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4
23화. 삼절 (2)
마체술의 심장인 마나 핵과 뼈대인 마나 로드.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설계되냐에 따라 마체술의 특색이 결정된다.
그리고 요한이 새로이 만든 마체술은 레드너 가문의 마체술에 근간을 두고 있었다.
정확히 따지면 기존의 것을 요한이 개량했다는 게 옳았다.
때문에 유리가 익힌 마체술이 레드너 가문 마체술의 특성을 품고 있는 건 당연했다.
그중 하나가 유리의 몸을 통해 발현했다.
탓-.
땅을 내디딤과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는 유리의 육신.
그 모습에는 ‘두둥실’이라는 표현만큼 완벽히 들어맞는 것은 없었다.
마치 구름을 밟은 듯, 혹은 중력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듯, 기괴한 모습.
운보, 속칭 구름 밟기라 명명된 레드너 가문의 첫 번째 절기.
고대 동방의 현인(賢人)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이 마체술을 두고 요한은 이리 말했다.
[만일 네놈이 운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정말 구름조차 밟을 수 있을 거다.]유리는 ‘그날’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요한이 절벽 하나를 날려 버린 날.
그가 자신을 들고 허공을 걷듯 내려온 것을.
‘그게 운보였어.’
진짜로 구름을 밟을 수 있을 거란 요한의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비록 지금은 땅을 밟고 달리는 수준이지만…….’
언젠가는 자신도 구름을 밟고 달리는 날이 오리라.
유리는 그리 믿었다.
‘뭐,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스스슥-.
무치가 만들어 낸 파괴적인 붉은 기운에 유령처럼 근접한 유리.
그는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불 속으로 날아드는 부나방처럼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유리가 천 갈래로 갈가리 찢길 것이라 예상했을 상황.
하지만 이후 벌어진 일은 그러한 예상을 뒤집었다.
스륵-.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붉은 창날의 공격 속에 유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스스스-.
유리의 움직임은 그다지 빠르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가볍고 유연했으며 기이했다.
도저히 틈이 없어 보이는 촘촘한 공격 속을 연체동물처럼 헤집고 다녔다.
스스슥-.
눈앞으로 다가온 붉은 창날을 5㎜의 차이로 피해 낸 순간.
유리의 귓가에 과거 요한이 했던 말이 맴돌았다.
[운보는 단순히 다릿심만 강하다고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신이야, 전신! 온몸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운보의 진면목이 드러날 거다!]유리는 요한의 조언을 잊지 않았다.
수천, 수만 번이고 되뇌어 꿈에서조차 떠올렸다.
‘하체란 대지와 상체를 잇는 연결 고리.’
우웅-.
발바닥이 대지를 디디고, 이를 통해 얻어 낸 힘이 두 다리를 통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거기에 마나 핵이 정해진 경로를 따라 마나를 보탠 순간, 유리의 움직임이 한계를 초월하니.
슈스슷-.
수십, 수백의 공격이 그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 * *
광란의 붉은 섬광 속에서 자유로이 움직이는 유리를 보고 랄프는 옅은 탄식을 내뱉었다.
“…운보로군.”
그것도 제법 완성도 있는 운보였다.
그 누구보다 운보의 까다로움을 잘 알고 있는 랄프였기에 이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운보에 당했던 옛 기억이 떠올라 씁쓸한 미소를 짓던 랄프는 곧 무언가를 깨닫고 화들짝 놀랐다.
‘가만, 그럼 저 녀석이… 고작 반년 만에 운보를 익혀 냈다는 소리지 않은가?!’
세상에는 수많은 가문과 비전 마체술이 존재했다.
그들에게 종합적인 순위를 매겨 본다면 레드너 가문의 마체술은 그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리라.
그건 바꿔 말해 레드너가의 마체술이 매우 난해하다는 소리였다.
어지간한 이는 평생을 가도 익혀 내지 못할 정도로.
‘그걸 반년 만에 저 정도 수준으로 구사한다? 기가 찰 노릇이군.’
물론 지난 반년간 유리가 쏟은 노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기는 한다.
하지만 그보다 몇 배를 노력한다고 해도 안 될 놈은 안 되는 법.
‘그런 면에서 저놈은 될 놈이란 소리군.’
그것도 ‘매우 잘 될’ 재능 있는 놈이었다.
랄프는 유리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유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반년이 아니었다면.
그에게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이 대련은 유리의 승리로 끝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랄프는 무치의 공격 속에서 움직이는 유리를 보며 그리 말했다.
“더는 뚫어 내지 못하겠군.”
그의 말마따나 유리는 무치의 공격을 무난하게 회피하고는 있었으나 더는 나아가지는 못했다.
마치 무치의 공격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
만약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보유한 마나의 총량이 밀리는 유리가 먼저 나가떨어질 게 분명했다.
무치의 승리를 예상한 랄프가 요한을 향해 히죽 웃어 보였다.
“거, 아쉽게 됐습니다. 운보의 숙련도가 조금만 더 높았다면 좋은 승부가 되었을 듯싶은데.”
그의 말속에는 은은한 승리감이 깃들어 있었다.
랄프는 요한이 약 올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으나, 그가 마주한 것은 요한의 비릿한 미소뿐이었다.
“그렇지, 저대로라면 뚫을 수 없겠지.”
“……?”
“물론 저것뿐이라면 말이다.”
“뭔 말이요, 그게?”
“푸흐흐.”
낮게 깔린 요한의 웃음소리에 무언가가 번뜩 떠오른 랄프.
“…설마?!”
그의 시선이 다급히 유리에게로 돌아갔다.
* * *
사방에서 유리를 옭아매는 붉은 기운.
하나를 피하면 다른 하나가 날아들었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끈덕지게 막아섰다.
그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유리도 깨달았다.
계속해서 이대로라면 바뀌는 게 없을 거라고.
따라서 변화가 필요했다.
‘더… 더 빠르게!’
이 붉은 창살을 뚫어 내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야만 한다.
‘계속 알짱거리는 저 붉은 기운이 따라오지 못할 속도로!’
유리의 마나 핵이 다시금 약동하며 새로운 마나 로드에 마나를 공급했다.
운보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경로로 뻗어 나가는 마나.
타닥-.
그와 동시에 유리는 자신의 내면에서 스파크(Spark)가 튀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했던 말 기억하느냐?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자유로운 마체술을 익히게 될 거라고 했지. 운보가 그중 자유로움을 담당했다면 네놈이 지금부터 익힐 건…….]몸속에서 피어난 작은 스파크는 삽시간에 줄기를 내뻗었고.
[극한의 빠름이다.]츠츠츠-.
이내 유리의 전신이 뇌전에 휩싸였다.
레드너가(家) 비전 마체술.
뇌익(雷翼).
파직- 파츠츠!
하얀 뇌전이 꿈틀거린 순간, 유리가 움직였다.
번쩍-.
백색의 섬광이 한 번 번뜩이며 두 명의 유리가 나타났다.
진짜 유리와 그가 떠난 자리에 남은 잔상.
붉은 창살의 감옥은 벼락의 날개(雷翼)를 펼친 유리를 더는 가둘 수 없었다.
파칫-.
무치가 만들어 낸 붉은 창살의 영역은 반경 3m 정도.
유리는 그 영역을 한걸음에 꿰뚫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무치의 등 뒤였다.
철컥-.
무치의 어깨 위에 올라온 도신.
예리한 칼날이 녀석의 목에 바짝 붙자 살짝 피가 흘렀다.
놀란 무치가 굳어 버리자, 칼자루를 쥔 유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걸로 1 대 1이다, 이 자식아.”
* * *
무치의 목에 검을 겨눈 유리를 보며 랄프는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허!”
운보가 고대 동방의 현인에게서 비롯된 절기라면 뇌익은 천 년 역사를 지닌 레드너 가문의 정화였다.
운보와 뇌익.
뇌운(雷雲)이라 칭해지는 레드너 가문의 두 가지 절기(二絶).
오로지 그 두 가지 절기만으로 레드너 가문은 대륙에 드높은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
나아가 요한 역시 뇌운을 통해 검주에게 도전할 자격을 얻지 않았던가.
대신 그만큼 난해한 절기였기에 기본을 익히는 데에만 족히 수년이 걸린다고 하였다.
‘그걸 고작 반년 만에 끝냈다? 두 가지 전부를?’
운보도 그렇고, 뇌익도 그렇고.
유리의 수준은 그저 그렇게 흉내 내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두 가지 절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기본 이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에 랄프는 어이 없다는 듯 요한에게 물었다.
“…대체 어찌 한 겁니까?”
“뭘?”
“저 녀석 말이요. 대체 반년 동안 뭘 어떻게 가르쳤기에 저 정도 수준이 된 거요?”
랄프의 물음에 요한이 거만하게 가슴을 쫙 폈다.
“엣헴, 네놈이 드디어 깨달은 모양이로구나? 이 몸이 교육자로서도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다는 걸!”
“…….”
“그래, 내 비결이 알고 싶다고? 그럼 어디 정중히 부탁해 보거라. 에헤헴!”
요한의 거드름에 랄프의 얼굴이 단번에 썩어 문드러졌다.
그는 매우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었다.
저 재수 없음을 참아 가며 꼭 들을 필요가 있나?
아니면, 자존심을 내버리고 비결을 들어?
오랜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후자였다.
사랑하는 손자의 교육을 위해 자존심을 내버린 것이다.
“크흠, 그… 선배님께서 오랜만에 이 후배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신다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킁!”
“끝?”
“부, 부탁드립니다.”
“허허, 오랜만에 네놈이 후배로서의 참된 자세를 취하는구나.”
“큽!”
“오냐, 네가 그리도 부탁하는데 내 어찌 후배의 청을 무시할꼬.”
“…그래서 뭡니까?”
“내 비결? 그거 생각보다 별거 없다. 그냥…….”
“그냥?”
“똑똑한 놈 데려다 가르치면 된다. 그럼 알아서 잘 크더라.”
“…끝입니까?”
“끝이다.”
“…….”
유들거리는 요한의 얼굴을 본 순간 랄프의 손이 우드득- 말렸다.
핏줄이 돋아날 정도로 바들바들 떨리는 랄프의 주먹.
선배고 나발이고 간에, 지금이면 얼마든지 팰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이 그를 인내하게 했다.
한편 씩씩대며 부들거리는 랄프를 보고 요한은 속으로 낄낄거렸다.
‘비결? 그딴 게 어딨냐.’
알려 주고 싶어도 알려 줄 비결 따윈 없었다.
그가 랄프에게 한 말은 진실이었으니까.
‘대충 방향만 잡아 주니 저놈이 알아서 잘 크던데?’
사실 요한도 유리가 이 정도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반년 동안 운보 하나만 습득해도 충분히 성공적인 수련일 거로 예상했었다.
거기에 뇌익까지 익힌다?
‘어림없는 일이라 여겼지.’
자신 역시 운보의 기초를 다지고 뇌익에 입문하는 데 1년이란 시간이 걸렸고, 지금 유리 정도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총 3년이 소요됐다.
레드너 가문 역사상, 뇌익을 창안한 5대 가주 이후 최고의 천재라 찬사받던 자신이 그러했건만…….
‘어림짐작으로 녀석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느끼긴 했지. 그런데 이건 뭐…….’
막상 까 보니 녀석은 자신의 짐작 이상의 괴물이었다.
[갑자기 뭔 개소리? 영감이 알려 줘 놓고 어떻게 한 거냐고 물어 보면 내가 뭐라고 해야 하는 거야?]운보까지는 그렇다고 칠 수 있다.
자신 역시 운보는 배운 그날 바로 흉내를 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뇌익까지 배운 그날 바로 따라 하는 유리를 보고 놀라 물으니 저리 답하더랬다.
자신이 한 일이 어떤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그 태연한 얼굴이 떠오르니 다시금 허탈함이 밀려들었다.
‘재수 없는 꼬맹이 같으니라고.’
살면서 두 번째다.
자신이 누군가의 재능에 부러움과 질투를 느끼는 건.
그 첫 번째는 검주였으며, 두 번째는 유리가 되었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요한의 질투심에 끼얹어진 기름 역할을 한 건 유리의 태도였다.
[영감, 일어나! 수련할 시간이야!]뭐든지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빠르게 흥미가 식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나, 다수의 천재가 넘치는 재능으로 인해 배움에 대한 흥미를 잃고 방황하기도 한다.
특히 막 배우기 시작하는 초창기에 그런 현상이 더 자주 나타난다.
그때 그들을 다잡아 주는 게 스승이란 존재였다.
그런데 유리는 달랐다.
[뭐야? 수련하는 건 난데 왜 영감이 힘들다는 낯짝이야?]자신이 다그치지 않아도.
옆에서 등 떠미는 사람이 없어도.
유리는 방황하지 않고 제 갈 길을 나아갔다.
[끝이라고? 거절한다! 내 수련의 끝은 내가 정한다!] [자, 잠깐… 만… 이, 이것만 마저 하고… 쉴, 쉴게… 웁! 우웨에에에에웩!] [영감, 한 그릇 더! 먹는 것까지 수련이야! 지금 먹는 이 한 그릇이 내일의 근육이자 뼈가 되는 거다!] [기다려… 난, 할 수 있어… 지치지… 않았어. 지, 지금… 일, 일어날 거야.]괴물 같은 재능을 타고났음에도 유리는 매일매일 최선을 다했다.
녀석은 자신과의 약속에 조금의 타협도 하지 않았다.
반면 유리와 비슷한 나이 때의 자신은 어떠했던가.
‘나는 그러지 못했지.’
주변에서 쏟아지는 찬사와 추켜세움에 ‘나 정도면… 이 정도 했으면 조금은 쉬어도 괜찮잖아?’라고 타협하고 말았다.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그 시기에 말이다.
때문에 유리를 보고 있자니 후회감이 들었다.
‘만일 그 시절 내가 지금의 유리 녀석과 같았다면… 검주와의 승부, 그 결과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어쩌면 그래서였을 거다.
자신이 하지 못한 것을 유리가 해내고 있기에.
혹은, 녀석의 재능과 노력에 감화되어 버렸기 때문에.
‘동기 부여 차원에서 살짝 감칠맛만 맛보게 한 뒤, 뇌익까지만 가르치려 했건만…….’
원래 계획했던 것 이상을 유리에게 알려 줘 버린 걸지도.
“하여간 짜증 나는 놈.”
투덜거리는 말과는 달리 요한의 입술은 기분 좋은 호선을 그려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