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50
149화. 공주가 마왕성을 탈출해 용사를 구하러 가는 이야기 (5)
데구르르-.
철푸덕-.
사람이 마치 감자 굴러가듯 굴러가서 납작하게 널브러지는 모습은 수많은 사람의 관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그 감자가 엎어진 곳이 흑검병이 절대 넘지 말라고 경고한 붉은 선 안쪽이었다.
이에 여기저기서 놀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 선 넘었잖아?”
“누구지?”
“…괴츠 뢰턴?”
“저거 괴츠 뢰턴 맞지?”
마왕의 영역에 돌 맞은 개구리처럼 퍼진 보라색 뒤통수를 보고 많은 이들이 혀를 찼다.
다만 그들이 혀를 찬 건 놀람의 의미가 아니었다.
“쯧, 저 미친놈이 기어코 일을 저지르는군.”
“저 사람 또 이상한 짓 하고 있네.”
“하긴…….”
사람들이 혀를 찬 건 역시 괴츠 뢰턴이라면 저럴 줄 알았다, 저 사람이면 저러고도 남는다는 반응이었다.
괴츠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
‘내가 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평소였다면 주변의 이 같은 반응에도 별달리 억울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황당한 시선은 어차피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당연한 결과일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런 시선들을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자신이 한 일이 아닌데 이 같은 시선을 받으니 괴츠는 너무 억울했다.
그건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분함이었다.
하여 그는 이 상황을 만든 진짜 주동자를 찾아 눈을 굴렸다.
이 일에 관해 따지기 위해.
그런데 이게 웬걸?
“사, 사라졌어?!”
조금 전까지 선에 바짝 붙어 쪼그리고 있던 유리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괴츠는 다급하게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런 행동도 더는 이어지지 못했다.
스륵-.
괴츠의 정면.
무심하게 앉아 있던 마왕이 자신의 영역에 무단으로 침입한 이를 보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좌중은 눈을 반짝였다.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를 어겼을 때는 어떻게 될까?’
‘솔직히 궁금하기는 했었는데.’
과연 저 붉은 선을 넘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모두가 흥미롭게 지켜봤다.
그런 주변의 시선과는 달리 괴츠는 얼굴에는 난감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런…….’
이런 식으로 주목받는 건 그가 원하던 상황이 아니었다.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가 나중에 어떻게든 애인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은밀하게 움직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불가능해졌다.
본의 아니게 준비도 없이 마왕의 영역에 들어와 버렸고,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그도 모른다.
이대로 다른 곳에 감금이 된다든지.
혹은 자신으로 인해 애인에게 불이익이 갈 수도 있는 상황.
하여 괴츠는 고민했다.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저벅저벅-.
서서히 가까워지는 마왕을 보고 그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애인에게 불이익이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마왕을 상대하는 게 나을 수도 있을 거다.
그리 결론을 내린 괴츠가 주머니로 손을 넣었다.
수갑과 족쇄를 풀어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턱-.
“…응?”
없었다.
턱턱-.
“어어?”
조금 전까지 주머니에 들어 있던.
턱턱턱-.
“……?!”
애인이 잘 챙기라고 했던 열쇠가 주머니 속에 없었다.
아무리 손을 휘휘 저어 봐도 텅빈 공간만 느껴질 뿐.
당황한 괴츠가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혹시 조금 전 구르다가 어딘가에 흘린 게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열쇠는 보이지 않았다.
이에 그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망했군.’
망해도 너무 완벽하게 망했다.
괴츠는 그대로 가련한 공주님처럼 바닥을 짚고 쓰러졌다.
잠시 뒤.
저벅-.
그의 앞에 큼직한 발이 나타났으니.
괴츠가 살 떨리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서늘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마왕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부디… 나의 죽음을 용사님께 전하지 말아 주시오.”
영문 모를 소리를 지껄이며 처량한 표정을 짓는 괴츠였다.
이에 마왕은 더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왕과 괴츠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좌중도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모두의 이목이 괴츠와 마왕에게 쏠린 그때.
킁킁-.
누군가가 코를 킁킁-거렸다.
콧속으로 파고드는 매캐한 탄내에 고개를 뒤로 돌린 순간.
“……?!”
그는 뒤에서 뿌옇게 덮쳐 오는 연기에 놀라 소리쳤다.
“부, 불이야! 불!”
그 외침에 마왕과 괴츠를 바라보고 있던 이들도 화들짝 놀라 덩달아 뒤를 바라보았고.
밀려드는 회색의 연기를 발견한 사람들이 당황하여 우왕좌왕했다.
“부, 불났다!”
“불이야!”
회색의 연기가 뒤에서부터 덮쳐오자 사람들은 뒷걸음질 쳤다.
바로 붉은선 쪽으로 말이다.
“미, 밀지 마! 이러다 선 넘어가겠다고!”
“선이고 나발이고, 지금 안 밀게 생겼냐! 뒤에서 불났는데!”
“아, 좀 앞으로 가라고! 이러다가 전부 다 타 죽게 생겼잖아!”
조금 전까지 평온했던 실내에 커다란 혼란이 몰아쳤다.
이에 괴츠는 물론 마왕까지 붉은 선 안쪽으로 밀려드는 사람들에 놀라 그쪽을 바라보았다.
밀도 높은 연기가 밀려들자 사람들은 점점 더 선에 가까워졌다.
그러다가 결국 선까지 넘고 말았다.
이 같은 사태에 괴츠의 눈이 반짝였다.
‘호오? 상황이 이렇게 된다면?’
마왕의 영역을 넘어선 게 자신뿐이 아니니 이 또한 변수가 될 것이다.
이는 괴츠에게 희망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희뿌연 연기가 실내를 완전히 잠식했다.
콜록콜록-.
여기저기서 기침이 터져 나왔다.
“누, 누가 가서 창문 좀 열어봐!”
“창문 쪽에 가까운 사람 없어?”
누군가 그 목소리를 들은 것일까?
챙그랑-.
챙그랑-.
연달아 유리창이 깨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뒤.
실내를 잠식했던 연기가 열린 창문으로 빠르게 빠져나가며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조금 전의 상황이 불이 난 게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뭐야… 그냥 연기만 난 거였어?”
“대체 뭘 태웠기에 연기가 이렇게 난 거야?”
이에 사람들의 시선이 객실의 출입구 쪽을 향했다.
그곳에는 타다만 잔해가 남아 있었으니.
초록색 견장을 찬 기수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웬, 철 조각?”
그건 작은 광물 덩어리였다.
도무지 그 정체를 몰라 어리둥절해할 때.
저벅-.
어느새 나타난 마왕이 기수의 손에 든 금속 조각을 낚아챘다.
이를 유심히 살핀 마왕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헥사클이군.”
비록 완벽하게 정제된 것은 아니었지만, 헥사클이 확실했다.
헥사클.
이는 흔하디흔한 광물이었지만, 특정 성분과 만나면 그 성질이 변하게 된다.
바로 어마어마한 연기를 뿜어내게 되는 것.
이러한 성질을 이용해 헥사클은 주로 신호용 연막탄으로 사용되어졌다.
물론 이를 알더라도 평범한 사람은 쉬이 제조하지 못한다.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군인이거나.
혹은 닳고 닳은 경험 많은 용병만이 그 제조법을 알고 있을 뿐.
그리고 이것이 쓰였다는 건 지금 이 격실 내에 그런 존재가 들어와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런 이가 무엇을 노리고?’
생각이 그에 미치자 마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다급하게 고개를 튼 마왕의 입술이 살며시 벌어졌다.
“이, 이런?!”
당황으로 물든 마왕.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라졌다!’
자신이 의자에 걸어 두었던 힘의 결정이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였다.
마왕은 다급하게 주변을 훑었다.
격실 좌우로 깨져 나간 유리 창문.
그중 하나로 다가간 마왕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자 마왕성의 저 밑에 덩그러니 떨어진 물건이 시야에 잡혀 들었다.
그건 다름 족쇄였다.
“……?!”
놀란 마왕이 이번에는 반대편 유리창으로 가서 확인했다.
그곳에 떨어진 건 다름 아닌 수갑.
이에 마왕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장면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누군가가 객실의 뒤쪽에 헥사클을 태워 대량의 연기를 발생시켜 혼란을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이 혼잡스럽게 얽힌 순간 연기 속에서 움직여 힘의 결정을 탈취한 뒤.
수갑과 족쇄를 풀어 던져서 창문을 깨뜨려서 연기를 빼내는 모습.
‘일부러 연기를 뺐다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의도는 없었다는 뜻이고, 족쇄와 수갑을 이용했다는 건… 공주 역할을 맡은 지인 중 하나였다는 소리일 거다.’
그건 이 일을 벌인 게 요람의 기수 중 하나라는 뜻.
일단 그 기수가 대체 어떻게 헥사클을 이용해 연막탄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수갑을 풀어냈는지는 차후에 밝혀낼 문제였다.
지금 중요한 건 힘의 결정이 도난 당했다는 것.
마왕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깃들었다.
‘어차피 이 성을 나가도 갈 수 있는 곳은 하나뿐이다.’
이 마왕성이 있는 지형을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출렁다리 하나뿐.
다시 빠르게 움직인 마왕이 다른 창문을 벌컥 열었다.
마왕성에서 출렁다리가 보이는 창문이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저깄군.’
저 멀리.
검은 머리의 누군가가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품에 힘의 결정을 안고 말이다.
‘그새 저기까지 갔다니.’
서늘한 미소를 머금은 마왕이 빠르게 자신의 검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
탁-.
그대로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뭐, 뭐야?!”
“왜 저래?”
마왕의 난데없는 행동에 많은 이들이 사태 파악하지 못하고 당황한 얼굴을 해 보였다.
하지만 의외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다름 아닌 괴츠였다.
‘힘의 결정이 도난당했다고?’
조금 전 마왕이 검을 챙겨 나갈 때, 힘의 결정을 담아 둔 램프는 보이지 않았다.
그건 다시 말해 이미 힘의 결정이 거기에 없었다는 뜻.
이에 괴츠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그리고 생각이 이어질수록 모든 정황이 이어지고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자신을 마왕의 영역으로 밀어 버림으로써 마왕을 권좌에서 일으켜 세우고.
거기다 좌중의 이목을 자신과 마왕에게 집중시켜 놓은 뒤.
연기를 피워 내 혼란을 만들고 힘의 결정을 탈취해 유유히 사라질 수 있는 존재.
그리고 그 미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시도할 정도로 살짝 눈깔이 돌아 있던 사람.
그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올빼미 군?”
그 순간 괴츠는 깨달았다.
유리가 잠잠히 쥐 죽은 듯 누워있던 건 단지…….
대형 사고를 치기 직전, 힘을 비축하고 있었던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 * *
‘고마워, 아저씨!’
유리는 세상 어딘가에 있을 그를 향해 감사를 전했다.
이번 일은 온전히 그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용병 아저씨가 자물쇠 따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그가 헥사클을 이용한 신호용 연막탄 제조법을 알려 주지 않았다면.
이번 일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거다.
아니, 시도한다고 했어도 성공 확률이 높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한이 자신에게 마체술을 알려준 존재였다면.
용병 아저씨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쓸 만한 온갖 잡기를 알려 준 존재였다.
그리고 그 스승의 가르침 덕분에 원하는 것을 손에 넣게 된 유리.
“헤…….”
그는 강한 성취감에 휩싸였다.
목적을 달성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이 짜릿한 기분!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붉은 입술을 비집고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헤헤… 헤헤헤.”
물론 그건 단순히 성취감에 기꺼워하는 웃음만은 아니었다.
물질적 충족감이 채워졌을 때, 나오는 쾌락 가득한 웃음이기도 했다.
유리는 품에 안은 램프를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헤헤, 넌 내 거다!’
마치 사랑에 빠진 듯.
절대로 널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착 어린 시선.
만약 우리 사이를 방해하는 이가 있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한 광기마저 섞인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유리는 이내 냉철해졌다.
‘이제 절반 왔다.’
수갑과 족쇄를 풀어내고.
힘의 결정을 훔쳐 마왕성을 빠져나오는 것까지.
그 모든 과정은 힘의 결정을 손에 넣기 위한 여정 중 겨우 절반 정도에 해당될 뿐이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완벽하게 힘의 결정을 자신의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테레시아를 찾아야 했다.
얼굴을 굳힌 그가 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가 향하는 곳은 마왕성이 있는 지형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다리.
그리고 마침내 유리가 출렁다리의 지척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