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52
251화. 유리 vs 흑검병 (2)
유리의 검신에서 일어난 황금빛이 그물처럼 얽힌 삼색의 궤적을 긁었다.
콰가강-!
묵직한 울림이 연달아 들리고.
삼색 그물은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다시 활개를 치며 유리를 더욱 옥죄었다.
‘단단하네.’
이 정도 힘으로는 저들의 합격진을 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유리가 방법을 바꾸었다.
‘겉에서 깰 수 없다면… 속을 엉망으로 만들어 주마.’
수평으로 쉼 없이 휘두르며, 삼색 그물을 베는 것에 치중했던 유리는 검끝을 세웠다.
마치 송곳과도 같은 형태가 된 황금빛은 얼기설기 엮인 삼색 궤적 사이로 파고들려 했다.
하지만 그런 저돌적인 움직임에도 흑검병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지금껏 이 합격진을 익혀 온 이래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고,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가.
고작 이 정도 돌발 상황에 당황할 정도로 그들의 경험과 경지가 얕지 않았다.
즈극-.
그물 사이로 파고드는 송곳 같은 돌파에 맞춰 흑검병들의 움직임이 변했다.
그와 함께 삼색 궤적의 창살이 꿀렁이기 시작했으니.
마치 문어의 다리처럼 꿈틀거리는 삼색 궤적이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수십 가닥의 변화무쌍한 검로.
움직임을 따라가기도 힘든 그 공격은 불과 3명의 힘이 합쳐졌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강맹했다.
‘이게 합격진이구나!’
1+1+1이 3이 아닌, 4 이상이 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마법과도 같은 공식.
이를 직접 겪게 된 유리는 신나게 검을 놀렸다.
꿰뚫고 들어가려는 황금빛 궤적과 이에 끈질기게 엉겨 붙는 삼색의 채찍.
4개의 검이 그려 내는 검로는 치열하게 서로의 공간을 빼앗는 싸움을 이어 나갔다.
그 싸움은 처음에 유리 쪽이 밀리는 형세였다.
물론 이는 유리가 합격진을 구경하고 파악하느라 전력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시간이 지나면서, 합격진에 대한 이해도가 늘어날수록 형세는 점차 대등하게 바뀌었다.
여전히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음에도 말이다.
‘공인 4단급이 진의 주축이 되고, 나머지가 변화를 주도하는 방식이네.’
적, 청, 백색은 그들이 익힌 마체술의 공법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나타냈고.
서로 다른 마체술의 기운이 합격진을 통해 융합되고 있었다.
그리고 유리가 그 원리를 약간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을 때.
그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거… 뭔가 이상한데?’
정확히 뭐가 이상한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분명 이상함이 느껴졌다.
살짝 인상을 찡그리고 좀 더 합격진을 파악하기 시작한 유리.
그는 곧 자신이 느끼는 이상함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렇게 대놓고 틈을 내보인다고?’
합격진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씩 오르면서 이를 파훼할 수 있는 약점이 보인 것이다.
그것도 아주 대놓고 ‘여길 쑤셔!’라고 말하듯이 떡하니 구멍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함정인가?’
당연히 그리 생각할 수 있었다.
약점인 척하면서 적을 끌어들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수도 있을 터.
그 정도로 유리가 본 합격진의 구멍은 너무도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흠…….’
고민하던 유리는 생각을 떨쳐 내고 배시시 웃었다.
‘에이 씨, 몰라. 일단 쑤셔 보자!’
설사 저곳이 진짜 함정일지라도, 딱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함정에 빠져 위기가 닥친다고 하여도 이 정도는 얼마든지 타파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여 유리는 자신이 찾아낸 빈틈에 과감히 검을 꽂아 넣었다.
“……?!”
조금 전까지 이어졌던 치열한 공방이 무색하리만치 너무도 손쉽게 삼색 사이로 파고든 황금빛 궤적.
이에 흑검병들의 눈에 당혹이 깃들었다.
동시에 지금까지 탄탄하게 맞물려 있던 삼색의 빛이 어지럽게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같은 변화에 자신이 저지른 일임에도 유리는 황당해했다.
“어… 진짜 빈틈이었어?”
유도하려고 일부러 노출한 함정이 아닌 진짜 약점이었나 보다.
급격하게 움직임이 꼬여 무너지기 시작하는 합격진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유리는 눈앞에 놓인 기회를 놓칠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스걱-.
“큭!”
유리의 검이 홀로 뒤떨어진 푸른 궤적을 갈랐고.
이에 공인 3단의 흑검병의 검이 토막 났다.
그것도 모자라 그는 큰 충격을 받아 입에서 피를 뿌리며 날아가고 말았다.
약점이 찔리고, 그나마 균형을 유지하던 합격진은 보조하는 축 하나가 떨어져 나가자 그 효력을 다했다.
이를 놓치지 않고 벼락처럼 달려든 유리.
콰릉-!
마치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나머지 두 흑검병 역시 크게 얻어맞고 뒤로 날아갔다.
그 과정에서 남은 공인 3단의 흑검병은 팔이 부러졌고.
그나마 공인 4단으로 합격진의 주축을 맡았던 흑검병만이 겨우 신형을 가눴다.
“큭!”
발목에 실금이 간 탓에 시큰거리는 통증이 올라왔지만, 흑검병은 다시 자세를 잡고 유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승패가 갈렸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전투에 미친 흑검병다웠다.
다만 문제는 유리도 그런 흑검병 못지않게 독한 놈이라는 거였다.
“어딜!”
쾅!
유리에게 달려들었다가, 그대로 후두부를 두들겨 맞은 고참급 흑검병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파르르 다리를 떨어 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는 축 늘어지며 완전히 침묵했다.
“흠…….”
유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팔이 부러진 흑검병은 이미 기절해 있었고, 맨 처음 검이 토막 나며 튕겨 나간 흑검병만이 아직 의식이 있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유리는 널브러진 그를 향해 걸어갔다.
허억허억.
입가에 피를 흘리는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본 유리.
그가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 내며 물었다.
“이 정도면 승패는 난 거 같고… 다음 층으로 가기 전에 뭐 하나만 물읍시다. 그 합격진, 이름이 뭡니까?”
유리의 질문에 힘겹게 눈을 뜬 흑검병.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은 듯 보인 그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흑… 쇄진.”
“흑쇄진(黑鎖陳)이라…….”
“나도… 하나만 묻자. 그 빈틈… 어떻게 찾은 거냐? 어디서… 합격진을… 상대해 본 적이… 있냐?”
“뭔 소리야. 오늘 처음입니다만? 그리고 어떻게 찾기는? 아예 대놓고 보라고 보여 주는데 그걸 어떻게 못 봅니까?”
유리의 질문에 흑검병은 살짝 놀란 눈이 되어 중얼거렸다.
“그걸… 봤다고?”
흑검병으로서는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오늘 처음 합격진을 상대한 놈이.
어찌 전투가 이어지는 고작 그 잠깐 사이에 합격진의 빈틈을 찾아, 정확히 찔러 온단 말인가.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흑쇄진의 원리를 종일 붙잡고 알려 줘도 유리와 같은 일은 불가능했으리라.
다시 말해 싸움 도중 흑쇄진의 약점을 발견한 유리가 이상한 놈이라는 소리였다.
“미… 친놈. 클클.”
나직한 욕설.
이는 흑검병이 유리에게 보내는 찬사였다.
그걸 알고 있는 유리는 딱히 기분 나빠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 빈틈 진짜 뭡니까? 혹시 이 흑쇄진인가 하는 거 뭔가 문제 있는 합격진인가?”
“흐흐흐.”
유리의 질문에 흑검병은 그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릴 뿐, 답을 주지 않았다.
“프흐흐흐.”
그렇게 연신 웃음을 흘리다가 그대로 기절해 버린 흑검병.
이를 지켜본 유리는 눈을 찡그렸다.
“…이 새끼, 뭘 쪼개냐?”
대번에 기분이 나빠진 유리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5층 입구로 방향을 틀었다.
아니, 틀려고 했다.
퍽-.
가려다 말고 웃다가 기절한 흑검병을 살짝 걷어찬 유리.
가볍게 복수를 한 그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히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다시 발길을 돌렸다.
그랬던 그가 흑검병의 기분 나쁜 웃음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지옥 난이도의 5층.
유리는 소리 없이 다가오는 흑색의 궤적들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그 흑검병 새끼… 이래서 쪼갰구나!’
막판에 흑검병이 보인 웃음은 이유가 있는 거였다.
5층에 도달한 유리.
그를 반겨 준 건 4층에 비해 한 명이 늘어난, 4명의 흑검병이었다.
공인 4단급 흑검병 하나와 공인 3단의 흑검병 셋.
4층 때보다 상대해야 할 흑검병이 한 사람이 늘었지만, 유리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4명의 흑검병이 서로 다른 빛의 궤적을 그리며 달려들고.
4층에서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흑쇄진을 펼칠 때까지만 해도.
유리는 늘어 봤자 공인 3단급이 한 명 는 거니 크게 문제 될 건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마체술 공법으로 만들어 낸 궤적이 합격진을 통해 완벽하게 맞물리고.
그것들이 똑같이 흑색으로 물드는 모습을 보고, 유리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아, 이래서 흑쇄진이라고 이름 붙은 거였구나!’
흑검병들의 투로는 단단히 맞물려 마치 검은 사슬처럼 유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쾅-!
그리고 검은 사슬에 담긴 힘에 유리는 기겁했다.
고작 공인 3단급이 한 명 늘었을 뿐이건만 흑쇄진의 위력은 4층과 비교해 차원이 달라져 있었으니.
‘약점… 빈틈은?!’
놀란 유리가 다급히 4층에서 찾아낸 빈틈을 노리려 했지만, 그마저도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이후 약점이 사라진 흑쇄진을 상대하며 유리는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
‘흑쇄진에는 문제가 없었어.’
문제가 있는 건 흑쇄진을 펼치는 구성원에 있었다.
‘흑쇄진은… 최소 4명의 인원이 펼쳐야 하는 합격진이었구나!’
4층에서 그가 맞닥뜨린 흑쇄진은 맞물려 돌아갈 톱니바퀴가 부족한 상태였기에 파고들 빈틈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던 거다.
그리고 4층의 흑검병이 지은 기분 나쁜 웃음의 의미.
그건 바로 ‘네 질문은 이 다음층에 가면 해결이 될 거다’라는 뜻이었다.
제대로 된 흑쇄진과의 격돌에 대번에 굳은 얼굴이 된 유리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흑색의 투로를 신중히 쳐 냈다.
콰강-.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의 충격.
이에 반사적으로 성검을 사용하려던 유리는 도리어 표정을 풀었다.
그는 어딘가 모르게 납득한 얼굴이었다.
‘그래… 이래야 흑검병이지!’
그래, 이 정도 능력은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찌 세계 최강의 무력 단체라 칭해지겠는가.
그리고 성검을 사용하려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성검과 마류를 사용한다면… 단순히 힘만으로도 충분히 이 검진을 깰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유리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는 조금 더 흑쇄진 속에서 검을 휘두르고 싶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는 건 멍청한 짓이지!’
검주에게 도전장을 내민 자신은 언제가 분명 또다시 흑검병들과 검을 겨룰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야 공인 3단, 4단이 펼치는 흑쇄진을 상대하며 여유를 부리지만, 훗날 가서는 그렇지 못하리라.
당장 지금도 공인 4, 5단급이 흑쇄진을 펼치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텐데, 그때 가서는 그것보다 더욱 치열한 싸움일 테니 말이다.
하여 유리는 지금 될 수 있는 한 이 흑쇄진이란 것에 대해 흡수해 두고 싶었다.
최대한 오래오래.
그 맛을 음미하며 말이다.
“하하!”
시원하고 환하게 웃은 유리.
그의 검에서 황금빛이 응축되며 마검을 만들어 냈다.
그 직후 난무하는 흑색의 투로 속에서 황금빛 검날이 날개를 단 듯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콰강- 쾅!
그렇게 지옥의 5층.
그곳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폭음이 이어졌다.
* * *
몇 시간 뒤.
백일탑의 모처.
후욱-.
희뿌연 연기를 내뿜은 코코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벌써 6층으로 들어서고 있다고?”
야심차게 준비한 백일탑의 지옥 난이도였건만, 고작 하루도 붙잡아 두지 못하고 몇 시간 만에 5층까지 뚫리다니.
궐련을 질끈 깨문 코코가 뒤에 기립한 흑검병을 향해 물었다.
“상태는 어떻니?”
“전부 의식불명이고 가볍지 않은 상처를 입어 한동안 임무 복귀는 힘들 듯싶습니다.”
그런 흑검병의 보고에 코코의 이마가 살짝 구겨졌다.
“누가 고작 기수 하나한테 줄줄이 얻어터진 덜떨어진 놈들 물어본 줄 알아? 유리 홀랜드가 어떻냐고.”
“예?”
“유리 홀랜드, 어디 부러지거나 다친 덴 없어?”
“그… 조금 힘이 빠지기는 했지만, 딱히 다친 곳은 없다고 합니다.”
“에효…….”
코코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 섞인 연기를 내뱉었다.
‘그 폭발에도 멀쩡하고, 제대로 된 흑쇄진을 펼쳤는데도 상처 하나 못 냈다라…….’
정말로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코코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이 녀석 봐라?’
5층의 흑검병들이라면 흑쇄진을 펼쳐 공인 6단급의 발을 묶기에도 충분한 전력이었다.
운이 따른다면 6단급 강자를 패퇴시킬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유리 홀랜드를 막기는커녕 상처조차 입히지 못했다고 한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그 녀석… 평범한 공인 6단급이 아냐.’
유리 홀랜드는 무룡대전에서 보여 준 것 이상, 백보 의식에서 보여 준 것 외에 감춰 둔 실력이 더 있는 모양이었다.
이에 코코는 흑검병을 향해 다른 질문을 던졌다.
“다음 층에서 조장급 들어가는 거지? 하나 들어가니?”
“예, 그렇습니다. 공인 6단급 조장 한 명입니다.”
“거기에 일반 조원 둘 더 붙이렴.”
“예?!”
부하 흑검병의 눈이 휘둥그레져 기함을 토했다.
“안 될 말씀입니다! 정해진 규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규칙은 무슨, 이거 신규 퀘스트잖니? 이전에 정해진 규칙도 없으니 이번이 기준점이 되는 거 아냐?”
“그래서 더 안 된다는 겁니다! 지금도 유리 홀랜드를 고려해서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난이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지금보다 더 난이도를 높여 버리면 앞으로 이 지옥 난이도는 누가 깹니까!”
“야, 너 바보니?”
“예?”
“병신이야?”
욕을 먹고 눈을 끔뻑이는 흑검병의 반응에 코코는 혀를 찼다.
“이미 일반 흑검병을 3~4명씩 내보낸 것도 모자라, 흑쇄진까지 사용했는데… 대체 유리 홀랜드를 제외한 어떤 기수가 이걸 깨겠어?”
“…….”
“요람의 기수가 아니라 당장 흑검병단 조장급을 저기 처넣어도 멀쩡히 살아 나올지 말지 모르는 판국에? 안 그래?”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아니, 전부 옳은 말이었기에 부하 흑검병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런 반응에 코코는 깊게 들이마신 연기를 내뱉었다.
후욱-.
“애당초 이미 한 번 유리 녀석한테 맞춰서 난이도를 조정했던 순간부터… 이 퀘스트는 이미 그 녀석 외에는 못 깨는 퀘스트가 된 거야. 그러니 지금 여기서 난이도를 더 높인다 한들 뭐가 문제가 될까.”
코코의 말인즉슨, 이미 망했으니 여기서 더 망해 봤자 티도 안 날 것이며.
이왕 망한 거 한 놈만은 끝까지 물고 늘어져 보자는 뜻이었다.
물론 그 한 놈이 누구인지는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러니 당장 가서 조원급 둘 더 붙이렴. 좋은 말로 할 때.”
말투는 상냥했지만, 코코의 눈은 흑검병을 씹어 먹을 듯 흉포했다.
희번덕거리는 눈깔 앞에 선 흑검병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안 그래도 어려워 지옥이라 이름 붙은 난이도는 이제 단순히 어렵다는 수준을 뛰어넘는 ‘불지옥 난이도’로 거듭나고 말았으니.
이는 훗날 지옥 위의 등급, ‘유리 홀랜드 등급’이라 칭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