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86
185화. 5×5의 싸움 (7)
가벼운 손가락 놀림.
그에 반해 절대 가볍지 않은 대사.
고작 1년 차의 햇병아리가 3년 차에게.
그것도 권터 라이더에게 던진 도발은 상황 불문, 사람 구분 없이 모두를 당황케 하기 충분했다.
심지어 괴츠마저도 말이다.
“올… 올빼미 군?”
평생 남을 놀라게 하는 존재였던 괴츠가 누군가의 행동에 놀라 말까지 더듬었다.
하지만 정작 도발의 대상이 된 권터는 그저 고요한 눈으로 유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가 그가 돌연 사방을 짓누르던 군림의 기운을 거둬들이니 여기저기서 숨통이 트인 소리가 들려왔다.
“흐헉!”
“하악, 하악.”
갑작스럽게 군림을 푼 권터를 향해 유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이건 왜 풀었대? 난 계속하고 있어도 상관없는데.”
여전히 도발적인 언사에 권터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도발에 반응해 온 건 다른 쪽이었다.
“시건방 떨지 마라, 50기.”
“응?”
쌍도끼를 좌우로 늘어뜨린 미셀 앙이 유리와 권터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는 한껏 인상을 찡그리며 기세를 끌어올렸다.
“제 주제도 모르는 놈이 권터 님 앞에서 함부로 주둥이를 놀려 대다니.”
진득한 살기가 묻어나는 목소리에 유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권터 님이라…….’
분명 같은 연차일 텐데도 완벽하게 윗사람을 대하는 듯한 태도.
그리고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뒤에서 구경하는 권터를 보고 유리는 피식거렸다.
‘그 짜증 나는 기운을 왜 거둬들였나 했더니.’
백보 의식에서 검주가 세상을 짓누르는 것과 비슷한 기운.
권터가 이를 거둬들인 건 간단한 이유에서였다.
‘간을 보겠다는 거네?’
속박된 이들 중에는 권터의 수족들도 있었다.
이에 권터는 자신을 대신해 수족들이 나서기를 원한 것이리라.
혹은…….
‘시험이거나.’
살짝 코웃음을 친 유리가 미셀을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아아, 그러시구나. 저같이 주제도 모르는 새끼는 고귀한 권터 라이더 님 앞에서 주둥이를 열면 안 되는 거였구나.”
“알았다면 당장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해라.”
“음, 용서라…….”
그리 중얼거린 유리가 미셀을 향해 눈웃음을 보냈다.
“그런데 선배, 그 전에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
의문 섞인 미셀의 시선과 마주친 순간.
유리가 정색하며 비릿한 음성을 흘리니.
“적당히 설치고, 따까리는 빠져.”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섬광이 번뜩였다.
콰릉-.
허공을 가른 뇌전이 그대로 미셀의 앞에 강림했고.
쾅!
“컥!”
우득-.
짧은 비명과 함께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며 미셀이 포탄처럼 튕겨 나갔다.
그렇게 한 번 강림한 미친 벼락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파측-.
미셀을 날려 버린 뇌전은 그대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쾅-!
“컥!”
또다시 섬광이 일어나며, 이번에는 아리스 무어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어?”
“……?”
“…어어?”
좌중은 고작 눈을 한 번 깜빡일 사이에, 미셀과 아리스가 날아가 버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눈을 끔뻑였다.
분명 두 눈으로 보긴 보았으나 그걸 뇌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이거 뭐가… 뭐지?’
‘그러니까… 어… 어?’
‘미셀과 아리스가 왜 날아간 거지?’
권터의 집사라 불리는 미셀과 명가 무어의 혈손 아리스.
권터의 최측근인 그들은 48기 내에서도 정상급 실력자들이었다.
미셀이 서열 3위, 아리스가 서열 5위.
그런 두 사람이 순식간에 당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다니.
이를 쉽게 믿을 수 있을 리 있겠는가.
특히 미셀의 모습은 처참했다.
그의 자랑이던 쌍도끼는 머리가 사라지고 자루만 남았으며, 심지어 양팔마저 부러진 것인지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미셀과 아리스를 멍하니 바라보던 좌중의 시선이 공터의 중앙으로 향하고.
파츠측-.
여전히 뇌전에 휩싸인 존재.
미셀과 아리스를 저 모양 저 꼴로 만든 이에게 고정되었다.
동시에 뇌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그들은 경악으로 두 눈을 크게 치켜뜰 수밖에 없었다.
“어?”
“저거……?”
“……?!”
그들은 보고 말았다.
유리의 검을 휘감은 찬란하기 이를 데 없는 황금빛 기운을.
“저, 저거… 진짜야?”
누군가 그리 중얼거렸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저건 분명 마검이란 것을 말이다.
훙-.
유리의 손에서 빙그르르 회전하며 궤적을 그린 마검이 권터에게 겨눠졌다.
“따까리를 이용해서 내 실력을 보고 싶어 하는 거 같기에, 적당히 보여 줘 봤어. 어때, 마음에 들어?”
권터는 여전히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에 유리도 답을 듣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앞으로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뭐, 그쪽에서 먼저 들어오지 않겠다면.”
유리의 검 끝이 지면으로 내려왔고.
“이번만은 특별히… 내가 먼저 들어가 줄게.”
탕-.
작은 폭약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유리의 신형이 앞으로 다시금 쏘아졌다.
이윽고 허깨비처럼 권터의 앞에 나타난 유리를 보고 좌중은 생각했다.
저건 무모하다고.
저 녀석은 고작 미셀과 아리스를 쓰러뜨린 거로 객기를 부리고 있는 거라고.
아무리 마검을 사용할 수 있다지만, 저 녀석도 결국 괴츠와 비슷한 꼴이 될 거라고.
모두가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쾅-!
‘어?’
황금빛 마검과 칠흑 마검의 격돌.
그리고 유리와 권터의 신형이 희끗희끗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하는 것을 목도하고.
‘어라?’
요람의 기수인 자신들의 눈으로도 좇기 힘들 정도로.
금빛과 흑빛의 궤적이 공중에서 어지러이 얽히는 걸 생생히 두 눈에 담긴 순간.
콰앙!
‘……?!’
좌중은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괴츠 뢰턴, 그는 칠흑의 마검에 맞서는 황금빛 마검을 멍하니 보며 홀린 듯 중얼거렸다.
“밀리지… 않아?”
자신의 마검이 단번에 깨져 버린 것과 달리, 유리의 마검은 팽팽하게 칠흑의 마검에 맞서고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강해…….”
바로 유리 홀랜드가 강하다는 것.
그것도 저 권터 라이더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혹은 버금갈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건 괴츠만이 아니었다.
“…허세가 아니었구나.”
살짝 풀린 눈을 한 율리아.
그녀의 기억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 * *
율리아의 시선이 점령지 5-1과 5-2에 꽂혔다.
유리가 자신 있게 혼자서 점령하겠다고 말한 바로 그 두 곳.
그녀는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불가능해.’
청군 시작 진영과 가까운 5-1과 5-2이니만큼 분명 청군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뚫고 점령지를 탈환하는 건 점령지를 먼저 선점하여 방어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든 일이리라.
‘이건… 안 되는 거야.’
율리아 역시 유리의 실력을 보았기에 알고 있었다.
‘그때 본 유리 홀랜드의 경지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음에도… 성검을 받아 냈지.’
그때 확인한 그 능력이라면.
경지 이상의 것을 발휘하는 유리의 그 기묘한 능력이라면.
어쩌면 혼자서도 1개 점령지 정도는 충분히 탈환할 수 있을지 몰랐다.
다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백군 시작 진영에서부터 5-2를 거처 5-1까지 가는 시간.
그리고 두 점령지를 탈환하는 시간까지.
그 전부를 통틀어 30분 안에 끝내야 했다.
아무리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계산해 봐도 이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저 녀석이라도… 이건 좀 무리 같은데?”
“그러게 말야.”
어느 정도 유리를 알고 있는 50기나 49기도.
“오만하군.”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네.”
나아가 48기까지.
그 모두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원래 유리의 일행이었던 이들만 살며시 고개를 끄덕일 뿐.
그렇게 부정적인 말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유리가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어차피 이 퀘스트 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잖아?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있고, 안 그래?”
“…….”
“그러니 그냥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와. 딱히 별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
“그러다가 이 퀘스트가 백군의 패배로 끝난다면 그때는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려. 니들이 무능한 게 아니고, 그냥 내 작전이 쓰레기 같아서 진 거라고. 내가 얼마든지 그 비난을 받아 줄 테니까.”
살짝 비아냥 섞인 말투에 좌중은 입을 다물었다.
그런 이들은 보며 유리는 씨익 미소 지었고.
“물론 나는 질 생각이 없어.”
이내 그 미소에 강한 자신감이 깃들었다.
“무조건 이긴다.”
* * *
무조건 이긴다.
처음에는 그 말이 유리의 허장성세라 여겼다.
권터 라이더를 겪어 보지 못한 이의 무지에서 비롯된 만용이라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쾅!
권터 라이더와 맞붙은 유리를 보며.
그리고 한 치의 밀림도 없이 공수를 주고받는 저 모습에 율리아는 깨달았다.
그때 했던 유리의 말은 허세가 아닌 자신감이었으며, 만용이 아닌 충분히 계산적인 승리 선포였다는 걸.
콰앙-!
큰 폭음이 울리고 치열했던 격돌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바짝 조여드는 긴장감 속에 서로를 바라보는 유리와 권터.
율리아는 그 둘을 보며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
그때 유리가 살짝 턱을 치켜들고 권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재미없군.”
무심한 눈길.
딱딱한 말투.
그게 조금 전의 권터를 따라 하는 것이란 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무심한 척.
혹은 장난스러움을 가장해, 유리는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가학적인 생각을 강하게 억눌렀다.
상대는 권터 라이더.
3년 차의 최강이자 흑룡패의 주인.
그리고 바로… 그 검주의 아들이었다.
그 생각에 유리는 당장이라도 성검을 뽑아내며 보란 듯이 권터를 날려 버리고 싶었다.
그를 단숨에 짓밟고, 이 사실을 검주가 알게 하고 싶었다.
고작 당신에게 열다섯 걸음짜리였던 내가 이렇게 성장했다고.
당신의 것을 이어받은 혈육도 나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보란 듯이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유리는 그런 감정을 필사적으로 참고 또 참았다.
‘이 기회를… 고작 그딴 식으로 날릴 수는 없잖아?’
상대는 검주의 아들이자 그의 마체술을 이어받은 자.
하여 가능한 권터에게서 많은 걸 보고, 듣고, 겪고, 느껴 봐야 했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낱낱이 파헤쳐 그 모든 걸 흡수해야 했다.
검주를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려놓은 그 마체술을!
‘그러니 더 열심히 움직여 보라고… 내게 더 많은 걸 보여 달라고, 권터 라이더!’
유리의 황금안이 이채를 머금었고.
쾅-!
다시금 격돌이 시작됐다.
* * *
유리의 등장과 도발.
이어서 그가 자신의 수족들을 날려 버렸을 때까지만 해도 권터는 유리를 무시하려 했었다.
하지만 황금빛 마검을 받아 내며,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된 순간부터 권터는 더 이상 무시로 일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강하군.’
유리 홀랜드는 요람의 그 어떤 기수보다도 강했다.
자신에게 충분히 대적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 사실은 아마 유리 홀랜드도 자신과 검을 부딪친 순간 분명 알아차렸을 것이다.
쾅-!
검을 맞댄 극히 짧은 순간.
황금빛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 권터는 수개월 전 유리 홀랜드가 백보 의식에서 보인 모습을 상기해 냈다.
넘어지고 넘어져도, 아득바득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던 그 모습.
그가 보기에는 그저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벌레와도 같은 모습이었으나…….
‘아버지께서는… 인정해 주셨지.’
자신이 형제, 누이들의 기록을 뛰어넘고.
주변 모두가 훌륭한 재능이라고 입이 닳도록 칭찬할 때도.
아버지는 자신에게 그 흔한 칭찬 한 번 해 준 적이 없었다.
‘그랬던 아버지께서…….’
영원한 절대자이자, 자신의 우상이 저 별 볼 일 없는 놈에게 상을 내려 준 것이다.
그 명백한 사실이 권터를 괴롭게 했다.
아버지가 그 누구에게도 칭찬과 상을 준 적이 없었을 때는 그게 당연한 일이고, 원래 그런 분이라 애써 자위하며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랬던 분이 다른 누군가에게 상을 줬다는 건, 자신이 그 상을 받을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또한, 자신이 그 상을 받은 유리 홀랜드보다 뒤떨어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권터는 그 사실을 억지로 머릿속에서 지우려 했다.
자꾸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질투심과 패배감의 싹을 잘라 내기 위해서.
‘고작 그런 놈에게 질투심을 품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하여 권터는 유리 홀랜드에 관한 걸 애써 모른 척해 왔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리만치 유리에 관한 소식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유리가 자신이 세운 퀘스트 기록을 갈아 치우고, 누구도 깨지 못할 대기록을 만들었다거나.
그로 인해 자신의 포인트 수입이 줄어들었다거나.
고작 1년 차인 주제에 49기의 퀘스트에서 괴상한 짓을 벌였다던가 등등.
애써 모든 걸 무시하려는 권터를 자극이라도 하듯 유리의 소식은 계속해서 전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유리 홀랜드와 맞붙고 나서 권터는 깨달았다.
‘…내가 틀렸군. 무시해서는 안 되는 거였어.’
놈은 ‘그저 그런 벌레’가 아니었다.
또한, 마냥 저냥 무시하고, 방치했었어도 안 되었다.
‘나는 놈을 인정했어야 했다. 유리 홀랜드가 아버지의 관심을 받을 만한 존재였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였어야 했다.’
그래서 놈이 자라지 못하게 짓밟았어야만 했다.
그렇지 못하고 이리 무시하고 방치한 결과, 놈은 자신의 턱밑에 검을 겨눌 정도로 자라나고 말았다.
이에 권터는 그 잘못을 바로잡고자 마음먹었다.
쾅-!
칠흑의 마검이 강하게 밀치니 유리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권터는 다시금 달려들 자세를 취한 유리를 향해 검을 겨누고 선언했다.
“오늘 여기서 너를… 짓밟겠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권터의 마검이 꿀렁꿀렁 기괴한 움직임을 보였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검은 기운이 일렁이자, 그와 동시에 권터에게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풍겨 나왔다.
금방이라도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 듯싶은 일촉즉발의 순간.
그런 상황 속에서 유리는…….
핥짝-.
마치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기라도 한 듯, 붉은 입술을 살짝 할짝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