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11
310화. 진화 (3)
도무지 빠져나갈 틈 없이 빽빽이 공간을 점유한 깃털들.
일시에 쏟아진 그것들은 폭격이라 부르기에 충분했다.
콰가가강-!
유리를 뒤덮은 깃털의 해일이 굉음을 내며 지면을 두드렸다.
그러자 희뿌연 먼지가 거대한 구름처럼 일어나 사방을 잠식했다.
“…….”
노인은 자신이 만들어 낸 작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때, 먼지구름의 갑자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스스스-.
급격히 회전 속도를 높여 가던 소용돌이가 어느 순간 미친 듯이 먼지를 빨아들여 상공으로 올려보냈다.
고오오오-!
흡사, 한 마리의 풍룡(風龍)이 나타난 듯, 천장을 향해 솟구친 용오름.
그 중심에서는 유리가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옘병, 믿기는 개뿔!’
노인이 했다면 자신도 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유리.
하지만 검은 괴물은 그 믿음을 배신했다.
-크르르릉.
유리의 의지에 반응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암석 사이에 처박혀 있는 검은 괴물.
하여 절체절명의 순간 유리를 구한 건 쓸모없는 괴물이 아닌, 스스로 갈고닦아 온 역량이었다.
휘오오오-!
마류가 만들어 낸 용오름 속에 유리를 노리고 쏟아졌던 깃털들이 한 방향으로 흘렀다.
그 막대한 힘의 흐름을 마류-가두기로 붙잡아 낸 유리.
그가 검을 휘둘러 힘의 흐름을 지휘하는 모습은 마치 용오름을 다스리는 검무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실속은 달랐다.
‘드, 드럽게 무겁네!’
유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금방이라도 흐름에서 이탈하려는 깃털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흐름을 완벽히 가두는 데 성공한 순간.
‘지금!’
쿠오오오-!
용오름이 마치 정말 살아 있는 용처럼 기괴한 소리를 내며 허공에 떠 있는 노인에게 나아갔다.
그 속에 섞여 있는 깃털들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기어코 용오름이 노인을 집어삼키니.
콰아아앙-!
드드드드-.
곧 굉음을 내며 동공 전체가 크게 떨려 왔다.
유리는 거친 진동에 휘청거리는 육신을 바로잡으며 거칠게 숨을 할딱거렸다.
허억허억-.
‘마나가…….’
조금 전의 공격을 되돌려 보내며 보유한 마나가 뭉텅이로 깎여 나갔다.
‘…한 10% 정도 남은 건가.’
안 그래도 다른 기수들을 구하느라 체력 및 마나를 제법 소모했던 상태.
거기에 지금까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싸우느라 몸 상태가 서서히 한계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이제 그만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럴 리가 있나.’
유리는 쓴웃음을 머금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용오름이 휩쓸고 가며 머금었던 먼지를 터뜨렸기 때문일까.
뿌연 먼지들이 지면으로 가라앉으며 천장의 파편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와 함께 드러난 광경은 유리를 한숨짓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이씨…….”
거대한 구멍이 뚫린 천장.
그 아래 3쌍의 날개는 주인을 보호하듯 둥글게 말려진 상태였다.
또한 유리가 되돌려 보낸 깃털들이 그 주변으로 둥둥 떠 있었으니.
스륵-.
곧 깃털들을 흡수한 날개가 스르륵 펼쳐졌다.
그와 함께 드러난 노인의 모습.
“…옘병, 말짱해도 너무 말짱한 거 아냐?”
물론 유리의 한탄처럼 노인이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화신으로 보호했음에도 할퀸 듯 찢겨 나간 그의 백의가 조금 전 유리의 반격이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를 증명해 주고 있었다.
물론 그래 봤자 옷을 조금 찢어 낸 것에 불과했으니, 유리가 그리 한탄하는 것도 당연했다.
다만 노인의 입장은 좀 달랐다.
“이게… 무엇이냐.”
아무리 전력을 다한 게 아닐지라도.
자신의 공격을, 그것도 화신의 힘을 되돌리다니.
화신의 힘을 상대할 수 있는 건 화신뿐이라 여겼던 백검병 단장으로서는 현 상황이 그저 경악스러울 따름이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놀람 가득한 시선에 유리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마류.”
“마류라…….”
노인은 유리의 말을 따라 작게 읊조렸다.
그사이 유리는 자신의 화신이 있는 방향을 슬쩍 흘깃거렸다.
여전히 암석 사이에 처박혀 있는 검은 괴물.
조금 전, 분명 어느 정도 반응이 있던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순간에 녀석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여전히 까다롭게도 구네.’
저 녀석은 예전부터 그러했다.
분명 적극적으로 힘을 빌려주는 듯싶다가도 종종 까탈스럽게 거부할 때가 있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녀석이 힘을 빌려주는 순간은 자신이 살심(殺心)을 품었을 때뿐이었다.
자신의 것이지만, 제 의지대로 온전히 다룰 수 없는 위험한 힘.
그것이 자신을 해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임을 알면서도 유리는 어쩔 수 없이 이를 다뤄 왔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힘은 여전히 제멋대로였다.
그 사실에 유리는 조금 씁쓸해졌다.
‘널 제대로 다루기에는… 아직 내게 자격이 없다는 뜻이냐?’
그래도 조금은 성장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여전히 녀석과의 관계는 그다지 발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사실에 유리가 속으로 한숨을 내쉰 찰나.
“훌륭하구나.”
감탄 섞인 목소리가 유리의 고막에 닿았다.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에 그의 심장이 철렁거렸다.
“내, 너를 너무 어리게만 보았구나. 이토록 훌륭한 대적자였건만…….”
“…….”
“그러니 나 또한 예를 갖춰야겠지.”
덤덤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유리는 등 뒤로 소름이 돋아 올랐다.
“하하, 구,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제가 원래 좀 예의는 내다 버린 놈이라, 그냥 지금처럼 하셔도 되는데…….”
유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열심히 손을 내저었지만, 이미 변화는 시작된 뒤였다.
스르륵-.
노인의 등 뒤의 날개가 꾸물꾸물 움직여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면서 순식간에 그의 앞으로 모여드는 게 아닌가.
이를 본 유리의 뇌리에 경종이 울렸다.
동시에 그의 눈빛이 다급해졌다.
‘저건 진짜 위험해 보이는데?’
몸 상태는 물론이거니와 마나까지 슬슬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저 노인의 다음 일격을 버텨 낼 수 있을까?
아니, 다음 일격은 어찌어찌 버텨 낸다 쳐도…….
‘그다음은 없다.’
두 번째 공격까지 버텨 낼 자신은 없었다.
유리는 도망갈 구석을 찾아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그러던 순간.
‘응?’
유리의 시선에 무언가가 걸려들었다.
난장판이 된 공동.
여기저기 널브러진 온갖 잔해 속, 반짝이는 황금빛.
‘저거……?’
공동에는 기수들이 버리고 간 배낭이 가득했고.
그 속에는 유리가 버려 둔 배낭도 있었다.
위급한 상황에 잠시 잊고 있었는데, 격전 중에 배낭이 찢기면서 그 속에서 자신이 챙겨 둔 진명로가 흘러나온 모양이었다.
그 순간 유리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였다.
‘가만?’
진명로는 분명 영혈을 뚫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었다.
이를 떠올린 유리의 눈에 결의가 스쳤다.
‘에이 씨, 어쩔 수 없잖아?’
이판사판.
모 아니면 도.
이미 영혈이 뚫린 자신에게 진명로가 어떻게 작용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비약이라고 불리니까 최소 마나 정도는 채워 주겠지!’
진명로가 마나만이라도 채워 준다면 최소한 기회를 만들 최후의 힘 정도는 되어 주리라.
그러니 유리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그리 결론 내린 이후 유리는 곧장 움직였다.
파측-.
한 줄기 뇌전이 번뜩인 순간 그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스르륵-.
노인의 앞에 모여들던 백색의 액체들이 온전한 형상을 갖췄다.
세 쌍의 거대한 날개.
뱀의 그것처럼 길쭉한 몸통.
날카로운 부리를 지닌 맹금류의 머리.
노인의 앞에 나타난 건 온통 백색 일색의 괴조였다.
키에에에-!
괴조는 등장과 함께 괴성을 내질렀고.
“백광현월(白光弦月).”
하얗고 거대한 초승달이 공동에 있던 자리에 내리꽂히며 빛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힘이 그대로 미궁을 뒤흔들었으니.
콰아아아앙-!
그 충격은 지금까지 미궁을 강타한 그 어떤 힘과도 비할 바 없이 강력했기에 공동이 쉼 없이 흔들리며 지면이 쩍쩍 갈라졌다.
그리고 잠시 뒤.
공동을 장악했던 빛이 사라진 뒤 보인 광경은 경이(驚異) 그 자체였다.
수백을 가뿐히 수용할 수 있었던 공동의 중앙.
그곳에 직경 20m가 훌쩍 넘어가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심지어 그 깊이도 수십 미터에 달할 정도.
그건 도무지 한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힘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미궁이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다는 거였다.
마치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말이다.
그런 상황 속, 노인은 공동의 한쪽을 보며 눈을 빛냈다.
“허?”
노인의 시선이 닿은 곳.
미궁의 중심에 난 구멍의 가장 바깥 쪽.
그 경계 부근에서 유리가 힘겨운 얼굴로 헉헉-거리고 있었다.
노인은 이를 보며 감탄했다.
“진정으로… 제법이로다.”
아무리 백광현월의 힘이 가장 덜 미치는 곳이라고 하여도 그 여파가 결코 약하지는 않았다.
그건 유리가 서 있는 곳과 그 뒤편만이 멀쩡한 것이 증명해 주었다.
마치 작은 섬이 생겨난 것처럼 유리가 서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모든 곳이 거칠게 깎여 나가 있는 상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막아 냈구나.’
저 어리디어린 요람의 기수가 자신의 백광현월을 막아 냈다는 뜻.
그리고 그 불가사의한 힘의 원천은 분명 그 ‘마류’라 불리는 기예일 터.
‘대체 무슨 원리란 말인가?’
그리 감탄하던 노인은 만신창이가 된 와중에도 유리가 손에 꼭 쥐고 있는 돌멩이에 주목했다.
이를 유심히 본 그가 유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진명로인 게냐?”
자신이 보기에는 그저 일반적인 돌멩이로 보이지만, 고작 그런 돌덩이를 저렇게 소중하게 들고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 물음에 돌아온 건 연신 헉헉거리는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그러다 결국 힘이 빠진 유리가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뒈… 뒈질 뻔했네.’
농담이 아니고 조금 전 그는 정말로 이승을 하직할 뻔하였다.
진명로를 집어 든 순간, 등 뒤로 바짝 따라붙는 기운을 피해 달아나는 게 조금만 늦었다면.
전심전력으로 마류를 펼쳐 백광의 기운을 흘려 내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 공동의 중앙에 생겨난 거대한 구멍처럼 뼛조각도 남기지 않고 소멸하였을 거다.
“쿨럭!”
급하게 마나를 돌린 탓에 내상을 입은 유리는 피를 토해 냈다.
그런 그의 귀로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너는 진명로가 무엇인지 아느냐? 어째서 진명로가… 비약이라 불리는지 말이다.”
피를 토해 내고 조금 정신이 맑아진 유리는 노인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백의 노인.
그 서늘한 시선이 유리가 쥔 진명로에 닿았다.
“신양단… 이곳에 보내지는 죄수들에게 먹인다는 그건 독약 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인세에 보기 드물 정도로 강렬한 양기를 품은 비약이지.”
그리고 그 양기의 원천.
신양단의 재료 중 가장 중요한 핵심 재료는 다름 아닌 라이더란 성을 이은 자들의 혈액(血)이었다.
“라이더가의 혈통이 보유한 양기는 너무 강렬한 나머지 일반적인 몸뚱이로는 버텨 낼 수 없다. 이 금월기(金月氣)의 중화 작용이 없다면 육신이 잿더미로 화할 만큼 강렬하지.”
노인은 공동을 잠식한 노르스름한 기운을 훑으며, 라이더 가문의 비밀을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놓았다.
“신양단의 양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복용자의 기운에 완전히 뿌리내리게 되는데, 그러다 간혹 금월기와 신양단의 양기, 복용자의 기운이 균형을 이뤄 내단을 이루게 되는데, 그게 바로… 네가 손에 쥔 그 진명로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라이더 가문은 일부러 죄수들을 미궁으로 들여보낸 것이었다.
진명로라는 희대의 비약을 얻기 위해.
“이제 알겠느냐? 진명로가 어째서 비약이라 불리는지?”
그의 설명에 유리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였군.’
진명로.
이는 분명 비약이란 이름이 가지는 사전적 정의에 걸맞았다.
비록 그것이 인간을 재료로 사용하여 만드는 인위적인 영약일지라도.
“진명로를 복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걸 깨뜨리면 되는 거지.”
노인의 설명에 유리는 손에 쥔 진명로의 촉감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래서? 갑자기 그 얘기를 해 주는 이유가 뭔데?”
“진명로란 결국 라이더 가문의 추악한 비밀이자, 그들이 누대에 걸쳐 수많은 생명을 짓밟아 가며 만들어 낸 부정의 결정이다. 과연 너에게는…….”
“…….”
“그걸 사용할 용기가 있느냐?”
노인은 유리를 잔잔히 내려다보았다.
“과연 그걸 사용함으로써 그 짙은 피비린내를 뒤집어쓸 용의가 있느냐?”
자신을 향한 노인의 시선.
유리는 그의 저 물음이 단순한 질문이 아님을 느꼈다.
‘시험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유리가 피식 미소 지었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야.”
“무엇이냐?”
“지하 4층… 거기서 일어난 학살, 그거 당신이 그런 거지?”
“…….”
노인은 침묵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유리에게는 충분히 답이 되었다.
“역시 그랬네.”
지하 4층의 벽에 뚫린 거대한 구멍.
그리고 지금 공동의 바닥에 뚫린 구멍까지.
그 두 가지가 같은 이의 솜씨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에 유리의 입꼬리가 크게 뒤틀렸다.
“내가 다른 사람이 추악한 비밀이니, 부정의 결정이니 하고 떠들었으면 그래도 듣는 시늉은 해 줬을 텐데…….”
진명로를 쥔 유리의 손에 서서히 힘이 들어갔다.
“그걸 노친네 당신이 지껄여서 그런지 너무 개소리처럼 들린단 말이지? 그리고 말야, 짙은 피비린내?”
저적-.
유리의 손안에서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 진명로.
그러다 마침내.
“그딴 건 뒤집어쓴 지 이미 오래야.”
챙-!
진명로가 산산이 깨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