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54
253화. 유리 vs 흑검병 (4)
눈썹 끝이 뒤틀린 유리.
그는 삐딱해진 목소리로 꿍얼거렸다.
“이야, 내가 잘못한 거구나. 아암, 내가 아주 큰 잘못을 했네?”
비꼬는 유리의 반응에 기분이 나쁠 법도 하건만, 코코는 되레 신기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래서 말인데… 너 진짜 어떻게 여기까지 왔니?”
지옥 난이도가 사실 말이 안 되는 수준이란 건 코코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이건 숫제 기수가 깰 수 있다 아니다를 넘어, 공인 6단급의 실력자를 넣어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애초에 공인 6단급 흑검 조장이 포함된 흑쇄진을 같은 공인 6단급이 파훼한다는 거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불가능한 걸, 저 녀석은 해냈다 이거네?’
상황이 참 재밌지 않은가.
처음에는 그저 자신의 일거리를 늘린 녀석에 대한 작은 복수, 그리고 좀 골탕 먹일 의도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이건 불가능하다 싶은 난이도를 꾸역꾸역 통과해 올라오는 유리를 보고 있자니 생각이 바뀌었다.
코코는 너무도 궁금해졌다.
‘대체 얜 정체가 뭘까?’
요한 영감은 대체 이 녀석에게 뭘 가르친 거지?
이 녀석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
유리가 첫 백보 의식에서 열다섯 걸음을 걸었을 때부터 최근까지.
그간 쭉 유리를 지켜보며 품어 왔던 궁금증과 호기심이 오늘에 이르러 폭발해 버렸다.
그런 이유로 코코는 모두의 만류를 물리치고 직접 9층에 나선 거였다.
‘어디 한번… 샅샅이 뜯어 볼까?’
짙은 기대감이 서린 코코의 시선이 닿은 순간.
“……?!”
유리는 순식간에 낯빛이 굳어져 코코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검 자루 위에 올라간 그의 손바닥은 흥건히 젖어 있었다.
자신을 경계하는 유리를 보고 코코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이 아이, 신기할 정도로 감이 좋네?’
조금 전 미세하게 의기(意氣)를 일으켰더니 그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이건 눈치가 빠르다는 수준을 넘어 짐승과도 같은 본능적인 감각이지 않은가.
‘정말 재밌네?’
손이 근질근질해 미치겠다는 코코의 눈빛에 유리는 다급히 손을 들어 올렸다.
“정지!”
“응?”
“에이, 이건 아니죠!”
“뭐가 말이니?”
유리는 턱을 치켜들고 단호하게 소리쳤다.
“선수 교체!”
“……?”
“어이, 거기 누구 없어요? 여기 코코 씨 말고 다른 사람으로 바꿔 줘요!”
“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코코가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유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에 유리는 당당하게 가슴을 쭉 폈다.
“장담하는데 절대 못 이깁니다.”
“뭘?”
“뭐긴요, 당연히 제가 코코 씨를 못 이긴다는 소리죠.”
“…해 보지도 않고 그걸 어떻게 아니?”
“꼭 퍼먹어 봐야 똥인지 진흙인지 안답니까? 냄새 폴폴 나잖아요. 이건 똥이라고.”
“어째 나보고 똥이라고 욕하는 거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그걸 눈치 깠… 이 아니라. 뭘 또 그걸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냥 비유인 거지! 아무튼, 전 코코 씨랑 안 싸웁니다. 아니, 못 싸웁니다! 그러니 선수 교체해 줘요.”
“…너, 원래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애 아니었잖아?”
유리가 쉽게 포기하고 낙담하는 종류의 인간이었다면 지금의 성취를 이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백보 의식에서 검주의 인정을 받지도 못했을 거다
하지만 그런 코코의 의문에도 유리는 귀를 후비적거릴 뿐이었다.
“그때그때 달라요.”
유리는 손끝에 붙은 귀지를 틱- 튕겨냈다.
“저, 그렇게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놈 아닙니다만?”
“아니었어?”
“그럼요. 다 나름대로 견적 내고 달려드는 건데요? 그리고 지금은 딱 봐도 느낌 오네요. 이대로 코코 씨랑 붙는 건 시간 낭비라고.”
“하? 시간 낭비?”
기가 찬다는 듯한 코코의 반응에 유리는 조곤조곤 말했다.
“코코 씨와 저의 실력 차는 딱 봐도 견적 나오는데, 내기 당사자인 코코 씨는 절대 져 줄 마음이 없을 테고… 거기다 이미 전 9층에 들어와 버렸으니 코코 씨를 못 이기면 퀘스트 실패로 빈손으로 나가게 되겠죠.”
“…….”
“그러니 딱히 얻을 것도 없는 퀘스트에 뭐 하러 기력을 뺍니까? 괜히 몸만 상할 거, 누구 좋으라고?”
물론 얻는 게 없지는 않았다.
경지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코코와의 싸움은 분명 얻을 게 많은 값진 경험일 터.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유리가 이런 태도로 나오는 건 살짝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시발, 적당히 해야지.’
애초에 자신을 노리고 만들어진 맞춤형 난이도?
거기서 또 중간중간 은근슬쩍… 아니, 대놓고 난이도가 올라간 거?
뭐, 다 좋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이해해 주려 해도 지금 상황은 아니었다.
유리가 짜증스러운 시선으로 코코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퀘스트 난이도를 은근슬쩍 올린 거, 그건 뭐 그렇다 쳐도… 코코 씨가 9층 상대로 나서는 건 사기나 다름없습니다.”
“사… 사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단어를 면전에서 들은 코코는 눈을 끔뻑였다.
이를 본 유리는 흥- 콧방귀를 꼈다.
“그렇잖아요? 지금 이건 누가 봐도 제가 이길 확률이 0%인 기획 사기판인데… 그 사실을 알고도 판때기에 들어가 앉는 게 병신 머저리 아니겠습니까?”
유리는 설사 코코와의 대련을 통해 얻을 경험이 아무리 값질지라도, 승률 0%의 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코코가 만들어 놓은 사기판에 끼고 싶지 않다는 게 정확했다.
사기판에서 놀더라도, 유리는 자신이 만든 승률 1%짜리 판에서 놀고 싶었다.
아무리 사기판이라도 이길 확률이 1%라도 된다면 도전해 볼 가치는 충분하니까.
얻는 게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역시… 깽판이지.’
지금 판이 마음에 안 드니 뒤엎고 새로 만들 수밖에.
그리 생각한 유리는 더욱더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만약 여기서 선수 교체를 안 해 주면… 전 그냥 내기든 퀘스트든 그냥 싹 다 포기하고 집에나 가렵니다.”
진심이 느껴지는 유리의 목소리에 코코의 미간이 좁혀졌다.
하지만 그녀는 좀처럼 입을 열지는 못했다.
유리가 좀 틱틱거리기는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그렇게 고민하던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자.”
“어떻게요.”
“선수 교체는 없어.”
“그건 좀 그런뎁쇼?”
“대신!”
자꾸 끼어드는 유리를 노려본 코코가 짧게 외치며 자신의 궐련을 가리켰다.
“내가 이 궐련을 다 피우기 전까지 내 옷자락이라도 스친다면 네 승리라고 해 줄게.”
“…궐련을 다 피웠다의 기준은?”
“불똥이 여기 보이는 경계선에 닿으면 다 피운 거로.”
코코는 입에 문 궐련의 끝을 가리켜 보았다.
해당 궐련은 전체적으로 하얀 종이였지만, 입술이 닿은 부분만 누런빛을 띤 종이였다.
코코가 말하는 경계선이란 흰 종이와 누런 종이가 맞닿는 부분이었다.
“…….”
코코의 궐련을 지그시 응시하던 유리.
그러다가 그가 픽- 고개를 틀었다.
“싫어요.”
“왜!”
…아니, 이게 진짜?!
왈칵 짜증을 내며 소리친 코코.
이에 유리가 뚱한 목소리가 되돌아왔으니.
“솔직히 어떤 분의 장난질 덕분에 퀘스트 난이도 올라간 거 인정하시죠?”
“…그래서?”
“보상 좀 늘려 주시죠?”
“아까는 괜찮다며? 그럴 수 있다고 치겠다며?”
“그건 그때고.”
또 반대쪽으로 고개를 픽 돌린 유리.
그 모습에 코코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뭘 원하는데?”
그녀의 물음에 유리는 슬쩍 고개를 똑바로 되돌려 다시 살짝 새침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 보상 상자를 한 5개 정도만 더 주시면 어느 정도 수지타산이 맞을 듯싶은데…….”
“…….”
저 예쁜 얼굴로 이리 새침하게 말하는 게 때려죽이고 싶을 정도로 얄미울 줄이야.
코코는 혀를 차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됐니?”
“조건 받는다고요? 그럼 제가 정리를 해 보겠슴다!”
“…해 봐.”
“그 궐련을 다 피울 동안 제가 코코 씨의 옷자락이라도 건들면 저의 승리! 그래서 기존에 받기로 했던 보상에 다섯 개 추가해서 스물다섯 개, 거기다 내기에서 이긴 것까지 총 서른 개의 보상 상자. 맞습니까?”
“그래.”
“좋습니다!”
코코가 떨떠름한 얼굴로 끄덕이는 걸 보고 유리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에 코코가 궐련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그럼 이제 놀아 볼까?”
치익-.
궐련이 타들어 가는 소리에 유리는 또 손을 번쩍 들었다.
“아, 잠시만요!”
“왜 또!”
“지금은 무리.”
“……?”
“조금만 쉬고, 이따가 시작하죠? 제가 좀 힘들어서.”
흐름을 끊은 유리는 힘들어 죽겠다는 얼굴로 손을 살랑살랑 내저었다.
코코는 그런 유리는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돌연 그녀가 씨익 미소 지으니.
‘…어?’
유리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설마… 이 아줌마?!’
불안한 예감은 늘 틀리지 않는 법.
“그런데 이거 어쩌지? 이미 불을 붙여 버렸는데?”
후욱-.
하얀 연기가 그녀의 입에서 뿜어지고.
여긴 너머에서 그녀의 신형이 흐릿하게 일렁이다 사라졌다.
이에 유리는 본능적으로 몸을 빼냈지만, 이미 코코가 그의 앞에 도달한 상태였다.
유리의 얼굴이 굳어졌다.
‘빠르다!’
예전에야 테레시아부터 시작해 많은 이들과 속도를 놓고 경쟁했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유리의 속도는 기수는 물론이요 흑검병들과도 견줄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그렇기에 순식간에 자신에게 따라붙은 코코의 속도를 느끼고 유리는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와 함께 그는 칼을 뽑았다.
스릉-.
새하얀 검신이 반쯤 뽑혔을 때, 유리는 코코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은 위험하게 일렁이고 있었으니.
‘……?!’
이윽고 번개처럼 날아든 코코의 손이 막 뽑히려는 유리의 검 자루를 쳤다.
탁-!
뽑혀 나오려다 도로 검집으로 들어가는 검신.
무기를 뽑으려다 실패하였으니 당황할 법도 하건만.
유리는 곧바로 검 자루를 잡았던 손을 뻗어 코코의 손을 낚아채려 했다.
그와 같은 반응 속도에 코코는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늙은이도 아니고, 이런 상황에서도 어쩜 이리 침착한 건지.’
지금처럼 칼잡이가 칼을 뽑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경험이 부족한 이는 당황하여 굳어 버리거나, 혹은 다시 검을 뽑으려 들 것이다.
그런데 유리는 칼잡이 주제에 바로 칼을 포기하고 자신을 손을 공략해 들었다.
이는 충분히 칭찬해 줄 일이었으나…….
‘근데 예의는 없네? 숙녀의 손을 함부로 잡으려 하다니.’
코코는 이대로 유리가 자신의 손을 잡게 둘 생각이 없었다.
스륵-.
코코의 손과 팔이 기괴한 동작을 그리며 유리의 손을 피했다.
이에 눈썹을 꿈틀거린 유리.
그는 코코의 손동작이 너무 기묘하고 빨라 자신이 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곧장 포기했다.
그 대신 그는 코코의 손이 멀어진 틈을 타 다시 검을 뽑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딜!’
코코는 당연히 유리가 검을 뽑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탁-!
허공에서 선회한 코코의 손이 다시 유리의 검 자루를 밀어 넣었다.
이번에도 뽑히다 말고 다시 들어간 은빛 칼날.
왈칵 짜증이 솟구친 유리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해보자 이거지?’
유리의 양손이 번개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에 맞서는 코코의 손의 동선도 더욱더 기묘해졌다.
검을 뽑으려는 유리와 계속해서 검 자루를 쳐서 집어넣는 코코.
어떻게 해서든 낚아채려는 유리의 하얀 손과 거기서 유유히 빠져나가는 코코의 검은 손.
그 하나하나가 실로 놀라울 정도로 빨라 잔상이 남을 정도였지만, 단 한 번도 그들의 손이 만나거나 부딪히는 일은 없었다.
실로 기괴하기 짝이 없는 상황.
그리고 더욱 놀라운 점은 두 사람이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빠르게 다리를 놀리며 9층 공간을 주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유리는 코코에게서 멀어지려 하고, 코코는 그런 유리를 바짝 따라붙었다.
그와 같은 상황이 쭈욱 이어지니 유리가 이를 악물었다.
‘이래서는 끝이 안 나겠네.’
아니, 사실 코코가 끝낼 마음을 먹었다면 진즉에 끝이 났을 상황이다.
지금은 그저 코코가 장난을 치고 있는 것뿐이며, 현재 상황은 그녀가 장난을 그만 치고 싶을 때까지 쭉 이어질 거다.
문제는 그런 코코의 장난이 유리에게는 조금 버겁다는 거였다.
‘옘병, 이러다 뒈지겠네, 진짜!’
안 그래도 8층까지 단숨에 통과하느라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9층에 올라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코코의 장난질에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으니 육신이 비명을 내질렀다.
‘끙!’
속으로 앓는 소리를 낸 유리는 즐거워 보이는 코코를 아니꼽게 바라보았다.
‘신나 보이네?’
아무래도 이 장난질이 그녀는 썩 마음에 든 모양이다.
요람에 들어와 코코와 만난 이래 그녀가 이렇게 웃는 걸 처음 본 유리.
그의 눈에 옅은 빛이 반짝이다가 이내 눈동자 깊이 숨어들었다.
‘그래, 끝까지 그렇게 즐거워하라고.’
코코가 장난질에 빠져 계속 전력을 다하지 않기를.
그래서 언젠가는 틈을 보이길.
유리는 삐걱거리는 육신을 억지로 놀리며 신중하게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