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06
305화. 흑과 백 (7)
지하 1층.
미궁의 시작점이 되는 거대한 공동에 10명의 백검병들이 경계(警戒)를 서고 있었다.
그 어떤 대화도, 미동도 없이 전방을 주시하는 그들의 모습은 새하얀 조각상이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니 망부석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한참 동안 적막이 이어지던 가운데.
한 백검병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흠?”
그가 바라보는 방향.
수없이 많은 통로 중 하나에서 검은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이에 백검병들의 이목이 쏠린 것은 당연지사.
“하하, 당돌한 녀석이군.”
“제 발로 죽을 자리를 찾아오다니.”
통로에 멈춰 서서 자신들이 자리한 방향을 바라보는 어느 한 소년의 모습에 백검병들은 조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그랬던 미소는 이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응?”
“제법 많이도 몰려왔네?”
통로의 입구를 빠져나와 걸어오는 소년의 뒤로 또 다른 기수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
순식간에 통로를 빠져나와 그 수를 불려 나가는 요람의 기수들.
그 수가 최종적으로 마흔에 달하자 백검병들도 마냥 경시할 수만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긴장한 건 아니었다.
“이거, 우리 심심하지 말라고 놀아 주러 온 건가?”
“저 정도 숫자면 그럭저럭 심심풀이는 되겠군.”
갑작스럽게 나타난 요람의 기수들.
그 수가 자신들에 4배에 달했지만, 백검병들은 그저 무료한 시간을 달래 줄 소소한 행사 정도로 여겼다.
그들의 자신감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거였다.
양들이 모여 봤자 양 떼일 뿐.
자신들은 그런 양을 사냥하는 늑대 무리였다.
백검병들은 기수들과 자신들 사이에 절대 좁혀지지 않는 격차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물론 그건 대부분 맞는 말이었다.
양 떼 사이에 양의 탈을 뒤집어쓴 괴물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했으니까.
“오는군. 알아서들 정리해라.”
후방조를 책임지고 있는 조장이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기수를 보고 그리 명령했다.
이에 조장을 제외한 이들이 천천히 기수들을 향해 느긋하게 걸어 나갔다.
그렇게 9명의 백검병과 마흔 명의 기수들이 서로를 향해 나아갔고, 막 그 두 무리가 부딪치려는 찰나.
“산개(散開)!”
기수들의 뒤편에서 들려온 당찬 목소리에 마흔 명의 기수들이 좌우로 나뉘어 갈라졌다.
그러고는 백검병들을 지나쳐 그대로 뒤를 향해 달려 나가는 게 아니겠는가.
단, 가장 선두에서 달려오던 검은 머리의 기수 한 명만을 남겨 둔 채.
“이건 뭐야?”
“애송이들이 재밌는 수작질을 부리잖아?”
기수들이 자신들을 지나쳐 멀어짐에도 백검병들은 그다지 크게 신경 쓰는 듯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자신들을 지나쳐 기수들이 달려가고 있는 곳이 조장이 서 있는 곳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쯧, 차라리 우리를 상대하는 게 좋았을 것을.”
“별로 좋지 못한 선택을 했군.”
후방에 홀로 남은 조장.
그는 최근 공인 7단에 들어선 이였다.
요람의 애송이들이 마흔 명이 아니라, 그 열 배가 달려든다고 해도 어찌하지 못할 존재.
하여 백검병들은 요람의 기수들이 자신들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그저 유유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상황을 구경할 무렵.
한 백검병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저 녀석은 왜 혼자 남은 거냐?”
“그러게?”
다른 이들이 모두 뒤로 달려 나갈 때 혼자 멈춰 서 있던 검은 머리의 기수.
그가 홀로 남은 이유는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때, 우두커니 서 있던 검은 머리 기수.
유리가 검을 들어 올리며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왜 그런 줄 알아?”
새하얀 검 끝이 백검병들을 가리킨 순간.
“쟤들이 아닌, 내가 진짜거든.”
쿵-!
유리가 강하게 땅을 내리찍었다.
그리고.
“벽(壁)!”
다시금 이어진 외침에 백검병들을 지나쳐 달리던 기수들이 급히 멈춰 서서 일렬로 늘어섰다.
다닥다닥 붙어 인의 장벽을 형성한 기수들.
후방에 남아 있던 백검조장은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다.
‘무슨 짓이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싶었던 녀석들이 갑자기 멈추다니?
도무지 저들의 저의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가 살짝 미간을 일그러뜨린 순간.
번쩍-.
기수들이 만들어 낸 인의 장벽 너머.
백검 조장의 시야가 닿지 않는 그곳에서 황금빛 살광(殺光)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컥-!
억-!
짧디짧은 외마디 비명.
고통으로 가득찬 소리가 고막에 닿은 순간 백검 조장은 순간 뒷골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그의 본능이 위험을 경고하였을 땐 이미 너무 늦어 버린 뒤였다.
쿵-!
다시금 들려올 발구름 소리.
이에 율리아가 마나를 담아 외쳤다.
“개(開)!”
그녀의 신호에 맞춰 좌우로 벌어지는 인의 장벽.
그 사이로 푸른 섬광이 순식간에 빠져나와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바로 백검 조장이 있는 곳을 향해서 말이다.
파측!
찰나의 순간.
전방을 살피는 백검 조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푸른 섬광의 뒤편.
좌우로 벌어진 인의 장벽 너머의 풍경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무, 무슨?!’
자신과 함께 후방에 빠져 있던 녀석들이기는 하나, 평균적으로 공인 4단급의 실력을 지닌 수하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실력을 지닌 백검병 아홉이, 인의 장벽 너머에 전부 널브러져 있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상황.
이에 백검 조장은 깨달았다.
‘애초에 저 녀석들은 그냥 미끼였구나!’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수십 명의 기수는 그저 이목을 잡아끄는 용도이자, 뒤편의 상황을 가려 주는 장막에 불과했다.
준비된 진짜 ‘칼’은 홀로 남아 있던 저 검은 머리 녀석이었던 것이다.
‘가만… 검은 머리?’
백검 조장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그렇군… 저 녀석이 유리 홀랜드였어!’
이번 작전에 있어 백검병들에게 전달된 정보.
거기에는 기수임에도 조심해야 할 요주의 인물 둘의 특징이 적혀 있었으니.
검주의 핏줄이자 라이더가에서 배출한 또 한 명의 천재, 권터 라이더.
그리고 바로 그 권터 라이더를 꺾은 유리 홀랜드.
그들은 요람의 기수가 아닌 흑검병의 조장급으로 생각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틀렸다! 저 녀석은… 고작 조장급이 아냐!’
고작 조장급인 녀석이 아홉이나 되는 백검병들은 저리 순식간에 해치울 수는 없는 법이다.
‘최소 부장급!’
진실을 깨달은 순간 그는 순식간에 영역을 개방했다.
그 신속한 대처를 알아차린 유리의 눈빛이 신중해졌다.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네.’
최소한의 피해로, 가장 신속하게 공동의 백검병들을 처리하기 위해 율리아와 고안해 낸 작전.
그 성공이 목전에 도달했지만, 상대는 쉽게 당해 줄 의향이 없어 보였다.
‘뭐, 그래도 상관없지.’
이번 작전의 핵심은 자신이 가장 강한 백검병을 상대하는 사이 일어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
이미 가장 강한 백검병을 제외하고는 모두 처리가 되었으니 작전은 98% 완성이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나머지 2%는… 내가 채우면 된다.’
파측!
유리에게서 짙은 뇌광이 번쩍이자 그의 신형이 앞으로 가속했다.
동시에 그 역시도 영역을 개방했다.
그렇게 유리와 백검병의 영역이 제대로 부딪혔다.
우웅-!
영역과 영역의 충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두 초월적 감각이 충돌하여 상쇄 작용이 일어났다.
그 순간에 유리는 상대방의 침착한 표정을 보고는 아쉬워하며 혀를 찼다.
‘쯧, 좀 더 놀라서 당황하면 안 되냐?’
그랬다면 지하 4층에서처럼 쉽게 끝을 보았을 텐데 말이지.
그러나 상대는 이미 자신이 영역을 개화했으리라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
쉽게 갈 수 있는 일이 어려워졌지만, 유리는 빠르게 아쉬움을 털어 냈다.
그리고 속으로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과연 이거까지 예상했을까?’
그의 미소가 짙어지는 만큼 그가 펼친 영역장의 농도도 점점 짙어지기 시작했다.
완벽한 담농의 경지.
그로 인해 백검 조장의 영역이 빠르게 고갈되어 갔다.
그러다 마침내.
“……?!”
자신의 영역장이 완전히 상쇄되어 사라진 것을 깨달은 백검병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이… 이……!’
조금 전 그는 느꼈다.
자신의 영역을 탐욕스럽게 집어삼킨 상대의 영역장을.
그건 절대 자신과 같은 미숙한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을 압도할 정도의 영역장을 펼친 게 이제 고작 스물도 되지 않은 풋내기라니!
어미 배 속에서부터 수련해 왔다고 해도 이는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여 이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눈앞에 마주한 미지를 향해 경악성을 내지르는 일이었다.
“이 괴물 새……!”
채 전부 내뱉어지지 못한 말이 공동에 쩌렁쩌렁 메아리치고.
서걱-.
그의 머리가 떨어져 내리며 상황이 일단락되었다.
그렇게 10명의 백검병들이 모조리 처리되는 데 걸린 시간.
이는 고작 1분 남짓에 불과했다.
* * *
털썩-.
옆으로 쓰러진 백검병의 시체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본 유리.
그는 곧 백검병의 시체 너머를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 새끼는 왜 저기서 저러고 있냐?”
유리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사지가 결박되어 시체처럼 널브러진 권터가 있었다.
파리한 안색.
입가에 피가 흐른 자국.
거기다 이 소란이 일어났음에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걸 보니 내상이라도 입은 모양.
그에 대한 유리의 소감은 간단했다.
“팔자도 좋네.”
누구는 뭐 빠지게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저건 자기 집이 털리고 있는 마당에도 잠이나 처자고 있다니.
그 사실에 유리의 눈초리가 삐딱해진 순간, 그의 옆으로 몇몇 사람이 다가왔다.
“고생했어.”
가장 먼저 수고의 말을 전하는 테레시아.
그리고 그녀 옆에 선 아린과 율리아가 권터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권터 라이더?”
“저 사람은 왜 여기 있는 거야?”
그 물음에 군터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귀하신 분은 확실히 대접도 다르군. 다른 기수들은 다 처죽이는 와중에도 이렇게 살려 둔 걸 보니.”
“…설마 납치해서 팔려고 했던 걸까?”
그런 제리의 혼잣말에 괴츠가 진중한 태도로 답했다.
“어쩌면 권터를 인질로 잡고 요람에서 빠져나가려는 계획이었을지도…….”
그렇게 권터가 왜 있는지를 놓고 논의가 오가는 상황을 유리가 끊어 냈다.
“뭐, 저 인간이 왜 여기서 처자빠져 자고 있는지는 나중에 알아서들 생각하시고… 난 바로 움직일 테니까, 각자 맡은 바 임무에나 충실합시다.”
그리 말하고 유리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 그의 등을 향해 테레시아와 아린이 동시에 소리쳤다.
“몸조심해!”
“나쁜 놈들 많이 죽이고, 애들 많이 구해 와 유리이이!”
그런 둘의 배웅 같지 않은 배웅에 유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유리의 신형이 그대로 사라졌다.
그렇게 그가 떠나간 뒤.
“배고프다!”
“데려왔습니다!”
뽀삐와 무치가 두 명의 백검병을 질질 끌고 왔다.
그들은 놀랍게도 여전히 살아 있었지만, 팔다리 힘줄이 잘려 거동할 수는 없어 보였다.
이에 율리아가 혀를 내둘렀다.
“그 와중에 정말로 딱 두 명만 살려 뒀네?”
이는 유리와 사전에 협의가 끝난 내용이었다.
지하 1층 공동의 탈환에 성공 시.
유리는 혼자 구조 작전을, 율리아는 공동에 합격진을 구축할 것.
그리고 유리가 살려 둔 백검병을 통해 정보를 알아낼 것.
그것들이 조금 전 유리가 언급한 각자가 맡은 역할들이었다.
“그럼…….”
잠시 유리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테레시아가 백검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도 시작하자.”
굳은 표정으로 백검병들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에 냉랭함이 감돌았다.
* * *
쿨럭쿨럭-.
피 섞인 기침을 토해 내는 소년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주변으로 비슷한 몰골의 소년소녀들이 널브러져 있었으니.
이미 진즉 의식을 잃은 듯, 기절한 셋.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가 셋.
그리고 숨이 끊긴 듯 보이는 이들이 둘.
그 중심에 상처투성이인 레몬빛 머리카락 소녀가 있었으니.
그녀는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백의를 입은 여인을 노려보며 폴폴 살기를 흘려 댔다.
하지만 간신히 두 발로 서 있기만 할 뿐이지 그녀 역시 부상을 입은 건 마찬가지였다.
저벅-.
한 발짝 앞으로 다가온 백검병이 절대 쓰러지지 않겠다는 듯 버티는 리사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나도 나지만… 너도 참 지독한 년이네.”
백검병은 감탄인지 욕인지 모를 소리를 해 대며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이에 리사의 호위였던 소년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아, 안 돼……!’
갓난아이일 적부터 베르포트 가문에 거두어져 길러진 리사의 호위들.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그들에게 있어 삶의 목적은 오로지 리사의 안위뿐이었다.
리사 베르포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목숨보다도 우선시해야 할 태양과 같은 존재.
그런데 그 맹목적인 충성의 대상에게 어둠이 드리우고 있었다.
‘이, 일어나야 해……!’
아득바득 몸을 일으키려 해 보았지만, 그럴수록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으득-.
아득 깨문 잇새로 핏물이 흘렀다.
‘움직여… 움직이란 말이다!’
자신과 동료들이 목숨을 내던져 달려들었음에도 어찌하지 못한 상대였다.
그런 적이 제 주인을 해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그건 소년에게 있어 태양이 어둠에 집어삼켜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버티기 힘든 거 같은데, 이만 편히 쉬렴.”
그리고 마침내 어둠이 자신의 태양을 집어삼키려 마수를 뻗어 왔다.
“안 돼애애애!”
“주인니이임!”
절체절명, 리사 호위대의 절규가 쩌렁쩌렁 메아리친 순간.
“뭐야? 니들이었냐?”
오로지 어둠뿐인 좌절과 절망의 순간.
그 속에 강림한 황금빛은 칠흑 같은 밤을 비추는 만월보다 더욱 찬란하고 맑게 세상을 비췄다.
캉-!
달빛의 내려온 한 줄기 황금빛 궤적은 태양을 해하려던 칼날을 날려 보냈고.
푸슥-.
어둠 그 자체를 걷어 냈다.
그렇게 달빛처럼 내려와 세상에 온전히 두 발로 내디딘 구원자를 리사와 호위들이 멍하니 올려다볼 때.
구원자가 명했다.
“이 주변은 내가 싹 정리했으니까 적당히 쉬다가 다친 애들 챙겨서 움직여. 미궁 출구 알지? 거기로 가면 안전할 거다. 그럼 난 바빠서 이만 간다.”
그 말만 남긴 채 멀어지는 유리.
잠시 왔다 금방 떠나간 그의 뒷모습이 마치 꿈처럼 느껴지는 건 단순한 착각일까?
멍하니 유리가 떠난 방향을 응시하던 리사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앉아 양손을 고이 모았다.
“아아… 나의 빛, 나의 주여…….”
그녀의 얼굴에는 조금 전의 표독스러움이 일절 남아 있지 않았다.
감격과 감사함이 철철 넘쳐흐를 뿐.
“나의 주여!”
그 뒤로도 리사는 한참이나 유리가 떠난 방향을 향해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사이 겨우 기운을 차리고 리사의 곁으로 모여든 호위들.
그중 한 소년이 여전히 기도 중인 리사를 보며 조금 멍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주제넘은 발언이라는 것은 아나, 전 솔직히…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주인님께서 어찌 유리 님을 그리 따르는지…….”
그건 갑작스러운 고백이었다.
“알게 된 지 이제 기껏해야 1년도 되지 않는 사람에게… 주인님께서 어째서 그토록 헌신적인 태도를 보이시는지… 저는 다시 태어난다고 하여도 깨닫지 못하리라 생각했었습니다.”
소년에게 유리는 그저 자신이 모시는 이가 특별하게 여기는 존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조금은… 알 거 같습니다.”
그리 말하는 소년의 눈동자에는 조금 전 유리가 보여 준 찬란하기 그지없는 황금빛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리사는 그리 고백하는 소년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그거면 됐어. 우리도 움직이자.”
“예!”
잠깐의 대화를 마치고 그들은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강림했던 구원자가 알려 준 활로를 따라.
그 후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 * *
툭툭-.
통로를 걸어가는 유리가 어깨를 두들겼다.
“아, 피곤하네.”
아무리 강도 높은 수련을 통해 체력을 길러 온 유리라고 할지라도 그 넓은 지역을 돌며 기수들을 구해 내는 건 마냥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적잖은 체력과 적잖은 마나를 잡아먹는 단기 전투의 연속.
그렇다 보니 유리도 제법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툭툭-.
“아이고, 삭신이야.”
연신 허리를 두들기며 유리는 통로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지하 1층 공동으로 들어선 순간 그에게 쏟아지는 수백 쌍의 적대적인 시선들.
하지만 그건 잠시뿐이었다.
“유리다.”
“유리였구나.”
“유리 홀랜드다!”
통로를 빠져나온 이가 유리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적의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 대신 새로운 감정들이 자리했으니.
민망함.
쑥스러움.
어색함.
그리고 고마움까지.
‘어……?’
적대적인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걸을 수 있었건만.
유리는 정작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낯간지러운 시선에는 놀라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