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00
199화. 무룡대전 (8)
정말로 아린의 머리통을 때리는 것 하나만이 목적이었던 것처럼, 한 점의 미련도 없이 뒤돌아 가는 유리.
그런 그를 그냥 보내 줄 아린이 아니었다.
“아파!”
맞은 옆통수를 부여잡고 일어선 그녀가 버럭 소리쳤다.
그러고는 잽싸게 유리에게 달려가 등에 매달리는 게 아닌가.
와그작- 와그작!
열심히 유리의 정수리를 깨물어 뜯는 아린.
유리가 경기를 일으키며 파닥거렸다.
“아이 씨, 야, 떨어져! 안 떨어져? 퐉 씨!”
“왜 애여! 왜 애여!”
“탈모 온다고! 떨어져!”
“왜 애여! 왜 애여!”
들러붙은 벌레를 떨구듯 열심히 몸을 흔드는 유리와 그럴수록 더 악착같이 달라붙어 정수리를 오물거리는 아린.
엉겨 붙은 두 사람을 보고 문밖에 있던 셋이 잽싸게 달려들었다.
“애들도 아니고!”
“그만해라.”
“배고프다!”
갖은 노력 끝에 세 사람은 유리와 아린을 겨우겨우 떼어 놓을 수 있었다.
뽀삐에게 번쩍 들린 아린이 여전히 분이 안 풀린 얼굴로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왜 때려!”
왜 때렸냐는 그 짜증 섞인 외침에 다른 이들의 시선도 유리를 향했다.
일단 뜯어말리기는 했지만, 그들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던 거다.
유리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아린을 왜 때린 것인지 말이다.
“그러게?”
“정말 왜 때린 거냐?”
“배고프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군터와 테레시아에게 한쪽 팔씩 붙들려 높이 들린 유리.
덕분에 목이 짧아져 대롱대롱 매달린 그가 뚱한 얼굴로 답했다.
“날 답답하게 만든 죄.”
“…뭔 죄?”
“널… 답답하게 만든 죄?”
“그게 무슨 죄인 거지?”
“배고프다?”
아린부터 시작해서 뽀삐까지, 너도 나도 한마디씩 내뱉은 이들이 유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대체로 이게 뭔 개소리인가 싶은 얼굴들이었다.
그런 시선에도 유리는 아랑곳 않고 당당했다.
“아, 진짜, 저 새끼 시합 보다가 답답해서 속 터져 뒈지는 줄 알았네! 고작 화살 7발 꽂아 놓고 뭘 기다려 주고 자빠졌어? 승기를 잡았을 때 있는 화살 없는 화살 전부 때려 박았어야지!”
“…….”
“대체 나랑 대련하면서 뭘 배웠냐! 엉?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어? 아앙?”
“…….”
“내가 진짜 창피해서 원!”
혐오감이 가득한 유리의 눈빛에 좌중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욕을 먹은 당사자인 아린은 슬슬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거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리가 또 발작했다.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공중에 동동 뜬 유리가 아린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물론 유리는 여전히 군터와 테레시아에게 잡혀 있어서 그의 발차기는 그저 빈 허공을 휘적휘적거릴 뿐이었다.
그사이 쪼르르 내려와 잽싸게 뽀삐의 뒤로 숨은 아린을 보고 유리는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쯧, 그리고 어차피 죽일 거면 바로바로 죽일 것이지 뭘 그리 질질 끄냐?”
유리의 마지막 말에 다른 이들이 흠칫거리면서 아린의 눈치를 봤다.
그러다가 군터가 조심히 말을 꺼냈다.
“그… 첫 살인을 해서 심적으로 힘들 테니… 그 얘기는 나중에 하는 게 어떨까?”
그런 군터의 이야기에 나머지 사람들이 동조하는 눈빛을 보였다.
반면 유리는 콧방귀를 꼈다.
“심적으로 힘들어? 누가?”
“그야 당연히 아린이…….”
“뭔 개똥 퍼먹는 소리야?”
“…….”
“힘들어한다고? 쟤가? 넌 저게 힘든 사람 낯짝으로 보이냐?”
유리가 턱짓하자 좌중의 시선이 이번에는 아린에게로 향했다.
아직도 맞은 게 억울한지 살짝 분한 기운이 남아 있는 얼굴.
하지만 그래도 조금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아린이었다.
아니, 이제는 완벽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똘망똘망해진 그녀를 보고 좌중은 살짝 놀라 눈을 끔뻑였다.
그때 그들의 귓속으로 유리의 덤덤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쟤는 살인을 망설일지언정 해 놓고 죄책감에 시달릴 녀석은 아냐.”
그러면서 유리의 시선이 이번에는 군터를 향했다.
“반면 너는 결단을 내리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겠지만, 저지르고 나서 그 죄책감을 끌어안고 살아갈 새끼고.”
그의 시선이 뽀삐에게 닿았다.
“저건 그냥 잘못했다고 빌기만 하면 쳐 죽여야 할 것도 살려 줄 놈.”
유리에게 속속들이 분석당한 이들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테레시아를 바라본 유리.
시선이 마주친 테레시아는 살짝 기대감이 깃든 얼굴이었다.
“그럼 나는?”
“텟샤는 나랑 비슷하겠네.”
“너랑 나랑? 어떻게 비슷한데?”
그녀의 질문에 유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절대 망설이지도 않고, 후회도 안 할 인간. 필요한 살인이라면 기꺼이 손에 피를 묻힐 독종.”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닌데.”
충격을 받은 테레시아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그사이 유리가 잡힌 팔을 빼내며 지면에 안착했다.
올라간 상의를 정리하며 그가 말했다.
“아무튼 이제라도 알았으면 니들도 저거 뒤통수나 한 대 후리고 해산하라고.”
유리에게 턱짓으로 ‘저거’라고 지목당한 아린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녀에게 다른 이들의 시선이 쏟아졌고, 모두를 대표해 테레시아가 물었다.
“그럼… 지금까지 왜 그러고 있었던 거야?”
아린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요?”
“그… 아까까지 엄청 혼잡스러운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잖아?”
“아, 그거요?”
질문을 이해한 아린이 주먹으로 손바닥을 내리쳤다.
이에 좌중의 시선이 몰렸고 아린의 태연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냥 개인적인 이유로 조금 꿀꿀해져서?”
“…….”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군터가 조금 혼란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 첫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나… 혼란스러움 같은 게 아니고?”
그 질문에 아린의 고개가 또 갸우뚱해졌다.
“죄책감? 그런 걸 왜 가져?”
“뭐?”
“애초부터 죽이지 않을 생각이었다면 모를까, 이미 죽여 놓고 죄책감을 왜 가져?”
“…….”
“어쩌다 실수로 죽인 것도 아니고, 명백하게 살의를 가지고 한 일인데?”
유리의 분석이 정확했다.
아린은 정말로 첫 살인에 대한 죄책감 따위로 괴로워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
“…….”
“…….”
“…….”
이에 아린을 위로하기 위해 모였던 이들의 표정이 점차 뚱해졌다.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세 쌍의 시선에 아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렇게 봐요? 니들은 또 왜 그렇게 보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눈빛에 그제야 자신들이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걸 완벽하게 깨달은 이들이 신형을 돌려세웠다.
“…가서 잠이나 잘걸. 그러고 보니 내일 첫 시합이 너 아니었던가, 군터?”
“맞습니다, 선배님. 그런데… 이런 쓸데없는 데에 시간을 낭비했군요. 이럴 시간에 내일 시합 준비나 할 것을.”
“배고프다.”
군터의 어깨를 뽀삐가 토닥여 주었다.
그렇게 맥 빠진 얼굴로 너도 나도 등 돌려 떠나는 이들의 모습에 아린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빡-!
그런 아린의 뒤통수를 유리가 한 대 더 후려쳤다.
“악!”
그래도 처음보다는 살살 때렸는지 살짝 상체만 숙인 아린.
그녀가 화난 눈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유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저게 진짜!”
열린 방문을 씩씩거리며 바라보는 아린.
그러다가 살짝 올라갔던 화난 눈썹이 이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녀가 가만히 서서 뒤통수를 문질렀다.
슥슥-.
“아프잖아…….”
솔직히 말해서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
여전히 조금 아리기는 했으나 딱히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묘하게 가슴이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모두가 떠나고 홀로 남아 뒤통수를 문지르던 아린은 테레시아가 했던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뒤통수에서 손을 뗀 아린.
가슴을 간질간질하던 느낌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옅은 슬픔과 답답함이 대신 자리 잡았다.
그녀는 테레시아의 질문에 하지 못했던 솔직한 답을 홀로 중얼거렸다.
“그치만… 다시는 쓰고 싶지 않았던 걸… 써 버렸단 말이에요.”
아린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
* * *
역사상 가장 이변이 많이 벌어진 이번 무룡대전.
그 3일 차의 날이 밝았다.
3일 차부터는 12강이 시작되었고 그 첫 시합의 참가자는 군터였다.
“군터 아이언스, 입장해라.”
흑검병의 명령에 군터는 오늘도 휑한 대기실을 슥 둘러보고는 약간 시무룩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런 표정은 이내 옅어지며 무표정으로 바뀌어 갔다.
저벅저벅-.
한 번 와 봤던 통로를 지나 마침내 경기장 입구에 도착한 군터.
“후우…….”
작게 숨을 토해 낸 그가 상념을 털어 내며 투구의 안면 가리개를 내렸다.
철걱-.
‘가자!’
결의를 다진 당당한 발걸음이 경기장으로 이어졌다.
‘상대는?’
막 경기장으로 진입한 군터는 긴장된 눈으로 정면을 살폈다.
그리고 그리 어렵지 않게 정면에서 걸어오는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이군.’
조금 나른한 얼굴로 걸어오는 여인.
그녀의 걸음걸이는 긴장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다.
군터는 상대를 자세히 살폈다.
검디검은 머리카락과 자주색이 감도는 눈동자.
하얗다 못해 창백하기까지 한 피부와 눈 밑으로 짙게 드리운 다크서클.
좋게 말하면 병약해 보이는 미녀였고.
나쁘게 말하면 툭 치면 그대로 쓰러져 죽을 듯 보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4년 차, 수잔 리플리.’
그녀는 47기였으며, 그중에서도 무려 서열 1위였다.
‘그녀의 이전 시합은 너무 금방 끝나 정보를 파악할 겨를이 없었다.’
24강에서 자신의 시합 다음에 나온 게 수잔 리플리였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수잔은 무려 5년 차를 꺾었다.
심지어 그것도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상대를 쓰러뜨렸다고 한다.
군터가 객석으로 왔을 때는 이미 그녀가 사라진 뒤였다.
‘들은 정보에 의하면… 수잔 리플리의 상대는 5년 차의 서열 5위랬다.’
물론 5년 차 참가자 중 최약체일지라도, 그를 단번에 제압한 수잔의 실력은 절대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되는 수준일 터.
저벅-.
군터가 안면 가리개 틈으로 수잔을 살피는 사이 그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마주했다.
이에 군터는 검을 들어 올리며 예를 갖췄다.
“아이언스의 장자 군터, 선배님께 작은 가르침을 청합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기사로서의 예를 취한 군터.
이를 보고 하이스는 비웃음을 날렸지만, 수잔은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녀의 태도에 군터의 얼굴이 긴장으로 물들었다.
‘차라리 이전 시합처럼 방심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자신의 예를 받아 주는 모습을 보아 수잔은 상당히 차분하고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컸다.
또한, 자신을 얕잡아 보고 방심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어려운 시합이 되겠군.’
군터는 긴장을 끌어올리며 어제 테레시아와 나눈 짤막한 대화를 떠올렸다.
[저, 선배님…….] [싫어.] […저 아직 아무런 말도 안 했습니다만?] [보나 마나 네 12강 상대에 관한 정보 좀 달라는 거겠지.] [어찌 아셨습니까?] [그냥.] [어째… 점점 말씀하시는 게 유리 홀랜드를 닮아 가시는군요.] [네 다음 상대에 관한 정보를 좀 알려 주려 했었는데, 조금 전 그 말 때문에 해 주기 싫어졌어.] [죄, 죄송합니다.] [그리고 원래 이런 건 직접 몸으로 배워 가야 하는 거야.] [유리식 표현대로라면… 대가리 깨져 가면서 직접 알아보라는 말이군요.] [응, 그거지. 그래도 작은 단서를 하나 주자면… 그 선배는 내가 요람에서 가장 상대하기 싫은 사람이야. 아니,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기수가 그 선배를 가장 상대하기 싫은 사람으로 뽑았어.] [유리가 있는데도 말입니까?] […작년까지는 그랬어.] [작년이라… 그런데 작년이면 권터 그 새… 아니, 권터 라이더가 무룡대전에서 우승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런데도 수잔 리플리 선배가 1위를 했다는 겁니까? 그 권터 라이더를 제치고?] [응.] [어째서요?] [대가리 깨져 가면서 직접 알아봐. 모르면 당하면서 배우는 거지.] […너무하십니다.]어제의 대화를 곱씹으며 군터는 검을 수평으로 눕혔다.
언제든지 수잔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유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요람에서 상대하기 싫은 존재 1위였던 사람이라…….’
더욱이 작년 우승자인 권터 라이더보다 상대하기 싫은 자로 꼽혔다면, 어쩌면 그 이유는 무력적인 측면이 아닐지도 몰랐다.
‘성격인가?’
차분해 보이는 것이 어딜 봐도 유리보다 성격이 나쁜 거 같지는 않아 보였다.
물론 요람의 그 누구를 데려와도 유리보다는 성격이 좋겠지만…….
‘…혹시 모른다.’
유리 녀석도 생긴 거로만 따지면 천사여야 한다.
하지만 그 내면에 깃든 건 황천에서 기어 올라온 마귀 새끼이지 않은가.
‘하필 머리도 검은색이라니…….’
꼭 유리를 닮은 듯 불길한 머리 색깔에 군터는 한층 더 긴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륵-.
수잔 리플리가 군터를 향해 팔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