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30
329화. 종료 (3)
시간을 조금 되돌려.
세 친구를 상대로 자신이 3년간 체득한 것을 보여 주려 했던 유리.
그는 순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처음이네.’
호수 지하에서 생활할 당시.
오른이와의 대련에서는 마나를 사용하지 못했었다.
하여 당시에는 그저 마나를 사용할 수 있다면 이런 식으로 움직일 수 있겠거니, 수없이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검을 휘둘렀을 뿐이다.
그러다가 지하 공간을 탈출한 뒤.
화려한 복귀 신고.
친구들과의 재회.
3년이란 시간에 대한 보상 협상.
요한과 함께하는 즐거운 도둑질.
그리고 영약과 비약의 섭취 등등.
채 며칠이 되지 않은 기간 동안 벌인 짓이 워낙 많아, 3년간 휘둘렀던 검을 돌이켜 볼 여유가 없었다.
때문에 그간 연습했던 수많은 검로에 마나를 담아 펼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나를 끌어올린 순간.
‘시원해.’
아무리 육체를 단련했어도 약간의 버벅거림이 존재하던 검의 움직임이 단 한 차례의 막힘도 없이 호쾌하게 뻗어 나갔다.
톡톡톡-.
검 끝이 화살촉을 건드려 방향을 비틀었고.
그대로 3대의 화살과 함께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유리의 검과 화살 3대가 뽀삐의 방패에 충돌하기 직전.
슥-.
유리의 검은 방패의 굴곡을 따라 급격히 선회했다.
반면 검과 함께 움직이던 화살들은 급작스러운 방향 전환을 따라가지 못해 그대로 뽀삐의 방패에 처박혀야 했다.
타다당-.
방패에 닿아 뭉개지는 화살촉.
이를 뒤로한 유리의 검이 방패의 면을 따라 움직이다가 그대로 강하게 튕겨 올랐다.
흡사 연검처럼 꿀렁이는 유리의 검.
우웅-.
일반적인 검이면 부러졌을 각도였으나, 충만하게 담긴 마나가 검의 탄성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그렇게 휘어진 검이 뽀삐의 안쪽 허벅지를 긁고 지나갔으며.
순식간에 일자로 펴지며 옆에서 날아오는 군터의 검에 착- 하고 달라붙었다.
그러고는 군터의 검이 날아오던 속도를 그대로 이어받아 가볍게 몸을 떠니.
푸슥-.
군터의 푸른 마검이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고 지면 깊숙이 박혀 들었다.
그 모든 게 한 호흡이 끝나기도 전에 벌어진 일들.
또한 이는 뇌익도, 운보도, 마류도 아닌, 오로지 검술로만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검술의 기교.’
요람에서의 1년 차와 2년 차.
그 시간 동안 유리는 자신에게 부족한 기본을 채워 나갔다.
그리고 호수 지하에서의 3년.
오른이와 보낸 그 시간 동안 유리가 채워 나온 건 다름 아닌 기교(技巧)였다.
그렇게 검이 움직인 길을 되짚어 보던 유리.
그러다 그는 일순간 달라진 광경에 눈이 빛났다.
조금 전 방패에 충돌해 뭉개졌던 화살들.
뽀삐의 허벅지에 난 상처.
지면에 틀어박혔던 군터의 검.
그 모든 게 처음으로 되돌아와 있었으니.
뒤늦게 이를 눈치챈 유리는 탄식했다.
‘그건… 허상이었구나.’
시간이 멈춘 세계.
그리고 찰나의 순간 유리의 눈앞에 그려진 검의 움직임.
이는 허상이되 허상이 아니었으며.
유리가 선택할 수 있는 수천, 수만 가지의 갈래 중 최고의 검로였으리라.
이를 깨달은 유리가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네가… 보여 준거냐?’
마치 검의 영혼이 자신에게 길을 알려 주는 듯한 경험.
혹은 자신의 영혼이 검 속으로 빨려 들어가 하나가 되어 움직인 듯한 경험.
‘잡아야 해… 놓치면 안 돼.’
본능적으로 조금 전의 감각을 붙잡고자 유리는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구우우웅-.
무형의 힘이 일어나 뽀삐와 군터를 강타하여 밀어냈다.
‘아아……!’
다시 한번 어렴풋이 다가온 감각.
세상이 커지고 육신과 검이 하나 되는 듯한 기묘한 느낌.
그것이 유리를 돈오로 이끌었으니.
‘아… 이 느낌이 설마?’
그와 함께 그의 머릿속에 과거의 기억이 스치듯 떠올랐다.
* * *
때는 바야흐로 몇 년 전.
“궁금하지 않냐?”
“뭐가?”
“강·연·화·마·성을 거쳐 공인 7단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영역(Zone)이라면 공인 8단과 9단에서는 무엇을 이룰지.”
도무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는 말로 유리를 꼬드겨 인적 없는 곳까지 끌고 간 요한.
뒷짐을 지고 조금 앞서 걸어간 그는 빽빽이 나무가 들어찬 숲을 보며 입을 열었다.
“강·연·화·마·성 공인 6단까지의 경지는 누가 누가 얼마나 더 마나를 잘 다루고, 빠르게 파장의 일치율을 끌어올리느냐의 문제였다.”
마나 핵과 본신 무기.
두 파장이 100% 일치하게 된다면 열리게 되는 성의 경지.
요한은 거기서부터 다시 짚어 가며 설명했다.
“흔히 성의 단계까지는 경계 안의 경지라 칭한다. 그리고 공인 7단, 절대 감각의 영역(Zone)부터는 경계 밖의 경지라 칭하지.”
잔잔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유리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그 경계를 나누는 기준이 뭔데?”
그 물음에 요한은 짧게 답했다.
“식(式).”
“식?”
“혹은 틀이라고도 하지.”
“흠?”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한 유리의 눈빛에 요한이 상세한 답을 줬다.
“성의 단계까지는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닿을 수 있다. 힘이 들지라도 거기까지 도달하는 방식이 정해져 있으니까.”
성의 경지에 도달하는 방식은 파장의 일치율을 100%로 끌어올리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영역을 개화하는 단계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역을 개화하는 방법? 그건 적어도 수백, 수천 가지가 있을 거다.”
“어째서?”
“영역을 개화시키는 건… 지옥 같은 노력 끝에 찾아온 한 줄기 영감이니까.”
끝없는 노력 끝에 찾아오는 깨달음.
어떤 깨달음을 얻느냐에 따라서 영역을 개화하는 방식마저 달라진다.
영역의 개화란 답은 정해져 있지만, 그 풀이 방식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뜻.
또한, 그게 정해진 틀이 존재하지 않는, 공인 7단 이후의 경지로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모든 경지가 그렇겠지만, 높은 곳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오르고자 할수록 가로막는 벽은 더 거대하고 단단해지는 법이다. 특히 공인 6단 이후부터는 그 벽을 허무는 데 지난한 세월이 걸리지. 하여 그 구간에서 얻는 한순간의 깨달음과 행운에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의 세월이 좌지우지되는 게다.”
요한은 그러면서 유리를 돌아보며 웃었다.
“내가 봤을 때 네놈은 지금까지 그 깨달음을 남들보다 쉽게 얻어 왔었다. 그러니 현재에 이르며, 지금까지 네가 누린 깨달음과 행운이 미래의 것을 땡겨다 쓴 게 아니길 바라는 게 좋을 거다. 낄낄.”
놀리는 듯한 그 웃음에 심통이 난 유리가 입을 삐죽거렸다.
“그래서 그거랑 공인 8, 9단에서 이룰 수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그런 뾰로통한 유리의 목소리에 요한은 검을 뽑아 들며 두세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절대의 영역이 끊임없이 감각을 확장하고 단련한 끝에 얻을 수 있다면…….”
가볍게 늘어뜨린 검 한 자루.
요한이 거기서 뒤돌아 유리를 향해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그건 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별 볼 일 없는 동작이었다.
왼쪽에서 오른쪽.
빠르지도, 그렇다고 힘이 실린 것도 아닌.
오히려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도 느리고, 충분히 피할 수 있으리라 여길 정도의 형편없는 움직임.
하지만 그 앞에 놓인 유리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히 변했다.
‘이게… 뭐야?!’
요한의 저 형편 없는 베기 동작.
이를 마주한 유리는 한순간에 깨달았다.
‘이건……!’
강하지도, 빠르지도 않은 저 단순하기 짝이 없는 검을.
‘절대 피할 수 없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피할 수 없다고.
유리는 요한의 검을 보는 순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렇게 얼어붙은 그를 향해 마저 검을 휘두른 요한.
그의 입에서 덤덤한 목소리가 이어졌으니.
“이는 수없이 검의 길을 단련한 자만이 비로소 닿을 수 있을 게다.”
철걱-.
요한의 검이 검집으로 들어가고.
“나와 검, 검과 나의 경계가 무너지는 경지에.”
서걱-.
요한의 목소리에 미약한 절삭음이 섞여 들었다.
이에 유리의 고개가 절삭음이 들려온 뒤편으로 돌아가니.
스그극-!
유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작은 나무가 사선으로 썰려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를 멍하니 바라보던 유리가 요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 요한이 보여 준 일격.
피할 길이 보이지 않던 필살의 검격.
이를 몇 번이고 머릿속에 새기며 유리가 물었다.
“방금… 그게… 뭐야?”
살짝 넋이 나간 듯한 그의 목소리에 요한은 피식 웃으며 답을 줬다.
“아신검(亞神劍).”
* * *
유리의 갑작스러운 돈오.
그것도 한창 신나게 잘 싸우고 있다 일어난 상황에 합공하고 있던 세 사람은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아니, 쟤는 왜 자기보다 약한 애들이랑 싸우다가 갑자기 깨달음을 얻는 건데?”
“배고프다!”
심통이 난 듯한 아린과 이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뽀삐.
그리고 그 옆에는 군터가 조금 전 했던 말을 또다시 내뱉으며 작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중이었다.
“이게… 이런 기분이었던 거군.”
유리와의 첫 대련 당시.
그때는 자신이 싸움 도중 돈오 상태에 들어갔었다.
하여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거… 상당히 짜증 나는군.”
싸움 도중 돈오에 든 상대를 바라보는 기분이란 참으로 억울하기도 하고, 짜증스러웠다.
특히 그 상대가 유리이니 그런 감정은 몇 배나 증폭되었다.
‘저 녀석을 통해 나 자신을 검증하려 했었건만…….’
오히려 뭔가 자신이 되레 이용당한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하여 유리를 바라보며 군터가 한마디를 던졌다.
“재수 없군.”
그렇게 아린과 뽀삐, 군터에게 질타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유리.
그는 서서히 돈오에서 깨어나 심상을 갈무리하는 중이었다.
의식을 찾음과 동시에 그에게 가장 먼저 찾아든 건 아쉽다는 감정이었다.
‘이거뿐인가…….’
잡힐 듯 말 듯 아른거리다 멀어지는 감각.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지 않은 채 흩어지는 신기루와 같은 영감에 유리는 입맛을 다셨다.
‘아직은 자격이 없다는 거냐?’
공인 8단의 경지.
나와 검의 경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통해서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아신검(亞神劍).
요한이 언급했던 바로 그 경험까지는 도달하였지만, 이를 온전히 체득하지는 못하였다.
그저 어렴풋이 발을 살짝 들인 정도.
그건 아마도 자신이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뜻일 터.
그러한 사실이 유리의 의지에 불을 지폈다.
‘아직 내 준비가 덜 끝난 게 문제라면… 준비가 될 때까지 몇 번이고 도전해 주마!’
그리고 그 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흩어지는 감각이 마저 사라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실마리를 잡아야 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말이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쉰 유리.
그가 번쩍 눈을 뜨며 친구들을 향해 소리쳤다.
“뭐 하냐, 후딱 안 들어오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더니 고작 이것뿐인 거냐? 좀 더 기세를 끌어올려서 팍팍 달려들란 말야! 팍팍!”
유리는 몸이 근질거렸다.
훨씬 더 격한 싸움을 통해 조금 전 자신이 느낀 감각을 되살리고 싶었다.
‘아까 전보다 더!’
더 빠르고 격렬하게!
더 치열하고 아슬아슬하게!
실전을 통해 수없이 휘둘렀던 검로를 다시 한번 그려 보고 싶었다.
그런 열망을 품은 유리가 검을 치켜들며 눈을 빛냈다.
“니들이 안 오면 내가 간……!”
“기권합니다.”
안달이 나 친구들에게 달려들려던 유리.
“…흐엥?”
그는 손을 번쩍 들고 기권하는 아린의 모습에 기괴한 소리를 내며 멈칫거렸다.
“엉?”
그사이 군터와 뽀삐도 손을 번쩍 들었다.
“기권합니다.”
“배고프다!”
“아, 옆에 이 친구도 기권하겠다고 하는군요.”
먼저 기권하고 친절히 뽀삐의 말까지 통역해 주는 군터.
그렇게 세 사람이 줄줄이 기권하자 경기를 관람하고 있던 이들은 당황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당황한 건 유리였다.
“아, 왜!”
니들이 여기서 기권하면 어떡하냐!
“최선을 다하겠다느니, 무슨 검증이니 어쩌구 하면서 세상 그 누구보다 비장함을 보이더니만!”
그런 유리의 절규에 세 사람이 차례로 입을 열었다.
“이건 우리가 아무리 아득바득 열심히 덤벼 봤자 결국 패배가 확정된 시합이다. 그런데…….”
서늘한 눈빛의 군터.
“배고프다.”
어느새 거인화를 풀고 씩씩거리는 뽀삐.
“우리의 개고생이 결국 너한테만 좋은 일이라는 게…….”
뾰로통한 표정의 아린.
이후 그들 셋이 한입처럼 말했으니.
“아니꼽군.”
“배고프다.”
“아니꼬워!”
그 말을 던진 세 사람은 기권에 대한 조금의 후회조차 없는지 사뿐히 등 돌려 경기장을 벗어났다.
그와 함께 울리는 흑검병의 목소리.
“이로써 올해 무룡 대전의 우승자는 유리 홀랜드다!”
자신의 승리를 확정 짓는 선언에도 유리는 한동안 경기장을 떠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마치 버림받은 고양이처럼 시무룩한 얼굴을 한 채.
* * *
다음 날.
무룡 대전의 2, 3, 4위를 결정짓는 시합이 열리고 있을 시각.
유리는 검고 거대한 철문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옆에서 들려온 안경남의 목소리.
“이미 한 번 들어가 봤으니 길게 설명하지는 않겠다. 너에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 그 안에 단 한 가지의 물건을 선택한 뒤 빠져나와라. 물고기 밥이 되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간단한 설명이자 경고를 한 안경남이 손잡이를 잡아당겼고.
드르르르르르-.
거대한 흑룡고가 유리 앞에 두 번째로 속살을 드러냈다.