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89
188화. 마왕성 (1)
퍼버벙-.
하늘을 수놓았던 붉은 폭죽이 서서히 흩어지고.
처음에는 자신들의 승리에 기뻐하던 백군 측 사람들이 하나둘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마냥 기쁨을 나누기에는 장내의 분위기가 썩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오오-.
유리와 권터.
퀘스트는 끝났지만, 둘 사이의 긴장감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유리를 노려보는 권터의 표정은 무서울 정도였다.
금방이라도 일을 치를 듯한 분위기에 다른 이들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때였다.
스르릉-.
대치 중인 상태였던 유리가 먼저 검을 집어넣었다.
명백하게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한 그 태도에 권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검을 들어라.”
딱딱한 명령조.
당연하게도 유리가 그 말을 들을 리 있겠는가.
“내가 왜?”
“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뭔 개소리야?”
유리가 귀를 후비적거렸다.
“이제 내가 그쪽이랑 싸워야 할 이유가 없는데? 못 봤어? 끝났다는 신호 올라온 거?”
“…….”
“퀘스트도 끝난 마당에 뭐 하러 쓸데없이 기운을 빼? 괜히 배만 꺼지게.”
권터는 굳은 얼굴로 침묵했고, 유리는 씨익 웃으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얼굴만 보아도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지 확연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둘의 표정은 갈렸다.
그렇게 유리는 미소를 머금고 한쪽에 몰려 있는 백군 소속 기수들을 향해 등을 돌렸다.
그가 막 그렇게 막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12월.”
나직한 권터의 목소리가 유리의 발길을 붙잡았다.
이에 유리가 살짝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권터가 있었다.
“12월에 무룡대전이 열리는 걸 알고 있을 거다.”
“그래서?”
“거기서 기다리겠다. 그때는 도망치지 말아라.”
“도망이라…….”
살짝 말끝을 흐린 유리가 피식 조소를 흘렸다.
“도망은 무슨. 그리고 그쪽 말하는 게 영 거슬리는데… 마치 내가 도전자인 것처럼 들리네?”
유리의 얼굴에서 서서히 미소가 사라지고, 서늘한 살기가 권터를 향했다.
“잘 들어, 오늘은 분명 내 승리였고…….”
“…….”
“그 복수를 하고 싶어서 지금 안달복달 난 그쪽이 누가 봐도 도전자인 거야. 이해가 됐어?”
유리가 검지로 제 관자놀이를 툭툭 쳤다.
꾸득-.
그 모습을 본 권터의 주먹이 강하게 말려들어 가며 뼈 소리를 냈다.
이에 살기를 지우고 다시금 피식 조소를 머금은 유리.
“다시 붙고 싶으면 그쪽이 오늘 나한테 졌다는 것부터 인정하고 와. ‘나 안 졌다고, 빼액! 조금 전 거는 무효야, 빼액!’거리지 말고. 거참, 애도 아니고.”
유리의 신랄한 비난에 율리아는 감탄하며 혀를 내둘렀고, 괴츠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웃음을 참느라 입을 가리고 끅끅거렸다.
다만 그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라는 눈빛으로 새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비난을 가장한 도발을 날린 유리는 더는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그런 그의 곁으로 백군이 따라붙은 건 당연지사.
그렇게 백군 측 인원이 모두 빠져나가고.
으득-.
홀로 남은 권터에게서 이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 * *
다시금 흑선을 타고 요람의 본토로 돌아온 기수들.
그들은 편 가르기를 했던 장소에서 다시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서 있었다.
퀘스트가 시작된 장소가 같고, 반반씩 청군과 백군이 나뉜 것도 같았지만.
정작 두 진영의 분위기는 퀘스트 시작 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우선 백군.
“세상에… 이걸 이길 줄이야!”
“그러게, 이 퀘스트가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그 자식이… 진짜로 해냈구나!”
퀘스트 시작 전,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던 그들의 얼굴은 지금은 너무도 환하게 개어 있었다.
정말로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백군 소속 기수들.
반면 청군 측 분위기는 초상집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편으로 그들은 무언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작게 쑥덕거렸다.
“정말… 권터 라이더가?”
“그래, 진짜라니까! 심지어 그 녀석이 성검을 사용했다고 하던데?”
“어? 그래? 내가 듣기로는 성검은 아니라고 하던데? 솔직히 그 나이에 성검이 가당키나 해?”
“그렇기는 한데… 직접 본 애들이 있다잖아.”
“그거 말한 애들이 전부 백군 소속 애들이잖아? 그리고 나한테 알려 준 녀석은 성검은 아니었다고 하던데?”
“그, 그래?”
삼삼오오 모인 청군 측 기수들은 침묵하고 있는 권터를 흘낏거리며 그의 패배 소식을 나눴다.
그다음으로 가장 이야기가 많이 나온 것은 유리가 성검을 사용한 게 맞다, 아니다였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하도 서로 하는 말이 다르다 보니 그 짧은 사이에 아예 괴담처럼 변해 버린 진실이 떠돌았다.
그렇게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저벅- 저벅-.
다수의 흑검병들을 이끌고 코코가 나타났다.
그러자 잡담은 사라지고 기수들은 재빨리 정렬하여 분위기를 정돈했다.
물론 그렇다고 얼굴에 드리운 감정마저 감출 수는 없었다.
“음…….”
다른 흑검병들보다 한 발 앞으로 나선 코코는 청군과 백군의 상반된 표정을 보고 슬쩍 미소 지었다.
‘재밌네.’
흑검병들 사이에서도 이번 퀘스트는 꽤 논란거리가 되었다.
청군과 백군, 시작부터 완벽히 우열이 나뉜 두 진영.
흑검병들도 모두가 청군의 승리를 예측했지만, 그 예상을 뒤엎고 승리를 가져간 건 백군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흑검병들을 놀라게 한 사건.
그건 바로 권터의 패배였다.
‘막내 도련님이 패했다라…….’
코코의 시선이 권터에게 잠시 닿았다.
이리저리 찢긴 의복과 피부에 늘어붙은 핏자국.
거기에 잔뜩 굳은 얼굴은 누가 봐도 패배자의 몰골이었다.
그렇게 권터를 본 코코의 시선이 이번에는 백군의 선두, 짝다리를 짚고 있는 유리에게 닿았다.
코코의 눈에는 형용할 수 없는 궁금증이 담겼다.
‘너… 대체 정체가 뭐니?’
이전부터 예의 주시하고 있었기에 유리의 실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 바로 그녀였다.
‘입도 당시만 해도 고작 비공인 1급에 불과했던 네가… 권터를 꺾었다는 거니?’
심지어 유리가 성검을 사용했다는 보고도 있었다.
이제 고작 9개월 남짓한 시간이 흘렀는데 성검이라니.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말이 안 되는 수준인데…….’
속으로 혀를 내두른 코코는 생각을 뒤로 미뤘다.
우선은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퀘스트를 치르느라 고생 많았단다.”
코코의 목소리가 마나를 타고 장내에 크게 울려 퍼졌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보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백군 측의 분위기가 빠르게 달아올랐다.
하나 되어 울리는 150개의 심장 박동 탓에 공기가 뜨거워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한 열기.
그 사이로 코코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우선, 백군 측 150명에게 인당 300만 포인트가 지급될 예정이란다.”
300만 포인트.
50기에게는 여전히 큰 액수이지만, 49기에게는 조금 애매한 액수.
그리고 48기에는 딱히 큰 액수는 아니었다.
보상을 들었음에도 그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분명 코코는 ‘우선’이라고 말했으니까.
하여 백군 모두가 잔뜩 기대를 안고 코코의 입만 주시했다.
300만 포인트 다음에 알려 줄 보상이 무엇인지를 기대하며.
꿀꺽-.
누군가가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킨 찰나.
마침내 코코의 입술이 벌어졌다.
“너희, 진짜 운 좋은 거야. 이런 기회 정말정말 흔치 않거든.”
코코의 말에 좌중의 기대감이 한껏 더 치솟았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듯, 코코는 지체하지 않고 보상을 알려 주었다.
“이번 연합 퀘스트의 보상은… 2박 3일 휴가증이다. 단, 우리 교관들이 승리 진영에서 뽑은 최우수 기수에게는 4박 5일 휴가증이 지급될 거다.”
“…….”
보상을 들은 이들 사이에 꽤 무거운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유리는 이맛살을 와락 구겼다.
‘휴가증? 2박 3일?’
처음에는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 들었나 싶었다.
고작 휴가증이란다.
이 개고생의 보상이!
‘아니, 이딴 게 무슨 보상이야?!’
물론 개별로 300만 포인트가 지급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연합 퀘스트면 당연히 엄청 비싼 영약이 나와야 하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닌가?
그런데 고작 휴가증이라니!
그딴 종이 쪼가리라니!
유리는 짜증이 와락 치솟았다.
‘꼴랑 밖에 내보내 주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인 양, 선심 쓰는 척하고 있어?’
그것도 겨우 3일이니 멀리 벗어나지도 못할 터.
이딴 게 무슨 보상이란 말인가.
유리가 속으로 투덜거린 찰나.
장내에 내려앉은 침묵이 깨졌다.
우와아아아아-!
사방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와 요람 본토를 쩌렁쩌렁 울렸다.
“뭐… 뭐야?!”
당황한 유리가 주변을 돌아보니 환희에 젖어 환호성을 내지르는 백군의 모습이 보였다.
심지어 몇몇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는 게 아닌가.
“미, 미쳤어! 휴가증이라니?!”
“정말? 정말로 휴가증이야? 그것도 2박 3일? 외출증도 4년 차 이상에서 어쩌다 겨우 퀘스트 보상으로 뜬다고 했는데?!”
“이번 퀘스트… 이겨서… 정말 다행이다… 흐끅.”
백군 측의 환호성이 계속될수록 청군의 분위기는 더욱 암울하게 가라앉았다.
“젠장… 휴가증이라니!”
“아무리 3개 기수 연합 퀘스트라고 해도 휴가증을… 그것도 2박 3일짜리를 주는 게 말이 되냐!”
“…지금 5년 차는 그동안 외출증 하나 안 나왔다고 하던데.”
“이걸 미리 알려 줬으면 정말 죽을 각오로 덤볐지!”
여기저기서 분함이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반면 유리는 혼란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휴가증이 그렇게 좋은 거야? 꼴랑 3일짜리인데?”
고작 밖에 나가는 게 뭐라고, 저리 미쳐 날뛰는 건지.
유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만큼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런 반응이라면… 이거 분명 돈이 된다!’
그것도 엄청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을 거다.
또한, 최우수 기수의 보상을 자신 말고 누가 받을 수 있단 말인가.
‘2박 3일보다는 4박 5일이 몇 배는 더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겠지?’
어차피 자신에게는 딱히 필요 없는 물건이다.
이 요람에서도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쓸데없이 밖에서 노닥거리겠는가.
그 쓸모없는 물건을 비싸게 팔 수 있다면 자신에게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유리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코코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참고로 휴가증의 유효기간은 없으니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지만, 타인에게 양도는 불가능한 점, 잊지 마렴.”
그런 코코의 이야기에 좌중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암요, 양도할 수 있다고 해도 미쳤다고 이걸 넘깁니까?”
“어떤 미친 새끼가 그러겠어요? 당연히 제가 써야죠!”
그렇게 휴가증을 남에게 넘기는 걸 미친 사람 취급하는 분위기 속에.
원대한 꿈이 좌절된 유리는 연신 ‘시부럴’을 읊조렸다.
* * *
푸른빛을 아름답게 뿌리는 연못 인근.
기존의 것에 고대 동방의 양식을 뒤섞은 듯, 고풍스러운 멋을 한껏 풍기는 정자에 낮은 다과상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흑검병단의 단장이자, 일검이라 불리는 고든 크라우덴.
한데 놀랍게도 그가 무릎을 꿇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이 세상에서 고든을 무릎 꿇릴 존재는 단 한 명뿐이었다.
후릅-.
눈을 살짝 반개하고, 짧게 찻물을 들이켠 풍채 좋은 노인.
단지 여유롭게 앉아 차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짓누르는 기세를 풍기는 존재.
요람의 주인이자 세상의 주인인 검주가 찻잔에서 입술을 떼며 질문을 던졌다.
“막내가 꺾였다고?”
맑은 황금빛 찻물에 검주의 검고 심유한 눈동자가 살짝 비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