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45
244화. 각인 (4)
촤악-!
차디찬 물이 잠든 이의 얼굴에 매몰차게 끼얹어졌다.
안 그래도 영하의 날씨.
거기에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이 끼얹어졌으니 제아무리 기절한 사람이라도 곧장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어푸푸!”
난데없는 물 싸대기에 화들짝 놀라 눈을 뜬 코반은 입과 코로 흘러 들어간 물을 내뱉으며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뭐, 뭐야?!”
얼굴을 흔들어 물기를 털어 낸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여기저기 분주히 돌아다니는 동물 귀의 기수들이었다.
토끼와 사슴 귀를 한 이들.
동물의 숲 속 토끼와 사슴은 여기에 다 모인 것인지 공터가 북적거렸다.
그들은 열심히 기절한 51기들의 얼굴에 물을 뿌려 깨우는 중이었다.
“아, 이 새끼들 빨리빨리 안 일어나냐!”
“안 일어나는 새끼들은 후드려 패서라도 깨워!”
“유리 새끼가 10분 안에 다 못 깨우면 우리도 같이 굴린 댔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어딘가 모르게 조급함과 초조함이 느껴지는 장면.
이를 멍하니 바라보던 코반은 기절 직전 자신이 겪은 일을 떠올리고 낯빛이 창백해졌다.
[지금까지 4번이었고, 이제 너까지 딱 다섯 번째다. 잘 봤지?]고작 4번의 칼질에 80명이 모두 고꾸라지고 코반만이 남았었다.
이는 코반의 실력이 좋아서도, 또 운이 좋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유리가 그를 마지막에 남겨 놓은 것뿐.
이 내기의 결과를 확인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확인이 끝나자마자 코반도 앞서 다른 동기들과 똑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고작 다섯… 아니, 네 번 만에 우리를 모두 제압할 정도면…….’
그것도 별로 애쓰는 기색 없이, 여유 있게 자신들을 제압할 정도면 유리 선배의 실력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거기다 아마도… 그게 저 선배의 전력은 아닐 거다.’
기절하기 직전 어렴풋이 들렸던 목소리가 있었다.
[시발, 안 죽이게 패는 거 드럽게 힘드네.]짜증이 가득 담긴 그 목소리가 사실이라면?
‘제압이 아닌 우릴 죽일 작정으로 손을 썼다면 4합도 걸리지 않았다는 뜻일 테고…….’
그건 평범한 공인 4단급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생각 끝에 코반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으니.
‘유리 선배는 어쩌면 공인 5단급일지도 모른다!’
코반은 뒷골이 쭈뼛거렸다.
‘맙소사… 고작 2년 차가 공인 5단급이라니!’
그게 말이 되는 일이란 말인가?
만약 자신의 추측이 정확하다면 이는 상식을 초월한 일일 터.
그렇게 되면 유리 홀랜드란 존재는 단순히 천재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재능의 소유자라는 뜻이었다.
그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오직…….
“…괴물.”
괴물이란 말뿐이었다.
그렇게 코반이 현실을 깨닫는 사이, 어둠이 찾아왔고 51기 전원이 정신을 차렸다.
그때 밤하늘에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집합!”
귀에 익은 짧은 명령에 모골이 송연해진 51기들.
그들은 머리가 생각하기 전에 이미 몸이 움직였고, 곧장 소리가 난 방향으로 뛰었다.
그렇게 51기들이 질서 정연하게 자리 잡는 데에는 불과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 그들의 앞에는 팔굽혀펴기를 하듯 엎드린 무치와 그 등을 밟고 선 유리가 있었으니.
엎드린 무치가 살짝 움찔거리자 유리가 으르렁거렸다.
“어쭈? 흔들리지?”
“시, 시정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기절한 덕분에 가장 먼저 일어나, 반란죄로 처벌받고 있던 무치.
그런 그를 단상 삼아 우뚝 선 유리가 제 앞의 51기들을 슥-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에 51기들의 어깨는 자연스럽게 움츠러들었다.
그때 모두를 대표해 코반이 답했다.
“저희가… 졌습니다. 결과에… 승복하겠습니다.”
덤덤하지만, 체념이 섞인 목소리.
이에 다른 51기들도 공감하는 듯 살짝 고개를 떨궜다.
그들은 유리가 비웃음 짓든, 비아냥을 날리든, 그 모든 걸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눈앞의 그는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는 강자였으니까.
하지만 유리의 답은 그런 51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뭔, 개똥 퍼먹는 소리야.”
뚱한 목소리가 그들의 고막에 날카롭게 꽂혔다.
그리고 재차 이어진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
“훈련에 지고 말고가 어디 있어?”
“예?”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뜬 51기들을 보며 유리는 무치의 등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이제야 야간 훈련을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나약한 소리 하고 자빠졌네. 야, 너도 들어가.”
유리가 무치의 엉덩이를 톡톡 걷어차니, 녀석은 냉큼 일어나 51기 무리로 섞여들었다.
그렇게 무치까지 돌려보낸 유리가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 한 51기를 보고 씨익, 미소를 날려 주었다.
“한번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지. 어디 보자… 퀘스트 종료까지 앞으로 6시간인가?”
철컥-.
시간을 가늠한 유리는 검 자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방식은 조금 전과 동일. 내가 10합 이상을 사용하면 훈련은 종료, 호랑이 가죽은 너희 거다.”
“그, 그 말씀은?!”
그제야 51기는 지금까지 얘기한 유리의 말이 무엇인지 깨닫고 얼굴이 굳어졌다.
‘아직 훈련이 안 끝난 거였어?!’
‘어, 어째서?!’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그들은 호랑이 굴에 제 발로 찾아든 상태였다.
주춤주춤 살짝 뒷걸음질 치는 51기를 보고 유리는 히죽거렸다.
“아, 그리고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딱-.
유리가 손가락을 튕기니 호랑이 구역 경계 곳곳에서 수많은 검은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바로 늑대 역의 기수와 곰 역할을 맡은 흑검병들.
어딘가 모르게 즐거운 미소를 머금은 그들이 호랑이 구역을 에워싸니, 그제야 51기들은 자신들이 완전히 공터에 갇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51기를 보고 유리는 신이 나 소리쳤다.
“자자, 우리 오순도순 즐겁고 알찬 시간을 보내자고!”
공터에 쩌렁쩌렁 울리는 유리의 외침에 51기들의 낯빛이 단체로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 * *
“끄아아! 자, 잘못했어요!”
“크에엑! 이제 그만!”
“제, 제발… 제발 집에 보내 주세요!”
유리의 야간 지옥 특훈이 시작된 지 3시간여.
그동안 몇 번이나 기절했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한 51기들.
하지만 불행히도 아직 자정이 되기까진 3시간이 더 남아 있었다.
“끄악!”
“아, 안 돼!”
공터에서 벌어진 아비규환의 참상에 테레시아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불쌍한 아이들.”
바로 한 기수 위에 권터 라이더란 불세출의 천재가 있었기에.
권터란 거대한 장벽이 자신과 49기의 동기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테레시아는 현 51기의 상황에 마냥 즐겁게 웃을 수만은 없었다.
‘저 아이들은 오늘을 평생 잊지 못하겠지…….’
아마도 오늘의 이 경험은 비단 요람에서뿐만이 아니라 사회에 나가서도 계속 저들을 괴롭힐 거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유리 홀랜드란 거대한 벽이 늘 그들의 앞을 가로막을 터.
그렇기에 이미 한 번 권터 라이더란 장벽에 부딪혔고, 이제는 유리 홀랜드란 장벽에 열심히 부딪혀 나가고 있는 선배로서… 테레시아가 해 줄 수 있는 건 작은 응원뿐이었다.
“힘내렴, 얘들아.”
그리고 그런 그녀의 진심 어린 응원은…….
“으헤헤헤헤! 어딜 도망가냐!”
“끄아아아! 오, 오지 마!”
광기 어린 웃음소리와 비명에 고스란히 묻히고 말았다.
* * *
“물.”
짤막한 한마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대한 그림자가 날쌘 표범처럼 움직였다.
“여기 있습니다, 선배님!”
대체 어디서 난 것인지 모를 나무 그릇에 물을 받아 와 공손히 내민 무치.
유리는 이를 냉큼 받아 들고 시원스럽게 들이켰다.
“크하!”
그가 개운한 소리를 내며 빈 그릇을 내던지니 큼지막한 손이 잽싸게 이를 낚아챘다.
그러고는 빈 그릇을 치우러 쪼르르 사라지는 무치의 뒤통수를 보고 유리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크, 이제야 좀 사람 구실을 하네.”
옆에서 그 말을 들은 테레시아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동네 똥강아지도 그렇게 굴려 대면 죽기 싫어서라도 사람 흉내를 낼걸?”
그런 테레시아의 말을 아린이 이어받았고.
“맞아, 막 사람처럼 두 발로 걸었을걸?”
거기에 군터의 첨언까지 이어졌다.
“잘하면 말까지 했을지도 모르지.”
끝으로 뽀삐도 동의한다는 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주변의 반응에 유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어쩌라고? 그래서 결국 좋게 끝났으니 된 거 아닌가?”
테레시아가 유리를 게슴츠레 바라보았다.
“…너만 좋은 거 아니고?”
51기의 가죽 모으기 퀘스트가 끝난 지 일주일.
그리고 이번 퀘스트는 여러모로 진기록을 남겼으니.
그 첫 번째 기록은 바로 퀘스트 마지막 날 집합에 참가자 전원이 불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는 거다.
그 시간에 51기 전원이 단체로 실신하여 기절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 이번 퀘스트에는 성과 발표 및 순위 발표가 없었다.
51기 중에 가죽을 모으는 데 성공한 사람이 없으니 그런 걸 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그로 인해 51기가 얻은 포인트는 0인 반면, 정작 교관인 유리만 혼자 거액의 포인트를 손에 넣게 되었다.
거기에 열심히 51기들을 두들기며 힘 조절에 관한 약간의 깨달음까지 얻었고 말이다.
하여 이번 퀘스트는 여러모로 유리만 많은 것을 얻어 가는 퀘스트가 되었다.
그 대목에서 테레시아는 살짝 멈칫했다.
‘아, 그건 아닌가?’
잘 생각해 보면 51기도 얻은 게 있기는 했다.
바로 유리 홀랜드란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정신적 충격을 말이다.
앞으로 51기가 유리에게 덤비거나 대항하는 일은 절대 벌어지지 없으리라.
‘못됐어, 정말.’
그렇게 완벽하게 후배를 휘어잡은 유리를 보고 테레시아가 혀를 내두를 때였다.
“유리 선배님!”
헐레벌떡 뛰어온 무치의 부름에 유리가 뚱한 얼굴로 답했다.
“뭐.”
“그… 밖에 좀 나가 보셔야 할 거 같은데요?”
“왜.”
귀찮은데 내가 왜 그래야 하냐는 듯.
나른했던 유리의 눈이 곧 이어진 무치의 말에 크게 떠졌다.
“어, 음… 그게… 누가 저희 성 옆에다가 뭔가를 짓고 있는데요?”
“…엉?”
유리는 순간 자신이 뭘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그런 반응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어째서 그런 짓을?”
“다른 좋은 곳을 잔뜩 놔두고 왜 하필 여기다?”
“배고프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네 사람의 반응 뒤, 그들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튀어나왔으니.
“어떤 겁도 없는 새끼가 감히 내 영업장에 빨대를 꽂아?!”
분노한 목소리.
하지만 그와 달리 유리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얼마나 뻔뻔한 낯짝인지, 어디 구경이나 한번 해 보자!”
그러면서 냉큼 일어나더니 신이 나 달려가는 그 모습에 모두가 확신했다.
“저거 분명… 자릿세 받으려는 거겠지?”
“그렇죠, 지금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상황이니… 속으로는 좋아하고 있을걸요?”
“쯧, 그러게 그 넓은 곳을 놔두고 왜 하필 이딴 곳에다가…….”
“배고프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4인방은 유리를 쫓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들도 자신들의 마왕성 옆에 이사를 온 겁대가리 없는 인간이 누구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한편, 선배 4인방의 뒤를 따르면서 그들의 대화를 귀담아들은 무치.
‘아!’
무언가를 깨달은 듯 그의 두 눈이 반짝였다.
‘유리 선배는 돈을 좋아하는구나!’
대충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것도 상당히 좋아하는 듯싶었다.
이는 아주 유용한 정보였다.
‘기억해 둬야겠다!’
분명 쓸모 있는 정보니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있을 터.
무치는 연신 ‘유리 선배는 돈을 좋아함’을 되뇌면서 바삐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순박하고 순진했던 무치는 마왕성 안에서 조금씩 세상의 풍파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