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87
186화. 5×5의 싸움 (8)
유리를 향해 겨눠진 칠흑의 마검.
그 검디검은 기운이 마치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그러다 마침내.
슥-.
권터의 검이 허공을 사선으로 그었다.
‘뭐지?’
유리는 권터의 행동에 처음에는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곧이어 머리카락이 쭈뼛 솟아올랐다.
본능이 보낸 경고.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그의 정면에 초승달 형태의 검은 덩어리가 도달해 있었다.
‘뭐야, 이거?!’
마치 순간 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눈앞에 나타난 검은 초승달.
다급하게 뻗은 유리의 황금빛 마검이 초승달 형태의 검은 덩어리를 하늘로 쳐 냈다.
스캉- 콰아아앙!
검은 초승달이 공중으로 치솟은 순간, 누군가 내지른 경악 섞인 외침이 유리의 고막으로 흘러들었다.
“비, 비검?!”
이를 듣자마자 유리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앙?”
비검(飛劍).
마검을 외부로 발출하여 날리는 기예.
또한, 공인 5단이 필수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하는 원거리 기술이었으며, 한동안 요한이 유리를 들들 볶아 대게 만든 원흉이었다.
“시발, 이게 비검이라고?”
비검이 뭐냐고, 대체 어떤 거냐고 그렇게 물어봐도 나중에 몸 다 만들면 알려 주겠다고 한 요한.
그러면서 비검도 못 쓴다고 갈구기는 어찌나 갈구던지.
이제 비검의 ‘비’ 자만 들어도 절로 이가 갈리는 유리였다.
그런 그의 앞에 떡하니 비검을 쓰는 이가 나타났으니.
‘난 저거 못 하는데…….’
유리가 입맛을 다셨다.
동시에 그는 어째서 이 비검을 꼭 익혀야 하는지 조금 전의 일격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엄청 빠르네.’
자신과 권터의 간격은 족히 5m였다.
그 거리를 단숨에 격하고 날아온 초승달 형태의 마검.
마검에 대응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이에게 이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아무튼 저게 비검이라 이거지?’
그 비검을 권터가 사용했다는 건, 그가 공인 5단의 경지에 접어들었다는 뜻이었다.
좌중은 그 사실에 놀라 수군거렸다.
그러나 남들이 경악하건 말건 유리에게는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다부진 얼굴로 권터를 향해 말을 걸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말 하기는 좀 미안한데…….”
“…….”
난데없는 이야기에 좌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이어진 유리의 이야기.
“그거 어떻게 함? 비검이란 거.”
“…….”
“나 좀 알려 주라.”
그리 말하는 유리의 눈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초롱초롱 빛났다.
그걸 본 좌중은 깨달았다.
‘아… 다부진 얼굴이 아니었구나.’
저건 그냥 얼굴에 철판을 깐 거였다고.
이 상황에서 저딴 소리를 하다니.
유리 홀랜드란 녀석이 절대 평범한 놈은 아니라는 걸 좌중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권터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검을 연달아 휘둘렀다.
그러자 권터가 검을 휘두른 횟수만큼 검은 초승달이 유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사사삭-.
운보와 뇌익을 같이 펼친 유리는 이를 가볍게 피해 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유리가 피하리란 것을 당연히 예상했다는 듯 빠르게 이동한 권터가 다른 방향에서 비검을 날렸다.
그뿐만 아니라 유리에게 바짝 달려들어 검을 휘두르기도 했고.
또 유리가 물러나면 다시금 비검을 날려 왔다.
콰릉- 쾅!
카강!
근거리와 원거리를 오가며, 권터의 공세는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그때마다 유리가 피한 비검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이에 바빠진 건 둘의 싸움을 구경하던 이들이었다.
“으, 으악?!”
“수, 숙여!”
비검을 피하고자 바닥에 바짝 엎드린 이들.
낮은 포복으로 바닥을 기어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그들은 머리 위로 날아가는 비검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까지는 싸움 구경하다 비검에 맞아 죽은 이가 없다는 거였다.
하지만 모든 비검을 피할 수는 없는 법.
샥-.
권터의 비검이 49기 소녀에게로 날아들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그녀는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바로 그 순간.
스- 쾅-!
무지갯빛 섬광이 끼어들어 검은 마검을 맞받아쳤고.
즈그극-.
“큽?!”
폭음이 들린 지점에서 괴츠가 뒤로 튕겨 나와 흙바닥을 긁으며 주륵 미끄러졌다.
“괴, 괴츠 선배님?!”
그제야 자신이 죽을 뻔했고, 괴츠가 몸을 내던져 구해 주었다는 것을 깨달은 49기 소녀.
그녀가 걱정을 담아 외치자 괴츠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난 괜찮으니, 고개 숙이고 얼른 물러나게!”
그 말에 49기 소녀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기어가기 시작했다.
멋있게 후배를 위기에서 구해 낸 괴츠.
그러나 괜찮다고 한 그의 얼굴은 말과 달리 단단히 질린 상태였고, 검을 쥔 손이 덜덜거리고 있었다.
‘올빼미 군, 자네… 이걸 어떻게 그리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내고 있는 겐가?’
괴츠의 떨리는 시선이 권터의 마검과 비검을 여유롭게 상대하는 유리에게 닿아 떨어질 줄 몰랐다.
쾅-!
이후로도 연달아 폭음이 들려오고.
좌중이 무사히 점령지 외곽으로 몸을 빼냈을 무렵.
유리와 권터의 싸움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조금 전까지 이어졌던 격돌이 무색하리만치, 유리와 권터는 꽤 오랜 시간 서로를 노려보기만 할 뿐,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이대로 싸움이 끝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계속되는 적막.
그러나 둘 사이의 긴장감은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고조되어 갔다.
‘저 자식… 마나가 대체 얼마나 되는 거야?’
그사이, 유리는 쉼 없이 비검을 날려 대고도 여전히 팔팔한 권터의 마나양에 놀라 혀를 내둘렀고.
‘이 정도로는 안 된다는 건가?’
권터는 유리를 짓밟기 위해서는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굳혔다.
‘그렇다면… 그리해 주지.’
스스스-.
그리 결심한 권터의 육신에서 검은 기류가 솟아났다.
라이더가(家) 비전 마체술.
흑혈(黑血).
맹렬하게 치솟던 검은 기류는 어느 순간, 권터의 몸으로 흡수되듯 사라졌다.
그것이 신호가 되었음일까.
우웅-.
마침내 정적이 깨지며 강한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쿵-!
짧게 발을 구른 권터의 육신이 앞으로 쏘아졌다.
좌중이 이를 인지했을 땐, 이미 그는 유리의 앞에 도달해 있었으니.
권터의 움직임을 제대로 읽은 건, 그곳에서 오로지 유리뿐이었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검은 마검을 피해 빠르게 몸을 튼 유리.
사락-.
그는 끄트머리가 살짝 잘려 나가 흩날리는 앞 머리카락에 눈빛이 굳어졌다.
‘아까보다… 빨라졌다고?’
권터의 속도는 조금 전보다 훨씬… 족히 1.5배 이상은 빨라져 있었다.
또한, 달라진 건 단순히 속도뿐만이 아니었다.
쾅-.
빠르게 꺾여 들어온 권터의 검을 쳐 낸 순간 유리는 손아귀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뭔, 힘이?!’
더 빨라지고, 더 강해진 권터.
쾅- 쾅-!
검을 맞댈 때마다 폭음이 울리고, 처음에는 권터의 검을 전부 받아 내던 유리도 슬슬 정면 대결을 피하기 시작했다.
유리의 눈에 의문이 깃든 건 당연지사.
‘어떻게 된 거지?’
처음에는 권터의 변화가 일시적인 현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일전에 맞붙은 마왕이 그러했듯, 분노로 인한 특수한 현상 정도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 새끼, 점점 더 강해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권터는 더 빠르고, 더 강해지고 있었다.
이는 분명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쾅-!
속도에서는 여전히 자신이 우위에 있었지만, 마검과 마검, 힘과 힘의 대결에서는 이제 확연히 밀리고 있었다.
‘그동안은 날 봐주고 있던 건가?’
유리는 처음에 그리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내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럴 리 없어.’
권터와 처음 격돌한 순간, 유리는 직감했다.
권터는 강하다.
그러나 자신이 더 강하다.
이대로 붙는다면 자신이 이긴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그 직감이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여전히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긴 했지만, 쉽게 이길 것 같던 느낌이 이제는 ‘이대로라면 조금 힘 좀 써야 이기겠는데?’라는 쪽으로 기울고 있던 거다.
‘기교가 늘거나 공격이 정교해진 건 아니야, 이건 그냥…….’
권터의 신체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가파르게 강해지고 있을 뿐.
스륵-.
막 운보를 펼쳐 날아오는 공격을 피해 낸 유리는 그제야 권터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저건 또 뭐야?’
조금 전까지 멀쩡했던 권터의 육신.
그런데 지금, 옷 밖으로 드러난 그의 피부에 검은 선이 죽죽 그어져 있었다.
마치 혈관을 타고 검은 피가 흐르는 듯, 꺼림칙한 모양새.
심지어 처음에 팔뚝 정도에 그쳤던 검은 핏줄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영역을 넓혀 나갔다.
쾅-.
괜히 권터의 몸 상태를 자세히 보겠다고 깊숙이 들러붙었다가 강하게 얻어맞고 튕겨 나간 유리.
즈그극-.
흙바닥을 긁으며 뒤로 밀려난 유리는 검은 핏줄이 어느새 권터의 목 부분까지 올라와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그는 강한 확신을 얻었다.
‘저거였군.’
분명 저 검은 핏줄이 바로 권터의 비정상적인 신체 능력 향상의 원인이리라.
시간이 흐를수록, 검은 핏줄이 번져 나가는 속도에 비례해 권터의 육체 능력 역시 강해졌으니 말이다.
이제 권터의 검격은 유리조차 방심하면 놓칠 정도로 빠르고, 스치기라도 했다간 철갑조차 우그러질 정도의 힘을 머금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권터의 얼굴 전체가 검은 핏줄로 뒤덮였을 때.
후황-.
가볍게 휘둘러진 권터의 검격에 어마어마한 광풍이 일어났고.
그 풍압이 일자로 쏘아져 유리를 덮쳐들었다.
바람이 어찌나 강하던지 그의 육신이 살짝 흔들릴 정도였다.
권터는 이를 놓치지 않고 다시 유리에게 달라붙었으며.
그런 권터와 거리를 벌린 유리의 눈에 작은 경악이 깃들었다.
동시에 무언가를 깨달은 유리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이래서였구나!’
요한은 검주에 관해 이야기하며 극강과 극쾌를 언급했었다.
검주란 강과 쾌, 그 둘 모두를 극한까지 다루는 괴물이라고.
그리고 지금 권터와 맞붙으면서 유리는 그게 대충 무슨 말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단순히 육체의 힘만으로… 이런 짓이 가능하다라.’
조금 전 바람을 쏘아 보낸 권터의 검격.
그건 무슨 특별한 기교가 있다거나, 혹은 대단한 절기 같은 게 아니었다.
그저 빠르고, 그저 힘이 강할 뿐.
다만 그 수준이 일정한 영역을 넘어서니 마치 전설 속 마법처럼, 바람을 쏘아 대고 있는 거였다.
유리는 혀를 찼다.
‘이거… 정말 사람 새끼인가?’
어쩌면 현재 권터의 힘은 뽀삐를 넘어섰을 것이고, 속도는 테레시아에 육박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게 가능해진 건.
‘저 징그러운 게 생겨난 뒤부터지.’
유리는 검은 핏줄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다.
‘저게 검주를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올려놓은 마체술 중 하나인가?’
미치도록 궁금했다.
과연 저 검은 핏줄이 대체 무슨 원리인지.
어떻게 하면 자신도 사용할 수 있을지!
하지만 저건 단순히 눈으로 본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여 유리는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고자 자신이 잘하는 것을 시도했다.
우웅-.
바로 마류를 펼친 것이다.
동시에 그는 권터를 중심으로 펼쳐진 마나의 흐름을 낱낱이 읽어 가기 시작했다.
한편, 유리를 상대하고 있는 권터는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인상을 구겼다.
검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점점 더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밀려든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권터는 그 원인을 알아차렸다.
‘전혀, 공격을 하고 있지 않다.’
지금까지 공격을 한 건 자신뿐.
유리 홀랜드는 자신의 공격을 되받아치거나 피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자신의 맹공에 유리 홀랜드가 맥을 추지 못하는 것으로 보일지 몰랐지만.
‘감히…….’
다른 이는 몰라도 권터는 잘 알고 있었다.
‘흑혈’을 펼친 자신의 속도가 유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자신의 공격을 피하는 유리의 몸놀림에 여유가 있음을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권터가 이를 악물었다.
‘감히 날 상대로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은 거냐, 유리 홀랜드!’
권터의 눈에 분노의 빛이 번뜩였다.
그리고 그런 주인의 심경에 반응하듯 권터의 육신 곳곳에 새겨진 검은 핏줄이 크게 요동쳤다.
그드득-.
라이더의 혈통이라면 그 어떤 부작용도 없이 신체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절기, 흑혈.
라이더의 적에게 악몽을 선사한 그 불합리한 기예가 권터의 육체 능력을 한층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쿠긍-.
라이더가(家) 비전 마체술.
군림(君臨).
조금 전에 펼쳤던 것보다 더 강한 압박이 라이더의 적을 짓눌렀고.
스르륵-.
권터의 검이 크게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싸움을 구경하던 이들은 일순간 사방이 어두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방을 잠식해 들어간 어둠.
그 속에서 형형히 빛나는 건 권터의 두 눈뿐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번뜩-.
권터의 검은 눈이 푸른 살기를 토해 낸 순간.
태양이 사라졌다.
라이더가(家) 비전 마체술.
일식(日蝕).
바닥에 바짝 엎드려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동공에 끔찍한 환영이 담겼다.
‘하, 하늘이?!’
‘검은… 태양?’
창공(蒼空)이 어둑어둑해지고, 태양이 검게 물드는 환영.
그리고 어둠에 잠식당한 태양이 그대로 유리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모습.
이에 좌중은 태양이 유리를 짓누를 거라고 여겼다.
혹은 어둠이 유리를 집어삼키거나.
그 정도로 검디검은 태양은 거대했고,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길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샤르르륵-.
어둠 속에서 피어난 한 줄기 황금빛.
그 성스러운 빛이 긴 궤적을 그리며 수직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서걱-.
검은 태양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아…?”
“…어?”
어두워진 하늘에 광명이 찾아들며 암울한 환영에서 깨어난 순간.
좌중이 목도한 것은…….
콰아아아아앙-!
“커흑?!”
고막이 찌릿찌릿해지는 폭음과 함께 피를 뿌리며 날아가는 권터의 모습이었다.
콰득- 콰지직- 쿵!
몇 그루의 나무를 분지르고 날아간 끝에 그대로 거기에 처박혀 버린 권터.
“…….”
“…….”
“…….”
자신들이 본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멍하니 넋을 놓고 있을 때였다.
톡-.
점령지의 중앙, 작은 기관에 꽂힌 모래시계에서 마지막 한 알의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철컥-.
스르륵-.
이후 기관에서 묵직한 기계음이 울리고, 백색의 가루가 기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퐁-!
매캐한 연기와 함께 수직으로 쏘아진 작은 구체.
퍼벙-!
높디높은 상공에 도달한 구체는 이내 산산이 터져 백색의 연기를 흩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