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00
299화. 흑과 백 (1)
우우웅-.
진동음은 짧게 끝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길게 이어졌다.
놀란 유리가 수정체에서 손을 떼기 전까지는 말이다.
‘……?!’
손을 떼기 무섭게 언제 울렸냐는 듯 말끔하게 사라진 소리.
이에 유리가 주변을 둘러보며 눈을 끔뻑였다.
“…뭐지?”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잘못 들었던 걸까?
‘그럴 리가.’
유리는 다시금 진명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우웅-.
손이 진명로에 닿기 무섭게 또다시 진동음이 들려왔다.
웅웅웅웅-.
마치 여러 마리의 벌들이 동시에 날갯짓을 하는 듯한 소리.
유리의 눈에 흥미가 일었다.
‘이 소리가 어디서 나는 거지?’
가장 먼저 소리의 진원지로 의심되는 건 진명로였다.
진명로에 손이 닿으며 소리가 들리니 너무도 당연한 추론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유심히 귀를 기울여 보아도 진명로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유리는 턱을 쓸었다.
‘흠… 이거 진짜 소리가 맞긴 한 건가?’
그러면서 한 손으로는 귀를 막고 한 손으로는 진명로를 만졌다.
우웅-.
다시금 울리는 진동음을 유심히 듣던 유리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옘병,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잖아?!’
진동음은 귀와 고막을 타고 전해진 외부의 소리가 아닌 자신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실로 당혹스럽기 짝이 없는 기현상.
유리는 곧장 관조에 들어갔다.
‘어디냐? 어디서 들리는 거냐?’
하지만 육신을 샅샅이 훑어도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평소와 똑같은 몸 상태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순간 유리의 뇌리에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이에 유리가 다급히 손을 뻗었다.
구르륵-.
그의 손에서 황금빛 액체가 솟구치며 금속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이를 손에 쥔 유리가 반대 손을 다시 진명로에 가져다 댄 순간.
우우우우우웅-!
황금빛 금속 덩어리가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던 진동음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유리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네가 범인이었냐?”
마치 진명로에 공명하듯 몸을 떨어 대는 황금빛 금속.
그것이 바로 기괴한 진동음의 정체였다.
‘이거 진짜 뭐냐?’
흑룡고에서 잘린 팔 귀신이 전해 준 정체불명의 황금빛 금속.
그게 이제는 진명로와 반응하고 있다니.
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유리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흠…….”
그는 침음을 흘리며 황금빛 금속을 진명로에 직접 가져다 댔다.
톡-.
수정체와 금속이 가볍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으나 지금껏 줄곧 울리던 진동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건 또 아무렇지도 않다고?’
유리는 볼을 긁적이며 이후로도 몇 가지 실험을 해 보았다.
그 결과 알아낸 한 가지 사실.
그건 반드시 자신의 육신이 진명로에 닿아야지만 금속이 반응한다는 거였다.
“…왜 이러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네.”
진명로와 금속이 반응하는 이유.
이 정체불명의 현상은 지금 당장은 해명해 낼 수 없을 듯싶었다.
유리는 한숨을 내쉬며 금속을 다시 집어넣고 검으로 진명로를 캐냈다.
웅웅-.
다시금 머릿속에 울리는 진동음을 무시하며 그는 진명로를 살폈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울퉁불퉁한 수정 안에 호두 알 크기의 둥근 구체가 담겨 있었다.
‘근데 이걸 어떻게 먹냐? 사탕도 아니고.’
분명 비약이라고 했는데 수정의 경도는 도저히 인간이 씹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섭취 방법은 나가서 알아봐야 할 듯싶었다.
물론 이걸 먹어 보기 위해서는 최소 2개 이상의 진명로를 찾아야 할 터.
‘뭐, 그래도 이걸로 최소 백룡고 출입증 하난 건진 셈이네.’
유리는 진명로를 배낭 안에 그대로 집어넣고 씨익 웃었다.
“시작이 좋네.”
4층을 돌아다닌 지 며칠 되지도 않았건만 벌써 하나를 찾았다니.
예감이 좋지 않은가.
‘시간도 널널하고, 잘하면 몇 개는 더 건질 수 있겠네.’
유리는 재빠르게 배낭을 둘러메고 일어나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렇게 유리가 사라진 공간.
흩어진 백골만이 남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 * *
죄의 미궁 관리를 맡은 이들이 기거하는 관리실.
그곳에서 근무를 서고 있던 두 흑검병은 갑작스러운 방문자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중에서도 선임으로 보이는 흑검병이 가장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응? 이게 누구야? 페터 레만 선배님 아니십니까?”
“오랜만이군. 잘 지냈냐?”
“저야 뭐, 늘 똑같죠. 그러는 선배님이야말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임무 교대다.”
“임무 교대? 저와 선배님이 말입니까?”
“그래. 난 여기로, 넌 내가 있던 곳으로.”
“흠, 이 시기에 인사이동이라…….”
“불만 있으면 부단장님께 가서 따져라.”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찡그린 그가 품에서 명령서를 꺼내 던졌다.
명령서에서 듀란의 직인을 확인한 흑검병이 명령서를 돌려주며 히죽거렸다.
“불만이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기수들 전부가 미궁에 들어가 있으니 기관 돌파 퀘스트는 쓰는 사람도 없을 테고… 이거 완전 휴가잖습니까?”
“휴가는 무슨. 다른 임무가 배정되기 전까지의 대기 발령이겠지.”
“아무튼 다른 임무가 배정되기 전까지는 휴가 맞잖습니까?”
“그래, 사형수들한테도 죽기 전에는 맛난 걸 배불리 먹인다더라. 짧은 휴가 잘 즐기고 지옥으로 떨어져라.”
“거, 악담을 해도…….”
말투는 그래도 선임 흑검병은 딱히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싶었다.
오히려 페터를 향해 음흉한 눈빛을 보냈다.
“제가 언젠가는 이리될 줄 알았지 말입니다. 흐흐.”
“웃냐?”
“선배라고 언제까지나 거기서 그러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젠장, 좋은 시절은 다 갔군.”
“그 정도로 꿀 빠셨으니 이제는 일 좀 하십쇼.”
“내가 논 줄 알아?”
“그 기관 돌파 퀘스트 관리직이 꿀 빠는 한직인 거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 새끼들이 좌천된 거라고 놀릴 때는 언제고, 이제는 꿀 빨았다고 지랄들이네?”
“요즘 안 그래도 인력 딸리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오죽했으면 부단장님이 선배님까지 불렀겠습니까.”
“이것 봐라? 감히 선배를 놀려? 이 새끼가 빠져 가지고는… 오랜만에 내 밑으로 전부 집합해 볼까?”
“수, 수고하십쇼! 그럼 전 임무 지옥에 떨어지기 전 이만 휴가를 즐기러!”
선임 흑검병은 후다닥 손을 흔들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페터 레만이 비록 아무런 직급이 없다지만, 경력과 실력만 따지면 진즉 부장직에 올랐을 이였다.
천성이 게을러 실적이 부족한 탓에 여전히 주요 직급을 못 달았지만, 그가 소집을 걸면 경력 20년 차 미만으로는 전부 비상이 걸리리라.
그러니 선임 흑검병이 도망을 치는 것도 당연지사.
그렇게 두 명 중 한 명 떠나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후임 흑검병이 페터를 보며 눈을 빛냈다.
그러다가 밖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이거 의외군요. 페터 씨도 저희 편이었다니?”
“같은 흑검병단 소속 식구끼리 네 편 내 편을 따질 필요가 있을까.”
“아뇨, 전 흑이 아닌 백을 말하는 거였습니다만?”
“…백?”
“이제 와서 뭘 모른 척하십니까? 어차피 지금 이 시기에 그 ‘가짜 명령서’를 가지고 와서 여기 죽치고 있을 인간이 저희 쪽 인력 빼고 또 있습니까?”
“…….”
“저 역시 똑같으니까요.”
히죽 웃으면서 자신의 명령서를 흔들어 보이는 사내를 페터는 조용히 바라보았다.
“…….”
“…….”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감돌던 가운데.
페터에게서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리군.”
“저야 뭐, 아직 서른이 안 됐으니, 페터 씨가 보기에는 당연히 어리겠죠.”
“거기다 생각도 없고.”
“예?”
“요즘 것들은 기본 교육도 받지 못한 건가?”
“……?”
잠시 눈을 끔뻑이던 흑검병은 이내 페터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깨닫고 살짝 미소 지어 보였다.
“아아, 같은 뿌리에서 나온 자로 추측되어도 절대 서로 접촉하지 말라는 교육 말입니까? 당연히 받았고 지금까지 철저히 지켜왔죠. 하지만…….”
“…….”
“그게 이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전부 끝인데?”
페터를 향한 젊은 흑검병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래서 말입니다.”
은근슬쩍 떠보는 듯한 말투로 슬쩍 몸을 낮춰 물었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그 왜, 얼마 전에… 그러니까 51기 생존 퀘스트장에서 벌어진 서류 도난 사건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자살한 흑검병, 제 추측으로는 저희 소속일 게 분명한데…….”
젊은 흑검병은 턱을 쓸었다.
“대체 왜 자살을 택했을까요?”
“…….”
“죽기 전에 서류를 뒤지고 불태우기까지 한 거로 보아 그 사람이 맡은 임무 자체가 위조 명령서가 얼마나 잘 만들어진 건지 검증하기 위함이었을 건데… 왜 자살했을까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듯 의문이 가득한 젊은 흑검병의 표정.
이를 떨떠름하게 바라보던 페터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몇 년 차지?”
“이제 2년 차입니다.”
“고작 1년 좀 넘었다는 소리네. 젠장, 대갈빡에 피도 안 마른 햇병아리 새끼였군.”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 젊은 흑검병은 움찔거렸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반면 페터는 한탄하듯 말을 내뱉었다.
“하긴 계획이 시행되는 해에 들어왔으니 딱히 교육받지 않았겠지.”
“…교육이면 저도 충분히 받았습니다만?”
살짝 반항하는 듯한 말투에 페터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온통 검디검은 이 요람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의 백의(白衣) 역시 검게 물들어야만 했다. 그 탓에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조차 없게 됐지.”
“…….”
“뭐, 애초에 상호 간에 접촉을 금하기도 하였지만, 때에 따라서는 정보를 주고받을 필요성이 있었다.”
젊은 흑검병은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페터의 눈빛에 압도되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만든 거다. 혹시 모를 정보의 흔적 및 꼬리를 완벽히 제거하면서도 동료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신호를.”
“설마…….”
“그 신호가 바로… ‘죽음’이었다.”
“……?!”
“임무를 완료한 후 목을 매 자살한다면 부정적인 신호, 하지만 검을 심장에 꽂아 죽는다면…….”
“…긍정적인 신호. 즉, 그 자살한 흑검병은 검증해 본 결과 위조 명령서에 이상이 없다는 걸… 알리고 죽은 거겠군요. 거기다 그가 죽음으로써 흑검병들의 수사에 더욱 혼선이 일어났을 테고…….”
“그의 죽음이 있었기에 지금 이 위조 명령서를 믿고 쓸 수 있게 된 거다.”
페터는 명령서를 만지작거리며 다시 품에 넣었다.
반면 젊은 흑검병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어, 어째서 그렇게까지? 고작 위조 명령서를 검증하는 일 따위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페터의 얼굴이 짜증과 분노로 일그러졌다.
“이 멍청한 새끼가…….”
“예?”
“어째서 그렇게까지라고? 아니?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던 거다!”
“…….”
“지금 네놈이 있는 이곳이 어딘지 잊은 거냐? 여긴… 용의 요람이다.”
“……?!”
“세계 최강이라는 흑검병단의 본진 안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일이 어린애 장난이라 생각한 거냐?”
페터는 젊은 흑검병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새겨들어라, 빌어먹을 애송아. 이번 일에 너의 선배들은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이십여 년의 세월과 함께 목숨을 걸었다.”
“…….”
“그렇게까지 해서 이제야 이곳에 도달했다. 그 미친 짓거리를 해서야 겨우 22년 만에 기회를 만들었단 소리다!”
“그…….”
“닥치고 들어!”
“…….”
“혹여라도 네놈의 치기 어린 행동으로 인해 이 일에 작은 차질이라도 생긴다면…….”
페터의 눈이 시퍼렇게 번뜩이며 지독한 살기가 젊은 흑검병에게 쏟아졌다.
“네놈을 갈아 마셔 버릴 거다. 내 말… 명심해라.”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의 울음과도 같은 경고.
이에 젊은 흑검병은 마른침을 삼키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잠시 그렇게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페터가 시간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준비해라, 곧 작전 1조가 도착할 테니까. 그들이 신호를 주면… 미궁을 연다.”
“알겠습니다.”
조금 전의 경고를 들었기 때문일까.
젊은 흑검병의 얼굴은 긴장으로 물들었다.
째각째깍.
조금씩 흘러가는 시간 속.
그 순간, 젊은 흑검병이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페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그런데 아까 그 사람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젊은 흑검병이 말한 ‘그 사람’이 조금 전 떠난 선임 흑검병임을 안 페터가 덤덤한 투로 답했다.
“짧은 휴가를 만끽하게 한 뒤… 보내 줘야겠지. 지옥으로.”
페터의 두 눈에 서늘한 살기가 감돌다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