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31
130화. 통수 (1)
검과 검이 부딪쳤다 떨어지며 불똥을 튕겨 냈다.
카강-.
거친 쇳소리가 터져 나오고.
연신 주춤주춤 뒤로 밀려나는 유리 홀랜드를 보며 길버트는 고양감에 사로잡혔다.
‘별거 아니잖아?’
백보 의식에서 열다섯 보를 걸었다던 그 유리 홀랜드가.
자신의 가벼운 공격조차 막지 못하고 전전긍긍 애를 먹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유리 홀랜드를 잡는다면?’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동기들의 시선이 달라질 것은 자명했다.
이에 길버트는 환히 웃으며 외쳤다.
“잘 놀았다! 이만 끝내자!”
그리 외친 길버트의 검이 유리를 수직으로 찍어 내렸다.
콰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음이 울려 퍼지며 흙먼지가 폭발하듯 터져 나오고.
‘됐다!’
길버트는 자신의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 일격으로 유리 홀랜드가 완전히 나가떨어졌을 것이라 확신했다.
‘내 승리다!’
그리 생각하며 검을 회수하려는 순간.
그득-.
“응?”
검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
당황한 길버트가 검을 회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검은 마치 바위에 끼인 듯 꿈적도 하지 않았다.
‘뭐, 뭐야?!’
검 자루를 부여잡고 낑낑거리길 한참여.
자욱하던 흙먼지가 서서히 가라앉자 길버트는 마침내 자신의 검이 어째서 움직이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검은…….
“뭐?”
흙먼지 속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유리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정확히는 유리의 엄지와 검지가 검날을 잡고 있었다.
“이, 이……?!”
당황한 길버트가 말을 더듬은 순간.
유리가 그를 보며 웃어 보였다.
“하찮은 미물아.”
웃는 얼굴과는 달리 너무도 무미건조한 목소리.
또한 거대한 존재감을 뿜어대며 울리는 그 목소리에 길버트는 오스스 소름이 돋아 올랐다.
본능적으로 무기가 필요함을 느낀 그는 필사적으로 검을 회수하려 했다.
하지만 여전히 검은 요지부동이었다.
“이, 이거 놔!”
연신 낑낑거리는 길버트를 보는 유리의 미소가 더욱 짙어지며 나직한 울림이 흘러나왔다.
“재밌게 놀았느냐?”
그 물음에 유리를 본 길버트는 몸이 굳고 말았다.
‘누, 누, 눈이?!’
조금 전까진 분명 사람의 것이 분명했던 황금색의 눈이.
지금은 마치 파충류의 그것처럼, 동공이 세로로 길게 찢어져 있었다.
그리고 유리의 변화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그그그극-.
그의 육신이 검은 어둠에 휘감겨 마치 진흙처럼 꾸무럭거리기 시작했고.
이내 점차 그 크기를 부풀려 갔다.
3m.
4m.
5m.
6m.
빠르게 크기를 부풀려 갈수록 길버트의 고개도 뒤로 젖혔고.
마침내 검은 진흙이 빚어낸 거대한 존재를 본 순간 그의 입이 떡 벌어졌다.
거대한 뱀의 몸통과 검은 광택의 비늘.
무지갯빛을 머금은 사슴의 뿔과 은빛 사자의 갈기.
그리고 드래곤을 닮은 얼굴까지.
길버트가 아는 한 저런 존재를 가리키는 명칭은 하나뿐이었다.
“…용?!”
바로 고대 동방의 전설에 등장하는 신수 용(龍).
난데없이 나타난 흑룡에 길버트는 놀라 굳어 버렸다.
‘도, 도망쳐야…….’
머릿속으로는 도망을 쳐야 한다고 수십 번도 더 떠올렸지만, 자신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황금색 눈동자에 모든 게 백지가 되었다.
사시나무처럼 벌벌 떠는 길버트를 향해 흑룡이 선고했다.
[이제 그만 유희의 대가를 치르거라.]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흑룡의 흉악한 입이 쩍 벌어졌고.
크워어어어!
엄청난 굉음과 함께 칼날 같은 이빨이 길버트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으아아아아아!”
날카로운 이빨에 육신이 분해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길버트가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눈을 뜬 그는 다급히 자기 상체를 더듬었다.
어디 하나 구멍 난 곳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길버트.
“하아… 꾸, 꿈이었구나.”
그리 중얼거리다가 움찔 어깨를 떨었다.
‘…꿈이라고?’
대체 언제부터?
어디서부터가 꿈이었던 거지?
그리 생각할 때 한쪽 눈에 욱신거림이 찾아들었다.
“아야야야…….”
길버트는 아픈 눈을 부여잡은 순간 깨달았다.
‘나, 한 방에… 나가떨어진 거냐?’
처음 유리 홀랜드와 마주친 순간.
그 하얀 주먹이 날아왔을 때 이미 기절해 버린 거였다.
이를 깨달음과 동시에 밀려드는 창피함에 그는 빠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보, 본 사람은 없겠지.’
그가 그렇게 사방을 훑는 그때.
저 멀리서 다가오는 파란 머리와 검은 머리가 시야에 잡혀 들었다.
‘거, 검은 머리?!’
조금 전에 꾼 꿈 때문일까.
검은색 머리카락을 보자마자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길버트는 잽싸게 다시 누워 눈을 감았다.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2개의 발소리가 길버트가 있는 인근의 땅을 울렸고.
곧이어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얜 아직도 자네? 유리, 얼마나 쎄게 때린 거야?”
“살살 쳤어. 이 새끼 맷집이 쓰레기라 아직도 처자고 있는 거지.”
맷집이 쓰레기란 소리에 순간 기절한 척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아니라고 소리 칠 뻔했던 길버트.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떠지려는 눈꺼풀을 부여잡았다.
‘드, 들킬 뻔했네.’
길버트는 자신의 인내심을 칭찬했다.
또한 아무도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감긴 그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유리가 보았고.
이에 유리가 아린에게 눈으로 무언가 신호를 주었다는 것을 길버트로선 알 길이 없었다.
끔뻑끔뻑-.
유리가 주는 신호를 확인한 아린이 알았다는 듯 눈을 끔벅였다.
그리고 준비된 대사를 내뱉었다.
“그런데 유리.”
“왜.”
“이제 어쩔 거야? 이대로 물러날 거야?”
“물러나긴 무슨, 계속 두들겨 봐야지.”
“계속? 앞으로 우리 공격은 잘 먹히지도 않을 거 같은데? 아까도 봤잖아, 다른 애들 떼로 몰려다니는 거. 그에 반해 우리는 고작 셋이고.”
“누가 그래? 우리가 고작 셋뿐이라고.”
“셋 맞잖아? 너, 나, 뽀삐.”
“그래, 우리 스쿼드로만 따지면 셋이 맞지만…….”
“맞지만?”
“기다려 보자. 그 새끼가 적당히 신호를 주기로 했으니까.”
“그 새끼? 그 새끼가 누군데?”
“그건…….”
길버트는 유리 홀랜드와 아린이 나누는 이야기에 귀가 절로 쫑긋거렸다.
무언가 의미심장한 대화.
그리고 그들의 대화에서 언급된 그 새끼.
‘그 새끼가 누구지?’
길버트는 숨을 죽이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야, 쟤들 쫓아 온다.”
“뭐? 벌써?!”
놀란 목소리의 두 사람이 부산스러워졌고.
곧이어 땅을 박차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기척이 멀어졌다.
그렇게 그들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길버트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래서 그 새끼가 누군데!”
* * *
“그래서 그 새끼가 누군데?”
그건 길버트가 전해 준 아린과 유리의 대화 내용을 듣고 5분대장이 던진 질문이었다.
이에 길버트는 어깨를 으쓱이며 클라리스를 가리켰다.
“나야 모르지, 막 들으려는 찰나에 얘가 쫓아 버렸으니까.”
“흐흠.”
길버트의 손가락질에 좌중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클라리스는 낮게 헛기침했다.
한편, 상황을 조용히 관망하고 있던 군터가 입을 열었다.
“클라리스, 지금 이 자리에 우리만을 모았다는 건 네가 생각하는 그 새끼… 유리 홀랜드와 내통하는 자가 3소대에 있다고 여기기 때문인가?”
그 말에 다른 이들도 그제야 무언가를 깨닫고 클라리스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 이야기는 3소대가 임무 교대를 나가기 전에 했어도 됐는데 굳이 3소대가 나간 다음에 했다는 건…….’
군터의 말대로 클라리스는 내통자가 3소대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 터.
그리고 그런 군터의 물음에 클라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난 그자가 3소대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의 답이 끝나기 무섭게 10분대장이 다그치듯 끼어들었다.
“그게 누군데?”
“그건…….”
클라리스는 곧장 답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분대장들을 슥 훑어본 뒤, 무언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일 뿐.
이에 답답하다는 듯 10분대장이 짜증을 냈다.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다른 이들도 10분대장의 이야기에 동의한다는 듯한 눈빛 공세를 해 오자 클라리스는 나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생각하는 그자는… 슐레만 한스다.”
“……?!”
클라리스의 이야기에 좌중은 경악했다.
그리고 곧 반발이 튀어나왔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애초에 이 동맹을 만든 게 슐레만인데, 무슨!”
“그래, 슐레만이 그럴 이유가 없잖아?”
몇몇이 슐레만을 대변하듯 말하자 클라리스도 이에 반박을 내놓았다.
“다들 무언가 이상한 걸 못 느꼈나?”
“이상한 거?”
“모든 게 너무 물 흐르듯이 이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냐? 유리 홀랜드의 도발부터, 슐레만의 동맹 제의… 그리고 유리 홀랜드가 선발을 잘라 내는 과정까지. 그 모든 게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확실히 그렇기는 한데.”
누군가 동조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또다시 반대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억측이야. 솔직히 그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진 거 같기는 하지만, 고작 그걸로 슐레만을 내통자로 모는 건 잘못된 추측이라고 본다. 그리고 슐레만이 그럴 이유가 없지 않나? 그에게 이득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그러자 이번에도 또다시 반대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 목소리를 낸 건 클라리스가 아닌 다른 분대장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슐레만이 이 동맹을 제의하고, 작전을 짠 것도 그에게 이득이 되는 건 아니잖아?”
“왜 이득이 안 되지? 유리 홀랜드를 잡는 일인데?”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이 퀘스트는 유리 홀랜드를 잡는 게 목적이 아냐. 최종 우승 스쿼드를 가리는 게 목적이지. 그래서 이득이 안 된다는 거야. 만약 내가 슐레만이었다면, 유리 홀랜드가 다른 실력 있는 스쿼드를 처리하게 내버려 뒀을 거다. 그게 나한테 이득이 되는 일이니까. 안 그래?”
“흠…….”
쉽사리 다른 반박이 나오지 않자 이번에는 다른 이도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솔직히 나도 이전부터 슐레만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어. 여기 있는 이들을 봐. 모두 상위 20위권 안에 있는 이들뿐이다. 그뿐일까? 분대장이 아니더라도 다른 분대원들 수준도 선발대랑은 차원이 달라. 앞에서 갈려 나간 선두 주자는 전부 어중이떠중이들뿐이었다고.”
“…….”
“우리는 유리 홀랜드만 처리하면 전부 적이 될 사이야. 그런데, 잠재적 경쟁자의 전력을 보존하게 도와준다고?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봐?”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닌 이상.”
여기저기서 슐레만의 행동을 놓고 논쟁이 오갔다.
그리고 슐레만의 행동을 의심하는 쪽에서는 급기야 모든 것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만약 정말로 슐레만이 내통자라면… 그가 알려 준 유리 홀랜드의 정보도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유리 홀랜드 혼자 선발 주자를 전부 잘라 냈다는 것도 부풀리거나 조작한 게 아닐까?”
분대장들 사이에서 클라리스가 처음으로 꺼낸 이야기가 계속해서 살에 살을 붙여 덩치를 부풀려 갔다.
그러다 누군가 화제를 새로운 국면으로 끌고 갔다.
“그런데 꼭 슐레만이 내통자라는 법은 없는 거잖아? 가령… 이 자리에 있는 누군가가 내통자일 수도 있고. 아니면 3소대의 누군가가 내통자일 수도 있지.”
“그 말은 지금… 우리를 의심한다는 건가?”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까지 오자 군터가 중재에 나섰다.
“왜 꼭 내통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건 또 무슨 뜻이야.”
“왜 우리 중에 내통자가 있을 거라고 여기느냔 말이다. 내통자가 없음에도 우리의 분열을 노리고 유리 홀랜드가 일부러 거짓 정보를 흘렸을 수도 있다.”
이에 길버트가 발끈했다.
“그 말은 지금 내가 유리 홀랜드의 농간에 홀려서 거짓 정보를 물어 왔다는 말이냐.”
“굳이 표현하자면 그렇게 되겠군.”
덤덤하게 말하는 군터를 길버트는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때 들려온 22분대장 목소리.
“나는 오히려 내통자가 있다는 쪽에 한 표 던지겠다. 그렇지 않다면 꼭 짜맞춘 듯 흘러온 이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으니까.”
그의 반박에 다시금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렇게 애써 중재해 보려던 군터의 시도는 무산되었고…….
“그래서 누가 내통자인데?”
“아까 뭘 들었어? 내통자가 없을 수도 있다잖아!”
“난 있다고 보거든. 그런데 너… 왜 그렇게 내통자가 없다는 쪽으로 상황을 몰고 가지? 혹시 너…….”
“혹시 뭐?”
“네가 내통자 아냐?”
“뭐?! 너 지금 말 다 했어!”
유리가 던진 불씨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 * *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한가로이 앉은 유리, 아린, 뽀삐.
밝은 불꽃을 보며 아린이 물었다.
“유리, 그래서 네 말대로 불씨가 큰불이 되었다 치면… 그다음은? 그다음은 어떻게 할 거야?”
그런 아린의 질문에 유리는 모닥불에 장작 하나를 집어넣으며 답했다.
“글쎄, 어떻게 할까?”
입으로는 글쎄라고 말하였지만, 그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듯한 미소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