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5
14화. 마나 (3)
몰아(沒我).
그것은 단순히 집중력이 높다고 하여 들어갈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자신마저 잊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자아를 관조하는 경지.
만약 몰아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심상의 영역에 들어설 수 있다.
상상을 통해 공간적 제약을 벗어난 훈련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완숙에 다다라 영혈이 뚫리면, 심상을 외부로 구현할 수 있게 되는 거지.’
이는 화신을 구현하는 여러 방법 중 한 갈래였다.
물론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지금쯤 세상에는 명인이 넘쳐 나야 했다.
어찌어찌 몰아의 단계에 접어들더라도 그것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고된 훈련이 필요한 법.
‘물론 몰아에 드는 법을 알려 줘도 못 하는 놈들이 천지지만.’
하지만 유리는 달랐다.
그는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건만 스스로 방법을 찾아 몰아에 빠져들고 있었다.
비록 깊은 몰아가 아닐지라도 이를 자력으로 행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건 대체 어찌 되어 먹은 놈이야?’
고작 7살의 나이에 화신을 깨우지를 않나.
기괴할 정도로 대칭을 이룬 육체.
거기다 누가 알려 주지도 않았건만 스스로 몰아를 깨달은 오성(悟性)까지.
유리를 알면 알아 갈수록 무예를 익히기 위해 태어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안타까웠다.
‘하늘이 정작 가장 중요한 재능을 앗아 갔구나. 쯧.’
마나를 느끼는 재능이 그저 평범한 사람 정도만 됐었어도 제2의 검주가 되었을 녀석이건만.
그런 아쉬움이 연이어 들었다.
요한은 나름 속으로 응원하며 계속해서 마나를 풀어냈다.
녀석이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마나를 느끼는 데 성공했다고 소리치기를 바라며.
하지만 요한의 바람과는 달리 유리의 침묵은 길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여객선이 항해를 이어 나간 지 25일 차.
4주로 예정되어 있는 일정이 끝에 다다르니 한동안 이어졌던 폭풍우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항해는 순풍을 맞았으나 유리는 여전히 마나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했다.
‘도무지 모르겠어. 마나는 뭐지?’
오감을 지우고 마나를 느껴 보려 해도 크게 와닿는 느낌이 없었다.
‘뭐가 문제인 걸까?’
요한이 말하길, 자신이 마나를 느끼지는 못하는 것과는 달리 육신은 마나를 받아들이고 있다 했다.
자신이 의도하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럼 최소한 뭐라도 느껴야 하는 거 아냐?’
하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유리가 그렇게 고민에 빠진 사이 요한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그만하자.”
“그만은 무슨! 아직 더 할 수 있어.”
“이놈아, 누가 때려치우재? 잠시 쉬자는 거다. 지금 네 몰골이 어떤지 아냐? 툭 치면 골로 가게 생겼다. 쯧.”
처음 몰아에 든 이후로도 요행이 아니라는 듯 꾸준히 몰아에 든 유리.
장시간 몰아를 유지하는 것은 상당한 정신력을 소모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유리는 상당히 수척해져 있었다.
“좀 먹고 자고 난 뒤, 머리 좀 식혀라. 집중도 좋으나 과한 것은 오히려 적당함만 못한다. 가서 좀 바람 좀 쐬고 와.”
“…웬일로 챙겨 준대?”
“허허, 이건 신경을 써 줘도 지랄이구나.”
“알았어. 안 그래도 배고팠는데. 뭐라도 먹고 와야겠다.”
그리 중얼거린 유리가 일어났다.
어지러움에 잠시 휘청거린 그가 벽을 짚은 순간.
탁-.
“아!”
유리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배고파? 공복?’
유리의 눈이 번뜩였다.
‘그래 맞아. 비워 내면… 비워 내면 되는 거잖아?’
원래 있던 걸 느끼려고 하는 게 안 된다면 없애 버리면 되지 않은가.
자신 주변의 마나가 0이라면.
마나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를 인지할 수 있다면.
‘이거라면 마나가 어떤 건지 감을 잡을 수 있을지 몰라!’
유리가 다급히 되돌려 요한의 앞으로 왔다.
“뭐냐?”
유리의 난데없는 행동에 뚱한 표정을 짓는 요한.
유리는 자신이 깨달은 것을 알렸다.
이에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라? 확실히… 일리 있는 소리구나.”
“그치? 그런 거지?!”
“분명 어딘가에 그런 방식으로 수련을 하는 곳이 있다고 들었던 거 같다. 마나에 대한 감응력을 높이기 위해서.”
“…그걸 이제야 떠올렸다고?”
“마나를 느끼지 못한다는 감각 자체를 모르는 내가 굳이 그런 걸 일일이 기억해야 하냐? 애초에 그딴 훈련은 마나 감응력이 떨어지는 것들이나 하는 짓인데?”
“…….”
“내 감응력은 그런 조잡한 훈련을 하지 않아도 이미 완성에 가까웠지. 엣헴.”
“…재수 없어.”
명인의 반열에 오른 이의 재능이 평범할 리 없었다.
그러니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깊게 고심해 본 적이 없었다.
거기에 요한이 명인에 오른 실력자임이 분명한 사실이긴 했으나…….
‘흠…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었구나.’
그는 배우고 익히는 재능이 뛰어난 거지 남을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는 이제 막 발을 뗀 ‘초보’였다.
무론에 관해서는 그 누구보다 잘 가르치겠지만, 그것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는 섬세함이 부족했다.
‘가르치며 모자람을 채운다더니… 그 말이 옳았구나.’
요한이 속으로 어색한 미소를 베어 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바로 시작 할 테냐?”
“물론!”
유리가 잽싸게 정좌를 하고 앉았다.
그의 심장이 작게 고동쳤다.
‘이 방법이라면… 가능할지 몰라.’
아니, 반드시 가능해야 했다.
그리 다짐한 유리는 곧바로 눈을 감고 집중에 들어갔다.
이를 본 요한은 바로 마나를 움직였다.
평소처럼 유리의 주변으로 마나를 퍼뜨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유리 주변의 마나를 자신이 흡수해 그 밀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말이다.
‘굳이 서서히 낮출 필요는 없겠지.’
극단적인 변화가 인지하기 더 좋으니 말이다.
그리 가정한 요한은 유리 주변의 마나를 훅 빨아들였다.
일순간에 마나 진공상태가 되어 버린 유리의 주변.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헙?!”
화들짝 놀란 유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갔다.
“꺼헉!”
집중에서 깨어난 그가 목을 부여잡고 꺽꺽거렸다.
유리의 그런 반응에 요한이 놀라 다급히 마나를 돌려놓았다.
“무슨 일이냐!”
“꺽!”
유리는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요한의 손가락이 유리의 가슴과 등을 몇 군데 가볍게 누르자 그제야 유리가 다급히 숨을 들이켰다.
30초 뒤, 안정을 되찾은 유리가 화난 얼굴로 쏘아붙였다.
“영감 미쳤어?”
“……?”
“내가 마나 없애라고 했지, 언제 숨을 못 쉬게 하래? 사람 잡을 일 있나!”
“뭔 소리냐? 내가 언제?”
“방금!”
“이놈이 뭔 개소리를, 내가 언제 그랬…….”
유리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려던 요한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그가 딱딱해진 얼굴로 말했다.
“다시… 다시 한번 해 보자.”
“이번에는 잘해, 괜히 생사람 잡지 말고!”
요한의 대답을 듣지 않고 유리가 정좌에 들어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요한.
‘설마…….’
유리가 몰아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손을 뻗었다.
조금 전과는 달리, 이번에 그는 되도록 천천히 마나를 조절했다.
유리 주변으로 밀도가 서서히 떨어지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러기 무섭게 유리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벌써 알아챘다고?!’
요한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그가 서서히 마나를 흡수하는 속도를 높였다.
그와 함께 유리의 얼굴도 시시각각 변해 갔다.
답답하다는 듯, 짜증 가득한 얼굴로 말이다.
이에 요한은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이 녀석… 마나를 느끼지 못한 게 아니었어!’
동시에 그의 얼굴에 놀람이 번져 나갔다.
‘늘 느끼고 있던 거였냐?!’
항상 느끼고 있었기에 자신이 감지하고 있는 게 마나라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마치 사람이 숨을 쉬듯 말이다.
공기가 사라져야 이를 인지하듯 유리도 마나가 사라져서야 비로소 이를 인지했으리라.
이를 깨달은 요한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이놈…….’
그가 유리에게 어이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대체 몇 살 때부터 마나를 느꼈던 거야?!’
도대체 언제부터 마나를 느꼈기에 그게 마나인 것조차 모른단 말인가.
‘아마도 사고란 것을 할 수 있게 된 순간부터 마나를 느끼고 있었겠지.’
만약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유리의 마나 감응력은 상상을 불허할 것이다.
연신 감탄하던 요한의 눈에 의문이 서렸다.
‘한데, 감응력이 저 정도라면 마나 밀도가 높아졌을 때 충분히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유리의 마나 감응력이라면, 비록 훈련이 안 되어 있다고 해도 자신의 주변에 일어나는 마나의 흐름 정도는 느껴야 했다.
실제로 유리는 제 주변의 마나 밀도가 낮아지는 현상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반대로 밀도가 높아지는 거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그때 요한의 뇌리로 한가지 생각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쳤으니.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마나 밀도가 높아지면 귀신같이 마나를 흡수했었지?’
마치 제 주변의 마나 밀도를 일정하게 조율하듯 말이다.
이에 요한은 한가지 가정을 내렸다.
‘어쩌면 그게 저 녀석이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르겠군.’
유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은 요한으로서도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때문에 섣부른 판단보다는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좋았다.
요한이 그리 결론을 내렸을 때, 유리도 고민에 빠져 있었다.
‘왜 이러지?’
가슴이 먹먹하고 숨이 차올랐다.
마치 주변의 공기가 서서히 사라지듯 말이다.
‘답답해.’
깊게 숨을 들이쉬어 보았지만, 답답함은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답답함은 더더욱 커져 갈 뿐.
상황이 그쯤 되자 유리도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이 단순한 호흡곤란이 아님을 깨달았다.
유리의 눈이 번뜩 뜨였다.
그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요한을 보며 살짝 굳은 얼굴로 물었다.
“영감, 이거 설마?”
“네가 생각하는 게 맞을 거다.”
“이게… 마나라고? 이 답답한 느낌이?”
“그 답답함이 마나라기보다는…….”
“……?”
유리의 의문 서린 시선에 요한은 자신이 알아낸 것을 설명해 주었다.
이를 전부 들은 유리의 얼굴이 멍해졌다.
“내가 마나를… 이미 느끼고 있었다고?”
“그래.”
“하지만 정작 난 아직도 마나가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는걸?”
“그건 걱정 말거라. 애초에 네놈은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니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감각을 깨우칠 수 있을 거다.”
“정말?”
“될 거다. 그것만은 내가 확실히 보증하마.”
요한의 확신에 유리의 얼굴이 환해졌다.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그간 마나로 인해 얼마나 속앓이를 했던가.
굳은 눈빛을 풀어낸 유리가 오랜만에 본연의 느낌으로 돌아와 히죽거렸다.
“좋아, 노력 그까짓 것쯤이야! 이 유리 홀랜드한테 노력을 빼면 시체나 다름없지!”
“주둥이만 살아서는, 쯧. 그만 까불고 지금 바로 시작하자.”
“좋아!”
유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다시금 이어지는 정적.
마나를 느끼기 위해 집중하는 유리.
계속해서 마나의 흐름을 조율하는 요한.
둘 사이에는 한마디도 오가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각자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객실 안에서 마나가 비워졌다 채워지기를 반복하며 크게 요동쳤다.
그리고 마나 밀도 변화의 중심에 있던 유리.
‘아……!’
그 속에서 유리가 한 가지 깨달음을 잡아 냈다.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하는 반복하는 기묘한 감각을 잡아낸 것이다.
‘이게… 마나?’
그것은 어쩐지 친숙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어색한 느낌이기도 했었다.
마치 매일 보던 친구에게서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아, 맞다. 나 친구 없지?’
실없이 속으로 킥킥거린 유리는 어찌 되었든 오래된 친구를 새로이 맞이했다.
‘아무튼 반갑다!’
그리고 유리의 인사에 마나가 반응해 왔다.
왜 이제야 자신을 알아봐 주었냐는 듯 말이다.
고오오오-.
유리를 중심으로 마나가 더욱더 거세게 요동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