… 무서운 놈이었네. 그 짧은 사이에 이런 걸 계획하고.”
이에 넬리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섭지. 그리고 뻔뻔하기도 하고.”
“뻔뻔?”
파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넬리가 군터에게 물었다.
“군터, 우리한테는 뒤쪽으로 빠지라는 언질 없었지?”
“없었다.”
“역시 저 새끼… 우리도 제물로 던지려고 했던 거네.”
그 말에 파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우리를? 어째서?”
“유리 홀랜드의 스쿼드 다음으로 위험한 스쿼드가 우리일 테니까.”
“아, 설마… 우리도 처리하려 했다고?”
“그랬겠지. 우리든 1스쿼드든, 그렇게 맞붙어서 둘 중 하나는 사라지길 원했을 거야.”
“와, 그래 놓고 저렇게 실실 쪼개면서 우릴 반겨 줬다고?”
“그럴 수밖에, 유리 홀랜드의 실력이 예상을 상회하니 지금의 전력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을 테니까. 우리는 그 부족한 전력을 채워 주기에 충분하고.”
넬리의 설명에 파나와 필립이 슐레만이 사라진 방향을 노려보며 동시에 외쳤다.
“저 뻔뻔한 새끼!”
“저 뻔뻔한 새끼!”
* * *
고요한 숲속.
나뭇가지 위에 올라선 유리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중심으로 마류의 거미줄이 수십 미터 너머로 뻗어 나가 있었다.
잠시 뒤, 스르륵 눈을 뜬 유리.
그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하?”
원래라면 계속해서 몰려드는 스쿼드를 습격해 계속해서 잘라 먹을 작정이었던 유리.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더는 스쿼드들이 몰려들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그는 흐름을 쫓아 움직였고, 곧 한곳에 몰려 있는 수십의 인파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이 유리의 신경을 건드렸다.
‘이것 봐라? 생각보다 대처가 너무 빠른데?’
자신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집단화를 이룬 스쿼드들.
그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저쪽에도 나름 머리 쓰는 놈이 있다는 건가.”
그리 확신한 유리는 입맛을 다셨다.
쩝-.
‘쯧, 좀 더 잡아먹을 수 있었는데.’
저쪽에도 머리 쓰는 놈이 있는 이상 아마 곧 명령 체계를 갖출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제 이렇게 혼자서 스쿼드를 잘라 먹는 게 불가능할 터.
“뭐, 아쉽기는 하지만, 일단은 이쯤 해 둘까?”
지금은 다음 계획을 위해 물러서야 할 때였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유리의 주머니에는 잘린 완장 11개가 꽂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