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38
237화. 부작용 (1)
껄렁껄렁한 걸음으로 나아가며 유리가 늑대들에게 명령했다.
“거치적거리니까 니들은 빠져.”
어쩌면 자존심 상할 수도 있는 무시에 가까운 명령이었으나 늑대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희희낙락 웃으며 물러나기 바빴다.
애써 만든 포위망에서 50기들이 유유히 빠져나감에도 51기들은 딱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늑대들보다는 당장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호랑이의 존재가 그들이 섣불리 행동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저 사람이… 호랑이?”
“무려 500만 포인트짜리!”
처음 무치와 같이 있던 51기들은 유리가 걸친 호피 조끼를 보며 눈을 빛냈고.
“…….”
이후에 합류한 이들은 유리를 경계하며 리사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다만 그들도 조금은 의아한 눈빛을 하고는 있었다.
새로 등장한 호랑이와 50기들의 대화.
그리고 호랑이가 입고 있는 의복이 흑검병의 것이 아닌 자신들의 것과 같다는 점.
그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호랑이가 같은 기수라고?’
이 동물의 숲에서 가장 잡기 힘든 호랑이가 흑검병이 아닌 자신들과 같은 요람의 기수였다니.
그 사실이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진 것이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백보 의식 당시 유리가 등장한 건 51기 대다수가 기절해 있던 때.
그나마 유리가 어떤 존재인지 51기 내에서 알고 있는 이는 무치와 마지막까지 기절한 척을 하고 있었던 리사뿐이었으니까.
하여 다른 이들은 유리를 경계는 할지언정 두려워하거나 도망칠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이 수적인 우세로 호랑이를 잡아 일확천금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그들의 뇌리에 생겨나고 있었다.
“…아가씨,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리사와 함께 온 이들 중 한 소년이 나직하게 나직이 말을 걸었다.
이에 리사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마음대로.”
“그 말씀은……?”
“너희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
지금까지 리사와 지낸 이래 그녀가 자신들에게 주관적으로 행동하라고 명령을 내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소년은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리사를 제외하고 자신을 포함해 모두 일곱.
그리고 저쪽에 있는 이들까지 합치면 모두 열 명이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늑대 역의 선배들은 뒤로 빠져 있었다.
‘다른 선배들은 끼어들지 않는 건가?’
‘혼자서 우리를 전부 상대하겠다고?’
만약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호랑이가 일개 기수가 아닌 흑검병이었다면.
그리고 혼자가 아닌 다른 늑대 선배들이 함께했다면 51기들도 생각을 달리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여유롭게 홀로 걸어오는 유리의 모습은 되레 51기들에게 ‘해 볼 만하겠다’라는 마음을 심어 주었다.
‘다른 선배들이 끼어들기 전에…….’
‘빠르게 끝내자!’
서로 눈빛을 교환한 이들이 벼락처럼 움직여 유리에게 돌진했다.
그 모습에 무치 뒤에 서 있던 다른 두 명도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아, 안 돼!”
자신을 지나쳐 달려가는 동기들을 보고 당황한 무치가 손을 뻗어 보았지만,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의 눈은 이미 탐욕으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잘하면……!’
‘어쩌면 우리한테도 기회가 올지도 몰라!’
다수가 덮쳐들다 보면 어쩌면 자신들에게도 행운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먼저 달려든 저들이 호랑이의 힘을 빼놓거나, 혹은 부상이라도 입힌다면?
그로 인해 자신들이 호랑이 가죽을 차지하게 되는 행운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저마다 다른 마음을 가지고 유리를 향해 달려드는 9명의 소년·소녀.
누군가는 호랑이를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누군가는 어부지리, 혹은 요행을 바라고.
하지만 그 모든 건 아직 호랑이는커녕 곰 구역에조차 들어가 본 적 없는 이들이었기에 내린 판단이었다.
또한, 유리 홀랜드가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하기에 품은 망상이기도 했다.
그러한 망상은 쉽게 깨지는 법.
타닥-.
사방에서 자신을 향해 검을 빼든 이들이 달려듦에도 유리는 너무도 태연했다.
그렇게 9명과의 거리가 대략 2m 안쪽으로 줄어든 순간.
파칙-.
한 줄기의 푸른 뇌전이 공터의 중앙에 피어올랐다.
그와 함께 유리의 신형이 푸른 뇌전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그리고.
콰릉-.
엄청난 소음이 빛과 함께 터져 나오면서 굵은 뇌전이 9명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컥!”
“크헉!”
감전이라도 된 듯 공중에서 파닥거린 9명.
곧이어 단 하나의 굉음이 쩌렁쩌렁 울리며 동시에 그들 모두가 뒤로 튕겨 나갔다.
쿵- 콰득- 쿵!
멀리멀리 날아간 이.
나무에 부딪힌 이.
수풀에 처박힌 이.
과정에 약간씩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지면에 널브러지는 결과는 같았다.
그리고 이미 날아가는 시점에서 기절을 한 상태였기에 그들이 다시 일어서는 일은 없었다.
한 줄기의 뇌전.
그리고 찰나의 일격(一擊).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뒤로 빠져 구경하던 늑대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보지도 못했다.’
‘대체 어떻게 한 건지.’
‘무룡대전 때에 비해서 뭔가 좀… 달라진 거 같은데?’
자신들의 경지로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무언가 유리의 기세가 안정적인 느낌이었다.
무룡대전이 고작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달라진 느낌이 들다니.
이반과 클라리스, 제리는 마른침을 꼴딱 삼켜야만 했다.
그렇게 단 일격으로 아홉을 날려 버린 유리는 다음 희생양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 끝에 자리한 건 잔뜩 굳은 얼굴의 무치였다.
“뭐 하냐? 안 오고?”
유리가 웃으며 손을 까딱거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움직일 생각이 없는 무치를 보고 유리는 피식했다.
“야, 너, 나랑 다시 붙고 싶어서 요람에 들어온 거 아니었냐?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인 거 같은데?”
유리의 도발적인 음성에 창을 쥔 무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저 말이 옳았다.
자신이 이 요람에 들어온 이유는 바로 그에게 재도전을 하기 위함이었다.
다음에는 절대 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러기 위해 얼마나 고된 훈련을 했던가.
그러니 이 재도전의 순간은 자신이 그토록 기대한 순간일 터인데…….
‘그런데 어째서… 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거지?’
조금 전 9명의 동기가 한순간에 나가떨어지는 걸 보아서?
아니면 유리 형에게 느껴지는 기운에 압도당해서?
그것도 아니면 백보 의식 당시 자신을 지나쳐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뒷모습이 너무도 크게 느껴져서?
말없이 서 있기만 하는 무치.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본 유리는 혀를 찼다.
“어이, 코찔찔이. 너, 뭘 재고 있어? 이미 너도 알고 있잖아? 네가 죽었다 깨어나도 나한테는 안 된다는 걸. 너, 설마 나한테 이길 생각이냐?”
“……?!”
조롱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고막을 꿰뚫은 순간.
무치는 어째서 자신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모두였구나… 전부였어!’
자신이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는 그 전부가 맞았다.
동기 9명이 일시에 나가떨어지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에.
유리 형의 기세에 압도당했기 때문에.
그리고 백보 의식 당시 자신보다 훨씬 앞서 나가는 유리의 등이 너무도 커 보였기 때문에.
그 모든 걸 받아들이고 납득하여, 또다시 패배할 거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거였다.
무치는 지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진즉 눈치챈 유리가 피식 비웃음을 날렸다.
“그래, 어쩌면 지금처럼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차라리 나을 거다.”
“그게 무슨……?”
“이미 한 번 졌고, 앞으로도 계속 질 거고, 넌 평생 날 이기지 못할 테니… 그러니 그냥 지금처럼 그렇게 패배를 받아들이면서, 앞으로도 아무것도 하지 말고 살아.”
“……?!”
유리의 비웃음 가득 담긴 말에 무치의 두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싫어…….”
그리고 그 중얼거림은 가슴속에서 터져 나온 열기와 뒤섞여 우렁찬 고함이 되었다.
“그건 싫어어어어!”
귀청이 찢어질 듯 울리는 외침.
그와 함께 무치의 도끼 창이 핏빛 궤적을 그리며 유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슈우우웅-!
어마어마한 기세와 놀라운 속도.
이를 마주한 유리는 또다시 홀연히 사라졌고.
스륵-.
곧이어 무치의 등 뒤에 나타났다.
‘아?!’
너무도 간단히 유리의 움직임을 놓쳐 버린 무치가 당황하여 몸을 틀어 보려 했지만, 당연히 그보다 유리가 더 빨랐다.
훙-.
유리가 검집째 무치의 등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강의 기운을 머금은 검집이 무치의 등짝을 강타했다.
쾅-!
검집과 피륙이 부딪치며 마치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커흑!”
누구보다 튼튼한 몸을 지닌 무치도 이는 버틸 수 없었는지 피를 토하며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래도 보통 사람이었다면 즉사했을 공격에 가볍게 피만 토한 무치.
심지어 그것도 모자라 그는 곧장 일어서려 했다.
그러나.
빠악-.
유리가 휘두른 검집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그대로 지면에 얼굴을 처박아야만 했다.
털석-.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해 보지 못하고 축 늘어진 무치.
미동조차 없이 기절한 그를 내려다보며 유리는 작게 중얼거렸다.
“어쩌냐, 이 형님이 너랑 놀아 주기에는 너무 커 버렸는데.”
과거에는 정말 힘겹게 꺾어야만 했던 무치를 너무도 손쉽게 처리해 버렸다.
유리는 자신과 무치 사이에 벌어진 격차를 실감하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유리의 표정이 돌연 서늘해지며 왼편을 향해 팔을 뻗었다.
파측-.
뇌전을 머금고 뻗어진 팔.
그득-.
그의 손이 아무것도 없던 허공을 움켜쥔 순간.
옅은 잔상과 함께 리사가 짧은 단검을 쥐고 모습을 드러냈다.
유리의 손은 바로 그녀의 하관을 단단히 부여잡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리사의 청록빛 눈동자에는 당황, 그리고 즐거움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턱이 잡힌 순간 단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그보다 유리의 대처가 더 빨랐다.
쾅-!
리사를 잡자마자 그녀의 뒤통수를 그대로 지면에 메다꽂은 것이다.
“웁?!”
충격이 컸기 때문일까.
리사의 눈이 순식간에 크게 떠지며 검은자가 위를 향했다.
속된 말로 눈깔이 뒤집힌 상태.
아마 지금쯤 그녀는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으리라.
유리는 자신이 메다꽂은 소녀의 눈을 내려다보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내 통수를 치려 했으니… 각오는 돼 있겠지?”
냉랭한 시선을 던진 유리가 리사의 턱을 부여잡고 살짝 들어 올려 지면에 다시 메다꽂았고.
쾅-!
“……?!”
연이어진 강한 충격에 팔다리를 파들거리며 경련하는 리사.
결국, 그녀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총 다섯 합 만에 11명을 모두 처리한 유리는 스르륵 일어서면서 손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리사의 턱을 잡고 있던 손바닥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핥았어?”
묘하게 기분 좋은 얼굴로 기절한 소녀를 유리는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혀를 찼다.
“제대로 미친년 하나 들어왔네.”
그는 손에 묻은 침을 기절한 리사의 옷에 슥슥 닦은 후 늑대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 여긴 정리 끝. 얼른 다른 놈들 찾아서 움직이자고.”
이제 밤은 막 시작되었고.
찾아서 조져야 할 51기는 아직 수두룩하게 남아 있었다.
“출발!”
유리가 쾌활하게 외치며 앞장서 걸어가고.
그 모습에 늑대들은 혀를 내두르면서도, 먼저 간 유리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저도 데려가십시오, 전하!”
“나도 같이 가!”
“같이 가자!”
이 광란의 밤을 가장 안전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유리의 옆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의 뒷모습이었다.
그렇게 그날 밤.
미쳐 날뛰는 유리 덕분에 51기는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지옥으로 끌려갔다.
* * *
거대한 막사 안.
그 안에 80명이 넘는 인원이 주르륵 널브러져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시체를 모아 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들 전부가 미동조차 없었다.
그렇게 어둠에 잠식되어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막사 입구의 얇은 틈으로 빛이 새어 들어오고.
그로부터 약 5분여가 흘러.
가장 호되게 얻어맞았지만, 가장 먼저 일어나게 된 무치.
그는 아릿한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며 꿈틀거렸다.
등과 뒤통수에서 밀려드는 통증은 무치가 정신을 차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낯선 천장.
더디게 상황 파악을 하며 눈을 끔뻑이던 무치.
“…어?!”
그는 이내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는 낯선 공간을 두리번거렸다.
대형 막사로 보이는 너른 공간.
그 안에 누워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
“여긴 어디지……?”
무치가 조금 더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고자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펄럭-.
막사의 입구가 크게 나풀거리며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으니.
눈부신 역광과 함께 한 사람이 등장했다.
“기상!”
단호함과 냉혹함이 듬뿍 담긴 목소리.
유난히 귀에 익은 그 음성에 무치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어? 이 목소리는?’
그리고 마침내 천으로 된 막사의 입구가 다시 정돈되며 빛을 가렸고.
그와 함께 역광이 사라지며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모두 일어나라!”
냉혹한 인상의 소년.
그는 다름 아닌 군터 아이언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