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34
233화. 해치지 않아요 (1)
시간을 조금 앞으로 되돌려, 백보 의식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새롭게 들어온 51기, 그들이 정식 기수가 되어 가장 처음 하는 일은 선배들이 그러했듯 스스로 거처를 마련하는 작업이었다.
50기와 같이 북쪽 구역을 쓰고 있던 49기들이 3년 차가 되어 서쪽 거주지로 이동하고.
이제 비어 버린 은신처를 차지하기 위해 80여 명의 51기가 바삐 움직였다.
그렇게 북쪽 구역 구석구석을 확인하며 돌아다니는 소년 소녀들.
그런 이들이 원형경기장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기괴한 건축물을 발견하지 못할 리 없었다.
여기서 51기들의 반응은 몇 가지로 나뉘었다.
첫 번째, 숲속에 떡하니 자리 잡은 기괴하고 불길하기 짝이 없는 성을 보고 뒷걸음쳐 그대로 물러나는 부류.
이는 아주 정상적인 이들이었다.
다음으로 두 번째.
호기심을 품고 성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다가왔다가 입구에 적힌 핏빛 경고문을 보고 몸서리치며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부류.
호기심이 조금 왕성하기는 하지만 여기까지도 정상적인 이들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부류.
여기서부터가 조금 말썽이었다.
세상에는 꼭 그런 놈들이 있지 않은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려고 하는 청개구리 같은 놈들.
거기에 능력 과신으로 자신이 똑똑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놈들.
바로 이 소년.
마왕성의 앞에 선 금발에 각진 얼굴을 가진, 건장한 체구의 녀석도 그러했다.
“재밌군.”
요람의 대다수가 그러하듯 어린 시절부터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실패보다 성공만을 해 왔으며.
늘 칭찬 속에 살아와, 마침내 금룡패를 지니고 요람의 정식 기수가 되는 데 성공한 소년.
그는 취미가 자살인 사람들만 들어오라는 핏빛 경고문을 보고 피식거렸다.
그리고 이내 미소를 지우고 턱을 쓰다듬었다.
‘여기도 요람의 시설인 건가?’
자신이 모은 정보로는 북쪽은 1~2년 차 기수들을 위한 구역이라 하였다.
그런 곳에 이런 건축물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니.
괴이한 성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던 소년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아아, 그렇구나! 이건… 시험이구나!’
불길한 외형과 핏빛 문구.
누가 봐도 단번에 거부감이 들게 만들어진 것들.
이건 대놓고 접근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자신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현 상황을 분석한 소년이 눈을 빛냈다.
‘그래, 아무리 알아서 자급자족하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요람에서 어느 정도 살길을 열어 준 거다!’
소년은 아버지가 해 준 말을 상기해 냈다.
[늘 위기 속에 기회가 숨어 있는 법이다.]이를 떠올린 소년의 얼굴이 희색으로 물들었다.
‘아버지 말씀이 옳은 거 같습니다!’
자신의 예상대로라면 이 꺼림칙한 성 안에 생활에 필요한 물품과 은신처가 마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일부러 왜 접근하지 못하게 한 거겠어? 남들이 오지 않는 장소에 도전하는 용기! 위험과 역경을 뚫은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 그래, 이건 바로 그런 시험인 거다!’
소년은 강한 확신을 품었다.
‘거기다 남들이 쉬이 다가오지 않는 장소… 그곳만큼 최적의 은신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저 불길한 성에 들어가 생필품과 은신처를 선점하는 것이 자신이 요람에서 세울 첫 업적이 되리라.
그리 믿은 소년은 굳게 결의를 다지고 조심스럽게 성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가자!’
저벅-.
고작 몇 걸음을 내디디기 무섭게 짙은 음산함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소년은 이에 굴하지 않고 나아갔다.
저벅저벅-.
그렇게 몇 걸음을 더 내디뎠을 때.
어둠 속에서 양 갈래 길이 나타났다.
‘흐음… 어디로 가지?’
한참을 고민하던 소년.
‘좋아, 이쪽이다!’
그는 자신의 감을 믿고 왼쪽 통로를 선택하였다.
꾸욱-.
검을 굳게 말아 쥔 채 조심스럽게 전진하는 소년의 앞에 등장한 널찍한 통로.
그는 모든 감각을 활짝 열어 두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그 어떤 함정도.
그 어떤 기습도.
지금이라면 즉각 대응할 수 있다고 소년은 자신했다.
저벅 저벅 저벅-.
그런 만전을 기해 서너 걸음을 걸어갔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소년은 알지 못했다.
자신의 선택.
2개의 갈림길, 왼쪽과 오른쪽, 그중 하나를 고르는 아주 단순했던 선택이…….
그 50%의 확률이…….
서걱-.
자신의 운명을 갈랐다는 걸.
‘아?’
극히 찰나의 시간.
생과 사가 교차하는 바로 그 영원 같은 순간에 소년이 본 건 은빛 반짝임과 솟구치는 피 분수.
그리고…….
‘내… 몸?’
유달리 크게 느껴지는, 오도카니 서 있는 몸뚱어리였다.
그렇게 마왕성의 첫 자살 희망자가 생겨났고.
불행히도 비극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 * *
유리가 깨어나고 사흘 뒤.
무치의 환영회 겸 유리의 쾌차를 기념하여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이게 된 마왕성의 식구들.
고작 며칠 사이에 일행에 완벽히 녹아든 막내 무치를 비롯해 다른 이들까지 전부 꽤 즐거워 보였다.
딱 한 사람만 제외하고.
탁-.
너른 식탁에 음식 접시를 내려놓은 유리.
어디서 구해 온 것인지 모를 앞치마를 걸친 그는 주둥이가 비쭉 튀어나와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을 빼고 희희낙락거리는 다른 이들을 보고 불만을 토해 냈으니.
“야, 이거 나 쾌차한 기념으로 모인 거 아냐?”
“웅, 아마도?”
“배고프다.”
유리가 접시를 내려놓기 무섭게 냉큼 음식을 집어 가 입에 쑤셔 넣는 아린과 뽀삐.
양 볼이 빵빵해져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 모습에 유리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그런데 날 위한 모임에 왜 나 혼자 개처럼 요리하고 있는 거냐! 야 이 돼지 새끼들아, 그만 처먹어!”
“나 식권 냈어! 무치 것도 내가 내줬고!”
“배고프다!”
“나도 냈다. 우리는 정당한 값을 치르고 먹는 것일 뿐.”
마지막으로 군터까지 말을 보태자 유리의 이마에 혈관이 두드러졌다.
“그래, 정당한 값을 치르고 먹는 거는 아는데… 그래도 내 쾌유 기념으로 모인 거면 좀 적당히 처먹어야지! 니들 처먹이다가 다시 앓아눕겠다, 이 새끼들아!”
쩌렁쩌렁한 외침에도 좌중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젓가락을 놀리기 바빴다.
마치 며칠 굶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역팔자 눈썹이 된 유리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게걸스럽게 음식을 입속에 털어 넣는 아린과 뽀삐.
자신의 개인 접시를 가져와 차곡차곡 자신의 할당량을 쌓아 올리는 군터.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도 빠른 속도로 음식을 집어 먹는 무치.
그리고.
오물오물-.
얌전하게, 그러나 게걸스럽게 퍼먹는 2인조보다도 빠른 속도로 음식을 주워 먹는 테레시아.
유리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음과 동시에 고개가 삐딱하게 좌로 꺾였다.
“…텟샤, 넌 왜 여기 있냐?”
열심히 오물거리던 테레시아가 입안 음식물을 꿀떡 삼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뭐가?”
“3년 차가 왜 여기 있냐고. 3년 차 거주 구역으로 넘어간 거 아니었어?”
그 물음에 답을 준 건 아린이었다.
“텟샤 선배, 거기서 주는 밥 맛없다고 다시 넘어왔어.”
테레시아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추가 설명까지 덧붙였다.
“내가 가긴 어딜 가? 애초에 나간 적 없었어. 그냥 3년 차 거주 구역은 어떤지 궁금해서 잠깐 구경 갔다 온 거지.”
“…그래서 어떤데?”
“거주 구역이라고 해 봤자 겨우 천막을 모아 놓은 거였어. 거기서 살 바에는 차라리 계속 여기에 있는 게 낫겠다 싶더라. 아마도 그나마 살 만한 거주 구역은 4~5년 차 정도는 되어야 할 거야.”
“…….”
너무도 태연한 그녀의 반응에 유리는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어 버린 유리.
“내 건 좀 남겨라! 이 양심 없는 것들아!”
그는 돼지들이 남은 음식을 모조리 해치우기 전에 자신도 식탁 위의 전쟁에 합류했다.
우걱우걱-.
그렇게 한동안 음식물을 씹는 소리만 들리고.
식탁 위 접시들이 전부 비워진 뒤, 모두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을 때였다.
끄아아아악!
갑작스러운 단말마의 비명이 그들의 귀에 꽂혀 들었다.
더군다나 비명이 들려온 방향은 유리의 거처가 있는 쪽.
이에 군터가 인상을 찡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기어들어 왔군.”
제발 들어오지 말라고 아주 대놓고 경고문을 써 놨는데도 아득바득 들어오는 이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얼마나 지능이 떨어지는 놈들인 건지. 하아…….”
군터의 짙은 한숨에 아린도 편승했다.
“하아… 또 시체 치우러 가야 하는 거야?”
“배고프다.”
뽀삐는 단말마가 들려온 방향으로 합장하며 묵념했다.
그런 선배들의 반응에 새파랗게 질려 버린 무치.
그사이 테레시아가 유리를 보며 물었다.
“네 거처 쪽 통로의 함정 좀 꺼 두면 안 돼? 이걸로 벌써 다섯 명째야. 이대로 가다가는 51기가 몇 남지도 않겠어.”
그런 테레시아의 걱정에 유리의 간단히 답했다.
“응, 안 돼.”
“…그럼 살상력만이라도 좀 낮추든가.”
“응, 그것도 안 돼.”
“너… 진짜.”
테레시아가 흘겨보자 유리가 억울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라고.”
“……?”
“저건 나도 못 건드려.”
“왜?”
“…이젠 나도 무섭거든.”
“…….”
쭈굴쭈굴.
작게 기어들어 가는 유리의 목소리에 일동은 침묵했다.
곧이어 모두를 대표해 아린이 소리쳤으니.
“야, 이 미친놈아! 대체 뭘 만든 거야!”
다 같이 한마음 한뜻으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어이없다는 시선이 무수히 쏟아지는 가운데.
유리는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자신이 설계한 이 성에는 여러 개의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에는 온갖 장치들이 숨어 있었다.
명목상 침입자를 상대하기 위한 함정들.
그 위치와 파훼 방법을 알고 있는 건 마왕성을 만든 유리 일행뿐이었다.
그리고 마왕성의 모든 통로 중 가장 살벌한 함정이 배치된 곳.
그건 바로 유리의 거처로 통하는 통로였다.
마왕성에서 유리의 거처로 통하는 통로는 모두 넷.
그중 3개는 드러난 통로이고 나머지 하나는 비밀 통로였는데, 바로 그 드러난 3개의 통로가 이 마왕성에서 가장 지독한 사지(死地)였다.
유리를 제외한 다른 일행조차 접근할 수 없는 장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저주받을 영감탱이, 어디 이것도 피하나 보자.] [그건 조금 위력이 약한 것 같지 않으냐? 이걸로 바꾸는 게 좋을 거다.] [그럴까? 오, 그러네? 이거 좋다! 킬킬!] [이거면 그 새끼도 발바닥에 땀 나게 뛰어야 할 게다. 낄낄낄!]요한이 이 성에 오는 목적이야 유리를 만나러 오는 것뿐이고.
어떻게든 그를 잡겠다고 독이 바짝 오른 유리와 세경은 계속해서 함정을 추가해 나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요한은 보란 듯이 함정을 돌파해 나갔으니.
그럴수록 유리와 세경의 눈깔도 덩달아 광기로 물들어 갔다.
[죽이자… 죽이는 거다!] [약해, 이건 너무 약해! 아예, 폭발물을 심어 놓는 건 어떻겠냐?]그 덕분에 날이 갈수록 함정의 위력과 살상력은 더욱 커져 갔다.
그렇게 수개월이 흘러…….
유리의 거처로 이어지는 통로.
즉, 요한 레드너 전용로는 이제 함정을 설치한 장본인들마저 다시 손대기 어려운 지경에 도달해 버렸다.
문제는 광기에 휩싸인 두 사람이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버렸다는 거였다.
[뭔가 조금… 아쉽지 않아?] [네놈도 그리 생각하냐?] [조금만 더 하면 뭔가 될 거 같지?] [나도 그리 생각한다만…….] [흐음… 저기 기둥 뒤에 공간이 좀 있어 보이는데?] [더… 깔까?] [하자!]이후 두 사람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
그래도 그들의 광기 어린 노력이 빛을 발한 건지, 함정의 수준은 요한마저 당혹스럽게 만들 정도로 진화해 있었다.
모두가 똑똑히 기억했다.
찢긴 바지를 부여잡고 외치던 요한의 성난 외침을.
[야 이 미친놈들아, 네놈들은 같은 남자로서 양심도 없는 거냐! 짝부랄 될 뻔했다, 이 개잡놈의 정신 나간 새끼들아!]‘어차피 하도 안 써서 퇴화했을 텐데 하나쯤은 괜찮지 않아?’라고 중얼거렸던 유리가 역으로 고자가 될 뻔했었기에 당시 상황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들.
상황이 이 지경이니 호기롭게 마왕성에 발을 들인 이들이 송장이 되어 실려 나가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시체 치우기도 한두 번이지.
자꾸만 반복되니 대책 마련이 시급했다.
이에 모두가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유리가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쯧, 뭘 다들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어? 별것도 아닌 일로.”
“…….”
지금 그게 네놈 입에서 나올 소리냐.
혹은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등등.
따가운 눈총이 이어졌으나 유리는 익숙하게 이를 받아넘겼다.
그러고는 씨익 웃으며 말하였으니.
“다들 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
입을 꾹 다문 좌중.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 더 걱정이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본능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