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41
140화. 세경 워커 (6)
유리의 머리 위로 떠오른 물음표는 쉽사리 사라질 줄 몰랐다.
그건 당연하게도 요한이 세경에게 가져다 붙인 ‘진짜 미친놈’이란 호칭 때문이었다.
한참을 멀뚱멀뚱 서 있던 유리.
그는 결국 치미는 강렬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고.
“…영감보다 더?”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대가를 치렀다.
따아아악-!
조금 전보다 더 커다란 소리가 나며 유리가 뒤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끼양!”
거의 세 바퀴를 굴러갔나?
눈물을 그렁그렁 단 유리가 이마를 부여잡고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아파!”
“아프라고 때렸지, 그럼 너 기분 좋아지라고 때렸을까?”
“머리 깨질 뻔했다고!”
“사람 머린 고작 그 정도로 안 깨진다. 이 몸이 소싯적에 딱밤으로 대갈통 여럿 깨부수고 다녀 봤거든.”
“…그딴 것도 자랑이야?”
딱밤으로 사람 머리를 깨부쉈다는 저 말이 어째 빈말이 아닌 듯싶은 건 자신의 착각일까?
하여 유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 이 영감탱이보다 더 미친 사람이 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저 미친 영감탱이한테 미친놈 소리를 듣는 이는 대체 얼마나 미친놈이란 말인가.
유리가 이마를 문지르며 째려보자 요한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만 삐죽거리고 앉아라, 미친놈아.”
“…나 미친놈 아냐.”
“누가? 네놈이?”
“어!”
요한은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다만 ‘이 새끼가 어디 아픈가?’라는 눈빛으로 바라볼 뿐.
그게 유리를 더 기분 나쁘게 했다.
“내가 모든 걸 다 이해하고 넘어가도, 영감한테만큼은 미친놈 소리 듣고 싶지 않아.”
“오냐오냐.”
시큰둥하게 손을 내젓는 요한을 보고 유리의 입술이 삐죽이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서 그 세경이란 사람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야?”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지. 레드너 가문이 자리한 곳이 골족의 영역과 가까웠거든. 대수림이라고 들어 봤느냐?”
“대수림? 그 프롬펠 행정구에 붙어 있는?”
“골족이나 린족에게 물어보면 프롬펠 행정구가 대수림에 붙어 있다고 할 테지만… 뭐, 아무튼 거기 맞다.”
“와, 영감네 가문 완전 촌구석에 박혀 있었잖아?”
“어허, 이놈! 촌구석이라니!”
“대수림이든 프롬펠이든, 결국 대륙 끝이란 소리잖아? 그럼 촌구석 맞지.”
일전에 유리가 있었던 크로탄 행정구가 대륙 북단에 자리해 있다면, 프롬펠 행정구는 대륙의 남동쪽 끝에 있었다.
그리고 레드너 가문은 그런 프롬펠 행정구 내에서도 가장 외곽에 있었다.
바로 프롬펠 행정구와 대수림의 경계선에 말이다.
하여 유리의 촌구석이란 표현이 딱히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어색하게 헛기침만을 할 뿐이었다.
“헛험. 아무튼 원래부터 레드너와 골족은 자주 교류를 해 왔었고, 차기 가주인 나와 라멜 학파의 차기 마이스터로 거론되던 그 녀석은 어릴 때 종종 만나 같이 어울리곤 했지. 이른바 소꿉친구 같은 존재랄까?”
“라멜 학파? 그건 또 뭐야? 마이스터는 또 뭐고?”
“쯧쯧, 이리도 무식해서야.”
“예에, 무식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니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사실 타박하기는 했지만, 레드너 가문의 사람들만큼 골족에 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이들은 드물다는 건 요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이 몸이 몸소 설명을 해 줄 터이니 귀를 씻고 듣거라, 무식한 놈아.”
“예이예이, 그러지요.”
또 입을 삐죽이는 유리를 보고 요한은 설명을 시작했다.
“골족은 자신이 몸담은 학파의 명칭을 성으로 삼는다. 그들에게는 총 4개의 학파가 있으며 그 정점에 있는 이가 4대 마이스터들이지. 마이스터란 위대한 장인이란 뜻으로 대충 명인급 장인이라 생각하면 편할 거다.”
“그 4대 학파는 뭐뭐 있는데?”
“골족의 4대 학파에는 워커, 라멜, 앙리, 켈러가 있지.”
야금술의 워커.
연금술의 라멜.
제독술의 앙리.
제약술의 켈러.
그리고 골족의 구성원들은 누구든 이 4개의 학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며, 한 학파를 선택했던 이가 자기 적성을 찾아 다른 학파로 옮기는 것도 가능하다는 게 요한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예가 세경 워커였다.
“그놈은 어린 나이에 라멜 학파의 차기 마이스터로 거론될 정도로 천재였는데… 어느 날 워커란 성을 달고 나타나더라.”
“오? 그쪽으로도 재능이 있었나 봐?”
“있기는 개뿔. 야금술 방면에서 그 새끼의 재능은 겨우 망치나 놀릴 법한 수준이었다. 물론 그 정도만 되어도 평범한 인간 수준에서는 대단한 대장장이겠지만, 골족 사이에서는 그냥 그런 수준인 게지.”
“엥? 그런데 왜 워커 학파로 옮긴 거야?”
“라멜보다는 워커란 성이 더 멋있다고.”
“…정말?”
“그래, 정말.”
“…또라이네.”
“미친놈인 게지. 라멜 학파에서 배웠으면 무난하게 마이스터까지 올랐을 놈인데… 당시 라멜 학파에서 바짓가랑이 잡고 말려도 기어코 학파를 옮겼다고 하더군.”
“이야, 또라이인데 고집도 있어?”
“그런데 그 녀석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자세히 묻는 거냐.”
“아, 그건…….”
살짝 고민하던 유리는 세경에게 기관 지식을 배우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를 들은 요한은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군.”
요한의 그런 반응에 유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기분 안 나빠?”
“뭐가?”
“내가 영감이 가르쳐 주는 것 이외에 다른 데 한눈파는 거에 대해?”
유리의 질문에 요한은 피식거렸다.
“고작 그딴 거로 기분이 상할 거였다면 네놈을 요람에 들여보내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내가 붙잡고 가르쳤겠지.”
“…….”
유리는 침묵했다.
무언가 고민하는 듯싶은 그는 [거절 불가 강의 신청서]에 관해 설명했다.
그리고 그 설명이 끝났을 때.
유리는 넌지시 다시 질문을 던졌다.
“만약, 만약에 말야, 내가 검주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면… 어떨 거 같아?”
그건 그가 거절 불가 강의 신청서를 손에 넣고 떠올렸던 생각이었다.
검주를 넘어서는 게 목표인 자신과 요한.
그리고 요한의 다리를 앗아 간 그 괴물에게 가르침을 받을 기회가 온다면 이를 놓치지 않는 게 옳은 일인지.
유리가 던진 조심스러운 질문에 이번에는 요한 쪽에서 침묵했다.
“…….”
요한은 유리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내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지.”
“좋다고?”
유리의 되물음이 끝나기 무섭게 요한의 잔잔했던 미소에 격랑이 일기 시작했다.
그가 유리의 두 눈을 똑바로 직시했다.
“검주의 가르침이라고? 받을 수만 있다면 내가 받고 싶다. 그 덕분에 내 검이 그에게 닿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요한이 사나운 기세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너 또한 그런 기회가 찾아온다면, 반드시 손에 넣어라.”
그는 유리가 자신이 가르치는 것 이외에도 많은 것을 배우기를 원했다.
그로 인해 크게 성장하길 바랐다.
심지어 그것이 평생의 목표인 검주의 가르침이랄지라도 말이다.
한편, 유리는 요한의 사나운 기세에서 무서움보다는 절박함을 느꼈다.
“…….”
“…….”
둘 사이에 잠시 적막이 이어지고.
그 침묵을 깬 건 요한이었다.
“배울 수 있는 거는 다 배워라. 그리고 이왕 세경이 녀석에게 뭔가를 배울 거라면 기관 지식 말고 다른 걸 배워.”
“다른 거?”
“그 새끼가 비록 라멜 학파를 나왔다고 해도 라멜 학파 역대 가장 뛰어난 천재라 불리던 놈이었다. 그리고 워커 학파에 들어가서도 계속 연금술을 연구했고.”
“아니, 그럴 거면 학파는 진짜 왜 옮긴 거래? 정말로 단순히 성을 바꾸려고?”
“미친놈 생각을 우리 같은 범인이 어찌 이해하겠냐.”
“하긴, 그렇긴 하지.”
“그런 거지.”
유리가 먼저 고개를 끄덕이자 요한도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사람한테는 뭘 배워야 하는 건데? 연금술?”
그런 유리의 질문에 요한이 이번에는 고개를 내저었다.
“세경이 녀석의 별명이 뭔지 아냐?”
“뭔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리를 보고 요한은 심각한 얼굴로 답했다.
“폭마(爆魔).”
“…폭마?”
“폭발에 광적으로 집착하고 사랑하는 미친 변태 새끼. 그게 바로 세경이다.”
요한의 이야기에 유리는 어제 목책들을 날려 버린 그 강렬했던 폭발을 떠올렸다.
그사이 요한은 과거 자신이 세경에게 들은 그의 철학을 알려 주었다.
[고대의 드워프들은 드래곤을 독살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렇기에 독살은 가장 위대한 죽임이라 할 수 있는 거지. 하지만 그건 이제 구닥다리, 구시대의 유물일 뿐!] [앞으로는 폭살의 시대다! 힘의 팽창! 충돌! 파괴! 소멸!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에 어울릴 위대한 죽임이 될 거다! 내가 그리 만들 거다!]과거를 회상하며 세경의 철학과 목표를 들려준 요한.
당시 세경의 광기 어린 얼굴을 떠올린 그의 낯빛은 핼쑥해져 있었다.
“…그때 그 새끼가 나한테 그러더구나.”
“뭐라고?”
“향후 30년 안에 대륙을 날려 버릴 위대한 폭발을 일으키겠다고.”
“…진짜 미친놈이네.”
이제 유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경 워커, 그는 진짜 미친놈이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그 새끼의 천부적인 재능 덕분에 그 미친 헛소리가 단순히 헛소리로 끝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거였지.”
“…….”
“뭐, 내가 마지막으로 그놈을 본 게 족히 30년도 더 전이고, 지금까지 대륙이 멀쩡한 걸 보니 계획이 실패했나 본데. 천만다행이지. 그래도 그 녀석이 만들어 내는 폭발물들은 대륙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명품들이다. 그러니 이왕 세경이 녀석에게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면… 폭발물 제조나 배워 봐라.”
“흠…….”
유리가 턱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나쁘지는 않은데?’
가지고 있는 사상이 불순하기는 하지만 그의 재능은 저 요한마저 인정할 정도였다.
그리고 야금술에 관한 재능이 떨어진다고는 해도 그래도 골족 평균이라는 게 있으니, 그 정도만 배울 수 있어도 자신에게는 충분하리라.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확실히 성립되어야 했다.
유리가 요한을 보며 물었다.
“영감. 그 세경이란 사람이랑 친했던 거 맞지?”
“아암, 그렇고말고.”
“그래? 혹시 서로를 부르던 별명 같은 거 없어? 되도록 둘만 아는 별명 같은?”
“당연히 있지.”
“오! 뭔데?”
“꽁술이. 난 주로 그 녀석을 ‘꽁술아’라고 불렀었지.”
마치 추억에 젖은 듯 아련한 표정의 요한을 보고 유리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는 걸 보면 확실히 친분이 있는 건 맞는 거 같은데?’
친분이 없다면 저런 사소한 내막 하나하나를 어찌 알겠는가.
‘좋아, 됐어!’
그렇게 유리가 이 정도면 인맥이란 걸 이용해 볼 수 있겠구나 하고 좋아할 때.
요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이 정도면 숙제 검사는 다 한 거 같으니, 난 이만 가마. 더 할 말이 있냐?”
“없는데?”
“다음에 또 불시 점검을 할 테니까 숙제 잘하고 있어라!”
그리 말을 남긴 요한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돌풍을 일으키고 그대로 사라졌다.
그렇게 혼자 남게 된 유리.
그는 조금 전까지 요한이 남아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음, 역시 친필 서명 해 달란 소린 못 하겠단 말이지.”
파랑새의 의뢰 대가로 주기로 했던 요한의 친필 서명.
하지만 차마 그거에 관해 입이 안 떨어졌다.
아니, 그 말은 할 수 있어도 안 하는 게 옳았다.
‘영감을 동경하는 사람이 친필 서명 좀 받아 달라고, 나한테 부탁했다는 소릴… 어떻게 해!’
그걸 입 밖으로 꺼냈다가는 ‘봤냐? 내가 이런 사람이다!’라는 표정으로 으스댈 게 뻔한데.
유리는 그런 요한의 낯짝을 보고 싶지 않았다.
‘뭐, 친필 서명 따위는 나중에 대충 내가 해서 넘겨주면 되는 거고.’
그 친필 서명을 자신이 한 건지.
아니면 요한이 한 건지.
그걸 받는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
“지금은 영감탱이 서명 따위가 중요한 건 아니지.”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세경에게 보낼 강의 신청서였다.
거절 불가 강의 신청서가 아닌 10,000포인트짜리 일반 강의 신청서 말이다.
하지만 유리에게 남은 일반 강의 신청서는 전무.
이에 유리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 내가 1만 포인트나 주고 그 쓰레기 쪼가리를 다시 사게 될 줄이야.”
그리 중얼거린 유리는 은신처를 빠져나와 터덜터덜 특판 상점으로 향했다.
그렇게 일반 강의 신청서를 산 유리는 그 자리에서 빠르게 작성을 시작했다.
* * *
-강의 신청 사유:
꽁술아, 우리 유리 녀석, 잘 좀 챙겨 줘라.
-너의 절친한 소꿉친구로부터-
* * *
단숨에 신청서 작성을 마무리한 유리는 웃으며 이를 제출했다.
‘완벽해!’
둘만이 아는 별명과 절친한 단어까지.
만약 요한의 말처럼 둘이 가까운 사이라면 분명 이 신청서에 금방 반응해 올 것이라고.
유리는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콰아아아앙!
지축을 울리는 폭음과 함께 목책이 날아갔다.
그나마 듬성듬성 남아 있던 목책들이 빠르게 터져 나가는 것을 본 아린이 유리 뒤에 숨어 중얼거렸다.
“저 골족 늙은이, 엊그제보다 더 날뛰는 거 같은데? 뭐, 더 화난 게 있나 봐. 유리, 너 또 뭔 짓 한 거야?”
“…….”
유리는 말이 없었다.
그도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세경이 날뛰는 것을 구경할 뿐.
‘하…….’
유리의 예상대로 세경으로부터의 반응은 금방 왔다.
다만 그게 그가 원하는 반응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유리가 넋을 놓고 있을 때 들려온 거친 목소리.
“이 염병할 개호…….”
콰아아아아아!
“…늙은 새끼 어딨어!”
자신을 욕하며 쳐들어왔을 때보다 족히 다섯 배나 더 긴 호흡의 욕설과.
그 중간중간 쉼 없이 섞여 드는 폭음을 들으며 유리는 작게 중얼거렸다.
“…친하다며, 이 빌어먹을 노친네야.”
저게 친한 사람들끼리의 흔한 안부 인사라면 이 세상에 전쟁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거다.
아니, 전쟁이란 단어 자체가 없을지 몰랐다.
일상이 전쟁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