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51
150화. 공주가 마왕성을 탈출해 용사를 구하러 가는 이야기 (6)
목표했던 출렁다리까지 불과 몇 미터밖에 안 남은 순간.
찌릿-!
유리는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본능이 보내 오는 경고였다.
또한, 그간 무수히 유리의 목숨을 구해 준 경고였기에 그의 몸은 즉각 반응하였고, 이번에도 역시 유리를 위험에서 구해 냈다.
훙-.
거친 파공음과 함께 유리의 머리 위에서 사선으로 떨어져 내린 무언가.
쾅-!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유리의 정면에서 커다란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곧이어 불어온 바람에 먼지가 순식간에 걷히고, 그 속에서 드러난 광경에 유리의 얼굴이 굳어졌다.
“검?”
유리의 정면에 떨어져 내린 건 다름 아닌 한 자루 검이었다.
바로 마왕이 의자에 기대어 두었던 검.
그것이 날아온 경로를 되훑어 본 유리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와, 무식하긴…….”
성의 꼭대기.
마왕이 그곳에서 몸을 내던지고 있었다.
저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마왕이 자신을 잡겠다고 저 높은 데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린 거다.
물론 자신도 똑같은 곳에서 뛰어내리기는 했지만…….
‘나야 운보로 최대한 충격을 죽여서 떨어졌고.’
그에게는 운보가 있었고, 거기다 최대한 벽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내려오기까지 했다.
한데, 저 마왕은 그런 것도 없이 몸을 내던진 거다.
아무리 마체술의 경지가 높다고 한들 저 정도 높이에서 방비도 없이 떨어지면 그 충격이 작지는 않았을 터.
‘뭐, 저래 준다면 나는 나쁠 게 없지.’
저걸로 마왕이 타격을 입었다면 유리로서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는 유리의 섣부른 판단이었다.
콰득-.
창밖으로 몸을 내던진 마왕의 손이 성벽을 파고들었다.
콰즈즈즉-.
거의 팔뚝 깊이까지 들어간 팔로 인해 성벽이 마치 쿠키처럼 부서지며 마왕의 낙하 속도가 서서히 늦춰졌다.
“……?!”
놀란 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그가 놀랄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 손을 성벽에 박아 넣은 마왕이 다른 한 손으로는 성벽을 뜯어내어 유리에게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훙-!
쾅-! 쾅-!
마왕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성벽을 뜯어 던졌고.
사람 머리통만 한 돌덩이가 날아올 때마다 유리의 주변에 강한 충격이 일며 먼지가 치솟았다.
‘이 미친?!’
출렁다리를 넘어 그대로 달아나려던 유리는 난데없는 돌덩이 폭격에 그대로 발이 묶여 버리고 말았다.
유리가 날아오는 돌덩이를 피하려고 정신이 없을 때.
과즈즈즉-.
성을 절반가량 내려온 마왕의 몸이 서서히 멈춰 서고.
성벽에서 손을 뽑아낸 마왕이 양다리로 힘차게 벽을 박찼다.
그러자.
우지지직—-!
마왕의 다리가 닿은 곳을 중심으로 성벽에 거대한 원형 균열이 가고.
쾅!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성벽이 터져 나가며 마왕의 육신이 사선으로 쏘아졌다.
후왕-.
실로 어마어마한 속도로 쏘아진 마왕은 그대로 유리의 머리를 지나쳤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던 마왕이 팔을 뻗어 맨 처음 그가 날려 보냈던, 땅에 꽂혀 있던 검 자루를 붙잡았다.
즈즈즉-.
땅에 꽂힌 검은 긴 흔적을 남기며 미끄러졌고, 날아가던 마왕은 검을 이용해 몸을 틀었다.
곧이어 그의 두 발이 땅에 닿고.
낮은 자세로 엎드린 그가 검과 함께 뒤로 쭉 미끄러지며 속도를 죽였다.
그 덕분에 땅에는 3개의 고랑이 파였다.
검이 남긴 흔적과 마왕의 두 다리가 남긴 흔적.
그 세 줄기 흔적은 그대로 출렁다리 바로 앞까지 이어졌다.
우득-.
정확히 출렁다리 앞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는 마왕을 보고 유리는 굳어 버리고 말았다.
“하… 이건 좀 반칙 같은데…….”
저 몸놀림과 반사 신경.
그리고 강인한 육체와 기운.
유리는 단언할 수 있었다.
눈앞의 마왕은 최소 공인 5단 이상의 강자란 것을 말이다.
‘그레타 위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공인 6단일 가능성도 있어 보이고.’
상대의 정확한 경지가 가늠되진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현재 자신으로서는 이길 수 없는 강자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유일한 탈출구인 출렁다리를 떡하니 가로막고 있었다.
유리가 그를 향해 볼멘소리를 냈다.
“마왕이 막 그렇게 성을 비우고 그래도 되는 겁니까?”
“…된다.”
“에이, 그래도 정해진 규칙이란 게 있는데.”
“그 규칙을 깨부순 게 바로 너다.”
무표정하면서 서늘한 눈빛.
마왕이 검을 들어 유리를 가리켰다.
“힘의 결정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아라.”
“왜요?”
“그건 이번 퀘스트에서 지급될 보상이다. 네가 건드릴 물건이 아니다.”
“그러니까 왜요?”
“내 말 못 들었나?”
“들었으니까 하는 말인데요? 이 퀘스트에 공주는 마왕성을 탈출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습니까?”
“…….”
“아니면, 공주가 마왕의 보물을 훔쳐서 달아나면 안 된다는 규칙이라도 있습니까?”
“…….”
“공주님 구하기 퀘스트니까 어찌 되었든 공주님만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면 되는 가잖아요, 아닌가? 굳이 공주가 꼭 용사를 기다리란 법 있습니까?”
“…궤변이다.”
“와, 이 마왕님이 뭘 모르시네. 사람이 다 똑같은 것도 아니고, 연약한 공주가 있으면 튼튼한 공주도 있고, 남한테 구함 받기보다는 알아서 살길 찾는 주도적인 공주도 있는 법입니다.”
“…….”
“물론, 손버릇 안 좋은 공주도 있는 법이고.”
그리 말하면서 유리는 힘의 결정을 꼬옥- 끌어안았다.
분명 유리의 이야기는 궤변이었다.
하지만 이에 마왕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지 못하는 건 실제로 이 퀘스트에 유리가 말한 규칙이 없기 때문이었다.
궤변이기는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닌 상황.
따라서 마왕이 할 수 있는 일은 조치는 하나뿐이었다.
“네가 스스로 되돌려 놓지 않겠다면… 내가 가져가겠다.”
힘으로 깨져 버린 규칙을 원래대로 붙여 놓을 뿐.
고오오오-.
마왕의 몸에서 거센 기세가 뿜어져 나오고, 요동치는 대기로 인해 그의 적발이 흩날렸다.
마왕이 내보이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유리는 신중한 눈빛으로 열심히 간격을 재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자신이 저 마왕을 뚫고 출렁다리에 도착하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마왕에게 영락없이 힘의 결정을 내줘야 할지도 모를 상황.
그럼에도 유리는 침착했다.
“그거 아세요?”
“…….”
“전 원래 제 손에 한번 들어온 건 남한테 안 넘깁니다.”
그 말과 함께 씨익 웃은 유리가 달리기 시작했다.
다만 그 방향이 영 이상했다.
“……?!”
지금까지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마왕마저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는 유리의 돌발 행동.
타닥-.
유리는 출렁다리를 향해서도.
혹은 도망치기 위해 뒤로 달아나는 것도.
그렇다고 성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아닌, 낭떠러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타다다닥-.
빠르게 달리던 유리가 살짝 상체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 몇 개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파측-!
서서히 속도가 붙은 유리의 신형에 뇌전이 번뜩였다.
팡!
파공음을 내며 사라진 유리.
그랬던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다름 아닌, 절벽과 절벽 사이,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이었다.
이대로라면 그대로 추락해 버릴 아찔한 상황.
그때 유리가 주워 온 돌멩이를 꺼내 던졌다.
동시에 운보를 극성으로 펼친 그가 돌멩이를 밟고 쭈욱 앞으로 나아갔다.
탁-.
유리가 기관 돌파 퀘스트에서 신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절벽을 전부 넘을 필요는 없다.’
중간에 출렁다리에 안착하기만 하면 된다.
유리는 두 번째 돌멩이를 밟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약 10m 정도를 순식간에 날아간 유리.
그의 얼굴을 굳어 있었다.
‘이거 좀… 아슬아슬한데?’
자신의 운보 실력은 기관 돌파 퀘스트 때보다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았다.
하지만 돌멩이를 밟고 날아가는 거리가 기관 돌파 퀘스트 때보다 짧았다.
그 이유는 바로 주변 환경 때문.
‘바람이 너무 강해.’
기관 돌파 퀘스트는 사실상 무풍지대였으나 이곳은 거센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강한 바람에 유리의 몸이 거세게 흔들렸고, 강한 저항에 도약 거리가 짧아진 거다.
훙-.
‘돌멩이가 모자라면 안 되는데.’
유리를 이를 악물고 도약을 이어 나갔다.
그때 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으니.
“멈춰라!”
바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마왕이 유리를 쫓아 출렁다리를 건너기 시작한 거였다.
이를 본 유리가 식은땀을 살짝 흘렸다.
‘이건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인데?’
시간이 촉박해진 유리는 다리에 힘을 더욱 불어넣었다.
그렇게 2개의 돌멩이를 전부 내던졌을 때.
‘어, 없다!’
주워 온 돌멩이가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젠장, 하나가 모자라네!’
딱 하나만 더 있으면 도달할 수 있는데, 돌멩이 하나가 모자란 것이다.
그리고 그때 유리의 주머니에서 잡혀 든 무언가.
‘어, 이거?’
그건 바로 괴츠가 앞구르기로 굴러갈 때 그의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열쇠였다.
무언가 중요해 보이는 열쇠였기에 일단 냉큼 주워 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유리.
나중에 이에 대해 알아보려 했지만…….
‘나중은 뭔 나중이야! 일단 살고 봐야지!’
유리는 냅다 열쇠를 집어 던졌다.
탁-!
그가 열쇠를 밟고 마지막 도약을 했으며.
그렇게 제 한 몸 희생한 열쇠는…….
퐁당-.
그대로 추락해 거센 물살에 집어삼켜지고 말았다.
한편, 열쇠를 밟고 허공을 가로지른 유리는 무사히 출렁다리에 안착할 수 있었다.
거기서 그는 그대로 뇌익을 펼쳐 순식간에 출렁다리를 가로질러 반대편 절벽에 도착했고.
그와 동시에 유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출렁다리의 줄을 잘라 내는 일이었다.
스걱-.
깔끔하게 줄이 잘려 나가자 지탱할 힘을 잃은 출렁다리가 빠르게 무너졌다.
그리고 그새 다리를 절반을 넘어왔던 마왕이 출렁다리와 함께 밑으로 추락했다.
그건 누가 보아도 영락없이 ‘해치웠다!’를 외쳤을 장면이었다.
보통이라면 여기서 마왕을 처리했노라 승리를 자축했겠지만…….
‘난 그런 초짜가 아니라고.’
원래 그렇게 미리 설레발을 치다가 되살아난 악당에게 호되게 당하는 법이다.
하여 유리는 곧장 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와 씨, 진짜 살았네?”
추락한 줄 알았던 마왕이 어느새 이쪽 절벽에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아마 출렁다리가 끊길 때 전력을 다해 뛰어 겨우 절벽에 닿은 듯싶었다.
이대로 시간을 준다면 금방 절벽을 기어 올라와 자신을 따라올 터.
이에 유리는 상의를 벗어 힘의 결정을 돌돌 싸맨 다음 질끈, 상체에 묶었다.
그의 눈에 결연한 의지가 깃들었다.
‘내 목적은 마왕을 잡는 게 아니야.’
그의 목적은 퀘스트를 끝내고 힘의 결정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
하여 여기서 마왕과 드잡이질하는 것보다 테레시아와 함께 이 퀘스트를 끝내는 게 훨씬 쉬운 길이었다.
그리 결론을 내리고 그대로 달려 나가려던 유리.
“아, 맞다.”
그는 무언가를 까먹었다는 얼굴로 우뚝 멈춰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사람 머리통만 한 돌덩이 몇 개를 주워 와서는…….
“이거나 처먹어라!”
절벽 밑을 향해 힘차게 집어 던져 버렸다.
조금 전 당한 일에 대한 뒤끝 있는 복수였다.
콰득-.
절벽 아래에서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유리는 이를 확인조차 하지 않고 뒤돌아 달려 나갔다.
자신의 용사님, 테레시아를 찾아서.
* * *
마왕이 창밖으로 뛰쳐나간 순간.
우르르 창문에 달라붙은 공주들은 성 밖에서 일어난 모든 상황을 생생히 관람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끊어져 물속으로 처박히는 출렁다리를 보고 넋이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거 자르면 우린 어떻게 나가냐?”
“다, 다른 다리가 있지 않을까?”
“없으면?”
“글쎄…….”
창문에 붙어 상황을 지켜본 이들이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낼 때.
단 한 명이 의문 섞인 목소리를 냈으니.
“…뇌익?”
그리 작게 중얼거린 괴츠 뢰턴은 저 멀리 사라지고 있는 유리의 뒷모습을 놀란 눈으로 좇았다.
* * *
유리가 떠나고 한참 뒤.
텅 빈 자리에 거센 바람만이 맴돌 때.
턱-.
절벽 위로 큼지막한 손이 턱-하니 나타났으니.
핏줄 솟은 손이 부들부들 떨며 힘을 주자, 피 칠갑이 된 얼굴이 절벽 위로 불쑥 치솟았다.
“크르…….”
머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짐승 같은 신음을 낸 마왕.
“주… 죽인다.”
그의 두 눈에 푸른 살기가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