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80
179화. 5×5의 싸움 (1)
흰 머리를 땋아 내린 적안의 미소녀.
연신 눈을 끔뻑이던 율리아 싱은 손가락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켰다.
“책사? 나 말하는 거야?”
그녀의 반응에 유리는 피식거렸다.
“그러면 여기에서 그 호칭으로 불릴 정도로 머리가 쓸 만한 사람이 그쪽 말고 또 누가 있을까요?”
유리의 칭찬에 율리아가 조금은 배시시 웃어 보였다.
“뭐, 그렇기는 하지.”
“거기다 책사 자리를 맡겨도 불만이 나오지 않을 사람도 그쪽뿐이고.”
“그것도 맞는 말이고.”
율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율리아의 정체를 알고 있는 2년 차와 3년 차는 유리가 그녀를 책사라 칭했음에도 별다른 반발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50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율리아 싱 선배다.”
“아까 이름 부를 때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싱 가문 사람이 있었구나.”
“은환의 현가 사람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되다니…….”
요람에서 보낸 9개월이 헛된 시간이 아니었는 듯 50기 대부분이 율리아를 알아보았다.
물론 조금 전 편 가르기에서 이름이 불린 덕분에 그녀를 알아보는 이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그렇게 율리아의 등장으로 좌중의 시선이 다시 유리 일행에게 몰려들었다.
아니, 어느새 흑선 내 자리한 백군 소속 기수들이 유리와 그 일행들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모여들어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유리가 율리아를 향해 물었다.
“우리의 머리 좋은 선배님께서 청군이 아닌 백군으로 왔다는 건… 분명 머릿속에서 어느 정도 계산이 끝나서겠죠? 승률 계산이?”
그 이야기에 율리아를 향한 좌중의 시선이 살짝 강렬해졌다.
“확실히… 율리아 정도면 충분히 청군으로 가고도 남았을 텐데?”
“그러게? 쟤는 왜 백군으로 온 거래?”
“혹시… 율리아한테 무슨 계획이라도 있나?”
여기저기서 술렁거림이 번져 나갈 때.
그들의 궁금증에 답을 준 건 율리아가 아닌 괴츠였다.
“그녀가 이 백군으로 온 건… 어쩌면 나 때문일지도 모르네.”
난데없이 끼어든, 촉촉하게 젖은 괴츠의 목소리에 좌중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 올랐다.
대체 이게 뭔 개소리냐는 듯한 표정들.
이에 괴츠가 몇 발자국 앞으로 걸어가 우수에 찬 눈으로 율리아를 바라보았다.
슬픔 가득한 눈빛의 그가 율리아를 향해 아련히 손을 내밀었다.
“어찌… 어찌하여 아직 나를 잊지 못하고 그리 괴로워하는 것이오, 백장미여! 그럴 거였으면… 애초에 나를 떠나지 말 것이지! 나와 헤어지지 말 것이지!”
괴츠의 절절한 외침.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단번에 깨달은 이들 사이로 경악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덩달아 저게 진짜냐는 듯한 시선이 율리아에게 쏟아졌다.
이에 율리아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저 인간이.”
거친 말을 내뱉으며 이마를 짚은 율리아.
그 모습을 본 괴츠가 다시금 양팔을 활짝 벌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소, 나의 백장미! 나를 붙잡으시오! 내 그대의 손을 뿌리치지 않으리라!”
얼른 이리 와 안기라는 듯한 눈빛.
이에 율리아가 정말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고.
타다닥-.
어느 순간 달리기 시작한 그녀가 몸을 날렸다.
그런데 그 모양새가 절대 괴츠에게 안기는 형태는 아니었다.
훙-.
거친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올라 수평으로 몸을 뉘인 율리아.
화살처럼 날아간 그녀의 양발이 괴츠의 명치에 그대로 틀어박혔다.
“컿?!”
율리아를 안을 준비를 하고 있던 괴츠는 무방비로 얻어맞고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 방향에는 둥그렇게 인의 장벽이 펼쳐져 있었지만.
훙-.
요람의 기수들답게 남다른 민첩성으로 날아오는 괴츠를 피한 이들.
이후, 괴츠가 통과하여 날아간 뒤 인의 장벽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닫혔다.
화끈하게 괴츠를 처리한 율리아를 향해 아린이 감탄한 얼굴로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후… 하여간 쓸데없이 입을 놀리긴.”
율리아가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돈하며 일어섰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유리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주먹으로 손바닥을 내리쳤다.
“아! 선배가 그거였구나!”
“…그거?”
“49기에도 있다던 저 변태 난봉꾼의 애인.”
“…….”
율리아의 입에서 또 한숨이 튀어나왔다.
“하아… 그래요, 저 변태 난봉꾼의 ‘전’애인이 나였네요.”
“전?”
“헤어졌다는 소리지.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건데 사실 저 인간이 좋아서 사귄 건 아니었어!”
“그럼, 왜?”
“뢰턴 가문에 대해 정보나 좀 모아 보려고 했던 거라고!”
“저 변태 자식 가문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로 의미 있는 가문인가?”
그 중얼거림에 율리아를 향했던 경악 어린 시선이 이번에는 유리에게 쏟아졌다.
마치 어떻게 뢰턴 가문에 대해 모를 수 있냐는 듯한 눈빛들이었다.
이에 유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거, 고작 가문 이름 좀 모를 수도 있는 거지.”
그걸 들은 군터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대체 어떻게 뢰턴 가문을 모를 수 있지? 대륙 최고의 검술 명가를 뽑는다고 하면 절대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가문 중 하나인데?”
“먹고사는 게 바쁘면 모를 수도 있는 거다. 이 권터 같은 새끼야.”
“…큭!”
욕은 아닌 거 같은데, 이상하게 욕을 먹은 듯 짜증이 치솟은 군터.
그가 주먹을 부들부들 떨자 뽀삐가 참으라며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군터를 한 방에 침몰시킨 유리가 율리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신은 백군이 질 거 같지 않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어느 정도 계산이 끝났으니 백군에 합류한 거지 않냐는, 조금 전 질문의 연장.
이에 율리아는 무감정한 목소리도 답했다.
“…48기 42명, 49기 8명. 그리고 50기 100명. 이게 우리 백군의 전력이야.”
진즉에 전력 수집을 끝냈다는 듯.
율리아는 거침없이 정보를 쏟아냈다.
“반면 청군은 48기 59명, 49기 57명, 50기 34명이지. 주 전력인 48기, 49기가 전부 상위 서열인 데다,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저쪽에는 그 권터 라이더까지 있어. 이 모든 조건을 전제로 계산했을 때, 우리 백군이 이길 확률은…….”
잠시 말끝을 흐린 율리아에게 모든 이가 집중했다.
다른 곳도 아닌 은환의 현가, 그 일원이 내린 계산이다.
이보다 더 정확하게 현 상황을 알려 주는 지표는 없으리라.
꿀꺽-.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에 율리아가 목소리가 이어졌다.
“…단 1%.”
그리고 때때로.
너무도 정확한 수치가 좌절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
얼마나 자신의 계산에 확신하는지, 단호하기까지 한 율리아의 음성에 좌중은 신음조차 흘리지 못했다.
오직 단 한 사람.
유리만이 율리아를 덤덤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1%? 고작?”
“그래, 고작 그 정도인 거지.”
“뭐, 0%인 거보다는 낫네. 그런데…….”
“……?”
“선배는 왜 백군으로 온 건데? 질 게 뻔한 이곳으로?”
어느새 유리는 율리아를 향해 반말을 하고 있었다.
그 변화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이를 알아차린 이는 오로지 테레시아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저 유리의 질문에 율리아가 어떤 답변을 할지, 그 사실에만 정신이 팔려 있을 뿐이었다.
이는 율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유리의 질문을 들은 그녀는 자신이 왜 백군에 왔는지를 떠올리는 데 신경이 쏠려 버렸다.
‘그러게… 난 왜 백군으로 왔을까?’
청군으로 가면 손쉽게 승리할 수 있으리란 건 굳이 머리 아프게 계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은 질 게 뻔한 백군 측으로 합류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유리 홀랜드가 그분의 제자라서?’
검주의 아들에게 도전할 부절검의 제자를 응원하기 위해?
이에 율리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런 이유가 아냐. 나는…….’
제법 길게 고민한 끝에 율리아는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내놓은 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그냥… 그냥 왔어.”
이를 들은 유리가 눈을 끔벅였다.
“그냥이라… 뭔가, 상당히 감정적인 답변이네.”
그 소리에 율리아는 살짝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율리아도 알고 있었다.
백군에 합류한 건 평소 자신답지 않은 행동이란 것을.
평소처럼 계산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린다면, 청군에 합류하는 게 무조건 옳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백군이 된 걸 후회하지 않았다.
율리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처럼 그건 이성적이지 않은 답변이야. 그런데… 간혹 그런 경우가 있긴 하더라고.”
“어떤 경우?”
“예감이 계산한 확률보다 더 잘 들어맞는 경우.”
율리아가 배시시 입꼬리를 흐트러뜨렸다.
“나 뭔가… 1%의 기적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어.”
그녀의 웃음에 유리도 피식 웃고 말았다.
* * *
청색 깃발을 펄럭이며 섬에 접근한 흑선이 선착장에 닿았다.
끼익- 쿵.
곧이어 부두에 계류된 흑선에서 청군 소속임을 보여 주는 푸른 완장을 찬 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이후 일사불란하게 선착장 인근의 백사장에 모이기 시작하는 청군 소속의 기수들.
그들의 움직임은 흡사 흑검병들을 보는 듯 상당히 군기가 잡혀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48기들이 솔선수범하여 먼저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그러니, 그 밑 기수인 49기와 50기의 행동이 빠릿빠릿해진 건 당연지사.
특히 겨우 34명뿐인 50기, 그들은 하나같이 눈알을 굴리며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언제 어디서 선배들의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랐기에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그 속에 속한 슐레만 한스도 긴장한 얼굴로 품 안에 든 수첩을 만지작거렸다.
‘이건… 귀한 기회다.’
무려 49기는 물론, 좀처럼 접점이 없는 48기의 실력을 엿 볼 수 있는 퀘스트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정보를 모든 정보를 모아야만 했다.
슐레만의 눈이 반짝였다.
‘이 선배들도 결국 언젠가는 수료할 터.’
그리고 수료와 동시에 높은 확률로 각자의 가문에서, 혹은 명망 있는 세력에서 좋은 자리를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을 인재들이었다.
사회에서 강력한 적수가 될 수도, 혹은 든든한 우군이 될 수도 있는 이들.
슐레만은 그런 인재들의 정보를 모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특히 그에 관한 정보를 최우선으로 모아야 한다!’
그 누구보다 우선하여 정보를 모아야 하는 대상.
자신이 오로지 그 사내 하나만을 바라고 청군에 합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
슐레만은 그 대상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마침내 발견할 수 있었다.
저벅저벅-.
마치 호위를 받듯 48기 5명에 둘러싸여 걸어오는 검은 눈의 제왕을.
꿀꺽-.
가장 늦게 흑선에서 내린 권터의 일행.
그들의 등장에 백사장 내의 공기가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워졌다.
백사장으로 들어선 권터는 정면에 보이는 숲을 향해 가볍게 눈짓해 보였다.
이에 권터를 호위하고 있던 이들 중 2남 1녀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한데, 그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타닥-.
백사장을 벗어난 세 사람은 순식간에 나무를 타고 올라 숲으로 사라졌고.
그로부터 30여 분 뒤.
숲으로 들어갔던 세 사람이 같은 시간에 똑같이 나타났다.
마치 그렇게 하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복귀한 그들은 빠르게 군터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려왔음에도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은 정찰대 셋.
그들은 신중한 눈으로 자신들이 본 것들을 보고했다.
“인공 섬 안쪽에서 나무를 이용해 격자 형태로 구분해 놓은 정사각형 지형 발견. 점령지인 것을 확인하였으며, 보초를 서고 있는 흑검병도 다수 발견하였습니다. 아마도 부정한 시도를 단속하는 이들 같았습니다.”
“점령지 안에서 모래시계가 사용될 소형 기관도 발견했습니다만, 지키고 있는 흑검병이 있어 접근할 수는 없었습니다.”
“섬을 직선으로 돌파한다면 10분, 아무리 늦어도 15분이면 반대편에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대기 중인 백군을 발견했습니다만, 편제까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쏟아지는 보고에 권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옆에 있는 적발 소년에게 명령했다.
“전원 시작 신호 대기, 편제는 기존에 계획했던 대로.”
“알겠습니다.”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적발 소년이 뒤에 모인 청군에게 뛰어갔다.
그리고 그는 곧장 48기를 모아 놓고 무어라 속닥였고, 이내 144명의 움직임이 부산스러워졌다.
48기에게는 미리 전달되었던 권터의 계획.
그에 따라 48기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49기와 50기를 움직이고 있는 거였다.
이는 오로지 48기를 주름잡고 있는 권터이기에 가능한 명령체계였다.
그렇게 144명의 편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을 즘.
휘이이이잉-.
기괴한 소리와 함께 인공 섬의 중앙에서 하늘로 치솟은 무언가.
그것은 높은 상공에 도달해 폭발을 일으켰다.
펑!
폭발과 함께 붉은 연기가 뭉게뭉게 터져 나왔지만, 이는 허무할 정도로 금세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좌중의 이목을 잡아끄는 데에는 성공했다.
또한, 그것이 첫 번째로 터진 붉은 연기의 원래 목적이었다.
청군에 속한 기수들이 긴장 어린 눈으로 허공을 바라볼 때.
휘이이이잉- 펑!
두 번째로 터진 노란색의 연기.
그로 인해 긴장감이 극에 달한 것은 물론이요, 기수들의 근육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힘을 머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휘이이이잉- 펑!
흑선 내에서 공지되었던 진짜 출발 신호, 초록색 연기가 하늘을 수놓자.
“가라.”
권터의 명령에 청군 150명이 일제히 숲을 향해 달려 나갔고.
저벅저벅-.
그 뒤를 다섯 호위에 둘러싸인 권터가 천천히 뒤쫓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시각.
섬의 반대편.
“자, 1%의 기적을 만들러 가 보자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선두를 차지한 유리.
그를 필두로 백색 완장을 찬 150명이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그렇게 숲으로 진입한 백군과 청군.
각기 150명에 달하는 두 세력의 움직임이…….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