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37
236화. 해치지 않아요 (4)
어둠이 잠식한 숲속 공터.
구름에 가려져 있던 보름달이 드러나며 달빛이 공터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바로 그 공터의 중앙에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으니.
“후우…….”
작게 숨을 내뱉은 그는 다름 아닌 제리 비였다.
제리는 경건한 눈빛으로 무릎 앞에 놓인 물건을 양손으로 고이 받쳐 들었다.
“드디어…….”
어딘가 모르게 감격에 젖은 목소리.
그런 그의 손에 올려진 것은 다름 아닌 복슬복슬한 동물의 귀가 달린 머리띠였다.
이를 받쳐 든 제리는 감회에 사로잡혔다.
“…드디어 늑대라니.”
제리의 머리띠.
그건 다름 아닌 늑대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신분 상승에 코끝이 찡해졌다.
‘나도 늑대다!’
작년에 사슴으로 이 퀘스트에 참가하여 얼마나 서러웠던가.
선공을 하지도 못하고, 일단 먼저 한 방 얻어맞아야 겨우 반격할 수 있었던 사슴.
하지만 늑대는 다르다.
공인 1단급만 될 수 있는 자격 요건, 공방 200합의 제한.
그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있게 만드는 늑대 계급 최고의 특권.
그건 바로 선공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이게 얼마나 크나큰 혜택인지는 토끼와 사슴을 해 본 이들만이 알고 있으리라.
“후우, 후우…….”
살짝 떨리는 손으로 머리띠를 착용한 제리.
그는 작게 자신의 존재감을 입에 담아 보았다.
“멍멍.”
늑대임을 증명하는 울음소리를 굵직한 목소리로 몇 번이나 내뱉은 제리.
그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이군.”
짐승들이 사냥을 벌이는 시간.
바로 자신이 제대로 활약할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제리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가슴을 쭉 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부스럭-.
뒤쪽에서 들려온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
이에 제리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왔군!’
늑대 제리의 첫 사냥 데뷔.
그 화려함을 장식할 희생양이 말이다.
제리가 눈에 힘을 팍 주며 뒤돌아섰다.
“운이 나쁘군, 여기서 나를 만나…….”
호기롭게 돌아섰던 제리는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수풀 속에서 삐죽 솟은 검은 머리통.
아직 온전히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검디검은 머리통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소름이 돋아 올랐다.
‘에, 에이. 설마?!’
그래, 그 녀석이 여기에 올 리가 없잖아?
그런 생각으로 애써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켰으나, 곧 수풀에서 온전히 드러난 얼굴을 보고 다시금 심장이 쿵쾅거렸다.
“헉?!”
어둠 속에서 빛나며 자신을 꿰뚫어 보는 황금빛 눈동자를 본 제리는 저도 모르게 절로 뒷걸음치고 말았다.
아니, 제리가 아닌 그 누군들 저 황금안을 보면 똑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제리를 발견한 황금안이 깜빡이며 반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뭐야, 쩨리 선배였어?”
“네, 네가 왜?!”
“쪠리 선배, 오랜만!”
여전히 수풀 사이에 몸을 숨기고 얼굴만 빼꼼히 내민 채 손을 흔드는 유리.
이에 제리는 애써 당황을 가라앉혔다.
‘지, 진정해. 이건 51기의 퀘스트라고!’
순간 작년 50기의 가죽 모으기 퀘스트 때가 떠올라서 허둥거렸지만, 침착하게 생각해 보면 유리가 이번 퀘스트에 참여한 건 분명 동물 역을 위해서일 것이다.
즉, 다시 말해 유리와 자신은 같은 편이라는 소리.
그걸 깨달은 순간 제리는 불안이 싸악- 가신 얼굴로 물었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어쩐 일이기는, 퀘스트 참여하러 왔지.”
“네가?”
제리는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애초에 곰과 호랑이는 흑검병들이 전담할 테고.
사슴은 비공인 1급, 늑대는 공인 1단만 배역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유리가 이 퀘스트에 받을 수 있는 역할은 단 한 가지.
바로 경지에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으나 오로지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토끼 역할뿐이었다.
제리는 피식 웃었다.
“너… 토끼냐? 후후.”
그러면서 은근히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가슴을 폈다.
마치 넌 토끼지만 난 늑대다… 라는 약간의 우월감이 담긴 눈빛이었다.
이를 알아차린 유리도 똑같이 피식거려 주었다.
“토끼? 내가 그딴 약소한 조루 종족 따위를 할 거 같아?”
그리 비웃음을 흘린 유리가 수풀을 빠져나오고.
“…어?”
그의 손에 들린 가죽조끼를 본 제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 옷은?!”
노란 바탕에 검은 줄무늬.
유리는 제리가 이를 잘 볼 수 있게끔 크게 한 바퀴 빙 돌려 멋들어지게 입었다.
그러고는 거만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꿇어 경배하라, 짐이 바로 이 숲의 제왕일지니.”
“……?!”
그러기 무섭게 제리의 입에서 튀어나온 경악성.
“호, 호랑이?! 네가 호랑이라고?!”
“물론.”
“마, 맙소사! 곰이랑 호랑이는 흑검병이 하는 거 아니었어?!”
“어제 나보고 호랑이 맡아 달라던데?”
놀라 연신 입을 벙끗거리는 제리를 보고 유리는 가볍게 턱짓했다.
“이봐라, 늑대. 나의 첫 번째 부하가 되지 않겠느냐.”
“…부하?”
“응, 나랑 같이 애들 조지러 가자.”
“너랑?”
“응, 나랑.”
“…네 친구들은 다 어쩌고? 테레시아나 다른 애들.”
“걔들도 원래는 같이 이 퀘스트 참여하려 했는데, 공인 2단은 맡을 역할이 없다더라고. 그런데 또 토끼는 하기 싫다고 그러잖아? 그래서 아마 지금쯤 쉬고 있을 거야.”
“아하.”
“그래서, 나랑 갈래 말래?”
유리의 재촉에 눈을 끔뻑이던 제리.
‘저 녀석이랑 같이 움직인다고?’
눈을 끔뻑이던 제리는 잽싸게 고개를 숙였다.
“분부 받들어 모시겠나이다, 저어언하!”
“오냐.”
푹 수그린 제리.
그는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이 녀석이랑 같이 움직이면… 누가 날 건드릴쏘냐!’
동물의 숲의 폭군.
아니, 미친 제왕!
제리는 그의 오른팔이 될 기회를 냉큼 낚아챘다.
그렇게 한 마리의 호랑이와 늑대를 필두로 광란의 사냥이 시작되었다.
***
쿵-!
나직한 울림.
바사삭-.
타오르던 장작이 튀어오르며 불똥과 재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쳐!”
“막아!”
장작불의 빛과 달빛이 어우러진 가운데.
46기의 하얀 견장을 물려받은 51기 3명과 붉은 견장의 50기 2명이 혼잡스럽게 섞였다.
난전 속에 교차하는 은빛 섬광
캉-! 카캉-! 캉!
연달아 울린 날카로운 소음이 밤하늘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곧이어 신음과 짜증 섞인 외침이 터져 나왔다.
“큭!”
“야, 이반! 뭐 하는 거냐!”
짜증을 내는 쪽은 다름 아닌 50기.
놀랍게도 그들이 수세에 몰린 거였다.
물론 3 대 2의 싸움이면 당연히 2명 쪽이 불리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두 명이 무려 늑대 머리띠를 한 이들이었다.
그것도 그냥저냥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50기 중에서도 상위권 실력의 두 사람.
바로 클라리스와 이반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뭐 하긴, 좆 빠지게 칼 휘두르고 있지! 그러는 너는 뭐 하는 거냐, 처자냐?”
“나도… 으악! 시발, 방금 대가리 깨질 뻔했잖아! 야, 저 새끼 좀 어떻게 해 봐!”
“그게 그리 쉽게 되는 거였으면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겠냐! 진즉에 저 새끼들 다 때려눕혔지!”
3명의 51기.
그중에서 둘은 그저 그런 별 볼 일 없는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50기의 두 사람이 51기 무리에게 밀리고 있는 건 단 한 명 때문이었다.
훙-.
그 한 명은 바로 거대한 도끼 창을 회초리처럼 휘두르는 무치였다.
“젠장, 51기에도 괴물 새끼 한 마리가 있었네!”
“아아, 저 새끼, 그 녀석이구만! 백보 의식에서 아홉 걸음을 걸은 녀석!”
3 대 2의 격전.
하지만 사실상 무치가 혼자서 50기 둘을 몰아붙이는 것과 다름없었다.
나머지 51기들은 약간씩 무치를 보조하는 수준.
‘큭! 차라리 나머지 51기 녀석들을 먼저 처리하고 저 덩치를 나와 이반이 제대로 상대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저 두 새끼만 먼저 눕히면 확실히 이길 수 있을 거 같은데!’
문제는 무치를 돕는 51기들도 자신들이 잡히면 판세가 뒤집힌다는 것을 아는지 철저하게 무치의 뒤에서 보조만 해 주고 있다는 거였다.
그로 인해 상황이 점점 더 난항으로 치닫자 이반과 클라리스는 눈빛을 교환했다.
‘어쩌지?’
‘튈까?’
이대로는 도리어 자신들이 51기 괴물에게 당할 수도 있었다.
하여 두 사람은 일단 후퇴하고 상황을 살피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뒤로 빠지려는 순간.
부스럭-.
인근에서 들려온 인기척.
이에 51기와 50기가 거리를 벌리고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서로서로가 이번에 등장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편이길 바랐다.
잠시 뒤, 두 무리의 표정이 극명하게 갈렸으니.
“동기다!”
“우리 좀 도와줘!”
환희하는 51기와.
“젠장!”
“이, 이런…….”
참담한 표정을 지은 50기.
새로 나타난 이들은 무려 8명에 달하는 51기 무리였던 거다.
이에 50기 두 사람은 더는 지체하지 않고 빠르게 그 자리를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데.
파바박-!
새로 나타난 51기들이 순식간에 산개해 50기 두 사람을 에워싸는 게 아닌가.
특히 50기의 배후를 잡은 레몬빛 머리카락을 가진 미소녀의 기세는 다른 이들보다 한층 더 매서웠다.
그렇게 50기 두 사람을 오도 가도 못 하게 포위한 리사가 정면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무치, 안녕! 또 보네?”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상큼한 목소리.
당황한 무치는 엉겁결에 손을 마주 흔들고 말았다.
“아, 안녕?”
무치가 인사를 받아 주자 리사는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내 도움이 필요했던 거지?”
“어… 응.”
고개를 끄덕이는 무치를 향해 살포시 미소를 지어 주었던 리사.
하지만 그녀의 시선이 50기 두 사람에게로 향하자 살가운 미소는 사라지고 서늘함만이 가득했다.
그와 함께 사방에서 쏟아지는 살기.
이를 중앙에서 맞게 된 이반과 클라리스는 작게 쑥덕거렸다.
“야, 우리 지금…….”
“응… 망한 거 같다.”
“51기 녀석들한테 당한 걸 알면 유리 녀석이 우리 죽을 때까지 놀릴 텐데.”
“놀리기만 하면 다행이게… 50기 망신시켰다고 지랄 맞게 굴려 댈 텐데.”
“…좆 됐네?”
“…그렇지?”
50기 둘의 표정이 참담한 빛으로 물들어 갔다.
하지만 그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멍멍!
어디서인가 들려온 소리에 귀를 쫑긋거린 둘이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멍멍!”
“멍멍멍! 아르르- 멍멍!”
명문가의 자제로서 개처럼 짖는다는 게 조금 껄끄럽기는 했다.
‘알 게 뭐야!’
또한 자신들을 바라보는 51기의 혐오스러운 표정에 마음도 아팠다.
‘그것도 알게 뭐냐!’
하지만 지금은 체면 따위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니들도 그 새끼 밑에서 1년만 굴러 봐라.’
‘우리처럼 안 되고 배기나!’
체면? 품위? 교양?
그딴 건 사치일 뿐.
나중에 유리한테 개처럼 굴림 받는 것보다는 그냥 지금 개가 되어 좀 짖는 게 백배, 천배 나았다.
“왈왈! 멍멍멍멍!”
“아르르르! 멍멍!”
그런 두 사람의 필사적인 구조 신호가 닿았음일까.
“멍멍!”
개 소리를 내며 늑대 귀 머리띠를 한 사람이 등장했다.
그 낯익은 얼굴을 본 이반과 클라리스는 살짝 실망한 눈치였다.
‘젠장, 그렇게 필사적으로 짖었건만 고작 한 명이라니!’
‘그것도 하필 저 선배냐!’
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그들을 최대한 열심히 소리쳤다.
“제리 선배님, 도와주십쇼!”
“이거 저희 둘만으로는 처리 못 합니다! 저희가 최대한 버티고 있을 테니 가서 지원 좀 불러 와 주십쇼!”
그런 필사의 외침을 들은 제리.
그는 공터의 사람들을 쭈욱 훑어보며 도망치기는커녕 오히려 앞으로 한 발짝 더 깊게 들어왔다.
너무도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이다.
평소 그답지 않게 사뭇 여유가 넘치는 모습.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과 사뭇 다른 제리의 모습에 이반과 클라리스는 그가 미친 게 아닐까 싶어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들은 곧 제리의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알 수 있었다.
“지원이 필요하다는데… 어찌할깝쇼, 즈은하?”
공손하게 뒤를 향해 고개를 숙인 제리.
곧이어 그 방향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쯧쯧, 쪽팔리다 쪽팔려. 후배 새끼들한테 뚜까 맞고 구조 요청이라니. 에라이, 한심한 자식들아.”
귀에 익은 음성에 움찔거린 이반과 클라리스.
그들은 곧이어 황금안을 번쩍이며 등장한 유리를 보고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네가 여긴 왜?”
“어, 가만… 저 옷?!”
“설마?!”
유리가 입은 호피 조끼를 알아본 두 사람의 얼굴에 화색이 번져 나갔다.
그러다 마침내 공터에 완전히 들어선 유리.
그가 웃으며 선포했다.
“어흥, 호랑이님 등장이시다.”
단 한 사람.
유리의 등장으로 장내의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혔다.
호랑이라는 소리를 들은 51기들은 낯빛이 굳어졌고.
특히 무치는 긴장으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다만 이상한 점은 유리의 등장에 기뻐하는 이들이 50기뿐만이 아니라는 거였다.
“…유리 님?”
유리를 보고 이채로운 눈빛을 보이는 리사.
반면, 그런 그녀를 신경조차 쓰지 않은 유리는 다소 경직된 51기들을 둘러보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에이, 너무 쫄지들 말라고. 본 호랑이는 너희를 해치지 않아요.”
하지만 그런 말과 달리 유리는 주먹을 꺾으며 앞으로 나갔으니.
“다만 조금 따끔하기는 할 거야.”
그가 이번에는 목을 좌우로 꺾었다.
두득- 두득.
“그래도 금방 끝내 줄게.”
유리의 살벌한 미소에 50기 두 사람도 덩달아 환히 미소 지었다.
‘됐다!’
‘니들 좆 됐다!’
평소에는 마주치기도 싫은 미친놈이 오늘만큼은 너무도 든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