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46
245화. 진심과 의심 (1)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 유리.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마왕성 인근에서 부산스러움이 느껴지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잠시 뒤, 유리는 기가 찬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얘들 봐라?’
유리의 시선이 닿은 곳.
거기에는 정말 무치의 말처럼 몇몇 소년·소녀가 무언가를 짓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의 어깨에는 새하얀 견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51기?’
자신의 영역에 빨대를 꽂은 간 큰 놈들이 다름 아닌 51기라니.
‘이것들을 어떻게 조져야 잘 조졌다고 소문이 날까’라는 생각을 하며 그들을 유심히 보던 유리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어쭈? 이 새끼들 제법 전문적이네?’
7명의 소년·소녀가 합동하여 만들어 내고 있는 건 나무를 짜 맞추어 만드는 작은 목조 건물이었다.
그런데 그 솜씨가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전문적으로 누군가에게 배운 것처럼 말이다.
요람에 들어온 이래 자신 말고 이 정도로 수준 높은 솜씨를 가진 이들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심지어 그들이 이번에 들어온 신입들이었기에 유리는 흥미가 치솟았다.
‘어디서 이런 것들이 들어온 거지?’
유리가 신기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보다가 한 소녀를 발견했다.
남들이 다 열심히 일하는데 홀로 양지바른 곳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는, 조금 병약해 보이는 미소녀.
바삐 움직이는 이들 중 그 누구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는 모습에 유리는 저 무리의 중심이 레몬빛 머리 소녀임을 알아차렸다.
유리가 그리 상황 파악을 끝마친 사이, 마왕성에서 다른 이들이 나타났다.
그중에 섞여 있던 무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다급하게 유리에게 상황을 알리느라 이제야 레몬빛 머리 소녀를 발견한 거다.
무치가 눈을 끔뻑이며 중얼거렸다.
“리사 베르포트?”
그 중얼거림을 들은 아린의 미간이 살짝 모여들었다.
‘…베르포트?’
분명 어디서인가 들어 본 가문의 명칭.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여 아린의 미간이 더욱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옛 기억을 마저 떠올릴 수 없었다.
성큼성큼 리사를 향해 걸어가는 유리를 뒤쫓아야 했기 때문이다.
저벅저벅-.
위풍당당.
주머니에 손을 넣고 껄렁껄렁 다가오는 이를 발견한 소년·소녀들은 흠칫 놀라 하던 일을 멈추었다.
유리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 극도의 경계심이 깃들었다.
하지만 이전처럼 섣불리 달려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니, 못 했다.
이제 자신들이 작정하고 덤벼도 유리를 어찌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다른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리사의 뒤에 선 유리.
“야.”
짤막한 부름.
이에 몸을 돌린 리사가 유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꺄악!”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냅다 비명을 지르며 다급히 양 손으로 눈을 가리는 게 아닌가.
그것도 모자라 몇 발자국 뒷걸음치기까지 했다.
그녀의 반응에 유리 일행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유리의 표정은 똥이라도 씹은 것처럼 변했으니.
“뭐야, 나 따위는 쳐다도 보기 싫다 이거냐?”
지금은 누가 봐도 리사가 유리를 보자마자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상황이었다.
마치 보기 싫다는 듯 말이다.
그러니 유리의 기분이 나쁜 것도 당연지사.
뚱해진 그의 목소리에 리사는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그게 아니오라……!”
리사가 하는 말을 들은 아린이 뽀삐에게 속삭였다.
“야, 쟤 말투 이상해.”
“배고프다.”
“아, 맞다… 미안.”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야?’라는 뽀삐의 눈빛에 아린은 슬쩍 시선을 내리깔았다.
사실 이 요람에서 가장 말투가 이상한 사람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웅다웅하던 두 사람은 곧 이어진 리사의 외침에 재빨리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으니.
“이건 그냥 유리 님의 존재가 너무도 눈이 부셔서… 그래서 감히 쳐다볼 수가 없었을 뿐이옵니다!”
리사의 외침이 절절하게 메아리치니, 공터가 정적에 휩싸였다.
이를 들은 대다수… 아니, 유리를 제외한 모두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워 올렸다.
‘…뭐지?’
‘놀리는 건가?’
‘새로 유행하는 장난인가 보군.’
‘배고프다?’
처음에는 그저 리사가 유리를 놀리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너무도 진지한 그녀의 분위기와 끝끝내 유리를 쳐다보지 못하고 모로 고개를 떨군 모습에 장난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좌중의 입이 쩍 벌어졌다.
‘…진짜라고?’
‘정말?!’
모두가 경악한 사이, 유리는 팔짱을 끼고 턱을 쓰다듬었다.
“이건 좀… 신선한데?”
유리는 자신의 일평생을 되돌아보았다.
그리 길지 않은 일생, 첫 만남에서 욕 날리고, 주먹 날리고, 칼 날리는 놈들은 만나 봤어도 이런 참신한 반응은 또 처음이었다.
마치 희귀한 생물을 발견한 듯 리사를 요리조리 뜯어 보던 유리가 질문을 던졌다.
“야, 너 이름이 뭐냐.”
“아아……!”
유리의 질문에 리사는 갑자기 감격한 얼굴로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양손을 겹쳐 쥐는 게 아닌가.
마치 기도를 하듯 말이다.
“내 사랑, 나의 주여… 이 미천한 당신의 종은 리사 베르포트이옵니다.”
마치 신의 음성을 들은 듯한 행동.
그리고 실제로 눈을 꼬옥 감고 기도하는 리사의 반응에 유리마저 당황해 중얼거렸다.
“와, 씨… 이건 좀 무서운데?”
처음에는 그저 희귀한 생물인 줄 알았더니만, 알고 보니 미지의 생물이었다.
유리는 확신했다.
눈앞의 이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전혀 새로운 생명체라고.
‘이건 위험하겠는걸?’
뒷골이 살짝 싸한 느낌에 유리는 스리슬쩍 한 걸음 물러나며 물었다.
“어, 그래 뭐… 그건 그렇고, 니들 여기서 뭐 하는 거냐? 지금 누구 허락 맡고 남의 영업장에 무허가 건물을 짓고 있어? 앙?”
그런 유리의 물음에 일반적인 사람은 당황하는 게 보통이었다.
북쪽 숲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구역이었으니 개인의 영업장이고 뭐고 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당황한 이들은 유리의 발언에 반발하게 마련인데…….
“아아, 저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곳까지도 주의 성역(聖域)이었군요.”
“…성역?”
“당장 철수해서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하겠사옵니다!”
“엉?”
‘철수’라는 단어를 들은 유리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어쭈? 초장부터 쎄게 나오네? 지금 제대로 해보자는 거지?’
리사는 진심으로 철수할 생각이었으나, 유리는 그녀가 자신에게 흥정을 걸어오는 거라고 여겼다.
리사 같은 유형이 유리의 대뇌 자료에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사소한 오해였다.
이에 유리가 이를 어떻게 받아칠까 신중히 고민하는 사이, 먼저 입을 연 건 리사였다.
“다만, 유리 님…….”
살짝 말끝을 흐린 그녀를 보고 유리는 살짝 피식거렸다.
그는 ‘그럼 그렇지, 무슨 조건인지 한번 제시해 봐라, 일단 들어는 볼 테니까’라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힘이 빡 들어갔던 눈빛은 이어진 리사의 말에 맥없이 풀리고 말았다.
“그저 당신의 곁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머물고 싶은 이 종의 마음을 헤아려, 어디까지가 성역인지 알려 주실 수 있겠사옵니까?”
“…….”
“성역 가까이 머물며 유리 님의 존안을 하루하루 멀리서나마 뵙고 싶은… 저의 작은 소망을 부디 외면하지 말아 주시옵소서.”
진실함이 묻어나는 목소리.
그리고 간절함이 가득한, 촉촉한 눈망울에 무치는 흠칫거렸다.
‘쟤, 쟤가 저런 애였나?’
비록 리사에 대해 잘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무치의 기억 속 그녀는 종잡을 수 없고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소녀였다.
‘아… 지금도 그렇긴 한가?’
물론, 지금도 종잡을 수 없고, 위험해 보이긴 했다.
다만 분위기가 너무 달라 보였다.
과거의 리사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고 방황하는 듯 보였다면…….
‘…지금은 되게 안정적이네?’
마치 안식처를 찾은 듯 말이다.
그런 리사의 변화에 무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유리의 눈빛은 심유하게 변했다.
리사를 고요히 바라보는 유리.
“일단…….”
그에게서 나직이 가라앉은 묵직한 저음이 흘러나왔으니.
“…이 문제는 며칠 뒤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그동안 여기 공사는 중단이다.”
“모든 건 유리 님의 뜻대로.”
통보를 하는 듯한 유리의 말투에도 리사는 그저 공손히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정수리를 지그시 바라보던 유리는 휙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
“엥?”
“허?”
“배고프다?”
자신들을 지나쳐 빠르게 걸어가는 유리의 모습에 일행은 당황했다.
그들이 아는 유리라면 절대 이대로 끝낼 리가 없는데, 갑자기 물러선 게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끔뻑이던 그들은 쪼르르 유리의 뒤로 따라붙었다.
그렇게 그들이 마왕성의 정문에 다다랐을 즘, 결국 아린이 궁금증을 참다못해 유리를 불러 세웠다.
“뭐야? 유리, 왜 그냥 가?!”
아린의 부름에 딱 마왕성 입구에 멈춰 선 유리.
잠시 잠깐, 그렇게 멈춰 섰던 그가 살짝 고개만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그런 유리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으니.
“저년 저거, 보통 아니다.”
그리 말하는 유리의 시선이 저 멀리, 양손을 공손히 모은 채 이쪽을 바라보는 리사에게 닿았다.
곧 그의 눈에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이군.”
태어나 사고력이 깃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눈칫밥을 먹었고.
세상을 떠돌면서 온갖 흥정을 해왔지만, 이 정도로 수가 읽히지 않는 상대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수십 년 동안 시장 통에서 구르며 수많은 인간 군상을 상대해 온 닳고 닳은 상인.
세상을 떠돌며 온갖 위험을 극복해 낸 보따리상.
고작 은화 부스러기에도 피 튀기는 칼질이 오고 가는 용병 업계.
그 외에도 뒷골목 양아치, 심지어 장물아비까지.
그 아무리 대단한 상대라고 최소 한두 가지의 수는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건 아무것도 읽히지 않아.’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리사 베르포트의 생각은 예측조차 되지 않았다.
그것이 유리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쟨,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될 상대다. 그래서 일단은 한발 물러나 제대로 준비한 뒤 공략할 생각이고.”
그런 유리의 이야기를 들은 4인방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그 정도라고?”
“와, 유리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쟤 진짜 무서운 애였네? 어쩐지 눈깔이 살짝 돈 거 같긴 하더라니!”
“배, 배고프다…….”
“확실히 행동 하나하나가 예사롭지는 않더군.”
테레시아부터 군터까지.
4인방이 전부 놀란 눈으로 리사 쪽을 흘끗거렸다.
그사이 유리는 앞머리를 쓸어 올렸으니.
“후우… 힘든 싸움이 되겠군.”
나직이 한숨 섞인 목소리.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잠시 감았다 뜬 유리의 두 눈이 화르르 불타올랐다.
“뭐, 그래도… 꺾는 맛은 있겠어.”
강하게 도전 정신을 불태운 그는 리사로부터 시선을 떼고 마왕성으로 들어갔다.
그런 유리를 4인방이 쫓아간 사이.
뒤떨어져 홀로 남게 된 무치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저기가 안 되면 근처에서라도 살게 해 달라는 말 아니었나?”
그걸 왜 유리 선배한테 허락을 맡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 말이었던 거 같았는데?
잠시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던 무치는 이내 의문을 털어 냈다.
유리는 물론 다른 선배들마저 저리 반응하는 걸 보니 그들의 말이 맞겠거니 싶었던 거다.
이후 그도 앞서간 이들을 쫓아 성큼성큼 마왕성으로 들어갔다.
* * *
어두운 실내.
작은 촛불 빛이 은은하게 퍼진 탁자 위로 누군가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스륵-.
손은 돌돌 말린 작은 종이를 펼쳤다.
그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도형이 적혀 있었으니.
탁-.
곧 두꺼운 책을 꺼내 펼친 손은 빠르게 책장을 넘기며 깨끗한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 갔다.
사각 사각-.
펜촉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가 실내에 작게 퍼져 나가고.
마침내 하얀 종이 위에 몇 줄기 글귀가 드러났다.
듀란 비코비치 요람 이탈.
복귀 일정 미정.
계획 무기한 연기.
글자가 적힌 종이를 든 손은 한동안 움직임이 없었다.
“쯧.”
짧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 뒤, 종이의 모서리가 촛불에 닿았다.
화르르-.
순식간에 불이 옮겨붙은 종이는 탁자 위 오목한 그릇에 툭- 하고 던져졌다.
그사이 하얀 손은 펼쳐 놓았던 두꺼운 책을 덮었다.
탁-.
빠르게 재가 되어 사라지는 종이.
촛불보다 커다랗게 타오른 불꽃으로 인해 실내가 잠시 살짝 밝아졌으니.
그때, 책의 겉표지에 금빛으로 쓰인 [세계 강자 열전]이란 제목이 뚜렷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종이가 전부 타 버리고.
후욱-.
강한 입김에 촛불마저 꺼지자 책은 물론 실내까지 컴컴한 어둠 속으로 잠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