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65
264화. 권태 (1)
풍각이란 보호대를 주면서도 내내 아까워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귀한 물건인 모양.
이후 코코는 풍도결을 찾으라는 말을 남긴 채 떠나갔다.
더는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풍도결이라…….’
풍각이란 걸 제대로 사용하는 데 필요한 것.
하지만 이름만 알지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저 특수한 마체술의 일종일 거라 짐작만 할 뿐.
‘아무튼, 그걸 찾기 전까지는 이건 그냥 뒈지게 무거운 보호구일 뿐이란 거지.’
아니, 솔직히 말해 풍도결이란 게 없음에도 풍각은 제법 쓸 만했다.
마나만 흘려 주면 자동으로 탈부착이 가능했고, 심지어 착용감까지 매우 좋았다.
거기에 튼튼하기까지 해서 방어구로서도 나쁘지 않은 수준.
다만 무식할 정도로 무겁다는 게 문제였으나…….
“이것도 나름 훈련이 되니까.”
다리에 100㎏을 달고 움직이는 게, 생각보다 수련하는 효과가 컸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도 풍도결을 찾기는 해야 할 터.
‘정보가 필요해.’
과연 풍도결이란 게 정확히 무엇인지.
그것이 요람 어디에 있을지.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했다.
거기다 유리가 필요로 하는 정보는 풍도결에 관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수정갑(水晶鉀), 마나의 결정, 백야, 엘리온.
이번에 얻은 보상 중 이름조차 들어 본 적 없는 것들의 정보도 알아보아야 했다.
그래야 써먹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닌가.
그리고 운이 좋게도, 유리에게는 무엇이든 물어보면 바로바로 알려 주는 똑똑하고 예쁜 만능 사전이 있었다.
‘오랜만에 얼굴 좀 봐야겠네.’
안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슬슬 성적 포인트를 등록하러 가야 했다.
거기다 손에 들고 있는 포인트도 은행에 넣어야 하니, 나가는 김에 겸사겸사 일을 처리하면 될 터.
유리는 곧장 준비하고 밖을 나섰다.
하지만 그는 마왕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걸음을 멈춰 서야만 했다.
“너, 거기서 뭐 하냐?”
유리가 멈춰 선 이유는 자신의 거처와 연결된 통로에서 서성이고 있는 사람 때문이었으니.
바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빙빙 돌고 있던 테레시아였다.
“아……!”
그녀는 유리를 발견하고는 흠칫거렸다.
“텟샤, 왜? 할 말 있어?”
유리의 물음에 살짝 테레시아는 우물쭈물했다.
할 말이 있는 거 같으면서도 망설이는 모양새.
전혀 그녀답지 않은 모습에 유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대치하고 서 있던 두 사람.
그러다 마침내 테레시아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한테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긴 한데…….”
“그럼 하지 말든가.”
“…그 소리를 들으니 더 하고 싶어졌어.”
“그래서 뭔데?”
뚱한 유리의 시선에 테레시아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너… 원주회에 언제까지 있을 생각이야?”
“원주회?”
“응.”
“언제까지 있을 거냐는 게 무슨 뜻인데?”
“탈퇴할 생각은 없어?”
“탈퇴? 내가 왜?”
유리가 별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리는 현재 원주회에 딱히 불만이 없었다.
‘뭐, 불만이 생길 거리가 없지. 내가 하는 게 없는데.’
사실상 권터를 견제하는 목적으로 원주회에 들어갔지만, 권터가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유리도 딱히 원주회에 나갈 일이 없었다.
기존 원주회의 회원들도 새로운 강자인 유리가 이전의 권터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유리가 원주회 일정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책잡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아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특급 비약 하나를 날름 먹고 그대로 유령 회원이 되어 버린 유리.
그럼에도 그가 원주회를 나가지 않고 있는 건 언젠가 털어야 할 원주회의 창고 때문이었다.
‘하는 건 없어도, 최소한의 연결 고리는 남겨 둬야 나중에 비빌 언덕이라도 생기지.’
그렇게 갑자기 웬 탈퇴 이야기냐는 듯한 표정의 유리를 보고 테레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하는 것도 없으면서 그냥 탈퇴하면 안 돼?”
“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는 거라.”
“무슨 소리야 그게?”
“그런 게 있어.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네가 나가면 나도 나가게. 아니… 네가 나가야 나도 나갈 수 있을 테니까.”
“응? 이건 또 뭔 소리래? 내가 나가야 네가 나간다니?”
“그야 당연히…… 잠깐, 너?!”
설명을 하려던 테레시아는 멀뚱멀뚱한 유리의 눈빛에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깨닫고 표정을 굳혔다.
그녀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내가 원주회 회원인 거 몰랐던 거야?”
“응, 방금 들었는데? 언제 원주회에 들어갔대?”
“그게 다 네가……!”
“내가?”
발끈했던 테레시아는 천진난만한 유리의 되물음에 맥이 턱 빠져 버리고 말았다.
“…됐어. 나 갈게.”
뒤돌아선 테레시아는 체념했다.
‘그래, 내가 누굴 원망할까.’
유리라면 원주회에 들어갈 리가 없다고 확신해 함부로 입을 놀린 자기 잘못이지.
하지만 그래도 조금 억울하기는 했다.
‘나는 자기 때문에 발목이 잡혀 있는데, 정작 본인은 원주회 일에 코빼기도 안 비치다니!’
뭔가 버림받은 기분이랄까?
그리고 원주회에서 탈퇴를 하고 싶어도 그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주회란 요람 속 작은 사회이자 이권의 진창이었다.
애초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면 모를까, 발을 들인 이상 완전히 털어 내기는 쉬운 일이 아닐 터.
더군다나 더 큰 문제는 이미 테레시아에게 커다란 진흙이 묻어 버렸다는 거다.
바로 원주회의 회장인 안드레스 체이슈란 진흙이.
‘차라리 끈덕지게 달라붙으면 그걸 핑계로 삼아 빠져나오기라도 할 텐데.’
테레시아는 안드레스의 시선에서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연히 느꼈다.
하지만 그는 종종 약간씩의 감정만을 내비칠 뿐, 너무도 신사적이었다.
다시 말해 은연중에 내비치는 그의 감정이 부담스럽고 거북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먼저 거절하면 이상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유리가 탈퇴하면 애초에 그의 덤으로 들어왔으니 이를 핑계 삼아 같이 나가려 했던 테레시아.
‘그런데 정작 본인은 내가 자기 때문에 원주회에 들어왔다는 것도 모를 줄이야.’
살짝 치밀어 오른 섭섭함에 뒤돌아 걸어가는 테레시아의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그렇게 테레시아가 멀어지는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리는 눈을 끔뻑거렸다.
“그래서 쟤, 뭐 때문에 왔던 거야?”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 유리는 멈췄던 걸음을 재개했다.
* * *
성적 포인트를 등록하는 능력 평가원.
다섯 사람이 원을 그리듯 빙- 둘러 모여 있었다.
넬리 블랑.
이반 바스킨.
파나 테일러.
클라리스 반.
슐레만 한스.
50기 성적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다섯 사람.
그들은 자못 진지한 얼굴로 시선을 나누었다.
그러다 넬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그 녀석, 본 사람?”
그 물음에 나머지 네 사람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후부터 기다리고 있었는데… 없었다.”
“난 오전부터 기다렸어. 그런데 못 봤어.”
“난 어제부터였다.”
“다들 무르네, 난 이틀째다.”
차례로 이반, 파나, 클라리스, 슐레만의 목소리.
저마다 성적용 포인트를 등록하였음에도 능력 평가원을 떠나지 않고 이토록 오랫동안 기다린 이유.
그건 당연히 한 사람이 언제 나타나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성적 평가 등록 마감까지 약 1시간이 남은 무렵.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는 ‘그’ 때문에 다섯 사람이 머리를 맞댄 것이다.
“그 녀석… 정말 죽은 걸까?”
“죽긴 누가 죽어?”
“에이, 설마?”
“하지만 마냥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게, 그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게 벌써 한 달째다.”
“확실히 그 정도면… 무슨 변고가 생겼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이 시간까지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죽었다는 쪽에 좀 더 비중이 실리겠군.”
그들은 저마다 한마디씩을 내뱉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정말 죽은 거면… 음…….”
“왜? 그 새끼가 죽어서 기분 좋냐?”
“글쎄? 난 넬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거 같아.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상당히 복잡한 심경인 거지. 그간의 일을 생각하면 내가 직접 죽여 버리고 싶은데…….”
“뭐랄까, 죽이려고 해도 죽지 않을 거 같은 녀석이 갑자기 죽었다고 하니 뭔가 기분이 이상하달까?”
“다들 비슷한 심정인가 보군. 나도 대충 그런 기분인데.”
“그런데 그거… 결국, 그 녀석이 죽었다고 슬퍼하는 사람은 없다는 뜻 아닌가?”
누군가 마지막에 던진 질문에 모두가 정색하며 답했다.
“굳이? 슬퍼할 필요가 있나?”
“잘 죽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딱히 슬프지는 않은데?”
“날 괴롭힌 당사자가 죽었다는 사실에 슬퍼 눈물을 흘릴 정도라면 최소 성자라 불릴 위인이겠지.”
“그 녀석이 우릴 괴롭힌 정도를 생각하면… 사실상 부모님의 원수나 다름없지. 아암! 그걸 어떻게 용서하겠냐!”
“그래, 그리고 솔직히 슬퍼하기보다는 기뻐하는 게 옳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알아서 탈락한 셈이니까.”
“오호? 그런 거야?”
모두가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동시에 그들은 슬쩍슬쩍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언제라도 뛰쳐나갈 준비를 한 다섯 사람은 똑같은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녀석이 없다는 건…….’
‘드디어 1위 자리를 탈환할 기회가 왔다는 뜻이지!’
어느덧 이제 2년 차.
그동안 많은 것이 변했고, 50기의 성적은 유리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고만고만한 수준에 도달했다.
워낙 유리가 압도적이라 2위 싸움이 되어 버렸지만, 이제 그 압도적인 1위가 사라졌으니 다시 정상의 자리를 놓고 경쟁을 펼쳐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성적 등록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여.
‘분명, 이 중에서 포인트를 재등록하려고 움직이는 애들이 있을 거다.’
‘지금 남은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총 다섯, 얘들 성향이라면… 어? 가만?’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포인트를 재등록할 생각이었던 파나는 순간 무언가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갑자기 머릿수를 헤아리는 파나를 보고 모두가 어리둥절한 시선을 보냈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그런 넬리의 물음에 파나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답했다.
“다섯… 사람이야.”
“기초적인 셈도 못 하는 거냐? 그럼 이게 다섯이지 열 명이겠냐?”
피식 코웃음을 흘리며 시비조로 말하는 이반.
평소였다면 바로 들이받았을 파나였지만,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할 뿐이었다.
“여섯… 이었어. 분명.”
“뭔,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인상을 살짝 구긴 이반의 물음에 파나가 새하얗게 질려 빼액 소리쳤다.
“사람은 다섯인데… 목소리는 여섯이었다고!”
“……?!”
파나의 절규와 같은 외침에 그제야 다른 이들도 무언가를 깨달은 눈치였다.
‘어?’
‘어엇?!’
‘헙?!’
‘그, 그러고 보니?!’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분명 대화를 나눈 목소리는 여섯이었다.
이에 파나가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하, 하나…….”
다른 이들도 그녀가 어째서 숫자를 말했는지 깨닫고 동참했다.
“둘.”
“셋.”
“넷.”
“다섯.”
딱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여섯.”
난데없이 추가된 하나의 목소리.
이에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기 바빴다.
“자, 장난치지 말라고!”
“누가 여섯 외쳤어?! 이반, 너지?”
“난 셋이었어! 클라리스, 너 아니냐?”
“난 둘이었다!”
“대체 그럼 누구야, 그럼?!”
서로를 바라보는 당혹스러운 시선이 오가는 가운데, 또다시 이어진 여섯 번째 목소리.
“나다, 이 새끼들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장에서 검은 인영이 떨어져 내렸다.
탁-!
정확히 다섯 사람의 정중앙에 안착한 한 사람.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짝다리를 짚은 그에게서 삐딱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으니.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니들 원수.”
언짢음이 가득한 껄렁껄렁한 말투.
그리고 한쪽으로 비뚜름하게 걸린 미소를 확인한 순간, 그들은 다리에 힘이 풀려 절로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너?!”
“어, 어떻게?”
“그… 그게…….”
“어…….”
“아, 아니… 내 말은…….”
당황하여 말조차 쉬이 하지 못하는 이들을 보고 유리는 이번엔 반대편으로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하여간 이것들은 잘해 줘 봤자 하등 쓸모가 없어요. 내가 해 준 게 얼마인데 이렇게 뒤통수를 쳐? 으이?”
“…….”
“인간적으로 조문은 안 오더라도 조의금은 상납… 내야 하는 거 아니냐? 그게 인간의 도리 아니겠냐고, 어엉?”
“…….”
“내가 말야, 지옥 구경 좀 하러 갔다가 통행료 못 내서 퇴짜 맞았어요! 니들이 지옥에서도 퇴짜 맞는… 상납금 없는 망자의 서러움을 알아? 아냐고! 아앙?”
“…….”
입을 열면 열수록 유리의 얼굴 전체가 삐뚜름해졌다.
동시에 이를 마주한 이들의 얼굴도 창백하게 변해 갔다.
‘아…….’
지금 저 새끼가 하는 말이 대체 뭔 미친 소리인지, 그들은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말이다.
다만 다섯 사람이 알고 싶지 않음에도 확실하게 알게 된 게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조졌네?’
자신들이… 아니, 50기 전체가 좆 됐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