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16
215화. 흑룡고 (6)
잘린 팔이 유리의 손에 떨어뜨린 것.
그건 다름 아닌 황금빛의 걸쭉한 액체였다.
툭- 툭-.
그 액체는 처음에는 한두 방울씩 몽글몽글 떨어졌으나 어느 순간 갑자기 왈칵 쏟아져 내렸다.
구륵- 구륵-.
기괴한 소리를 내며 끈적끈적한 점도의 불투명한 황금빛 액체가 유리의 손바닥에 고였고.
이는 신기하게도 흘러내리지 않고 그대로 쌓여 갔다.
“……?!”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더 핏기가 사라지는 유리의 얼굴.
그렇게 몇 초가 흘렀을까.
톡톡-.
마침내 모든 것을 쏟아 낸 것인지 황금빛 액체는 한두 방울씩마저 떨어지다가 이내 멎었다.
하지만 기이한 일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꾸룩꾸룩-.
갑자기 유리의 손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는 액체 덩어리.
꾸르륵-.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한 액체가 순식간에 쪼그라들며 옅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스스스-.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이 사라지고, 유리의 손바닥 위에 모습을 드러낸 건 금빛의 금속이었다.
두께가 1㎝가 될 듯 말 듯 넓적하고.
모양은 성의 없이 둥글게 빚어 놓은 듯한 형태.
어찌 보면 둥근 밀가루 반죽 같기도 한 황금빛 금속 덩어리가 유리의 손에 놓여 있었다.
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당연지사.
‘이, 이게 뭐지? 금?’
황금을 닮긴 했으나 황금은 아니었다.
그리고 세상천지 어떤 황금이 잘린 시체의 팔에서 흘러나오겠는가.
놀란 유리가 눈을 끔뻑일 때, 또 다른 일이 벌어졌다.
스르르-.
가만히 놓여 있던 금속이 그대로 손바닥에 흡수되듯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
사고가 정지된 유리는 본능적으로 재빨리 손을 털어 보았다.
탈-.
“어?”
탈탈-.
“어엇?!”
탈탈탈-.
“으에?!”
아무리 손을 세차게 털어 내도 사라진 금속 쪼가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 어디 갔어?”
유리가 멍청하게 제 손바닥을 바라보던 그때.
잘린 팔의 손바닥이 유리의 손바닥을 향해 다가왔다.
손바닥을 마주치려는 듯 말이다.
그러다 마침내 잘린 팔의 손바닥이 유리의 손바닥에 닿았고.
스륵-.
그대로 관통해 버렸다.
“……?!”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유리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했으니.
지금,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 자리한 건 딱 하나뿐이었다.
‘과… 관통했어? 관통했어? 관통했어?!’
백번 양보해서…….
아니, 천 번 양보해서 잘린 팔이 움직일 수 있다 치자.
그래서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쳤다고 치잔 말이자.
‘그럼 최소… 부딪치긴 해야 할 거 아니냐고!’
물리적으로 손바닥과 손바닥이 맞부딪혀야지, 이런 식으로 관통하는 게 무슨 경우겠는가.
유리가 알기로 이런 현상은 딱 하나뿐이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슬쩍 뒷걸음친 유리가 괴성을 내지르며 뛰었다.
“뜨아아아아아아아!”
파측!
뇌익까지 펼친 그가 순식간에 문 앞에 도달해 바로 모래시계를 뒤집었고.
쾅쾅쾅-!
“문! 문! 문! 빨리 문!”
어서 문을 열라고 필사적으로 두드렸다.
그런 노력 덕분일까.
드르르르-.
마침내 문이 열리고 안경남이 모습을 드러냈다.
“1분을 남기고 나오다니 배짱 한번 두둑…….”
대충 1분 남기고 열었다고, 조금만 늦었어도 그냥 가 버렸을 거라고 말하려 했을 안경남이었다.
하지만 그는 채 말을 전부 끝내지 못했다.
“뜨어어어!”
순식간에 튀어나온 유리가 안경남을 지나쳐 문 뒤로 몸을 숨겼다.
“…뭐냐?”
난데없는 상황에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돌린 안경남.
그곳에는 호달달 떨며 문 너머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유리가 있었으니.
“귀…….”
“귀?”
“귀, 귀신! 귀신이라고!”
“…….”
유리의 외침에 안경남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뭔,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저, 저기! 저거! 저기 귀신 있다고!”
유리가 손가락질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튼 안경남.
그가 움직이자 유리도 은근슬쩍 그 뒤로 따라붙었다.
마치 안경남을 방패로 삼은 듯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진열대 앞에 서고.
“그러니까… 네가 말한 귀신이 이거냐?”
안경남이 어이없다는 어투로 진열대 위 수정체를 가리켰다.
그 속에는 잘린 팔이 있었다.
유리가 처음 보았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에 유리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어, 어라? 그, 그럴 리가 없는데……? 저거 막 움직여서 밖으로 튀어나왔었다고!”
유리의 억울하다는 외침에 안경남이 수정체를 두드렸다.
통통-.
대충 들어도 단단함이 느껴지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네 말은 이 잘린 팔이 저절로 움직여서, 이 특수 밀폐 용기를 뚫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랬었는데, 분명…….”
“그런 것치고는 이게 너무 멀쩡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
유리가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하자 안경남의 얼굴에 짜증이 서렸다.
“괜히 허튼 짓거리로 시간 끌지 말아라. 그런다고 시간을 더 줄 생각은 없으니.”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경고했을 텐데? 이번만큼은 허튼 생각을 않는 게 좋을 거라고?”
“지, 진짠데…….”
“이미 너에게 주어진 1시간을 넘었다. 선택해라. 네가 가지고 나갈 물건은 뭐지? 두 번의 기회는 주지 않을 것이니 신중히 답해라.”
“…….”
자신의 말 따위는 조금도 믿지 않는다는 듯한, 안경남의 단호함에 유리는 억울함을 넘어 답답한 절규를 내질렀다.
‘도대체 왜 내 말을 안 믿는 건데!’
* * *
…라고 흑룡고에서 있었던 일을 요한에게 전부 털어놓은 유리.
이를 들은 요한이 코를 후비며 말했다.
“왜 네 말을 안 믿냐고?”
“어!”
“그걸 정말 몰라서 나한테 처묻고 있는 거냐?”
“응, 모르겠는데?”
“아마, 너 빼고 세상 사람은 다 알걸?”
“왜?”
왜긴 왜겠냐.
네놈의 지랄 맞은 성격 때문이지.
보나 마나 그 안경잡이도 ‘아, 이 새끼 또 지랄이네’라는 생각이었을 거다.
요한은 완벽한 답을 알고 있었지만, 굳이 이를 알려 주지 않았다.
“그냥 네놈은 평생 모르고 살아.”
“…재수 없어.”
불만스럽다는 듯 불룩 튀어나온 유리의 주둥이.
하지만 이내 바람이 빠지고 다시금 열변을 토해 냈다.
“아무튼 귀신이라고! 그거 분명 귀신이었다니까!”
“그렇군.”
“아니, 귀신이었다니까?”
“그래서?”
“…….”
요한의 시큰둥한 반응에 유리의 주둥이가 다시 튀어나왔다.
이를 본 요한은 혀를 찼다.
“네놈은 왜 그렇게 귀신을 무서워하냐?”
“무서워? 내가? 무슨 소리야, 난 귀신 따위는 무섭지 않아. 그냥 싫어할 뿐이지.”
“그래, 보통 쫄보 새끼들이 대개 그런 말을 하곤 하지.”
“아닌데? 나 쫄보 아닌데?”
“그래그래, 귀신을 무서워하는 쫄보 새끼야.”
“아씨, 진짜 아니라고! 나는 그냥 노력 대비 성과가 없어서 귀신을 싫어하는 것뿐이라고!”
“노력 대비 성과?”
“…내가 아무리 열심히 칼질해도 귀신한테는 타격이 조금도 안 들어가잖아.”
“쫄보의 전형적인 도피성 발언이군.”
“에이 시발, 쫄보 아니라니까!”
그 뒤로도 쫄보라고 놀리는 요한과 아니라고 외치는 유리의 티격거림은 한동안 계속됐다.
그러길 한참여.
오래간만에 시원스럽게 놀린 듯 요한은 후련한 얼굴로 물었다.
“뭐, 그건 그렇고. 그래서… 흑룡고에서 뭘 가지고 나왔냐? 널 부른 영물이 3개나 있었다면서?”
“지금 내 귀신 이야기보다 그게 더 궁금하단 거야?”
“당연한 소리 아니냐? 그러니 쫄보야, 얼른 가지고 나온 물건을 꺼내 보거라.”
어깨를 부들부들 떤 유리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품에서 작은 목함을 꺼냈다.
흑룡고를 나온 뒤 몸수색을 당하고.
흑룡고에서 사라진 물건이 있는지 다시 확인하는 지루한 시간을 기다리고.
다시 관짝 같은 마차를 타고 몇 시간에 걸쳐 되돌아온 끝에 겨우겨우 받게 된 물건.
유리는 반지나 들어갈 듯한 작은 목함을 개봉했다.
달칵-.
그곳에는 그가 골라 온 영물이 담겨 있었으니.
그건 다름 아닌 검붉은색의 진주였다.
이를 본 요한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왜 하필 이거냐? 딱 봐도 불길하게 생긴 걸?”
요한의 질문에 유리는 덤덤한 어투로 답했다.
“부끄럼쟁이… 그러니까 그 노란 열매는 탐색하듯 간을 보는 게 나에 대한 확신은 없으면서, 자기는 손해 보지 않으려는 게 느껴져서 걸렀고.”
“그럼, 그 새하얀 풀뿌리는?”
“그건 날 너무 좋아하더라고.”
“응? 그러면 좋은 게 아니냐?”
“날 언제 봤다고 그렇게 좋아해? 너무 대놓고 좋아하는 게 딱 내가 아는 그 느낌이더라고.”
“뭔 느낌?”
“전형적인 사기꾼. 앞에서는 간이며 쓸개면 다 빼 줄 듯 친절하게 굴다가, 원하는 걸 손에 넣으면 가차 없이 뒤통수치는 것들. 그 새하얀 풀뿌리는 딱 그런 느낌이었어.”
“…네놈의 인생 경험이 이리 쓰이는구나. 그래서 남은 게 이것뿐이라 이걸 고른 거냐? 이 붉은 구슬을?”
“남은 선택지가 이거뿐인 것도 있었고. 느낌이 좋았어.”
“명령하듯 고압적인 느낌이었다고 하지 않았냐?”
“그렇긴 한데, 이 녀석은 그래도 감추는 게 없이 직설적으로 부딪혀 왔어. 넌 나를 골라야 한다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안 그러면… 후회하게 될 거라고. 딱 그런 느낌을 풍기더라고.”
유리의 설명에 요한은 검붉은 구슬을 노려보았다.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유리가 물었다.
“이거 뭔지 알겠어?”
“흐음…….”
팔짱을 끼고 목함 쪽으로 바짝 얼굴을 가져다 대는 요한.
“흐으으음.”
한참 만에 고개를 든 그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모르겠는데?”
“…에이 씨! 그걸 그딴 식으로 진지하게 말하지 말라고! 괜히 기대했잖아!”
“근데 이거 진짜 뭐냐? 다른 설명 같은 건 없었고?”
“그걸 알면 내가 이걸 영감한테 보여 줬겠어? 영감은 이거랑 뭐 비슷한 거 몰라?”
“태양 조개라는 녀석이 수백 년간 머금었다 뱉어 낸 진주가 이거랑 비슷하게 생기긴 했다만… 그건 이보다 훨씬 크고 색도 다르다.”
태양 조개의 진주는 불꽃을 닮은 붉은색에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지만.
눈앞의 이건 고작 새끼손톱 크기에 핏빛이었다.
그리고 요한이 알고 있기로 진주 형태의 영물은 태양 조개의 것 말고는 없었다.
‘하필 골라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독특한 것을 골라 왔군.’
유리가 말한 것 중 진노랑빛의 열매.
그건 등가 열매라는 것으로 복용한 이의 체내에 기생하여 마나를 정제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 대가로 마나를 꾸준히 제공해 줘야 하는 녀석이었다.
‘그 하얀 풀뿌리는… 분명 흡혈초라 불리는 것일 테지.’
새하얗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엄청난 마나를 품고 있으나 그 마나를 사용하면 할수록 피에 대한 갈증이 생긴다는.
다소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영물.
그래도 그 두 가지 모두 이제는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귀한 영물들이었다.
‘그 두 가지를 걸러냈단 말이지.’
부작용이 있는 것들은 거르고 골라 왔다는 건 분명 칭찬할 만한 일이나, 문제는 이 핏빛 진주가 무엇인지 요한조차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생긴 것과 달리 별다른 사특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지만… 문제는 다른 것도 감지할 수가 없다는 건데.’
이렇게 꽁꽁 자신을 감추는 영물은 요한도 처음이었다.
‘도대체 이거… 정체가 뭘꼬?’
요한이 조금 굳은 얼굴을 하자 유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왜? 이거 먹으면 안 될 거 같아?”
이에 요한을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괜찮을 거다.”
그러면서 그는 등가 열매와 흡혈초에 관해 짧게 설명해 주고는 이어서 말했다.
“결론적으로 네 느낌이 전부 옳았다. 그러니 이번에도 네 느낌대로 가 보자.”
단순히 느낌만으로 등가 열매와 흡혈초를 걸러 낸 유리.
그렇다면 이 핏빛 구슬에 대한 그의 느낌 역시 맞으리라.
요한의 이야기에 유리가 환한 표정을 지었고.
“그럴까? 그럼 언제 먹지, 이거?”
“차라리 내가 있을 때 먹는 게 낫겠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리가 핏빛 진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꿀꺽-.
유리의 목젖이 크게 일렁이는 것을 본 요한.
“…야 이 미친놈아?! 그걸 왜 지금 홀랑 처먹고 있어!”
당황해 눈을 크게 치뜬 그가 냅다 유리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퍽-.
이에 유리는 맞은 부위를 문지르며 눈을 끔뻑였다.
“영감 있을 때 먹으라며?”
“최소한 내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줘야 할 거 아니냐! 네놈이 그거 처먹고 잘못되면 뒷수습할 건 나인데!”
“아, 그런 거였어?”
“그런 거다, 이놈의 새끼야!”
“그런데 있잖아, 영감.”
“뭐!”
“나 지금… 속이 안 좋아.”
“…….”
“뒷수습 좀 잘 부탁할게.”
그 말을 내뱉고 다급히 정좌를 튼 유리.
그러기 무섭게 그의 몸에서 마나의 폭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고오오오-.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로 선명한 마나의 기류가 유리를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그 범상치 않은 마나의 움직임을 보고 요한이 작게 중얼거렸으니.
“이 새끼… 대체 뭘 주워 처먹은 거야?”
유리가 대뜸 집어삼킨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핏빛 진주.
그로 인해 지금 녀석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나의 양과 농도는… 지금껏 요한이 보아 온 수많은 영물 중 단연 최고라 할 수 있었다.
* * *
유리가 다녀가고 나서 몇 시간 뒤.
고요한 흑룡고에 두 사람이 발을 들였다.
그중 한 명은 바로 흑룡고의 주인이자 그 안에 담긴 모든 물건의 소유주인 검주였으며.
그의 옆에는 자연스럽게 고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저벅 저벅-.
말없이 걸어온 두 사람은 어느 한 진열대 앞에 섰다.
원래 한 물건이 있었던 곳에는 이제 텅 빈 수정체만이 남아 발광석의 빛을 받고 있었으니.
[3-19]진열대의 숫자를 확인한 고든이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허허… 그 녀석, 용케도 이걸 가져갔군요.”
그런 고든의 웃음에 검주가 텅 빈 수정체를 바라보며 덤덤히 물었다.
“이곳에 있던 게 무엇이었더냐?”
주인의 질문에 웃음기를 지운 고든이 눈을 빛내며 답했다.
“용의 심장(Dragon heart)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