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5
24화. 삼절 (3)
무더웠던 여름의 끝자락.
이제 짧은 가을이 지나면 길고 긴 겨울이 찾아온다.
때문에 대륙 전체가 다가오는 겨울 준비로 바쁘게 움직였지만, 그중 그 어떤 곳보다 바쁜 곳이 있었으니.
바로 다가오는 겨울에 새로운 기수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용의 요람이었다.
한 해, 요람에 들어가는 예비 기수만 해도 족히 수백 명.
물론 그중 무사히 5년을 버티고 수료하는 이는 극히 일부였지만, 일단 입도가 허락된 이상 그들은 철저하게 요람의 관리하에 놓인다.
관리해야 할 수백 명의 예비 기수들이 대륙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으니 요람이 바쁜 건 당연했다.
특히 신규 기수의 입도일이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신상 정보를 파악해야 하는 조사병단은 더욱 바빠졌다.
그런 시기에, 그것도 업무가 한창일 오전 중에.
조사병단의 부장, 해리 왓슨은 갑작스러운 상부의 호출을 받고 진땀을 빼고 있었다.
검붉은 카펫 위에서 부동자세를 취한 채, 빳빳하게 굳어 있는 해리.
그의 앞에는 백발 푸른 눈의 노인이 원목 책상에 앉아 있었다.
딱딱한 표정의 노인을 보고 해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대, 대체… 뭐 때문에 나 같은 말단을?’
물론 조사 병단의 부장인 만큼 그가 말단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눈앞의 노인에게는 그저 많고 많은 말단 부하 중 하나일 뿐.
그렇기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 같은 이를 어째서 위대한 단장이 불러들인 것인지.
‘미, 미치겠네. 사, 살 떨려 죽을 거 같다.’
자신이 만나 볼 수 있는 가장 높은 인사는 조사 병단을 책임지고 있는 부단장이었다.
단장인 고든은 기념행사 중 먼발치에서 한두 번 본 게 전부였다.
그런데 갑자기 단장과의 독대라니!
해리는 무언가 잘못됨을 직감했다.
‘새, 생각해 내자, 내가 뭘 잘못한 건지! 뭘 잘못했더라… 뭘… 대체 뭘……?’
도무지 자신이 불려온 이유를 알 수 없기에 해리의 불안한 마음이 요동쳤다.
‘으아악! 도무지 모르겠다고!’
그가 속으로 절규를 내지를 때쯤.
“흠, 자네.”
낮게 깔린 고든의 음성에 담당자는 안 그래도 뻣뻣한 몸을 더욱 꼿꼿하게 세웠다.
“예! 조사병단 소속 부장 해리 왓슨!”
“그래, 해리.”
“예!”
“이 보고서 자네가 올린 거라고?”
그리 말하며 고든은 책상 위로 몇 장의 서류를 내려놓았다.
이를 본 해리는 빠르게 머리와 눈알을 굴렸다.
‘보고서? 내가 올린 거?’
자신이 올린 보고서가 어디 한두 개인가.
하지만 최근에 올린 것 중 제법 비중 있는 보고서는 하나뿐이었다.
‘1급 관리 대상의 행적 조사!’
무려 1급 기밀 딱지가 붙어 있던 명령서.
처음에는 고작 이런 거에 왜 1급 기밀 딱지가 붙은 건지 의문이었지만, 조사 내용을 보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그것!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무려 10개 조의 조사 병단이 움직였고, 그들이 반년간 가져온 정보를 취합해 보고서를 올린 게 바로 자신이었다.
‘아! 그걸 지시한 게 단장님이셨구나!’
슬쩍 책상 위 서류를 확인해 보니 그 보고서인 게 확실했다.
“예, 그렇습니다!”
“흠,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자넬 불렀네. 아무래도 보고서를 올린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하, 하문하시면 최선을 다해 답하겠습니다!”
“그 전에… 자네는 이 보고서의 정확도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고든의 검지가 보고서를 톡톡 두들겼다.
그 순간 해리의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뭐지? 날 시험하시는 건가? 고작 말단 단원인 나를? 단장께서 직접?’
어지럽게 얽힌 머릿속 사고.
아무리 고민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자 그는 가감 없이 자신의 생각을 내뱉었다.
“육십 퍼센트입니다!”
“육십이라… 애매한 숫자군.”
고든은 턱을 쓰다듬으며 몇 번이고 읽은 보고서를 다시금 훑었다.
* * *
임무 보고서
1. 임무 목적:
-해당 관리 대상의 과거 행적을 조사할 것.
-부절검 요한 레드너와의 관계 여부 파악.
2. 관리 대상: 유리 홀랜드.
*관리 대상 특이 사항 : 50기 예비 기수, 열 번째 흑룡패주.
*요한 레드너와 관련된 인물이기에 관리 대상의 정보는 1급 기밀로 분류할 것.
3. 임무 기간: 예비 50기의 입도 전까지.
4. 수임자: 부장 해리 왓슨 외 조사 병단 10개 조 참여.
5. 관리 대상 유리 홀랜드(이하 ‘대상자’로 칭함)의 행적 보고.
*본 보고서는 대상자가 증명 시험을 치른 시점에서부터 역순으로 서술되었음을 알립니다.
-크로탄 행정구의 아이언스 영지에서 대상자가 부절검의 추천으로 증명 시험에 응함.
-대상자가 아이언스 영지에 머문 기간은 192일로 추정.
-아이언스 영지에 머물기 이전, 대상자는…….
…
…
* * *
보고서는 유리의 최근 행적에서 시작해 점차 과거로 옮겨 갔다.
다만 최근 행적이 제법 자세하게 기재된 것과는 달리 과거의 행적은 빈 구멍이 많았다.
* * *
-6년 전, 브리웰 행정구에서 대상자가 모습을 드러냄.
-7년 전, 대략 1년간의 행적은 파악되지 않음.
-대상자가 8년 전에는 세인트존 행정구 바울 영지 소속 촌락에서 살았던 것으로 확인됨.
-당시 대상자가 살았던 촌락이 누군가의 습격에 의해 궤멸, 대상자 혼자 살아남았다는 목격자 증언 확보.
-목격자는 해당 마을에 물건을 납품하던 상인이었으며, 그의 추가 진술에 의하면 대상자는 ‘모아라’라는 여성과 함께 살았다고 함.
-대상자와 모아라의 관계성은 파악되지 않음.
-8년 전, 해당 지역 영지민의 기록은 바울 가문 이전 영주인 파울리 가문이 가지고 있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파울리 가문이 멸문하며 기록도 함께 말소됨.
-이후 추가 행적을 좇을 단서가 완전히 소멸하였기에, 대상자에 관한 조사를 마무리함.
6. 결론:
-대상자와 요한 레드너의 행적을 비교 분석한 결과,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은 아이언스 영지일 확률이 99% 이상.
* * *
드넓은 대륙에서 한 사람의 과거를, 그것도 고작 반년 만에 이 정도까지 파헤쳤다는 건 분명 대단한 일이었다.
조사 병단의 정보력이 세계에서 1, 2위를 다툰다는 게 거짓이 아님을 증명한 셈.
물론 고든이 고작 그것을 칭찬하자고 해리를 불러들인 건 아니었다.
그가 해리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자넨 이 보고서의 정확도가 60%라 말했네.”
“그렇습니다!”
“그럼, 여기 적힌 내용도 그 정도의 확률이라고 여기는 건가?”
고든이 보고서의 가장 끝 단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 *
7. 기타 특이 사항:
-조사 도중 모아라(사망 당시 64세로 추정)라는 여인과 관련된 특이점이 발견됨.
-모아라와 대상자가 살았던 집터의 잔해에서 특급 기밀 분류 목록 중 하나로 의심되는 흔적이 발견됨.
-따라서 모아라라는 여인에 대한 추가 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상황에 따라서는 대상자와 모아라의 관계성에 관한 조사도 필요하다고 여겨짐.
* * *
그제야 해리는 고든이 무엇 때문에 자신을 불러들였는지 완전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특급 기밀 분류 목록 때문이었구나!’
접근 권한마저 상, 중, 하, 최하급로 나뉘는 기밀 중의 기밀.
그 실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는 이는 상급 권한을 가진 단장뿐이었다.
자신이 이번 보고서에 특급 기밀 관련 내용을 적을 수 있던 건, 정보 분류를 위해 부장급 인사에게 접근 권한 최하급이 부여된 덕분이었다.
‘흠… 요 몇 년 동안 특급 기밀과 관련된 정보가 상부로 올라간 적이 있었나?’
부장직을 단 초창기, 의욕적인 삶을 살던 그때 자신의 권한으로 볼 수 있는 10년 치 정보를 열람한 적이 있었다.
당시의 기억을 미뤄 짐작해 볼 때 10년 동안 특급 기밀로 분류된 정보는 없었다.
‘그럼 10년 만에 특급 기밀 분류 목록을 가져온 게 나란 소리잖아? 아니, 아니지! 단장께서 직접 불러들일 정도면… 특급 기밀 정보가 안 올라간 게 못해도 10년 이상인 거다!’
그걸 자신이 보고서로 올린 거고, 이건 다시 말해…….
‘기회다!’
무려 단장의 눈에 들 완벽한 기회!
이 기회를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계산을 끝낸 해리가 신중하게 답했다.
“아닙니다. 그 부분의 정확도는 60%가 못 됩니다!”
“그럼 몇으로 생각하지?”
“20% 내외입니다.”
“더 줄었군.”
“제가 가진 특급 기밀 접근 권한은 최하급입니다. 때문에 확실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 자료가 너무 적었습니다!”
“그 말은 권한이 높아지면 정보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해리의 당찬 외침에 고든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마치 자신의 속내를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에 해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단장실에 잠시 잠깐 침묵이 감돌았다.
불편한 침묵이 이어지던 중, 고든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명령을 하달한다. 현 시간부로 조사병단 소속 해리 왓슨은 모든 일선에서 물러난다. 대신 유리 홀랜드와 모아라의 관계성 및 특급 기밀 분류 목록 조사에 집중하도록! 더불어 이번 일에 한하여 해리 왓슨의 특급 기밀 접근 권한을 중급으로 격상한다.”
드디어 원하는 대답을 들은 해리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가 기쁜 마음을 담아 외쳤다.
“명 받들겠습니다!”
“다음에는 100%짜리 보고서가 올라오길 기대하지.”
“반드시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나가 보도록.”
“예!”
축객령에 해리가 씩씩한 걸음으로 단장실을 벗어났다.
달칵-.
문이 닫히고 해리는 다시금 주먹을 움켜쥐었다.
‘접근 권한 중급이라니!’
그건 부단장급 접근 권한이었다.
하급 권한을 부여받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단장은 그보다 한 단계 높은 권한을 넘겨줬다.
그만큼 이번 일에 대한 단장의 기대가 크다는 뜻.
‘어렵게 얻은 기회다! 반드시 성공하고 만다!’
이번 일의 성공이 높은 곳으로 올라갈 든든한 발판이 되어 줄 것이다.
‘한 2~3년이면 단장이 바라는 정보의 윤곽이 어느 정도 잡히겠지.’
그리 생각하며 해리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단장실 앞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미처 몰랐다.
2~3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일이 예상보다 한참이나 길어지리라고는.
한편, 홀로 남은 고든은 해리가 서 있던 자리는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괜찮은 놈이군.”
상당히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이었다.
몇 마디 대화로 상황을 파악하고 이를 기회로 삼는 걸 보니, 비교적 젊은 나이에 어찌 부장을 달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거기에 제법 야망이란 것도 있고 말이다.
“저런 놈이 일은 잘하지.”
써먹기도 편하고.
뒷말은 속으로만 되뇐 고든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스륵-.
천천히 창가로 걸음을 옮기는 고든.
그는 뒷짐을 진 채 창문 밖을 응시했다.
‘재밌군.’
요한이 관심을 가진 아이를 캐 보려고 했더니 난데없이 엉뚱한 게 튀어나왔다.
‘36년 만에 발견된 흔적이 하필 요한이 관심 가진 그 아이와 이어졌다라…….’
아직 발견된 흔적이 진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설령 진짜라고 해도 그게 유리라는 아이와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상황이 참으로 재밌게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미소를 지은 고든의 시선이 북쪽 하늘에 닿았다.
“먹구름이군.”
얼마 전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그들은 여전히 랄프 슈넬의 영역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저 북쪽 어딘가에 있을 그들을 떠올린 순간.
투득- 투득-.
투드득-.
먹구름이 머금고 온 비가 유리창을 때리기 시작했다.
* * *
투드득-.
점차 굵어지는 빗방울이 은빛 칼날을 타고 흘렀다.
유리의 칼은 여전히 무치의 목에 닿아 있었다.
무치에게서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자 유리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칼을 거뒀다.
“내가 이겼다는 거에 동의하지? 뭐, 네가 동의하지 않아도 결과가 말해 주니까.”
“…….”
무치는 여전히 답이 없었다.
유리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상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
그의 미소가 조금은 쌀쌀맞게 변했다.
“지금은 네가 원했던 것처럼 아무도 다치지 않고 끝났네? 그래서 넌 어때? 아무도 다치지 않아서…….”
“…….”
“…정말로 기쁘냐?”
달칵-.
칼을 집어넣은 유리는 답을 듣지 않고 무치의 곁을 지나쳤다.
무치는 멀어지는 유리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
그는 조금 전의 대련을 떠올렸다.
분명 유리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시작되긴 했으나 중간부터는 자신 역시 광란을 쓰며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애초에 유리 형이 마지막에 보여 준 그걸 썼다면… 대련은 시작과 동시에 끝났을 거야.’
광란을 꿰뚫은 그 섬광 같은 움직임.
처음부터 그걸 사용했다면 대련은 진즉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유리를 그러지 않았다.
그건 다시 말해 기습으로 시작하긴 했으나 중간부터는 오히려 유리가 사정을 봐줬다는 소리였다.
‘유리 형…….’
불과 반년 사이.
유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유리는 이제는 자신이 내려다보는 이가 아니라, 자신과 동등한 시선을 가진 존재로 거듭났다.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위에 있을지도.’
처음이었다.
또래의 누군가를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느낀 건.
그 순간 유리가 남긴 말이 무치의 뇌리에 되풀이됐다.
[그래서 넌 어때? 아무도 다치지 않아서… 정말로 기쁘냐?]무치는 입술을 깨물었다.
‘왜…….’
무려 진검 대련이었음에도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끝날 수 있었다.
자신이 바라는 대로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분명 기뻐해야 함이 맞았다.
하지만 무치는 그러지 못했다.
‘어째서… 이렇게 답답하지?’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치밀었기 때문이다.
‘왜 이럴까?’
무치는 자신의 감정을 분석해 보았다.
다소 어수룩해 보일지는 몰라도 무치는 절대 멍청하지 않았다.
멍청했다면 마체술을 이 정도 수준까지 익히지도 못했을 거다.
오히려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지능이 높았으며, 사고방식은 여느 어른 못지않았다.
단지, 유리의 눈에만 못나게 보였을 뿐.
그렇게 무치는 한참이나 자신의 감정을 살폈다.
‘아, 나는 지금…….’
그리고 마침내 녀석은 이 답답한 감정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정의할 수 있었다.
‘…화가 난 거구나?’
이건 무엇에 대한 분노일까?
그에 대한 답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난… 유리 형한테 진 게 화가 난 거였어.’
무치가 스스로 답을 구하고 있을 때.
요한에게 다가간 유리는 오른손을 뻗었다.
이에 요한도 손을 내밀었고.
짝-.
두 사람의 손이 마주치며 경쾌한 소리를 만들었다.
“영감, 나 이김!”
“그럼, 당연히 이겨야지! 운보에 뇌익까지 쓰고 랄프 놈 마체술에 지면 사람 새끼가 아닌 거다.”
당사자 앞에서 낄낄거리는 두 사람을 보고 랄프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하지만 뭐라 할 말은 없었다.
대련의 내용은 나무랄 게 없는 유리의 승리였으니까.
‘이러면 1 대 1이군.’
애초에 3판 2선 승의 대련.
손쉽게 이길 거라고 여긴 대련의 결과가 이렇게 나오자 조금은 짜증이 났다.
‘쯧, 괜히 시간을 줘서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유리를 얕잡아 보고 시간을 준 게 자신인데.
반년 만에 무치와 1승 1패라는 결과를 만들어 낸 유리의 노력과 재능은 깎아내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살짝 한숨을 내쉰 랄프가 물었다.
“그러면 마지막 대련은 언제 할겁니까? 이번에는 또 얼마나 기다려 줘야 합니까?”
“뭐냐, 마치 네가 기다려 줘서 우리가 이겼다는 듯한 그 말투는?”
“틀립니까?”
“애초에 대련 기간을 안 정한 네놈 잘못이지!”
“그렇다고 대련 한 판에 몇 개월씩 잡아먹는 게 정상이요?”
“헹! 안 될 게 뭐 있냐? 검주랑 다시 한 판 붙는 데 난 10년이나 걸렸구만! 지금도 15년째 이러고 있고 말이야.”
“그, 그거랑 이거랑 같소?!”
두 명인이 명인답지 않게 유치한 수준으로 티격태격할 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유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바로 이어서 하자고.”
“…바로?”
“지금 바로 말이냐?”
당장 마지막 대련을 하자는 소리에 랄프와 요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에 유리가 웃으며 자기 어깨 너머로 엄지를 뻗었다.
“아무래도 이젠 저쪽에서 안달이 난 듯싶은데?”
그 말에 유리의 손가락을 따라간 랄프와 요한의 시선.
그 끝에는 이글이글 뜨거운 눈빛의 무치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