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66
165화. 서열 (4)
전신 갑주를 걸치고 온 군터를 보고 유리는 순간 너무도 신나고 말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야, 저거 완전 때리기 좋게 생겼잖아?’
좋은 물건이 손에 들어오면 써먹고 싶은 마음이 생기듯, 유리도 마검을 완성하고 이를 대련에 써먹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검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초 남짓.
문제는 고작 그 3초를 사용하고 나면 유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하여 원거리 공격수인 아린이나,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테레시아는 유리가 마검을 사용할 낌새만 보여도 멀찍이 도망쳐 버렸다.
애초에 마검에 맞으면 답이 없다는 걸 알기에 하는 행동이었다.
따라서 유리가 마검을 사용할 수 있었던 건 뽀삐와의 대련 때뿐이었다.
아니, 말이 대련이지… 사실 유리가 뽀삐의 방패를 마검으로 후려갈기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그거까지는 좋았다.
방패를 후려갈기는 손맛이 상당히 찰지고 쫄깃쫄깃했기에 유리는 매우 만족했다.
다만 문제는…….
[배고프다!] [유리, 얘 이제 못 해 먹겠다는데?]마검에 몇 번 얻어맞은 뽀삐가 퉁퉁 부은 팔을 부여잡고 파업을 선언했다는 거다.
안 그래도 과거, 그레타에게 성권으로 두들겨 맞고 튕겨 나갔던 뽀삐에게 있어 유리의 마검은 트라우마를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뽀삐마저 자신의 마검을 안 받아 주니 써먹을 때가 없던 유리.
그런 그의 앞에 전신 갑주를 둘둘 두른 군터가 나타났다.
딱 봐도 엄청 튼튼할 거 같고.
거기에 자신이 마검을 사용할 줄 안다는 사실과 심지어 그 마검이 고작 3초짜리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존재.
한마디로 후드려 패기 좋은 실험 대상이란 소리였다.
‘저 정도 무장이면 얻어터졌다고 한 방에 뒈지지는 않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하여 마나도 아낄 겸 마검의 위력을 좀 줄여 사용하려 했다.
그런데…….
‘아… 조금 쎘네?’
원래는 그저 상대를 타격하는 순간에만 아주 살짝 마검을 발현할 생각이었다.
아주아주 살짝, 톡하고 건드리는 느낌으로?
그런데 조작 미숙으로 생각보다 과한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마나가 3분의 1이 날아간 걸 보니 대충 1초쯤 마검이 발현된 모양이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후왕-!
어마어마한 속도에, 돌풍을 일으키며 날아간 군터가 원형 경기장 벽면에 틀어박혔다.
그와 함께 터져 나온 폭음.
콰아아아앙-!
푸스스스-.
경기장의 벽이 무너지며 희뿌연 먼지가 피어올랐다.
* * *
오들오들.
“배, 배고프다…….”
“우쭈주, 괜찮아, 우리 뽀삐 떨지 마. 저거 안 아파. 네가 처맞은 것도 아니잖아?”
경기장에서 벌어진 일에 뽀삐가 트라우마로 고통스러워하며 어깨를 덜덜 떨어 댔다.
아린은 언제 챙겼는지 모를 건량을 우물거리며 뽀삐를 토닥여 주었다.
그건 그나마 경기장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대충이라도 눈치챈 두 사람이기에 보일 수 있는 반응이었다.
아린과 뽀삐를 뺀 나머지 50기.
150여 명에 달하는 그들은 그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몇몇은 침까지 흘려 댔다.
“어……?”
“…아?”
“에?”
“…헛?”
군터가 날아가 벽에 처박히고, 한 발짝 늦게 여기저기서 다양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시각적으로 한 번 놀랐고.
그걸 분석하는 뇌가 2차로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뒤늦게 신음이 흘러나온 거다.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들이 본 건 딱히 없었다.
그저 대결이 시작되자마자 군터가 달려들었고.
눈 한 번 깜빡하기도 전에 도로 튕겨 나갔다는 것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지켜보는 이들의 뇌가 오류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군터가… 그 군터 아이언스가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고? 어… 생각보다 군터가… 약했던 건가? 아닌데 군터 안 약한데? 어, 아니… 그래도 저걸 보면 약한 거 같기도 한데? 아… 아닌가?”
누군가가 정신을 못 차리고 중얼거리는 소리에 한쪽에서 어이없다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군터가 약하다고?”
목소리의 주인공은 클라리스 반이었다.
그는 잔뜩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전신 갑주 무장을 한 기사의 차징(charging)은 어지간한 군마의 돌진보다 더 강하다.”
이는 똑같이 전신 갑주를 착용하는 클라리스였기에 할 수 있는 증언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 군터의 차징은… 완벽했다. 너 같은 고기 방패를 몇 줄로 세운들 전부 육편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 아마 우리 중 군터의 저 차징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될 거다.”
클라리스가 살짝 이를 악물었다.
“그런 군터가… 약한 게 아니냐고? 정말 나와 똑같은 걸 본 게 맞냐? 그딴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새끼에게 여기 앉아 있을 자격 따윈 없다. 당장 짐 싸서 집으로 꺼져 버려!”
이에 ‘군터가 약한 거 아닐까?’라는 말을 꺼낸 이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그, 그럼 저건 뭔데? 그게 아니면 저 상황을 뭐로 설명할 수 있는데?”
“그건 유리 홀랜드가… 너무… 터무니없이 강한 거다.”
답하는 클라리스의 목소리가 잘게 떨려 왔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 저건 나 따위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저건 숫제…….”
“…….”
“…괴물이다.”
그리 말하는 클라리스의 눈에 휘휘 어깨를 돌리는 유리의 모습이 투영됐다.
이는 비단 클라리스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걸… 이긴다고?’
‘저… 괴물을?’
완장 뺏기 통합 퀘스트에서 유리에게 전멸당한 분대원 중 몇몇이 그를 가리켜 ‘괴물 새끼’라 칭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를 들은 대다수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전멸당한 분대 놈들이 자신들의 나약함을 가리기 위해 유리에게 과한 별명을 가져다 붙인 거라 여긴 거다.
유리가 강하게 인식되면 될수록 한 명에게 전멸당한 그들의 체면이 설 테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아니, 그들의 말은 옳으면서도 틀렸다.
유리 홀랜드, 그는 괴물 새끼 따위가 아닌, 진짜 괴물이었다.
그렇게 이날, 이 시점을 기점으로.
그동안 그나마 동기들에게 인간 대접을 받던 유리가 모두의 뇌리에 괴물로 등극했다.
* * *
프스스스-.
돌가루와 흙먼지가 가라앉고.
꿈틀-.
무너진 경기장의 돌무더기 사이, 기절한 듯 널브러져 있던 군터의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다.
“쿠, 쿨럭-!”
터져 나온 기침.
그와 함께 정말로 기절했던 군터의 의식이 서서히 돌아왔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귓가에 연신 윙윙-거리는 이명이 들려왔다.
온몸 곳곳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뇌가 쿡쿡 쑤셔 왔다.
그러나 그 덕분에 군터는 오히려 정신이 점점 또렷해졌다.
동시에 그는 깨달았다.
‘내가 당한… 건가? 그것도 일격에?!’
관객석에서 구경하는 이들도 놀랐지만, 그 누구보다 놀란 이는 다름 아닌 군터였다.
일격.
단 한 번의 공격에 자신이 나가떨어지다니.
누구보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만큼 군터가 받은 충격은 컸다.
‘뭐에… 뭐에 당한 거지?’
하지만 숨이 턱하고 막혀 버린 탓에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쿨럭-.
기침과 함께 섞여 나온 핏물이 안면 가리개에 튀었다.
투구 안에 퍼지는 진득한 혈향에 숨쉬기가 힘들어지자 군터는 안면 가리개를 올렸다.
철컥-.
“흐, 흐헉!”
맑은 공기를 마시니 그제야 살 거 같았다.
군터는 피 묻은 입술을 훔치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전신 갑주의 가슴에서 복부까지, 사선으로 길게 이어진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새것이었던 전신 갑주가 베어진 것이다.
이를 보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며 조금 전 못다 한 생각이 떠올랐다.
‘도대체… 그게 뭐였지?’
언뜻 보기는 했다.
찰나의 순간, 자신을 덮쳐든 황금빛 기운을.
그것에서 풍기는 지극히 위험한 느낌에 순간적으로 검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면.
공격이 아닌 방어의 자세를 잡고 몸을 뒤로 물리는 판단하지 않았다면, 전신 갑주가 아닌 자신의 육신이 잘려 나갔을 것이다.
군터는 돌무더기에 누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충격을 흘렸음에도… 이 지경이 된 건가?’
그 사실에 군터는 헛웃음이 흘렸다.
“…괴물이군.”
유리가 강할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하고는 있었다.
유리가 요람의 증명 시험에서 보여 준 모습.
백보 의식에서 보여 준 모습.
그리고 자신과 대립하며 흘린 기운.
그 모든 걸 고려했을 때, 유리의 성장은 상당히 빨랐고 아마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해졌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래도… 적당히란 게 있는 거다!’
1년 4개월 전, 고작 손에 든 검의 무게조차 이기지 못해 휘청거리던 소년이.
태어난 이래 줄곧 단련을 거듭해 온 자신을 일격에 날려 버리다니.
이 무슨 터무니없는 재능이란 말인가.
신이 존재한다면 한 사람에게 이따위 부조리한 재능을 주지는 않았을 거다.
오로지 악마만이 이러한 재능을 선사할 것이다.
드득-.
군터는 돌무더기를 짚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멍청함에… 대가를 치른 건가.’
군터는 유리가 그 검은 괴물, 화신만 사용하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다.
언젠가는 유리의 성장 속도에 추월당하는 날이 오겠지만, 지금만큼은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이 유리 홀랜드를 꺾을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건만…….’
모든 게 자신의 멍청한 오판이었다.
자조적인 미소를 짓던 군터는 조금 전에 깨달은 자신의 속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아아… 나는… 치졸한 패배자였구나.’
유리가 더 성장하기 전에 그를 꺾어 보겠다는 진실한 마음.
그건 이미 자신이 패배를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현재의 승리만을 쟁취하려 했었다.
그것이 정신 승리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품고 있던 주제에 온전한 상태의 유리 홀랜드와 붙어 보겠다며 휴이 머몬에게 처음을 양보해 달란 소리를 했다니.
‘지친 상태의 유리 홀랜드를 꺾는다면 나의 승리가 퇴색될 거 같았던 거냐? 멍청한 놈!’
군터는 자신의 행동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무엇이 나의 신념이고, 무엇이 옳단 말인가!’
군터는 손을 뻗어 주변을 더듬었다.
덜그럭-.
그의 손끝에 검자루가 걸려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군터의 검은 그 와중에도 멀쩡했다.
군터는 이를 집어 들었다.
“크윽!”
그가 검을 땅에 꽂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전신에 이는 격통.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육체.
당장에라도 다시 고꾸라질 듯 위태로워 보였지만, 그럼에도 군터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를 악문 노력 끝에 그는 몸을 일으켜 세우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는 매섭게 정면을 노려보았다.
저 멀리, 경기장의 중앙에 멀뚱히 서 있는 유리 홀랜드를 보며 군터가 다시 검을 세웠다.
‘유리 홀랜드가 그릇되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자격 따윈… 내겐 없다.’
다른 이의 허물과 부도덕을 지적하기에는 자신 역시 올곧은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하여 군터는 그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동시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적 기준을 치워 버렸다.
대신 그는 한 가지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지극히 요람에 어울리는 기준을.
‘옳고 그름 따윈 중요하지 않다, 내가 믿는 것이 진정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나의 해법이다.’
자신에게는 자신의 해법이.
유리에게는 유리만의 해법이.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가진, 각자만의 풀이법이 있으리라.
하지만 그 많은 해법이 모두 정답이 되는 건 아니다.
자신만의 해법을 오롯이 정답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
그건 다름 아닌 ‘힘’이었다.
그리고 군터에게 있어 그 힘의 기준이 될 존재는…….
‘나의 뜻을, 나의 해법을 관철하고자… 나의 힘을 증명하고자!’
그건 바로 저 멀리 서서 그를 오연하게 바라보는 유리였다.
‘너를 넘어서겠다, 유리 홀랜드!’
그렇게 검주의 시대, 검주가 만든 판에 어설프게 한 발만을 걸치고 있던 군터가 온전히 두 발을 디딘 순간.
그의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 * *
자신이 조금 과하게 힘을 쓴 걸 알기에 유리는 군터가 일어나지 못하리라 여겼다.
하여 군터가 돌무더기에서 일어설 때 유리는 살짝 감탄했다.
“오? 그 와중에 충격을 어느 정도 흘린 모양이네?”
확실히 저 녀석은 그냥저냥 한 어중이떠중이와는 질이 달랐다.
그 짧은 순간에도 위기를 감지하고 자신의 공격을 흘리다니.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군터의 재능은 충분히 입증됐다.
하지만 아무리 충격을 어느 정도 완화했다 하여도, 그건 즉사할 뻔한 게 중상 수준이 된 거였다.
그건 때린 유리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쉽사리 일어나지 못할 몸 상태로 저리 일어선다는 건 그만큼 의지가 대단하다는 뜻.
유리는 검을 세운 군터를 보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한 대 더 때려 볼까?’
의외로 잘 버티는데?
저 정도 의지면 한 방 더 버티지 않을까?
‘그러다 죽으면… 뭐, 그게 지 운명인 거지.’
그러게 그냥 가만히 누워 있으면 되는 걸 누가 아득바득 일어나래?
누가 봐도 처맞겠다는 뜻 아닌가?
유리가 그렇게 겨우겨우 죽다 산 놈을 한 대 더 후려치냐 마냐로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스스스스-.
검을 세운 군터에게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게 무슨 현상인지 유리가 몰라볼 리 없었다.
“…돈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계속해서 쳐다봐도, 저건 돈오 상태가 분명했다.
“…….”
그렇게 한참 동안 멀뚱히 눈을 끔뻑이던 유리에게서 짜증 섞인 욕설이 튀어나왔다.
“시발,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