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69
268화. 폭탄 돌리기 (3)
난데없는 외침이 건물 내에 웅웅 울렸다.
하지만 이를 들은 48기들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상황 판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고작 2년 차 후배 녀석이 기숙사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온 사실이나.
그 정신 나간 후배 놈이 유리 홀랜드라는 사실이나.
또한, 그 유리 홀랜드가 난데없이 권터를 찾고 있다는 사실이나.
그 모든 게 그들로서는 단번에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사이 유리는 신기하다는 듯 기숙사를 요리조리 살펴보는 중이었다.
“이야, 여긴 무슨 별세계네?”
처음 와 보는 4년 차 거주 구역은 말 그대로 진짜 거주 구역이었다.
야생과 다름없는 1, 2년 차, 말만 거주 구역이지 사실상 노숙과 그리 다를 바가 없는 3년 차와는 너무도 차이가 났다.
“뭐, 그래도 내 집보다는 못하지만.”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연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그를 크라베 남매는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너… 네가 여긴 무슨 일이지?”
“여긴 4년 차만 출입 가능한 거주 구역이다. 당장 나가는 게 좋을 거다!”
2층을 올려다보고 있던 유리는 그제야 그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뚱한 목소리로 답했다.
“막는 사람 없던데?”
“…….”
“그리고 누가 그래?”
“…뭐?”
“4년 차만 출입 가능하다고 누가 그랬냐고. 각 거주 구역에 해당 연차만 출입 가능하다고 누가 정했는데?”
“그야…….”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던 예룬 크라베가 당황해 눈을 끔뻑였다.
동서남북의 각 거주 구역에 각각의 연차만이 머무는 것.
그건 누가 딱 정한 건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쭉 이어질 관례이자 전통 같은 거였다.
그런데 유리가 저리 물어보니 할 말이 없어진 건 당연지사.
아니, 애초에 저 녀석이 아닌 다른 후배가 똑같은 걸 물었다면, 그는 멀쩡히 4년 차 거주 구역을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유리 홀랜드이기에 저리 당당할 수 있는 거다.
그걸 크라베 남매를 비롯한 48기들이 모를 리 없었고.
더 큰 문제는 그걸 유리도 모를 리가 없다는 거였다.
“내가 여기 있는 게 꼬우면 내쫓아 보든가, 힘으로.”
…그러니 저리 재수 없게 말하는 거겠지.
히죽거리는 유리를 보고 48기는 주먹을 울끈 말아 쥐었다.
다만 쉽사리 먼저 나서는 이는 없었다.
그들의 뇌리에는 권터를 쓰러뜨리던 유리의 모습이 생생히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요람에 떠도는 유리의 성격에 관한 흉흉한 소문도 한몫했고.
그렇게 48기들이 눈치만 보고 있을 때 유리가 다시금 큰 목소리로 외쳤다.
“권터 언제 나오냐아아! 놀자!”
선배 이름을… 그것도 심지어 권터 라이더를 부르는 그 외침에 48기들이 움찔거렸다.
“권터어어!”
하지만 유리가 이렇게 소란을 피웠음에도 권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대신 다른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여기 없다네, 올빼미 군.”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괴츠였다.
그가 등장하며 던진 말에 유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없다고? 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모습을 안 보인 지 꽤 오래됐다네.”
“어디 있는데?”
“글쎄? 아마도 다른 곳에서 수련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이 좋은 곳을 놔두고 다른 곳에서 수련한다고?”
“뭐, 우리야 이곳만큼 수련하기 좋은 곳도 없지만, 그의 성에는 차지 않겠지. 이곳보다 더 좋은 곳도 그는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으니 말일세.”
“그래도 되는 거야?”
“이 요람에서 그가 가지 못할 곳이 있겠는가? 요람 전체가 그의 집이자 앞마당이나 다름없는데.”
“…나 갑자기 권터 씨랑 친해지고 싶은데?”
유리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이를 본 괴츠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볼일은 다 본 겐가?”
“볼일?”
“응? 권터를 찾으러 온 게 아니었나?”
“아, 그거? 그냥 겸사겸사.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볼일 있는 건 권터를 포함한 48기 전체니까.”
유리가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는 48기를 스윽 훑자, 그의 시선이 닿은 이들이 움찔거렸다.
“권터가 아니라… 우리한테 말인가?”
48기들을 쭉 훑어본 유리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괴츠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피식거렸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약속도 있었네?”
“약속?”
“1년에 한 번씩 놀아 달라며?”
“아아, 그랬지.”
원주회의 첩자 노릇을 해 주는 대가로 유리에게 1년에 한 번씩 대련을 요구했던 괴츠.
괴츠가 생각난 듯싶어 보이자 유리가 손을 까딱거렸다.
“그거, 지금 청산하자.”
“지금? 이렇게 갑자기?”
“애초에 빚 청산을 언제 할지 정하는 건 나라고 했는데?”
“그, 그러기는 했지.”
“그러니까 하자고, 지금.”
유리가 가볍게 몸을 풀면서 막무가내로 우기자 괴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럽세, 나가지.”
괴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첫발을 떼었다.
나머지 48기들은 소란이 이쯤에서 정리되겠구나 싶어서 다들 흩어지는 분위기였다.
다만…….
이어진 유리의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있잖아… 솔직히 나, 이거 한번 해 보고 싶었다?”
난데없는 이야기에 괴츠가 멈춰 서서 눈을 끔뻑였다.
“뭘 말인가?”
“자고로 싸움이란 언제 어디서, 어느 순간에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거잖아?”
“…그렇지?”
“그런데 요람에 들어와서는 늘 사방이 훤히 트인 곳에서만 했었다고! 이거, 나만 그래?”
“흠, 따지고 보니… 나도 그렇긴 하군.”
“그렇지?”
괴츠가 수긍하자 유리가 엄청나게 눈을 빛내며 되물었다.
“그러니 한번 해 보고 싶지 않아?”
“응?”
“난 말야, 믿고 있어! 요람에서 이런 건물을 고작 잠이나 처자라고 지어 놓은 건 아닐 거라고! 이 또한 훈련을 위한 시설일 거라고!”
“자네, 설마…….”
구구절절한 설명에서 불안감을 느낀 괴츠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졌다.
스르릉-.
반면 유리는 환한 얼굴로 검을 뽑아 들며 선포했다.
“자, 실내 전투를 가정한 실전 연습이다.”
파측-.
그 말을 남기고 유리의 신형이 사라졌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괴츠는 곧장 검을 빼 들었다.
유리가 곧바로 자신에게 덮쳐들 것이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예상을 뒤엎고 유리는 전혀 엉뚱한 곳에 나타났다.
쿵-!
유리의 칼등에 복부를 얻어맞은 크라베 남매가 포탄처럼 튕겨져 나가 벽에 부딪혔다.
“욱!”
“크윽?!”
예상치 못한 충격에 꿈틀거리며 겨우 고개를 든 남매.
헛구역질하는 그들은 눈으로 묻고 있었다.
어째서 괴츠가 아닌 자신들을 공격한 것인지 말이다.
그 억울하다는 눈빛에 유리가 칼을 ‘척’ 하니 어깨에 걸치고 답을 주었다.
“내가 말했잖아, 오늘 용건이 있는 건 권터가 아니라 ‘권터를 포함한 48기 전체’였다고.”
그러면서 유리가 복도에 서 있는 48기를 향해 검을 겨누니.
“50기 유리 홀랜드, 48기 선배님들께 용무 있어 찾아왔습니다.”
파츳-!
건물 안에 푸른 벼락이 내리쳤다.
* * *
콰- 콰강-!
굉음이 울릴 때마다 기숙사가 흔들렸다.
그와 함께 들려온 고함.
“자, 잠깐!”
“이쪽으로 오지 마!”
뇌전이 번쩍일 때마다 복도에서 사람들이 나뒹굴었다.
가뜩이나 좁은 복도에 여러 사람이 뒤섞이고, 심지어 무기까지 이리저리 얽히니 이보다 더 난잡할 수는 없는 상황.
갑작스러운 유리의 공격에 당황하던 48기들도 이내 정신을 차렸다.
“젠장, 우리끼리 얽히지 마!”
“멍하니 있지 말고 공간을 트라고!”
빠르게 판단을 내린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곧 지형지물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1층으로 내몰아!”
“그쪽은 뚫리면 안 돼!”
기숙사의 구조는 총 2층.
그중 1층에는 넓은 홀이 존재했다.
좁은 복도에선 자신들의 수적 우세를 이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48기는 유리를 홀로 밀어 넣으려 했다.
순식간에 복도의 공간을 정리하고 반격해 오는 48기에 유리는 눈을 빛냈다.
‘다르네.’
상황 판단과 위기 대처 능력.
그리고 개개인의 실력까지.
기습에 가까운 상황이었음에도 48기는 49기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확실히… 황금 기수라 불릴 만하네.’
50기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최고의 황금 기수라 칭해지던 48기.
권터라는 구심점이 없음에도 그들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황금 기수라는 명칭이 괜히 얻어진 게 아님을 그들은 스스로 증명해 내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외에도 저들을 얕볼 수 없는 이유.
그건 바로, 48기에는 권터를 제외하고도 또 한 명의 실력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운의 만년 2위라 칭해지는 인물.
그리고 이제는 만년 3위의 자리로 내려간 존재.
하지만 1, 2위가 규격 외의 존재일 뿐, 그 역시도 요람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의 천재성을 가진 자.
스륵-.
“괴츠다!”
“괴츠한테 공간을 열어 줘!”
48기의 응원 속에 붉은 장미가 1층 복도에 만개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푸른 뇌전을 집어삼켰다.
‘음…….’
붉은 검광의 미로 속에 갇힌 유리는 빠르게 칼을 휘둘러 괴츠의 검을 쳐 냈다.
그 순간순간마다 유리가 눈을 빛냈다.
‘확실히 공간이 협소하니 움직임에 많은 제약이 있네.’
역시 경험을 해 봐야 안다고.
함정을 피하는 게 아닌, 좁고 협소한 복도식 공간에서 싸움을 이어 가는 건 정말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공간을 다루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
움직임의 동선.
칼을 내뻗는 길이와 속도.
그 모든 게 일반적인 상황과 달라도 너무 달랐고, 이는 유리에게 너무도 값진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를 느끼고 있는 건 유리뿐만이 아니었다.
그와 검을 부딪치고 있는 괴츠 역시 마찬가지였다.
‘좁다.’
이렇게 좁은 곳에서 검을 휘두르는 건 그 역시도 처음 해 보는 일.
이에 괴츠는 무언가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기숙사에서 검을 휘두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건만…….’
검을 휘두를 생각을 하기는커녕 한껏 예민해진 동기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조용히 수련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렇게 벽이며, 바닥이며, 천장을 마음껏 박차고 다니며 검을 휘두르니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카가각-!
붉은 검광 사이에서 유유히 빠져나온 푸른 뇌전.
약간의 거리를 두고 유리와 괴츠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때 유리가 괴츠를 향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즐거워 보이네?”
“내가 말인가?”
“웃고 있잖아.”
괴츠는 살짝 놀라 자신의 입꼬리를 만져 보았다.
‘…진짜군.’
유리의 말처럼 자신은 정말로 웃고 있었다.
이쯤 되니 괴츠는 인정해야만 했다.
“그래, 즐겁군.”
이렇게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검을 휘둘러 본 게 얼마 만이란 말인가.
괴츠의 표정이 더더욱 즐거움으로 달아올랐다.
그런 괴츠를 본 유리가 히죽거렸다.
“그치? 그럼 내가 더 신나는 거 알려 줄까?”
“그런 게 있는가?”
“이 요람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
“글쎄? 뭔가?”
괴츠의 물음에 유리는 말없이 검을 늘어뜨렸다.
우웅-.
그와 함께 공명음을 울리며 피어오른 황금빛 마검.
이를 괴츠를 향해 겨눈 유리가 씨익 웃었다.
“파손된 기물값을 내가 물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에 살짝 눈이 커진 괴츠.
“하?”
하지만 그는 곧 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하하하! 푸하하하!”
어찌나 시원하게 웃었는지 눈가에 눈물까지 맺힌 괴츠가 무지개색의 마검을 일으켰다.
우웅-.
그리고 이를 유리를 향해 겨누며 신난 눈빛으로 외쳤다.
“그거 아주 끝내주게 신나는 얘기군!”
“그치? 그쪽이 뭘 좀 아네!”
쩌렁쩌렁한 외침이 메아리친 순간.
둘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함께 두 사람의 마검이 복도의 벽을 시원하게 긁었다.
콰가가각-!
순식간에 갈려 나가는 복도를 본 48기들이 경악하여 소리쳤다.
“저 미친놈들이?!”
“하, 하지 마!”
“그만해! 무너진다고!”
그런 그들의 외침에 유리와 괴츠가 답을 줬다,
두 개의 마검이 만들어 낸 거대한 폭음으로.
콰아아아앙-!
* * *
유리가 기숙사에 들어가고 1시간여 뒤.
“…응?”
잠시 외출하였다가 돌아온 48기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사고가 굳어 버리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게 헛것인가 싶어 연신 눈을 비볐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건 헛것이 아닌 실제였다.
“이, 이게 뭐야?!”
부서진 현관.
모조리 깨져 있는 창문들.
실금이 간 벽면과 주저앉은 지붕까지.
실금이 간 벽면과 주저앉은 지붕까지.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기숙사가 폐가처럼 변해 있다니.
이게 대체 무슨 기괴한 일이란 말인가!
그렇게 그가 멍하니 기숙사를 바라볼 때.
현관이 있던 곳을 통해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저벅-.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나온 이는 역시나 유리.
그리고 그를 알아본 48기의 생존자는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본능적으로 느낀 거다.
기숙사의 변고가 바로 저 녀석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응? 뭐야? 한 놈 빠져 있었잖아?”
한편, 놀라 굳어 버린 48기를 발견한 유리는 그의 곁을 지나치다가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운이 좋네.”
그러고는 씨익 웃으며 떠나가는 유리.
그가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 48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식은땀을 흘리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